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96

     판단은 빠르게.

     행동은 먼저.

     “마법사ㅡㅡㅡ!!”

     나는 크게 외침과 동시에, 아스타시아의 어깨를 꾹 누르고 앞으로 달렸다.

     세 걸음.

     폭발이 연달아 일어난다.

     구경을 하러 온 이들의 몸 속 깊은 곳에서 작은 황금빛 폭발이 일어난다.

     몸 속에서 터진 빛이 피부와 옷을 뚫고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두 걸음.

     카르멘 왕비와 같이 입에서 피를 토한다.

     내부 장기가 뒤틀린 것처럼, 극독에 내부 장기가 파열된 것처럼 피를 흘린다.

     어떻게?

     어째서?

     

     라는 생각을 하기 전, 나는 옆으로 뻗은 손에서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냈다.

     “하하하! 이게 바로ㅡ”

     하늘을 향해 광소를 터뜨리다가 고개를 숙인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과 눈이 마주친다.

     “어?”

     한 걸음.

     나는 세인트 지오의 앞까지 세 걸음에 도착해, 그대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푸화ㅡㅡ악!!

     붉은 피-가 튀었어야 할 목에서 황금빛 피분수가 터져나온다.

     거짓된 황금으로 뭉쳐진 황금의 노예들이 죽을 때처럼, 목이 잘려 하늘을 향해 치솟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몸에서 피가 줄줄 새어나왔다.

     순간적인 정적.

     누군가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나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베었다.

     그 상황을 깨달은 이들 중 누군가가-

     “꺄아아아악ㅡㅡㅡㅡㅡㅡ!!”

     찢어질 듯이 비명을 질렀다.

     웅성거리는 소란이 가득해지고, 병사들이 당황하며 표정을 굳힌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명한다ㅡㅡㅡ! 전원, 거리를 벌려라ㅡㅡㅡ!”

     나는 목에 마나를 담아 외쳤다.

     

     빠르게 뒤를 훑는다.

     아스타시아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나리아는 카르멘 왕비에게 다가가 부축하고 있고, 윈체스터 대공은 빠르게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손목에 휘감긴 마석시계를 향해 외치고 있다.

     비행선에 타고 있던 마법사 하나가 다급하게 내려다보는 모습이 보인다.

     ‘아직 시간은 있어.’

     왕국의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근원, 마법사의 힐링 마법이 제 실력을 발휘해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이 중에 가장 신경이 쓰이는 이,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 황제는-

     히죽.

     어느새 아스타시아의 뒤에 선 채, 나를 향해 짧은 순간 미소를 지었다.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겠다는듯.

     이미 내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목을 날려버린 것으로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스타시아를 보호해주는 건 고맙네.’

     위험한 상황에서 아스타시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건 합스베르크 황제를 기쁘게 하기 위해 나서는 게 아니다.

     서걱.

     한 번 더 검을 휘두른다.

     모두가 좀 더 확실하게 볼 수 있게,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몸을 사선으로 벤다.

     촤르륵.

     잘려진 단면에서 황금의 피가 뿜어져나와 흩어진다.

     몸은 금방 허물어져 황금의 액체로 흘러내린다.

     “노스트럼의 백성들이여! 해산하라ㅡㅡ!”

     나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채 멀뚱멀뚱 나만 지켜보고 있는 노스트럼의 백성들에게 소리쳤다.

     “주변인으로부터 떨어져라!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그대들의 뱃속에 들어간 황금을 폭파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가설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추론일 뿐이다.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고, 틀렸을 수도 있다.

     틀렸으니 나중에 소위 쪽팔린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내 추측이 맞다면 지금은 다닥다닥 붙어있어서는 안 된다.

     “모두, 거리를 벌려!”

     “흐하하하!!”

     광소가 터져나온다.

     목을 베면서 날아간 머리는 여전히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머리가 잘린 채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말했지!! 축하한다고! 축포를 내 손으로 직접 터뜨려주마! 왕으로서 명한다! 폭발하라!”

     세인트 지오가 외친 순간.

     콰ㅡㅡㅡ앙!

     백성들을 억제하고 있던 병사 하나의 목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어찌나 폭발이 강했는지, 투구 위로 목이 사출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붉은 피가 튄다.

     동시에 핏물 사이로 황금이 튄다.

     

     푸화아악.

     터진 병사의 목 위로 피분수가 뿜어져나오고, 병사는 그대로 뒤로 넘어지며 쓰러졌다.

     이번에는 목.

     폭발한 흔적 때문에 자세히는 보이지 않지만, 폭발한 곳에는 마치 목걸이를 따라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목걸이?

     “전원, 황금을 버려라ㅡㅡ! 어서! 미친 왕이 황금을 터뜨려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ㅡㅡ!”

     내 외침에 연단 위로 올라오려던 기사들이 흠칫 놀라며 그 자리에 멈춘다.

     누군가는 다급하게 갑옷 안에 있던 장신구를 내던지고, 또 누군가는 뭔가를 게워내려는듯 손을 입에 집어넣기도 했다.

     “도련님!!”

     회색 갑옷을 입은 로버트 경이 다급하게 하늘을 가리켰다.

     “……!”

     황금.

     가장 많은 황금이, 하늘에 빛나고 있다.

     “이런 젠장…!”

     “크하하하!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어리석은 것! 왕의 명령이다! 폭발하라!”

     세인트 지오의 머리가 하늘을 향하며 크게 소리쳤다.

     하늘에 떠있는 50m 짜리 황금의 비행선이 폭발하게 된다면, 그 폭발은 전부 연회장을 향해-

     “…….”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나기는 했는데 비행선이 터지지는 않았다.

     털썩.

     제국의 비행선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갑판 위 난간을 지키던 병사 하나의 가슴팍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병사는 그대로 난간 뒤로 넘어져 땅으로 떨어졌다.

     꺄ㅡㅡㅡㅡ아악!!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져내렸다.

     이미 떨어지기 전부터 즉사한 것과 마찬가지였으나, 추락과 함께 광장 건물 위를 붉게 물들이며 조각조각 흩어지고 말았다.

     “빌어먹을 노스트럼.”

     순간적으로, 짜증이 일어났다.

     폭발하는 것은 거짓된 황금.

     뱃속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건 거짓된 황금을 흡수했던 이들이 일부나마 배에 그 황금이 스며들었기 때문이고, 몸 곳곳이 폭발하는 이들은 그 거짓된 황금을 몇 달 사이에 장신구로 만들어 몸에 가지고 다녔기 때문일 터.

     현장.

     불특정 다수.

     황금을 가진 자를 일일이 구분할 수 있나?

     불가.

     그렇다고 한다면.

     “흐하하! 그 건방진-”

     서걱.

     한 번 더 검을 휘둘러 세인트 지오의 머리를 벤다.

     더 이상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하게, 콧대를 따라 머리를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주르륵.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머리가 황금으로 녹아내린다.

     경악과 분노가 담겨있는 붉은 눈동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지만, 곧 황금으로 흩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히죽.

     마지막 순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나를 향해 웃었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바로 뒤로 뛰었다.

     연단에서 거리를 벌리고, 아스타시아를 지키기 위해 그녀를 꼭 내 품에 끌어안았다.

     “그레이?!”

     “아스타시아.”

     나는 아스타시아의 얼굴을 내 품에 묻은 뒤, 그녀의 귀를 막았다.

     “이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ㅡ”

     파ㅡㅡ앙.

     폭발이, 한 번 더 일어난다.

     한 번의 폭발로 부족하다는 듯, 연쇄폭발이 일어난다.

     거짓된 황금을 가지고 있던 자.

     황금으로 된 장신구가 하필이면 거짓된 황금이었던 자.

     그리고 거짓된 황금으로 꿈을 체험하며, 그 꿈의 달콤함에 취해 그만 일부 몸 속으로 흡수해버리고 만 자.

     불특정다수의 노스트럼인들에게서 폭발이 연달아 일어났다.

     * * *

     

     제국력 99년 12월 24일.

     그레이 지브롤터와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의 약혼식이 열리던 와중,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국왕이 나타났다.

     황금으로 이루어진 분신과도 같은 무언가를 보낸 그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권능을 이용하여, 약혼식장에 있던 황금을 터뜨렸다.

     황금은 폭발 마법을 일으키는 것처럼 터졌다.

     직접적으로 뱃속에서 폭발이 일어나 사망했거나.

     황금으로 된 장신구를 가지고 있어 사망했거나.

     혹은 폭발의 여파가 닿아 부상을 입거나.

     왕국 역사에 수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펼쳐진 위기는 왕국의 역사에 단 한 번도 없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무능왕이, 드디어 미쳤다.

     왕위를 빼앗길까봐 두려워한 왕이 광인이 되어, 고대 드래곤이 왕가에 내려준 가호와 권능을 이용해 백성들을 오히려 죽이려고 들기 시작했다.

     사상자는 약 천 명.

     부상을 입은 이가 다수였지만, 죽은 사람의 숫자만 따지면 약 300명에 이르는 이들이 폭발로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이었던 폭발은-

     

     * * *

     

     [제국력 99년 12월 24일 23시 50분. 오로솔 아카데미 재단 이사장실 침실.]

     “…….”

     

     현장이 어수선하고 복잡하며 혼란스럽기 짝이 없지만, 나는 현장의 혼란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이사장실의 침실로 들어왔다.

     방에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나리아, 아스타시아를 비롯하여 약혼식에 참가한 핵심 인사들이 많았다.

     이질적인 이들이 있다면, 모르가니아 소속으로서 그 동안 많은 월급을 받아온 마법사들일 터.

     “바, 바르셀로나 총독 각하.”

     마법사들이 나를 보며 고개를 숙인다.

     얼굴에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힘들어보였다.

     “고개를 들게.”

     

     나는 마법사들에게 다가간 뒤.

     “고생 많았네.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들어가서 쉬게.”

     “아….”

     “기사들은 마법사들을 호위하여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하도록.”

     “예, 각하.”

     그들을 한 명 한 명 직접 안으며 등을 토닥인 뒤, 병사들에게 쓰러지기 직전인 마법사들을 인계했다.

     마법사들의 얼굴에는 약간의 죄책감은 있었으나, 죽을 죄를 지었다거나 할 때의 그런 불안감은 없었다.

     자기 목이 잘릴 것이라는 불안감.

     즉, 마법에 의한 치료가 실패했을 때 그 분노가 자신에게 향할 것이라는 불안감.

     그게 없다는 것은 치료가 일단은 성공적이었다는 것.

     “…….”

     침실의 침대.

     원래 내가 잠들고는 했던 침대에 흑발의 여인이 누워있다.

     피부는 창백하고 호흡은 거의 하지 않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

     “…….”

     카르멘 왕비의 옆에 의자를 붙이고 앉아, 두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윈체스터 대공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치료는 어느정도 이루어졌지만, 카르멘 왕비가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레이.”

     윈체스터 대공이 끓는듯한 목소리를 억누르며 말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을, 도저히 내가 살아온 경험을 모두 사용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다.”

     “…….”

     “황금이 지상에서 솟아날 때, 나는 그들을 방치했다. 죽이면 황금이 되었으니까. 황금을 먹어치운 이들이 꿈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볼 때, 나는 침묵했다. 그것은 현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그 꿈의 세계에서 이미 죽은 자였기에.”

     꿈 속.

     거짓된 황금이 보여주는 세상에서, 윈체스터 대공은 이미 9년 전에 죽은 사람이었다.

     “카르멘이 거짓된 황금으로 밤마다 꿈 속의 자신을 바랄 때마다, 나는 묵인했다. 꿈에서 깨어날 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꿈의 내용을 이야기하던 카르멘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보였기 때문이다.”

     “…….”

     “사랑하던 남자와 결혼을 하고, 딸은 그대로 태어나고, 심지어 그레이 네가 아들로 태어나 자신에게 어머니라고 부른다면서. 그것이 꿈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꿈이 너무나도 달콤하여 놓을 수 없다면서.”

     “…….”

     “이럴 줄 알았다면, 절대 꿈에 심취하지 않게 막을 걸 그랬어.”

     모두가 마찬가지다.

     거짓된 황금을 경계하던 이들도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가장 지금 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을 네게 물으마. 나는 누구를 향해 창을 겨눠야 하느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내 말에 다른 이들이 흠칫 놀란다.

     “그리고.”

     나는 창으로 다가가, 창에 드리운 커튼을 걷었다.

     “목숨을 저당잡힌 채, 왕의 노예가 되어버린 이들.”

     창을 열자마자,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살려주십시오. 구해주십시오. 죽어주십시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명령했습니다. 그레이 지브롤터를 죽인다면, 황금으로 폭발시켜 죽지 않게 해주겠다고.

     “자기 뱃속에 폭발마석이 들어있어서 어쩔 수 없이 왕의 명령…지브롤터를 죽여야 하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찾아야 합니다. 아니면….”

     나는 창을 닫은 뒤, 나리아를 향해 몸을 돌렸다.

     “저 수많은 황금을 다루는 왕의 권능을 빼앗아, 노스트럼의 유일한 군왕이 되시거나.”

     “…….”

     “일주일.”

     제국력 99년 12월 25일, 자정이 되었다.

     “일주일 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폐위하고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의 즉위식을 열겠습니다. 제 손으로. 장소는….”

     나는 하늘을 가리켰다.

     “지브롤터 협곡.”

     

     바깥은 민중으로 포위되어 있다.

     “비행선 타고, 전부 협곡으로 가시죠.”

     만, 나는 그들을 구원할 영웅이 아니다.

     백성들의 위기에서 살 길을 찾아나서는 매국노답게 행동할 뿐이다.

     “거, 일주일만 좀 어떻게 잘 견뎌보라고 하죠.”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