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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6

       돈은 황실과 귀족들이 내고 일 처리는 아카데미와 학생회가 다 한다는 것에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원래부터 나는 돈 관리는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생활비를 엄청나게 빡빡하게 잡고 게임과 굿즈를 사다가 예상하지 못하게 돈이 나갈 일이 생겨서 굶는 것은 예사였으니까. 내가 직접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적어도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나는 상당히 자주 굶고 다녔다.

        

       이쪽 세상에 와서도 예산 생각 안 하고 그냥 막 쓰고 살아온 편이고. 생각해보면 내가 써온 돈도 액수를 들으면 아찔해지는 금액일 것이다. 총을 사는 것은 둘째치고, 마르마로스를 가공해서 총알로 쓴다던가, 내가 살던 세상의 기술로는 만들지도 못하는 강화 외골격을 만들어 입고 뛰어다닌다던가.

        

       전부 뒤에 황실의 금고가 있었기에 사들일 수 있었던 것들이다.

        

       만약 내가 학생회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그 예산에 손을 대게 된다면 분명 엄청나게 방탕하게 돈을 써서 여러모로 큰일 날 게 분명하다.

        

       학생회 애들이 그 돈을 빼돌릴 만큼 빈궁한 애들도 아니고, 무엇보다 여러 귀족가에서 낸 돈에 황실과 외국 왕실의 돈까지 섞인 예산을 빼돌릴 만큼 정치적인 판단을 못 하는 놈들이 있지도 않았으니, 나는 굳이 걱정할 필요 없이 아카데미가 문화제를 위해 조금씩 모습을 바꿔나가는 걸 지켜보기만 하면 될 터였다.

        

       “화, 황녀님?”

        

       학생회 학생 하나가 나를 찾아와 그렇게 부를 때까지는.

        

       “무슨 일입니까?”

        

       나한테 말을 거는 것만으로도 쪼그라들 것 같은 표정을 한 그 작은 여학생은, 나의 목소리를 듣더니 화들짝 놀랐다. 아니, 네가 불렀잖아.

        

       “서, 서, 선생님께서 부르셔서요. 황녀님 좀 불러와달라고…….”

        

       “저를?”

        

       나는 학교 선생들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캐롤린은 나를 따로 부를 이유가 딱히 없다. 나와 캐롤린의 관계가 나쁘다는 소리가 아니라, 애초에 서로 뭔가 부딪힐 일이 없다는 소리다.

        

       우리가 노스우드 영지에서 지보 하나를 빼돌리긴 했지만, 그 이야기는 정작 노스우드 공작은 모를 일이니까.

        

       그렇다면 나를 부를 선생은 제니퍼밖에 없다는 말인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마자 조금 불안해졌다. 내 능력이 사라진 것을 제니퍼도 알고 있으니 나에게 전장으로 향하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 이상으로 성가신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팍팍 들었다.

        

       “선생님이?”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앨리스도 그렇게 물었다. 우리한테 말을 건 학생은 더욱 쪼그라들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쪼그라들다 못해 공허 어딘가로 사라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거기에 근처에 있던 샤를로트의 시선까지 자기한테 돌아오니 거의 물리적으로 목이 졸린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이름은 알고 있다. 얘는 귀족 B반 소속이다.

        

       그러고 보니 B반 담임도 제니퍼구나. 그러면 제니퍼 맞겠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같이 가줄까?”

        

       앨리스의 제안에 나는 잠깐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뇨,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상대가 엄청나게 껄끄러운 사람이라면 모를까, 제니퍼 정도라면 크게 문제없을 것 같다. 만만하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앞에서 내가 뭔가 꿀릴만한 짓을 한 적은 없으니까.

        

       빚이라면 진 적이 있지만, 그건 그때 전장을 밀어버리는 것으로 갚았다. 당시 제니퍼는 내가 빚을 갚았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고.

        

       “그럼, 안내해주시죠.”

        

       “아, 알겠습니다.”

        

       무슨 명령이라도 들은 것처럼 그 여자애는 허리를 빳빳하게 세우며 대답했다.

        

       *

        

       “아, 그래, 왔나?”

        

       내가 제국 황실의 이인자가 되었어도 제니퍼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다. 만약 요즘 교장이 나한테 그러듯 깍듯한 태도를 취해 보였다면 나는 얼른 몸을 돌려서 도망가버렸을 거다.

        

       하긴, 제니퍼 성격이면 내가 황제가 되어도 똑같이 굴 것 같지만.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다.

        

       “어떤 일 때문에 부르셨습니까?”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제니퍼는 책상 위에 있던 서류를 한 장 집어서 내게 넘기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교사를 한 사람 더 뽑을 것 같아서 말이야.”

        

       “……교사를 더 뽑는 일에 왜 저를 부르셨습니까?”

        

       일단 내 앞에 내민 종이를 받아서 들며 물었다.

        

       “그 교사 자리에 들어올 사람이 너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

        

       나는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이력서라기에는 비어있는 공간이 엄청나게 많았다. 쓰여있는 곳은 생년월일과 나머지 최소한의 자기소개뿐이고, 나머지 공간은 죄다 비어있었다. 마치 자기는 그래도 된다는 듯이.

        

       아니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이력서 사진 붙는 곳에 붙어있는 사진만으로도 설명이 충분했다.

        

       “……검성이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고요?”

        

       제니퍼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게 말이다. 나도 왜 그러는지 몰라서 너를 불렀다.”

        

       “저를 부르면 그 답이 나옵니까?”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대답했더니, 제니퍼는 다시 한번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글쎄, 그냥 왠지 너라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

        

       내가 어떻게?

        

       검성을 본 시간만 따지면 그래도 꽤 길다고 할 수 있겠다. 시간을 돌려가면서 수련하기도 했고, 나름대로 익힐 수 있었던 기술들도 있었으니까. 나중에는 검성이 아예 황궁 안까지 와서 우리 훈련하는 걸 도와주기도 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굳이 나를 짚을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제대로 된 제자라고 하면 최소 몇 년은 그 아래 있었던 제니퍼라던가, 나보다 훨씬 더 나은 재능을 지녔던 클레어, 레오, 앨리스도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 재능도 가장 떨어지고 배운 시간도 적은 편인 나를?

        

       “나라고 그 검성의 생각을 다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전혀 납득하지 못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 제니퍼가 보충 설명을 하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검성이라고 무조건 재능있는 이만 아끼는 건 아니야. 이전에는 그 아래 나 말고도 제자가 많았다는 것 같으니까. 대부분은 전장에서 죽었지만.”

        

       “…….”

        

       “검성은 너를 볼 때마다 ‘재능이 없다’라고 하고 있다만, 그러면서도 너를 ‘제자가 아니다’라고 하지는 않았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아주 당연하다는 제자라고 여기고 있어.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검성 아래 있는 제자 중에서 ‘재능이 없는 이’를 본 적은 없다만……”

        

       거기까지 말한 제니퍼는 아주 잠깐 내 눈치를 봤다. 나더러 재능 없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게 미안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재능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니까.

        

       “검성쯤 되는 사람이라면, 보통 가르침을 받으러 오는 시점에서 제자들이 한 번 걸러지는 법이다. 알고 있나?”

        

       알고 있었다, 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대충 상상은 해볼 수 있었다.

        

       무려 검성이다. 제국 제일검, 어쩌면 대륙에서 가장 검을 잘 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듣는 이에게 ‘제자가 되고 싶다’라고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기 재능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검성의 수업을 받을 자격이 있는 건 아닐 테니까’하고.

        

       원래 고수라는 게 그런 이미지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검성에게 너라는 제자는 조금 특이하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르지. 재능이 없으면서도 당당하게 자길 찾아와서 가르침을 청하고, 기어코 배워가는 것이 있었던 몇 안 되는 제자였을 테니까.”

        

       “…….”

        

       으음.

        

       그렇게 말하면 또 나를 부른 이유가 설명되긴 하는데.

        

       그런데 검성이 나를 그렇게 아끼고 있었다고?

        

       그 검성이?

        

       여전히 전혀 납득하지 못한 표정을 하는 나를 보고, 제니퍼는 짧게 웃었다.

        

       “아무튼, 내가 너를 부른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객관적이라고 할 수도 없고, 납득하기도 애매한 이유지. 하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검성과 짧게라도 대화를 해주었으면 한다.”

        

       ……대화?

        

       “아무리 그래도 아카데미의 교사를 뽑는데 아무런 면접도 없이 뽑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스승인 검성을 잘 알고 있거든. 그분은 누구 앞에서 자기 속내를 쉽게 드러내는 분이 아니다.”

        

       “그래서, 그 속내를 저더러 캐보라고 하시는 겁니까?”

        

       “너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아니, 나를 너무 높게 보고 있는 거 아닌가?

        

       안 그래도 지금까지 시간 돌리기로 막아두었던 내 말실수들이 나를 쓰나미처럼 덮치고 있는 와중인데, 그런 나를 보고 검성한테 이런저런 정보를 캐내라고 하는 건가?

        

       “……그건 아카데미 측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그렇긴 하다만, 솔직히, 검성이 그냥 일반적인 지원자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

        

       내가 아무리 거절해도 끝까지 권유할 것 같은 표정이다.

        

       나는 일부러 보란 듯이 한숨을 푹 쉬어 보였지만, 제니퍼는 끝까지 웃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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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닐라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쓰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만, 만약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저의 글을 보여주지 않고 혼자 글을 썼다면 분명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나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분명 초반 몇 페이지 정도만 쓰고 포기해버렸겠죠. 실제로 그렇게 되어버린 글들도 꽤 많구요. 다행히 그런 글들이 지금 남아있어서 제가 다음 작품을 쓸때 좋은 소재거리가 되긴 합니다만, 그걸 소재거리로 써서 새로운 글을 쓸 생각을 하는 것도 모두 저의 글을 읽어주실 독자 여러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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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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