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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6

    예르나가 만든 음식은 끔찍했다.

    그야 소금과 설탕을 헷갈리는 중대한 실수를 범했으니 요리에서 정상적인 맛이 날 리가 없다.

    루크는 하루종일 숲에서 힘들게 일할 다이튼에게 이런 음식을 대접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간을 볼 생각도 안 해 봤는가?”

     

    루크가 입가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묻자, 예르나는 바닥의 무늬를 응시하며 입이 여러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그……. 내가 맛을 봐도 사실 뭘 어떻게 고쳐야 하는 지 잘 모르고……. 그래서 그냥 레시피대로 만들려고 했어. 게다가, 당장에 레시피대로 하기에도 바빠서…….”

     

    예르나의 말은 어차피 맛이 이상해도 요리에 별 재능이 없는데다, 애초에 음식맛에 예민하지 않은 자신은 고칠 수 없을 테고, 일단 시간도 없어서 그냥 레시피가 쓰여진대로 다 했다는 모양이다.

    확실히,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다만, 실제로 예르나의 요리는 맛을 보기 전 까지만 해도 꽤 그럴듯하게 보였다.

    치명적인 문제는 설탕과 소금을 헷갈린 바로 그 실수였다.

     

    루크는 한숨을 쉬며 ‘설탕’이 담긴 통을 바라보았다.

    자세히보면 입자도 다른데, 그만큼 주의깊게 살필 시간은 없었던 걸까?

     

    “아무래도 설탕통과 소금통에 글자라도 써 붙여야 할 것 같군.”

    “……응.”

     

    결국 루크가 소매를 걷어붙일 수 밖에 없었다.

    죽은 요리를 살리는 것은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 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다.

    실제로 루크는 수십명의 죽은 자를 되살려낸 경험도 있으니, 그것은 확실한 비교가 되는 문제였다.

     

    과도한 설탕의 맛을 잡기 위해 레시피를 보고 비율을 계산해 물과 재료를 추가하고, 이것저것 향신료를 써서 덮으니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스프가 완성이 되었다.

    달콤짭짤하며, 은은하게 상큼함이 스며든 맛.

    그리고 한번 폭발한 덕인지, 스프에 무레의 향이 깊게 우러나 있어서 상큼한 느낌도 전보다 확실히 느껴지는 것이 좋았다.

     

    마침내 요리를 살려내는 것에 성공한 루크가 엄지를 치켜세우자, 예르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루크는 씨익 웃었다.

     

    “그럼, 다들 깨우러 가볼까요?”

    “응! 그러자.”

     

    어떻게든 아침이 완성되었으니, 이제는 다이튼과 아이들을 깨우러 갈 차례다.

     

    —————

     

    식사는 다행히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 식사를 예르나가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이튼이 어찌나 기뻐하던지!

    실제로 수습은 자신이 하기는 했지만, 결국 준비를 한 것은 예르나가 맞았으므로 거짓말은 아니었다.

    마냥 떳떳하지 못한 예르나는 굉장히 부끄럽다는 듯 붉은 얼굴로 요조숙녀처럼 숟가락을 깔짝댈 뿐이었지만.

     

    그래도, 꽤 보람이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식사를 마쳤다면 이제 양치를 할 시간.

     

    두 아이들을 화장실로 이끌고 각자의 손에 치약을 짠 칫솔과, 입을 헹굴 물을 컵에 담아 손에 쥐어주었다.

     

    “자, 이제 정신을 좀 차리거라. 밥을 먹었으니 양치질을 해야지.”

    “흐웅…….”

    “음…….”

     

    하지만 어젯밤 내내 놀았는지, 파이리스의 표정은 방금 밥을 먹은 파이리스의 표정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 할 정도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본래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정령체인 파이리스는 현신한 뒤엔 피로에 굉장히 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이리스의 곁에 선 디아나 역시 몽롱한 표정이었다.

    그야, 파이리스와 같이 놀았을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를 닦다보니 슬슬 정신이 드는 지, 아이들의 손은 점점 더 정확해져갔다.

     

    결국 정신이 좀 든 뒤로 디아나는 양치질을 곧잘 하는데, 파이리스는 영 미숙했다.

    낯설겠지.

    파이리스에게 양치질을 몇 번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이를 10번은 닦아 봤을까?

    그동안 파이리스는 귀찮고 이상한 맛이 난다며 양치질을 기피해 왔으니 말이다.

    아마 파이리스는 치약의 인공적인 그 맛을 싫어하는 것 같다.

     

    덕분에 루크는 파이리스에게 새삼스레 이 닦는 법을 다시 가르쳐 주어야 했다.

     

    “그래, 파이리스. 칫솔질은 그렇게 하는 게다. 잘 하는구나.”

    “웅…….”

     

    파이리스가 루크의 조언에 따라 계속 칫솔을 움직일 때, 디아나는 양치질을 하며 입 안에 물을 머금고 복작댄다.

     

    “우굴우굴…….”

    “디아나, 입가에 치약 거품이 잔뜩이다. 입가를 더 헹구거라.”

     

    그러자, 디아나가 물을 뱉으며 대꾸했다.

     

    “퉤에……. 언니는 잔소리가 넘 심해.”

    “잔소리라니? 이건 조언이란다.”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루크는 당혹감을 감추며 대답했다.

    하지만 디아나는 아직 할 말이 남은 모양이다.

     

    “그치만, 아까 전에 밥 먹을 때도 계속 했잖아, 잔소리.”

     

    디아나는 잔소리가 싫었다.

    고아원에서 항상 듣던 소리가 잔소리였고, 오빠도 맨날 잔소리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슬슬 남들이 자신에게 간섭하는 게 싫어지는 나이이기도 했다.

     

    하지만 호의 없이 잔소ㄹ……아니, 조언을 하지 않는 루크는 목소리에 자신의 진실된 감정을 실으며 대답했다.

     

    “졸면서 식사를 하다 혀를 데이거나 할 수도 있지 않느냐. 걱정되어서 그런게지. 너희들은 모두 나의 소중한 가족들이니 말이다.”

    “음…….”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걱정되니까 하는 말이라고 하니, 디아나도 더 이상 토를 달 수는 없었다.

    그리고, ‘소중한 가족’이라는 말도 아주 신기했고.

     

    “가족……. 이구나, 이제는.”

    “응.”

     

    파이리스도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었다.

     

    “뭔가 신기해, 루크언니가 이제 내 언니고, 예르나언니가 내 엄마라니.”

     

    아는 사람이 어느샌가 가족이 된다는 건, 디아나에게 아주 신기한 일이었다.

    가족이란 건 원래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건 줄 알았는데, 어느샌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니까.

     

    ‘이제 언니랑 쭈욱 같은 집에 산다니!’

     

    마치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노는데, 집에 안 가도 되는 기분이다.

    굉장히 신이 난 디아나.

     

    하지만, 루크는 결국 또 잔소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은 엄밀히 따지면 나는 네 언니가 아니라 조카고, 예르나는 네 엄마가 아니라 올케라고 한다.”

     

    나이차이가 좀 있기는 하다만, 디아나는 다이튼의 딸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디아나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언니가, 조카? 엄마가……. 올케?”

    “맞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거야.”

    “??”

     

    머리를 싸맨 채 의문스런 표정을 짓는 디아나, 그리고 곁에서는 파이리스가 루크의 소매를 당기며 묻는다.

     

    “언니, ……올케가 뭐야?”

    “올케는 오빠의 아내를 칭하는 표현이지. 디아나에게 예르나는 오빠의 아내이니까, 올케가 되는거란다.”

    “아-.”

     

    파이리스는 알겠다는 듯이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파이리스의 표정은 여전히도 흐리멍텅했다.

     

    “전혀 이해 못했지?”

    “응!”

    “…….”

     

    루크는 고개를 저었다.

     

    ——-

     

    다이튼이 일을 하러 가고, 예르나가 이사를 하면서 새로 생긴 마당에 잔디를 깎으러 나간 사이, 루크는 저번에 흑마법사인 세이어가 남긴 안경을 분석하고 있었다.

     

    제 방이 생기니 좋은 점이 바로 이것이다.

    연구할 대상을 책상 위에 두고, 종이와 펜, 그리고 기타 마법진과 참고할 서적을 잔뜩 늘어놓을 수 있다는 거.

    이 얼마나 편한지!

     

    과거에는 마력세가 비싸게 나올까 봐 마법은 제대로 쓰지도 못 했고, 개인적인 공간도 협소해 화장실에서 연구를 해야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숲 근처라 마력세 걱정도 없고, 공간에 대한 제약도 없다. 만약 더 큰 규모의 실험이 필요하다면, 방문에 ‘열쇠’를 꽂아넣고 돌리기만 하면 좌표를 동기화해 둔 아공간, ‘아린세이아’로 갈 수도 있다.

     

    그야말로 환골탈태나 다름이 없다.

     

    덕분에 이 안경에 대한 연구도 눈에 띄는 진척이 있었다.

    여러가지 일 때문에 잠깐 미뤄두고 있었다는 말이 맞겠지만.

     

    ‘흐음. 그렇군. 이 안경에도 마력시와 비슷한 인챈트가 있었던 거로군.’

     

    그래서 자신의 ‘가치’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모양이다.

    마력시와 완전히 동일한 효과는 아니겠지만.

     

    뭔가 마력이 느껴지는 것 같더라니, 역시나 아티팩트였던 것이다.

     

    루크는 안경을 살짝 써봤다.

    일반적인 고양이계 수인처럼 ‘탑 이어’였다면 안경을 걸 귀가 없어 곤란했을지도 모르지만, 루크에겐 용의 뿔이 있으니 걸치는 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확실히 마안과 동일하진 않군. 대략적인 수준의 정보만 표시하는 정도야.’

     

    잠시 후, 디아나가 루크를 찾아왔다.

     

    “조카언니! 동화책 읽어줘!”

    “디아나……?”

     

    조카언니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뭐, 조카이고 언니이니까 크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자신을 부르는 기묘한 호칭에, 루크는 살짝 혼란스러움을 담아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디아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조카언니? 안경 왜 써? 눈 나빠?”

     

    루크는 안경을 벗어서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냥 어떻게 보이나 잠깐 써본게다.”

    “그렇구나! 근데 그 안경은 어디서 났어? 멋있다! 나도 써볼래!”

    “안 돼. 눈이 나빠질 수도 있다.”

     

    루크는 단번에 거절했다.

    어떤 마법이 인챈트된 안경인지 아직 정확히 밝혀내지도 못했고, 성장기 아이의 시력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면 곤란하니 말이다.

     

    “언니는 썼잖아!”

    “나는 괜찮아.”

     

    자신은 눈이 나빠질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디아나에겐 그저 자기는 되고 너는 안된다는 이중성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치사해! 나도 써볼래애애!”

     

    디아나는 떼를 쓰기 시작했다.

     

    “……하아.”

     

    디아나의 떼는 결국, 루크가 5서클의 권한으로 몇가지 원소 마법으로 즉석에서 자신의 안경과 비슷한 물건을 몰래 만들어 건네주고 나서야 끝났다.

     

    모든 원소의 완벽한 지배를 상징하는 권한인 5서클을 고작 장난감 안경 하나 만드는 데 쓰다니.

    5000년 전의 마법사가 본다면 그게 무슨 낭비냐고 비웃을 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조카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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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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