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96

       전투가 재개되고 나서 사신의 공격 속도는 이전보다 미묘하게 느려졌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은 그것을 보고 기뻐할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사신은 노골적으로 빈틈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상대의 공격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덤빌 것인가, 피할 것인가.

       불가피한 양자택일.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여기서 더 물러나면 그는 막다른 구석으로 몰리게 됐다. 애초에 사신은 그가 그런 위치에 섰을 때만 저렇게 빈틈을 보이며 그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원더스타인은 등에서 맨튤라의 칼날을 꺼내 그를 향해 쏘아 보냈다. 때로는 팔에서 본호그의 창을 뽑아내 날리기도 했다. 그림자 속에서 섀바인의 촉수를 일으켜 기습적으로 휘두르는 것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다. 그가 사신의 내비친 허점으로 파고들면, 놈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있던 엘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끼어들어 그의 공격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렇게 그가 주춤하게 되면, 사신의 발톱이나 낫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의 몸을 베고 들어 왔다.

         

       콰직.

       발톱에 찔리면 손상된 육체를 복구하기 위해 체력이 소모되었고, 낫에 찔리면 저번처럼 경험치가 빠져나가면서 신체 능력이 영구적으로 감소했다. 그래서 싸움이 계속될수록 그의 움직임과 반응 속도는 점점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원더스타인은 거친 호흡을 내쉬며 상처 부위로 손을 가져갔다. 다쳐도 몇 초면 멀쩡히 회복되던 것이 30초 넘게 흘렀는데도 피가 멎지 않았다. 피해가 한계 이상으로 누적된 것이다. ‘유라크네의 정성’이 제공하는 능력치 증가 지속 시간은 최대 1시간이었다.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에 한 잔 마셨으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는 선택해야 할 시간이었다.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것처럼 보이는 그였지만, 사실 그에겐 이 상황을 타개할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쓰면 엘라가 그에게 품고 있는 오해는 더는 풀 길이 없게 됐다. 그래서 그는 그 방법을 시도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녀를 설득해보고 싶었다.

         

       “엘라 양…….”

       “흥. 이제야 앓는 소리를 내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소용없어. 살고 싶으면 가식 그만 떨고 나를 죽이라고.”

         

       원더스타인은 몇 번이나 그녀에게 말을 걸려고 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며 그때마다 사신에게 공격을 독촉했다.

         

       엘라는 자신이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다. 혹시나 그와 대화를 나누게 되면 마음이 약해질까 봐 두려운 것이다.

         

       ‘저 자식에게 농락당하는 건 이제 사절이야. 난 속지 않아.’

         

       엘라는 원더스타인의 몸 상태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점점 더 잦은 빈도로 점점 더 심하게 상처를 입고 있었다. 이제 그의 죽음까지 몇 발자국 남지 않았다. 조금만 있으면 자신의 승리였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 떠오르는 감정은 후련함이나 통쾌함이 아닌 괴로움이었다.

         

       ‘분명 기뻐해야 하는데…….’

         

       그의 몸에 상처가 늘어날수록 그녀는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그녀는 그에 대한 동정심이 솟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어떻게든 그에 대한 증오를 짜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기억을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그에 대한 증오가 커지기는커녕 점점 사그라들었다.

         

       그와 웃고 떠들었던 모든 순간이 그녀의 머릿속에 하나하나 피어올랐다. 모두 즐거웠던 기억뿐이었다. 그것만 보면 그녀에겐 그를 미워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 소중한 추억의 앨범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가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것은 자신과 제일 친했던 친구들의 피였고,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모두 자신이 그에게 속았기 때문이었다.

         

       “쿨럭!”

         

       원더스타인이 피를 한 움큼 토하며 벽에 등을 기댔다. 방금 그는 사신이 강요하는 공격과 회피의 양자택일에서 처음으로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은 본인의 의지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앞서 그랬던 것처럼 허점을 파고 들어가려 했으나 부상 때문에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아슬아슬하게 몸을 뒤로 뺄 수밖에 없었다.

       사신이 날린 참격은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 공동의 벽 한쪽을 무너뜨렸다.

         

       “끼끼끼, 방금 어떻게 된 겁니까? 저 남자가 뒤로 물러날 것을 미리 읽은 겁니까? 아니면 설마……마음이 약해진 겁니까?”

         

       사신이 은근한 목소리로 그녀의 의중을 캐물었다. 원래라면 원더스타인이 그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그녀가 나서서 그 경로를 막아서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방금 움찔거리며 몸을 떨기만 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다행히 그가 몸에 이상을 느끼고 뒤로 물러났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캇피는 가슴에 구멍이 뚫릴 뻔했다.

         

       엘라는 그의 추궁에 억지로 비웃음 비슷한 것을 지어 보이며 소리쳤다.

         

       “헛소리! 내가 저 악마를 동정할 이유가 어디 있단 거야? 그냥 잠시……잠시 타, 타이밍을 놓쳤을 뿐이야. 어쨌든 계획대로 궁지에 몰아붙였잖아?”

         

       엘라는 사신의 등에서 내려와 벽에 기대어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원더스타인 앞에 섰다. 그녀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는 그녀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엘라 양……제 말 좀 들어보시겠습니까?”

         

       원더스타인은 마지막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이게 안 되면 그는 마지막 수단을 꺼낼 생각이었다.

         

       엘라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그를 쏘는 게 맞을까?

       그때, 그녀는 마음속에서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서로 상반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쏴 버려.

       안 돼. 그는 널 끝까지 공격하지 않았잖아.

       가식이야. 속임수라니까. 널 기만하려는 거야. 쏴!

       그는 대화를 원하고 있어.

         

       두 목소리는 서로 언쟁을 벌였다. 그것은 그녀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듣지 마! 감언이설로 널 또 속이려는 거야. 그는 인간이 아니야. 악마야!

       그가 너에게 해준 걸 생각해 봐. 그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에게만은 진심으로 대했어.

       그 결과가 찰리를 네 손으로 쏘게 만든 건데도?

         

       그녀는 이를 악물고 총을 쥔 손을 단단히 고쳐 잡았다. 당장이라도 총을 쏠 기세로 그를 노려보던 그녀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어째서……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거지?”

         

       원더스타인은 대화에 응해주는 그녀에게 감사의 표현으로 미소를 날리며 솔직하게 답했다.

         

       “저는 현재 웃는 표정밖에 지을 수 없습니다. 제 마음과 별개로 말이죠. 혹시 그동안 제 미소를 보고 오해했던 게 있다면, 그게 제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엘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그랬던 거구나.

         

       “그 비슷한 것일 거라고는 짐작했어.”

         

       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한 가지 의문이 풀렸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의문들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게 당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변명은 되지 않아.”

       “알고 있습니다.”

       “맞아. 나는 알아. 당신이 사람 목숨은 벌레만도 못하게 여기는 악당이라는 걸. 그런데 왜…왜……왜 나는 공격하지 않는 거지? 몇 번이나 기회가 있었잖아.”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던 그녀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왜 나만 그렇게 봐주는 건데? 왜 나만……아, 그래. 당신은 한 번 답한 적이 있었지. 내가 필요해서 그랬다고.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로 했어. 처음에는 억지로 그랬지만, 나중에는 진심으로 덤볐어! 2년의 약속을 들은 뒤에 말이야! 그래서……지금까지 잘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왜 그런 거야? 왜……내가 내 친구를 쏘게 만든 거지?”

         

       원더스타인은 깜짝 놀라 찰리가 쓰러져 있는 곳을 바라봤다.

       미스테릭서가 엘라의 친구라고?

         

       수수께끼에 쌓여 있던 그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물론 엘라의 정체에 대해서도 밝혀진 게 별로 없었기에 큰 의미는 없었지만.

         

       원더스타인은 속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 없었다.

       그녀는 죽어가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친구를 쐈다. 그런데 자신은 그녀의 앞에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 이 모든 게 연기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말았다. 그리고 미스테릭서를 원래부터 자신을 노리던 남자라고 아는 척하고 말았다.

         

       그녀가 그 상황을 자신이 유도했다고 오해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은 이번에는 좀 억지를 부려보기로 했다. 어떻게든 변명해보기로 했다. 그녀와 자신 사이에 더는 꼬인 매듭을 방치 해두기 싫었다.

         

       “당신 친구인 줄 몰랐습니다. 그냥 제 주위를 배회하며 제 목숨을 노리고 있는 줄만 알았죠.”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그럼 왜 그렇게 다친 연기를 한 건데?”

       “저는 그가 당신을 인질로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방심을 유도해 그를 당신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그런 겁니다.”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정말로 자신과 그녀 사이에 있는 오해를 모두 풀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그 기대감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에 금방 깨지고 말았다.

         

       “내 고향 사람들은?”

         

       어떤 질문을 하든 바로 답하려고 했던 원더스타인은 입을 딱 다물고 말았다. 엘라는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웃는 듯 우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수백 명이 죽었어! 그리고 평생을 함께 해왔던 학교 친구들도 수십 명이나! 당신은 그날 그렇게 학살을 벌이고 남은 사람들의 목숨을 빌미로 날 협박했어! 혹시 거기에 대한 변명도 준비되어 있어? 이것도 내가 오해한 거야? 응?”

         

       원더스타인은 처음으로 이 육체의 주인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어렴풋이 짐작하던 것보다 더 끔찍했다.

         

       그는 그녀가 가진 증오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자신도 그녀와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그가 몸담고 있던 사이비 종교가 수사의 대상이 되어 주요 관계자들이 줄줄이 체포되던 날, 보육원의 원장은 자신이 돌보던 장애아들을 모두 죽이고 자살했다. 거기서 살아남은 아이는 친구들이 숨져주었던 그뿐이었다.

         

       만약, 원장이 살아서 자신 앞에서 히죽거리며 웃고 있다면 자신은 그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원더스타인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 대해 변명할 말은 없군요.”

         

       엘라의 주먹이 원더스타인의 면상을 후려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고개가 꺾였다.

         

       “개새끼.”

       “……맞습니다.”

         

       그녀가 반대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재차 때렸다.

         

       “당신은……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나쁜……최악의 남자야!”

       “네. 사실입니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말에 대꾸하면서 동공 여기저기 깔아두었던 것들을 움직였다.

         

       섀바인의 촉수.

       그것은 어둠 속에만 자라고 움직일 수 있는 생물이었다. 생김새는 문어의 다리와 비슷했지만, 그 세포 구성은 혐광성 덩굴 식물과 유사했다. 그것은 자동으로 주변보다 밝은 곳을 피해서 자라났다. 그것의 가장 큰 특징은 그림자가 진 곳이면 땅속에 뿌리를 뻗고 자라나 멀리 있는 다른 그림자 속에서 줄기를 뿜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그림자를 통해 원격으로 조종 가능한 촉수였다.

         

       비록 그녀를 설득하는 일에는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죽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이제 자신이 그녀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악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악당답게 이 상황을 풀어나가기로 했다.

         

       엘라는 그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이딴 걸로 그가 죽을 리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그녀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찰리에게 자신이 가했던 짓을 그에게 똑같이 해주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이걸로 당신과는 끝이야, 원더스타인.”

         

       그녀가 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그가 공동 여기저기 뿌려놓은 섀바인의 종자들에게 생장 촉진 명령을 내리려는 그때.

         

       “다, 단장님?”

         

       네 명의 소녀가 공동의 입구로 들어왔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