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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7

       아니 솔직히, 이제 좀 평화를 음미해도 될 때가 되지 않았나?

        

       물론 전 황제의 신병 문제라던가, 아직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는 제국 의회 문제라던가, 엄청나게 몸집은 불어났는데 마땅히 쓸 곳이 없는 국방력이라던가, 여러모로 해결해야 할 일이 많기는 했지만 그래도 진짜 전쟁이 일어났던 건 아니잖아.

        

       분쟁이 전쟁으로 이어지기 전에 미리 막을 수 있었고, 덕분에 법국이라는 잠재적인 위협 요소도 미리 방지할 수 있었다. 여신을 아예 세상 밖으로 쫓아내 버렸으니까.

        

       황실 문제야 황실의 장인 앨리스가 알아서 하면 될 일이고, 제국 의회의 경우에는 일단 내버려 뒀다가 허튼짓할 것 같으면 그리폰으로 의회 앞 순회 비행 한 번 해주고, 국방력이야 당장은 다소 부담되더라도 시간을 들여 유지해서 나쁠 것이 없다.

        

       그러니 적어도 아카데미 다닐 때 만큼은 좀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볼 ‘면접’의 상대가 네 녀석이냐?”

        

       ……제국의 이인자가 되고서도 이런 취급이다.

        

       아니, 뭐, 물론 내가 그런 취급을 원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이런 취급과 ‘깍듯한 취급’ 중 어느 쪽이 낫냐고 묻는다면 나는 전자가 낫다고 말할 것이다. 나보다 수십 년이나 더 살아온 사람이 나한테 깍듯하게 대하는 것은 나름대로 유교 규범을 충실하게 지키며 살아온 내게 많이 부담스러운 일이니까.

        

       솔직히 교장이 나한테 허리를 숙일 때마다 위장이 1mm씩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아마 앞으로 스무 번 정도만 더 만나면 위장 건강에 유의미한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주로 좋지 않은 쪽으로.

        

       그런데 그렇다고 이렇게 삐딱하게 반응할 건 없잖아. 완전 깍듯한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말로 좀 부드럽게 말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제 의지가 아닙니다.”

        

       “네 스스로 의지도 따르지 못할 정도로 못난 녀석이었나? 못난 제자로군.”

        

       못난이라는 말을 연속으로 두 번이나 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라는 말을 했다가는 또 정수리에 불이 날 것 같아서, 나는 일단은 스승을 대하는 제자의 마음가짐으로 공손하게 대답했다.

        

       “……아카데미에서 제 또 다른 스승 되시는 제니퍼 윈터필드 경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제자 된 이로써, 그리고 아카데미의 일원이자 그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황실의 일원으로서 그 요청에 응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자기가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죠.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산속에 틀어박힌 노인분의 사고로는 이해으꺅!?”

        

       그리고 말을 다 마치기 전에 결국 내 정수리에서는 불이 났다.

        

       진짜로 불꽃이 튀긴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의 타격이었다.

        

       솔직히 내 진짜 감정이 조금 담기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조리 있게 설명했다고 생각하는데!?

        

       “제자라는 놈이 스승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쪽 입술이 씰룩이는 것을 보면, 이 스승은 내 대답이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아니, 마음에 들었으면 그냥 듣고 있으면 될 일이지, 굳이 남의 정수리를 손날로 내려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 바로 너다운 일이겠지. 너보다 줏대 있어 보이는 다른 녀석들은 내 앞에서 그렇게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하니까 말이다. 조금 전에 했던 말은 취소하도록 하마.”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해도 쓰라린 내 정수리는 낫지 않는다. 칭찬할 거였으면 애초에 때리지도 않아 주셨으면 하는데.

        

       “그리고, 그래. 네 말이 맞는 말이다. 나는 과거에 이미 의무를 저버린 적이 있지. 제국 군인이라면 평생 제국에 충성하며 살아간다는 서약을 하니까.”

        

       정확히는,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남성이 의무복무 기간에 매일 읊는 ‘우리의 결의’ 같은 거랑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임관식에서 읽는 선언문 같은 것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법적인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일반적으로는 크게 따지지 않는다. 군 생활에 대해서 신나게 얘기하는 양반 옆에 가서 ‘그거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군사 기밀 아니냐?’라고 따지는 사람이 있으면 인생이 엄청나게 피곤하지 않겠는가.

        

       보통은 교범이나 진짜 중요한 군사 기밀을 유출하지 않는 이상은 굳이 건드리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그 의무를 다시 따르시겠다는 소리입니까?”

        

       그렇기에 나는 검성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세상만사 다 귀찮다고 자기 길 따라 떠난 양반이 갑자기 그런 소리를—

        

       “내가 노망이라도 든 것 같으냐?”

        

       —할 리가 없지, 그래.

        

       “그럼 무엇 때문에 굳이 그런 이력서를 내셨습니까?”

        

       “그게 중요한 일이냐? 검성씩이나 되는 이가 와서 학생들을 봐주겠다는데 감사히 받을 일이 아니고?”

        

       “그게 꽤 중요하니까 굳이 저한테 부탁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교사라는 직책은 그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행동에서도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제대로 된 교사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나는 잠깐 검성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니 아카데미 측에서 스승님의 속내를 알고 싶어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호오, 그 말은 내 행동이 그다지 모범이 될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렷다?”

        

       나는 바로 몸을 뒤로 뺄 수 있도록 허리와 등을 긴장시킨 채 대답했다.

        

       “혹시 진심으로 스승님의 행동이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리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

        

       그리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검성은 나에게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한평생을 제멋대로 살아온 양반이었으니 당연히 할 말이 없겠지.

        

       만약 검성의 제자 중에서 진짜로 검성만큼 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검성 아래에서 검성 같은 성격이 되어버리면 제국 입장에선 골치 아프다.

        

       강한 개인이 하나 있어 봐야 제국 입장에서 득 볼 것이 없다. 그런 인간이 군이나 다른 직책에 오른다면 또 모르겠지만, 산속에서 혼자 수련만 하고 있어 봐야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오히려 그런 규격 외의 인간들이 범죄라도 저지르지 않을까 감시하는 게 더 피곤하지.

        

       “그래서, 내가 교사로서 결격사유가 있다는 말이냐?”

        

       “그렇다기보다는, 아카데미 측에서는 스승님의 말 아래 깔린 저의를 알고 싶은 거겠죠. 스승님께서 만약 적당한 실력과 명성을 가진 교사였다면 이렇게 저를 통해서까지 자세하게 질문을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미 다른 곳에서 학생을 가르친 경력이 있다면 더 좋습니다. 이건 개인이 가진 실력 이외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안 하던 짓을 갑자기 하니까 의심받는다는 말이다. 만약 검성이 평소에 꾸준히 후학을 양성했다면, 그 양성하던 곳에 굳이 이런 교육기관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큰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꽤 오랫동안 검성 아래에 있었던 제니퍼마저 검성의 저의를 의심했을 정도이니, 아카데미 수뇌부로선 검성의 의중을 조금 더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보고 싶어 할 만 했다.

        

       “흐음.”

        

       나의 말을 듣고 검성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이유를 말할 수는 있다만, 그 이유를 네가 아카데미에 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구나.”

        

       “이유를 말한 다음 저를 베어버리기라도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무리 나라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만.”

        

       내가 꽤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서 그런지, 이번에는 내 정수리에 불이 나는 일은 없었다.

        

       “그저 네 성격을 고려했을 때 네가 그 말을 온전히 옮기지는 않을 것 같다는 뜻이었다.

        

       “…….”

        

       이런 말까지 들으면 이번에는 나도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검성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할까? 검성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분명 그 이유에는 내가 포함되어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시간을 돌려가면서 파악한 사람 됨됨이를 볼 때, 검성의 사람 보는 눈은 꽤 정확했다. 그리고 그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한 검성이 이런 재능 없는 나를 제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면, 틈틈이 내 정수리를 때리는 것과는 별개로 나를 꽤 좋게 보고 있다는 소리다.

        

       분명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내가 듣기에 많이 간지러운 소리가 나올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일단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그 이야기를 어떻게 꾸며서 전할지는 저에게 달린 것이니.”

        

       그렇다고 검성을 면접에서 떨어뜨릴 수는 없지.

        

       아카데미에서 굳이 나에게까지 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나름대로 고민은 하고 있다는 소리니까.

        

       게다가 검성은 말 그대로 검성이다.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검술이 전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배우고 있을 때는 최고의 스승에게 배우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그러냐.”

        

       검성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럼 알겠다. 대답해주마. 이유는 너 때문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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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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