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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7

       에테르가 사는 주택은 투룸에 불과했다.

       

       사람 한 명이 살기에는 넉넉한 크기. 하지만 마도부장관이라는 직책을 지닌 고위 공직자가 지내기에는 소박한 곳.

       

       드넓은 대저택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클라이스에겐 좁게만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녀는 엘프들이 사사로운 곳에서까지 에테르를 견제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런 애매한 집을 준 것은 일종의 암시이리라. 다 쓰고 나면 그녀를 버리겠다는, 그런 암시.

       

       그와는 별개로, 집주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오히려 만족하는 모양새였다. 현관문을 열어줄 때부터 에테르는 때깔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이런 집에서 처음 살아보게 된 서민처럼.

       

       그 부분이 죄책감을 자극했다.

       

       클라이스는 다물어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겨우 움직였다.

       

       “……실례합니다.”

       

       신발을 정리하며 바닥을 살폈다.

       

       있는 신발이라고는 자신의 것을 포함해서 두 켤레가 전부였다.

       

       즉, 지금 이 집에는 자신과 에테르뿐이다.

       

       ‘이런 환경이라면……. 괜찮을지도.’

       

       내심 안도하며 발을 내디뎠다.

       

       좁고 기다란 현관을 벗어나자 거실이 나타났다. 한쪽에는 싱크대가 있고, 맞은편에는 창문과 커다란 장롱이 배치된 구조였다.

       

       다시 장롱 옆에는 간이 냉장고와 서랍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거실 중앙에는 옻칠이 된 둥그런 나무 탁자가 놓여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줘요.”

       

       에테르가 냉장고에서 술과 안주를 꺼내는 동안, 클라이스는 방 안쪽을 슬쩍 살폈다. 

       

       조금 큰 사이즈의 침대가 하나 보인다.

       

       ‘확실하네요.’

       

       에테르는 혼자 사는 게 맞았다.

       

       쿵쾅거리던 심장이 겨우 진정됐다.

       

       주변을 둘러보던 클라이스는 장롱을 보며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혼자 쓰는 장롱치고는 꽤 크네요.”

       

       홱.

       

       냉장고에서 술병 두 개를 꺼내려던 에테르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작열하는 태양처럼 형형하게 빛나는 금빛 눈동자.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담긴 시선이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혹시, 말실수를 한 건가요?’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법 연구에만 몰두하느라 패션에 관심이 없는 클라이스라면 몰라도, 고위 귀족들은 저것보다 더 큰 장롱도 잘만 사용하니까.

       

       그리고 에테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혹여 자신이 한 말이 재수 없게 들렸으면 어떡하지? 고압적인 태도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괜히 불안해져서는 눈치가 보였다.

       

       클라이스의 시선이 흘깃, 하고 에테르를 향했다.

       

       “네, 예전 집주인이 큰 걸 가져다 놓은 모양이더라고요.”

       

       다행이다.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인다.

       

       만에 하나 포커페이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과민한 반응이라 판단하고는 잡념을 일축했다.

       

       “앉으세요. 그렇게 서 있지 말고.”

       

       다행히 첫 마디는 무사히 넘긴 모양이다.

       

       클라이스는 쭈뼛거리며 앉았다.

       

       튀김이며 회며, 술안주들이 하나씩 식탁 위에 차려진다. 개중에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다과도 있었다.

       

       안주라고 챙긴 것들이 하나같이 요깃거리로 그칠 만한 것이 아니라, 따로 놓고만 보아도 먹음직스럽게 생긴 것뿐이었다.

       

       상다리 휘어지도록 소담하게 차려진 음식에, 클라이스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이게 뭔지 아세요?”

       

       에테르가 술병을 보여주며 물었다.

       

       “위스키 아닌가요?”

       “네. 살리에르 영지에서 직접 빚은 술이죠. 지인에게 받은 거거든요. 품질 자체는 보증할 수 있습니다.”

       

       살리에르산 술이라니. 주류에 문외한인 클라이스도 들어본 적은 있다. 엄청 유명하지 않던가.

       

       물론 마셔본 적은 없었다. 독주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알코올이 얼마나 들었냐고 물어보려 했는데, 상표조차 붙어있지 않았다.

       

       “그렇게 강한 애는 아니라고 들었어요. 취하더라도 아마 적당한 선에서만 취할 듯싶은데….”

       “술 잘해요?”

       

       에테르는 대답하는 대신 흐흐, 하고 웃음을 흘렸다.

       

       “일단 받으시죠.”

       

       에테르는 온더록스 잔에 손수 위스키를 따라주었다.

       

       마수의 피처럼 검붉은 색깔이었다.

       

       달착지근하고도 알싸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정신줄을 놓을 것 같았다.

       

       ‘이러면 안 돼요.’

       

       향만으로 취한다니. 이래서야 완전히 어린애 아닌가.

       

       적어도 한 잔.

       

       한 잔을 옹골지게 비워낼 때까지는 맨정신을 유지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의 목표였다.

       

       현재로선 에테르와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모른다. 진심을 털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고, 단순히 잔만 홀짝이다 끝날 수도 있다.

       

       모든 건 클라이스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드세요.”

       “자, 잘 먹겠습니다.”

       

       머뭇거리며 포크질을 하는 클라이스.

       

       에테르가 먼저 집는 걸 확인한 뒤, 자신도 닭튀김을 하나 골라 입에 쏙 넣었다.

       

       “…아.”

       

       맛있다.

       

       혀를 에워싸는 달콤찝찔한 맛 사이로 육즙이 새어 나온다.

       

       한 번, 두 번, 세 번. 조금씩 우물거릴 때마다 황홀경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보온 처리는 또 어떻게 한 건지, 튀김은 따끈하다 못해 살짝 뜨거울 정도였다. 혀를 굴리며 호호 입김을 불었다. 마치 길거리 포차에서 나오는 즉석요리를 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닭튀김은 완벽한 단짠 조합을 자랑했다. 조금 짜다 싶으면 단맛이 혀를 간질이고, 뭔가 달다 싶으면 짠맛이 치고 들어온다.

       

       그래서였을까? 또 다른 균형이 필요했다.

       

       갑작스레 술이 당기기 시작한 클라이스는 잔에 입을 대고 천천히 목울대를 움직였다.

       

       “……!”

       

       포도처럼 살짝 시큼하면서도 촉촉한 감각. 

       

       그러면서도 에일을 마시는 것처럼 청명하고 상쾌한 기분이다. 그런 감각이, 막 집어먹은 닭튀김과 절묘한 시너지를 일으켰다.

       

       따듯한 물로 샤워하고 나온 것처럼 뭉근한 기운이 위장을 적신다. 이러한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한 모금, 두 모금, 세 모금.

       

       “하아….”

       

       튀김 하나를 더 입에 넣고는 술잔을 비워낸다. 머릿속이 지잉지잉 울리는 느낌이었다.

       

       벌써 한계였다.

       

       여기서 그만두어야 한다. 계속 마시면 짐승처럼 변하고 말 것이다. 끊어져 가는 이성의 끈이 필사적으로 시야를 붙잡는다.

       

       하지만.

       

       “한 잔 더 마실래요?”

       “조아요….”

       

       살리에르산 술은 보통 맛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와인과는 달리 술이 약한 사람이라도 벌컥벌컥 들이킬 수 있을 정도로 온순하고 포근한 맛이다.

       

       그러면서도 뭔가, 도수가 높은 것 같은데.

       

       모르겠다.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멈출 수 없었다. 이제 클라이스는 아무래도 좋다 생각하고 말았다.

       

       눈앞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는데, 술안주로 안 삼으면 음식에 대한 배려가 아니지.

       

       그리고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끝으로, 사고가 증발했다.

       

       

       **

       

       

       “우와, 우와…!”

       

       장롱 안.

       

       프레이는 40도짜리 위스키를 꼴깍거리며 바깥에서 일어지는 일을 리얼타임 직관하고 있었다.

       

       마치 축구 경기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저게 우리가 알던 하스펠트 선생님 맞아?”

       “쉿, 조용히 해…!”

       

       로테는 검지를 입가에 가져가며 프레이를 입단속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로테 자신도 음소거를 전혀 못 하고 있다.

       

       – 주인님, 한 잔 받으세요. 히히…….

       – 오냐아.

       

       클라이스는 술병을 들어 에테르의 술잔을 넘치게 채웠다. 그걸 또 에테르는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마시는 중이었다.

       

       확실하다. 저건 취했다.

       

       쌍으로, 동시에 취해서 누가 누굴 말리지 못하는 상태였다.

       

       – 주인니임. 제가 잘못했어요. 그때 일은 정말 미안했어요. 그러니 벌을 내려주세요. 벌이 없으면 저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클라이스는 몸을 비비 꼬며 에테르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예의 술병이 들려있다. 클라이스는 병 입구를 슬쩍 물더니 그대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

       “와, 저걸 원샷으로…!”

       “프레이, 네가 할 말은 아니거든…?”

       

       어지간한 애주가도 비틀거리게 하는 위스키를 저리 단숨에 들이키다니. 알코올 초심자가 할 짓이 못 된다.

       

       – 클라이스를 마음껏 써 주세요….

       – 좋아, 이리로 와. 원하는 대로 해 주지이.

       

       로테와 프레이는 숨을 헛삼켰다.

       

       클라이스가 옷을 벗기 시작하더니, 나시만 걸친 상태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벌겋게 변한 목덜미가 관능적이었다.

       

       그걸 보고도 에테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덜컹, 덜컹.

       

       몇 번의 발울림 속에서, 로테와 프레이는 숨을 죽여야만 했다.

       

       “야, 이거 위험한 거 아냐…?”

       

       장롱에 들어온 지 거의 두 시간. 로테는 슬슬 후회되기 시작했다.

       

       클라이스 하스펠트라는 사람이 술에 약하다는 것.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로테도 건너건너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하스펠트 선생님이 취하면 어떤 주사를 부릴지가.

       

       그렇다고 다 같이 모여서 술파티를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거나 선약을 가진 건 에테르와 클라이스, 두 사람뿐이었으니까.

       

       그래서였다. 다소 무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장롱에 숨어드는 길을 선택했다. 이러면 방해하지 않고도 대화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은 그 대화를 들을 의무가 있었다. 에테르는 한때 하스펠트 선생님 때문에 힘들어했었으니까.

       

       로테는 이번 술자리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진보할 것을 기대했다. 에테르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훈훈한 마무리를 바랐다.

       

       그런데.

       

       ‘잘못돼도 뭔가 한참 잘못됐어.’

       

       로테 또한 위스키로 목을 축이며 나머지 상황을 지켜봤다.

       

       – 자아, 연구하자.

       – 여기서요…?

       – 지금 주인의 말을 따르지 않겠다는 거야?

       – 따, 따를게요! 따르게 해주세요…!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의외로 야릇하다거나 그런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솔직한 대화가 오가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오갔다면 오갔다. 적어도 로테가 보는 눈앞에서 클라이스가 에테르에게 사과하긴 했으니까. 

       

       다만, 술주정이 뭔가 이상했다.

       

       취기가 오른 두 사람은 마룻바닥에 나란히 엎어졌다. 그러고는 마도학 서적을 펼쳐 놓고 토론하기 시작했다.

       

       – 알겠어? 두 달 내로 이걸 만들지 못하면 끝장이야. 할 수 있어 없어어?

       – 할 수 있어요. 할게요. 하게 해주세요…!

       – 조아. 사죄하고 싶으면 열심히 몸을 굴리라고오.

       

       로테와 프레이는 떨어지는 입을 도통 다물지 못했다.

       

       “…….”

       “…….”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야,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지금 나가면 들키잖아.”

       “둘 다 저런 상태인데 어차피 나가도 기억 못… 아앗……!”

       

       깜짝 놀란 프레이가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에테르가 냉장고에서 비싸 보이는 와인을 꺼내 코르크를 땄다. 저것까지 마시면 둘 다 다섯 병을 넘기는 셈이 된다.

       

       프레이는 남은 병을 비워내고는 작게 소리쳤다.

       

       “내가 아껴먹으려고 둔 21년산 최고급 포도 주스……!”

       

       밤마다 비스코티에 찍어서 먹으려고 했는데! 그런 말은 튀어나오지 못했다. 언성이 높아지려는 걸 로테가 입막음했기 때문이다.

       

       “읍, 으읍! 으으으읍─!!”

       “나중에 새로 사 주면 되잖아…!”

       

       술에 진심인 프레이를 진정시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취기가 잔뜩 오른 모양인지, 두 사람은 장롱을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그렇게 시각은 자정을 넘어갔고.

       

       두 사람은 차마 형용하기 민망할 정도로 개가 되어있었다.

       

       “슬슬 끝나가는 것 같아.”

       “으으읍!!”

       

       에테르도, 클라이스도. 이젠 좀비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클라이스는 눈을 까뒤집은 채로 에테르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대로 쌕쌕 잠들었다.

       

       에테르도 눈동자가 탁하게 풀리긴 마찬가지였다. 혼곤한 몰골이 된 금안족 소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유지하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마도학 공식을 되뇌는 것 같더니, 아니었다.

       

       – 죽을 때 죽더라도, 술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아?

       

       로테는 그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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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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