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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6

   “하아, 하.”

     

   한계치까지 당겼던 숨을 크라슈가 내뱉었다.

   크라슈의 입에서 새하얀 연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몸 전체가 과열되어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용왕족의 육체라 한들 악착같이 갈아 넣어 한계로 몰아넣은 대가였다.

     

   ‘기억 포식자.’

     

   자신의 기억을 대가로 현재의 출력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마구.

   흑조 또한 지닌 모든 걸 걸고 맞부딪친 탓에 크라슈도 전력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 출력을 쓸 일이 없었겠지만.

   익시온의 정예 멤버인 흑조를 상대로 적당히 하면서 이길 자신은 크라슈에게 없었다.

     

   ‘썩을, 생각보다 힘을 더 썼어.’

     

   크라슈는 부서져 가는 결계를 바라보면서 몸을 비틀거렸다.

   이대로면 부서지는 결계에 휘말릴 판이다.

     

   크라슈가 당장 떠나려던 그 순간.

   그의 몸에 갑자기 새까만 쇠사슬이 휘감겼다.

     

   뒤늦게 그가 고개를 들자 거기에는 자기 가슴을 억누른 채 팔을 뻗고 있는 지옥선녀가 있었다.

     

   그새, 정신을 차렸나.

     

   갈비뼈를 확실하게 부숴 아예 폐부까지 찌르게 만들어 놨을 텐데.

   대단한 정신력이다.

     

   “못, 가.”

     

   크라슈를 옭아맨 쇠사슬의 힘이 더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크라슈는 단단히 묶인 쇠사슬을 바라보며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크라슈의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벨라가 올 수도 있다.’

     

   정확히는 지금도 오히려 왜 아벨라가 오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어쩌면.’

     

   무언가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

   그 여자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크라슈는 눈을 확 찌푸렸다.

     

   아벨라가 진짜 아서를 되찾고자 한다는 것은 눈치챘지만, 그 과정에 세계 침식자의 신이 필요하단 것 말고는 오리무중이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익시온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고 있는 건가?’

     

   속으로 혀를 찬 크라슈가 열기를 끌어내었다.

   몸이 진탕이 나긴 하겠지만, 여기서 지옥선녀를 끝장내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었다.

     

   “너 혼자서 날 잡아 놓을 수 있을 거 같냐?”

   “…….”

     

   지옥선녀는 크라슈의 물음에 조용히 침묵했다.

     

   실제로 익시온은 바이오렌은 물론 크라슈까지 흑조와 지옥선녀라면 데려올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크라슈의 실력은 얼마 전 신성 왕국의 변혁 당시 연마를 통해 확인했다.

   시간이 나름 흐른 만큼 그도 성장했을 거란 생각을 고려해 일부러 둘을 붙였다.

     

   하지만 크라슈는 정말 예상을 훨씬 웃돌 정도로 성장해 버렸다.

   아무리 성장을 가정하더라도 이 단기간에 너무 터무니없는 성장 속도였다.

     

   흑조는 세계 침식자 중에서도 상위의 전투력을 지닌 이다.

   방심하지 않는다면 천하십강과도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런 그녀를 크라슈 혼자, 단신으로 꺾었다.

   아무리 그가 세계 침식자에게 가장 취약한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절대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크라슈는 세계 침식자에게 있어 위협이 될만한 적이었다.

     

   대신, 그녀는 크라슈를 묶어 둔 채로 팔을 들었다.

   크라슈가 쇠사슬을 끊으려는 순간 그녀의 손에 착하니 쥐어진 것은 뜻밖의 물건이었다.

     

   버드나무의 나뭇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본 크라슈는 눈을 찌푸렸다가 이내 서서히 눈을 크게 뜨기 시작했다.

   그녀가 버드나무의 나뭇가지 하나를 쥐어 든 순간 갈라져 있던 버드나무가 한순간에 말라비틀어졌기 때문이었다.

     

   “너!”

     

   뭘 하는 거냐고 외친 크라슈가 쇠사슬을 끊으며 달려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주위로 기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쿵-

     

   크라슈는 결계 전체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들었다.

     

   지옥선녀의 머리 위.

   공간이 새까맣게 변하며 일그러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납셨나.’

     

   기긱-

     

   공간 너머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크라슈는 자기 몸 전반을 휘감는 기분 나쁜 감각을 느꼈다.

     

   육체가 저 존재를 혐오하지 않고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오싹하기 그지없는 감각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때 공간 너머로 한 인물이 천천히 얼굴을 내밀었다.

     

   검은색의 챙이 넓은 모자.

   빛이 보이지 않는 새까만 눈동자.

   입술까지 검게 물들어 전신이 새까만 여성이 크라슈를 바라보고 있었다.

     

   흑마녀(黑魔女)

   데아시루스 마키나

     

   익시온을 모은 인물이자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하려는 미친년.

     

   그녀가 이곳에 나타났다.

   본래라면 절체절명의 상황.

     

   그러나 크라슈는 그녀와 마주한 순간 헛웃음을 흘렸다.

     

   “뭘 봐? 너 거기서 못 나오잖아.”

     

   그다음 말을 들은 순간 흑마녀는 조용하게 침묵했다.

     

   흑마녀는 분명 걷잡을 수 없는 괴물이다.

   세계 침식자 중에서도 가장 높은 위험도에 손꼽힘은 물론 지닌 힘 또한 야수왕과 검존에게 필적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한 가지 제약이 있다.

     

   그녀는 자신이 창조해둔 공간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이 세계는 흑마녀라는 존재를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

     

   그러니 그녀는 크라슈의 세계 밖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세계의 힘 전체가 흑마녀를 조여 죽이려 든다.

   그러니 이 세계는 그녀에게 있어서 존재 자체가 극독이다.

     

   이게 바로 그녀가 직접 나서지 않고, 익시온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이유였다.

     

   구구구구구구-

     

   그 순간 흑마녀가 열어놓은 공간을 향해 일대의 바람이 불었다.

   크라슈의 몸도 그런 바람에 따라 흑마녀 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지옥선녀도 그 바람에 이끌려 흑마녀의 공간으로 도주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건 크라슈를 너무 얕본 행동이었다.

   크라슈는 끌려가는 자세 그대로 마지막 힘을 전부 쥐어짜 우뢰성의 검날을 만들어내었다.

     

   꽈아악!

     

   덕분에 심장에 오는 거센 통증과 함께 내부가 망가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크라슈는 전력을 다해 우뢰성을 내던졌다.

     

   어차피 흑마녀가 끌고 가고 있는 마당.

   우뢰성은 흑마녀가 만들어낸 바람을 역이용해 거세게 날아갔다.

     

   피이잉- 푸욱!

     

   “꺄윽!”

     

   날아간 우뢰성이 지옥선녀의 어깻죽지에 박혀 들었다.

   원래는 목을 노린 일격이었으나 도중에 흑마녀가 바람의 궤도를 일부 튼 탓이었다.

     

   덕분에 지옥선녀를 끝장내지 못한 크라슈가 이를 바득 갈며 블랙후드로 우뢰성을 회수했다.

   잠시 바람이 뒤틀린 덕분에 크라슈는 우뢰성을 회수한 자세 그대로 바닥을 박찼다.

     

   그러나 몸이 삐걱거리며 제대로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말로 지닌 힘을 전부 다 쏟아 부었다는 증거였다.

     

   후우우우웅!

     

   그 순간 크라슈의 몸을 또다시 흑마녀가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크라슈는 우뢰성에 남은 검날을 그대로 바닥에 박아 넣었다.

     

   드드드드드득!

     

   뒤에서 끌어들이는 바람이 어찌나 강한지 검을 박아 넣은 크라슈의 몸이 거세게 떨렸다.

     

   쿠웅!

     

   동시에 흑마녀의 공간 너머에서 새까만 문어 다리들이 튀어나왔다.

   예전에 몇 번이고 보았던 것이었다.

     

   “오지 않으면 결계사의 목숨은 없어.”

     

   아니나 다를까, 흑마녀가 결계사를 물고 넘어졌다.

   결계사가 당했을 거란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느낌이 다르다.

     

   크라슈의 눈이 찌푸려졌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비아냥거렸다.

     

   “그래서 살아나 있고?”

   “직접 눈으로 확인해.”

     

   검은 문어 다리가 일제히 크라슈를 향해 쇄도해왔다.

     

   끌려가더라도 준비된 수는 있다.

   크라슈에게는 안전장치가 있었으니까.

     

   테라시우스의 성격이라면 지금쯤 다른 이들에게 안전장치를 전해주었을 게 분명하다.

   혹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테라시우스만은 소환에 응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마지막 수단.

   크라슈가 그것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그 순간.

     

   사락-

     

   크라슈는 자신의 뒤에서 무언가 피어오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들은 크라슈는 서서히 입가에 웃음을 짓고는, 이내 흑마녀를 바라보며 고했다.

     

   “싫은데?”

     

   크라슈의 다음 말이 이어진 순간 크라슈의 몸 위에 반투명한 결계가 만들어졌다.

     

   카칭!

     

   그러자 그의 몸에 채워져 있던 검은 사슬이 강제로 끊겼다.

   마나를 차단하는 종류의 결계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의 등 뒤에서 붉은색의 마법 진이 연이어 만들어졌다.

     

   마법 진은 어느새 사방을 전부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수는 무려 백 개가 넘어갔다.

     

   마법 진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마나는 흑마녀조차 살짝 인상을 찡그릴 만큼의 흐름이었다.

   크라슈는 그것이 아슬란의 마법임을 눈치챘다.

     

   크라슈가 흑조와 전투를 하는 사이, 둘은 줄곧 다른 곳에서 대기 중이었다.

   바이오렌의 결계가 있다면 흑마녀의 눈도 피할 수 있다.

     

   아슬란은 그 틈을 이용해 계속해서 대규모 마법을 준비 중이었다.

   그것도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단 한 번 발동시킬 수 있는 마법을 말이다.

     

   “여기, 나 혼자인 줄 알았냐?”

     

   흑마녀를 향한 도발적인 웃음이 크라슈에게 흘러나왔다.

     

   “잘 봐라.”

     

   이윽고, 마법 진이 동시에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게 우리 쪽 최강의 마법사다.”

     

   깨져 나간 마법 진들이 일제히 빛을 토해낸 그 순간.

   섬광이 번뜩여 나가며 흑마녀의 공간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일순간에 지워 버렸다.

     

   고대 마법

   피아트 럭스

     

   백색으로 물들 만큼 거센 고열이 주변을 집어삼키며 흑마녀의 공간 안으로 전부 빨려 들어갔다.

     

   “크라슈!”

     

   크라슈는 자신을 부르짖는 바이오렌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아슬란과 결계를 친 바이오렌이 서 있었다.

     

   아슬란의 코와 눈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아슬란이 사용할 수 없는 서클의 마법을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을 희생함으로써 발동한 대가였다.

     

   이걸로 아슬란은 리타이어다.

   그러나 그 효과는 확실했다.

     

   피아트 럭스는 자신이 아군이라 생각한 이를 제외한 모든 이를 지워 버리는 일격필살의 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용 방식이 워낙 험난한 만큼 현대의 마법사 중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이가 거의 없는 마법이다.

     

   ‘테라시우스의 마법 도서관에서 발견했군.’

     

   이제는 사실상 사장된 마법.

   애초에 책에 있는 마법조차 미완성 마법이었다.

     

   왜냐하면 피아트 럭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10명의 6서클 마법사가 준비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마저도 마법사들끼리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서로에게 마법의 영향이 가버리는 터무니 없는 마법이다.

     

   그러니 피아트 럭스는 미완성 마법이라 불린다.

   사람을 가장 신뢰하지 않는 족속인 마법사들이 서로를 신뢰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으니까.

     

   우스갯소리로 피아트 럭스를 만든 자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마법사들에게 질려 그들을 비웃고자 만들었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아슬란은 그러한 피아트 럭스에서 빛을 보고, 끊임없이 개량했다.

     

   마법을 만든 이의 악질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오직 필요한 요소만을 뽑아내더니.

   기어코, 피아트 럭스를 자신의 오리지널 마법으로 완성 시키고 말았다.

     

   그것도 혼자서 단일로 사용 가능하게 말이다.

     

   ‘하여튼 천재 녀석.’

     

   마황의 마법 도서관에 박혀서 나올 생각을 안 하더니.

   이런 기막힌 수를 마련해왔다.

     

   하지만 흑마녀 또한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새하얀 섬광 너머, 크라슈는 공간을 닫고 있는 흑마녀를 보았다.

     

   그녀는 어느샌가 지옥선녀는 물론 흑조를 회수한 모습이었다.

   백염에 의해 새하얗게 타버린 흑조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실한 확인이 불가능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살아 있다 한들 기억 포식자의 대가와 저만한 상처라면 앞으로 전선에서 볼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또 봐.”

     

   자신의 수가 전부 다 막혔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여유로운 흑마녀의 목소리는 왜인지 크라슈의 신경을 거스르게 했다.

     

   이후 흑마녀가 완전히 사라지자 아슬란의 피아트 럭스도 꺼져가기 시작했다.

     

   “쿨럭, 컥.”

     

   동시에 피를 왈칵 쏟아낸 아슬란의 몸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툭-

     

   쓰러지던 그의 몸을 받아낸 것은 크라슈였다.

   서로 만신창이가 된 꼴인 두 사람은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서로 어이없이 웃었다.

     

   누가 친구가 아니랄까 봐, 둘 다 꼴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크라슈의 이름을 한글 파일로 종종 오타를 고치다 보면 크라슈가 부분이 크라 설탕이 되곤 합니다. 달달한 크라슈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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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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