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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7

        

       알 수 없는 존재는 자신의 정체를 빨리 말하라는 듯 계속해서 기이한 소리를 내었다.

         

       티커택투.

       틱택-투!

         

       입술을 사정없이 튕겨서 내는 듯한 소리였다.

         

       하지만 이제순은 그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 의식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노래를 부르면서 이름을 말하라 재촉할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된다. 』

       『 무슨 일이 있어도 요정의 이름을 직접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

       『 노래를 계속 듣다 보면 알 수 없는 확신이 들 것이다. 그리고 음이 조합되면서 머릿속에 단어 몇 개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된다. 』

       『 술을 마신 상태여서 자신도 모르게 단어를 내뱉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

       『 행운을 빌겠다. 』

         

       종이에 아주 강한 경고가 적혀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경고가 아니다.

       아주 강렬한 경고였다.

         

       그냥 담담하게 사실만 늘어놓았던 앞선 경고와는 다르게, 이번의 경고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고, 만약 했다면 기도나 해라.’라는 끔찍한 경고가 적혀 있었다.

         

       경고를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는 몰랐지만….

       글쎄.

       알고 싶지 않았다.

         

       저렇게 강력하게 경고할 정도라면…저 존재가 괴물이 되어서 그를 덮친다고 할지라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

         

       ‘레프라한(Leipreachan).’

         

       그렇기에 이제순은 머릿속에 단어들이 떠오르고 있음에도 그것을 필사적으로 외면했다.

         

       ‘레프러컨(Leprechaun).’

         

       그 단어를 떠올리지 않게 하려고 땅바닥의 선에 집중하기도 했고, 노래를 듣지 않으려는 듯 귀를 막기도 했다.

         

       ‘레 브로간(Leith bhrogan).’

         

       하지만 코끼리를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면 역설적으로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고 하였던가.

         

       이제순이 저 존재의 이름을 떠올리려 하지 않으려 애를 쓸수록, 단어 몇 개가 쉴 새 없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라 그를 어지럽혔다.

         

       ‘레 프로간(Leith phrogan).’

         

       쉴 새 없이 떠오르는 단어.

       음악이 조합되어서 단어가 되는 듯한 이 기묘함.

         

       ‘루크리만(Luchryman).’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언가가 무의식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특정 단어만 수면 위로 떠 오르게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클루라한(Clurachan).’

         

       그것은 그의 머리 전체를 단어로 오염시키고, 그것을 술 때문에 혼미해진 정신 속에서 저절로 입 밖으로 내뱉게 하려는 듯 집요하게 솟구쳐 올랐다.

         

       ‘파르 댜르크(Fear dearg), 클러우르 캰(Clobhair-ceann), 파르 고르타(Fear gorta).’

         

       그 집요함은 너무나 끔찍해서, 그 단어들의 홍수에 질식해버릴 것만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알파벳 글자 하나가 떠오르고, 가루가 되어 흩어지며 튕기며 다시 문자로 조합된다.

       한글이 조합되며 이리저리 합쳐지며 글자로 변한다.

       가루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음파의 형상으로 되어 그의 머릿속을 단어로 물들인다.

         

       그 끔찍함이란.

       그 집요함이란.

         

       그것은 정말로, 헛구역질해대며 바닥에 주저앉게 만들기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제순은 입을 꾹 닫은 채 계속해서 걸었다.

       목구멍이 꿈틀거리며 위에 담긴 것을 내뱉으려 할 때는 오히려 술을 한 모금 머금으며 그것을 애써 찍어눌렀고, 자신도 모르게 입이 저절로 움직일까 두려워 입술을 강하게 붙였다. 그리고 행여 알 수 없는 존재를 바라보면 홀릴까 봐 바닥을 바라보았고, 귀를 닫아도 소리가 들리니 귀를 손으로 막지는 않았으되 노래에 집중하지 않고 막걸리가 출렁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하, 하, 하-! ]

         

       이제순이 그렇게 필사적으로 이름을 말하는 것을 저항하는 것을 눈치챈 것일까?

         

       알 수 없는 존재는 저 멀리에서 이제순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열었다기보다는 그 존재에게서 노래가 흘러나왔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으리라.

         

       그것은 입이 있지만 움직이지 않고 있었으며, 소리는 목구멍에서 나와야 정상인 것인데 그 존재는 발 부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니까.

         

       형태가 정해지지 않았기에 보일 수 있는 기괴함이었다.

         

       [ 큰 부츠! 샌들! ]

       [ 연회에 나가는 사람에게는 화려한 구두를! ]

       [ 무도회장에서 춤추는 아가씨에게는 아리따운 구두를! ]

       [ 먼 곳으로 가는 여행자에게는 튼튼한 가죽 구두를! ]

       [ 요정의 망치로 하나! 둘! ]

       [ 가죽을 접고 한 땀 한 땀! ]

       [ 이렇게 한 짝! 저렇게 한 짝! ]

       [ 이렇게 부자가 된다! 한 땀 한 땀 부자가 된다! ]

         

       그것은 이제순이 입을 열지 않은 것이 기껍다는 듯 기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 가죽을 많이 쓰면 비싸게! ]

       [ 가죽을 적게 쓰면 무늬를 새겨서 비싸게! ]

       [ 구두는 제값으로는 안 돼! ]

       [ 모름지기 구두라는 것은 목까지 황금을 채워서 사야 하는 법! ]

       [ 긴 신발의 목까지 황금을 채우고! ]

       [ 구두의 안에 금화를 가득 넣고! ]

       [ 여기 항아리의 바닥부터 위까지 황금을 가득 채워서! ]

       [ 하나, 둘, 셋, 넷! ]

       [ 넷, 여섯, 일곱! 아홉! ]

       [ 아홉이 하나둘 열하나! ]

       [ 아흔아홉 보물 항아리는 나의 자랑이라네! ]

       [ 립랩, 팁랩, 틱택투! ]

         

       그리고 노래가 진행될수록, 이제순이 입에 술을 머금으면 머금을수록 그 존재는 점차 뚜렷하게 변했다.

         

       흐릿한 윤곽만 보이던 몸은 점차 하나로 뭉치며 또렷해지기 시작했으며, 이리저리 번지며 계속 달라졌던 높이는 어느새 난쟁이 크기로 변했다. 그리고 짐승 같은 발은 어둠이 이리저리 뭉치며 몸에 어울리지 않은 커다란 신발로 변했고, 조각가가 노력을 기울여 돌을 쪼아내는 것처럼 그것의 피부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꿈틀대는 주름.

       장난기와 심술기가 가득한 입매.

       그리고 딱 봐도 구두쇠처럼 보이는 표정까지.

         

       그것은 점차 또렷하게 변해갔다.

         

       [ 호, 호, 호! ]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요정’의 모습을 이루어냈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바닥까지 닿을 것 같은 기다란 턱수염.

       그리고 피노키오라도 되는 것처럼 길쭉하고 끝이 뾰족한 코.

         

       코 위에는 빨간 테두리의 안경이 얹어져 있었고, 옷은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었으되 곳곳에 은과 금으로 치장한 것인지 번쩍번쩍 빛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챔피언 벨트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은 버클 벨트를 매고 있었고, 무릎을 훌쩍 넘는 거대한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것은 구부정한 자세로 이제순을 바라보았다.

         

       [ 흐-음. ]

         

       그 시선은 왠지 모르는 호기심을 품은 듯 보였다.

         

       요정은 허리춤에 차고 있는 가죽 주머니에서 금속으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통을 꺼냈다.

       그리곤 거기서 담뱃잎을 꺼내 들고는 입에 집어넣고 질겅질겅 씹으며 이제순에게 말을 걸었다.

         

       [ 이봐. 못생긴 친구. 뭐 그리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나? 잠깐 나를 좀 보게. ]

         

       이제순은 요정이, 정확히는 ‘요정 모방체’가 자신을 부르자 발걸음을 뚝 멈췄다.

         

       그리곤 침을 꿀꺽 삼키며 종이에 적혀 있던 내용을 떠올렸다.

         

       『 요정의 노래를 무시하다 보면 마침내 또렷한 형상을 이루게 될 것이다. 』

       『 축하한다. 너는 의식을 통해 요정 모방체를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

       『 요정이 너를 부른다면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을 멈추라. 』

       『 이제는 요정의 문답에 올바른 답을 할 차례다. 』

       『 요정이 ‘올바른 이름’으로 부를 때까지 말을 삼가라. 』

       『 지금부터 적힌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말해야 할 것이다. 』

       『 가장 먼저….』

         

       이제는 움직이는 것은 끝났고, 정해진 답을 해야만 했다.

         

       그것을 위해 이제순은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 그래, 빙글빙글 돌기를 좋아하니 포보르(Fomóraiġ)인가? ]

       “….”

       [ 아니군. 그럼 타이빌랴흐트 뮌티리 파르할릔(Taimhleacht Muintire Parthaloin)에서 술을 퍼먹고 오는 중인 애송이? ]

       “….”

       [ 오, 그럼 혹시 하늘까지 닿은 탑이 있던 곳에서 온 얼간이인가? ]

       “….”

         

       이제순은 요정의 질문에 침묵했다.

         

       그가 원하는 이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 오, 저것들이 아니라면 혹시 투어흐 데(tuath dé)? ]

       “오, 제가 어찌 감히 그 영광스러운 분들일 수 있겠습니까? 다만 아주 미약한 핏줄이나마 이어져 있으니, 저는 다누의 먼 자손이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 하, 하, 하-! ]

         

       요정은 이제순의 답변을 듣자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

       그 웃음은 기묘한 면이 있었으나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고, 장난기는 있으되 환영의 의사를 담고 있었다.

         

       마치 ‘네가 한 말은 정답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 한 뼘의 투아허 데 다난(Tuatha dé Danann)! ]

       [ 시간도 뒤죽박죽! 글자도 뒤죽박죽! ]

       [ 에린의 종족처럼 모든 것이 뒤죽박죽! ]

       [ 하지만 핏줄은 이어졌으니, 너는 그래도 나와 이야기할 자격이 있겠다! ]

         

       요정은 기쁜 듯 씩 웃으며 이제순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이제순을 자신의 옆에 앉혀놓고 이야기를 하려는 듯 그에게 팔을 뻗었다.

         

       텅.

         

       하지만 요정의 손은 무언가 장벽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듯 보이지 않는 벽에 튕겼고, 그 모습에 요정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자그마한 망치 하나를 꺼내서 허공에 휘둘렀다.

         

       쿠웅!

         

       그러자 웅장한 소리와 함께 울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은 요정의 망치 역시 거부한다는 듯 그대로 튕겨내었다.

         

       그러자 요정은 인상을 쓰며 이제순에게 말했다.

         

       [ 이봐! ]

       “무슨 일이십니까?”

       [ 내가 들어갈 수가 없으니 네가 나와야겠다! ]

       “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는 이 벽으로 나가지 말라는 명령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 짜증이 나는구나! 이 벽을 부숴버려도 되겠지? ]

       “오, 디니 마하(Daoine maithe)시여! 제발! 그것은 안 됩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제가 큰 책임을 물게 됩니다! 부디 먼 핏줄의 자손에게 신사로서의 아량을 베풀어 주시기를!”

       [ 디니 마하(Daoine maithe), 디니 마하(Daoine maithe), 디니 마하(Daoine maithe)!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으니 나는 이 벽을 부술 수는 없겠구나! ]

         

       요정은 좋은 사람이라는 뜻의 ‘디니 마하(Daoine maithe)’라는 단어를 듣자 벽을 때려 부수는 것을 그대로 포기했다. 하지만 벽을 부수는 것을 포기했을 뿐, 이제순을 원 밖으로 끌어내는 것은 포기하지 않은 듯 코를 쫑긋 움직이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유혹했다.

         

       [ 먼 자손아, 인간의 아이야. 가난해 보이는데 이리 나오지 않으련. 연회를 열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너에게 먹여주겠다. ]

       “그 말씀은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지만 디니 마하시여! 저는 따뜻한 수프도 부드러운 빵도 없지만 여기 술을 잔뜩 가지고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 다누 신족의 외모를 물려받지 못한 아이야, 보고 있자면 참으로 안타까운 외모를 가진 못생긴 아이야. 너 같은 녀석도 지고지순하게 바라볼 요정 미녀를 불러주겠다. 이리 밖으로 나와서 미녀를 옆에 끼고 술을 마시지 않으련? ]

       “미녀라면 더할 나위가 없지요! 하지만 디니 마하시여! 이 술을 잔뜩 마시면 꿈속에서 푸카(Púca)와 춤을 추는 아리따운 마녀들이 나타나 저를 안아줍니다! 거기서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 그렇다면 나와서 연주를 하고 춤을 춰보자. 내가 만든 튼튼한 신발의 밑창이 닳아서 없어져 버릴 때까지 신나게 연회를 즐겨보자꾸나. ]

       “오, 디니 마하시여! 술을 마시면 제 걸음걸이가 춤이 됩니다! 그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지요!”

         

       이제순은 요정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종이에 적힌 답변을 그대로 늘어놓았다.

         

       그러자 요정은 진절머리를 내면서 소리쳤다.

         

       [ 끄응. 이 지독한 술꾼 같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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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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