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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7

    <297 – 심경의 변화>

     

    오크노디의 약점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이슈타르는 앞길이 막막해졌다.

    모르겠다.

    오크노디의 약점은 하나도 짐작이 가질 않았다.

    근거리에서는 [가속잔상검]으로 대표되는 잔상을 남기며 고속 움직임으로 감각을 속이는 트리키한 검사의 면모를 보인다.

    중거리에서는 완드를 꺼내들고 [암흑볼]로 대표되는 암흑마법의 사악한 술수를 부린다.

    장거리로 넘어가면 어느새 [숨기]로 사라져버리며 도통 찾을 길이 없어진다.

    전장을 이탈했는지, 숨어서 기회를 노리는지, 멀리 돌아서 배후를 노리는지 무엇 하나 종잡을 구석이 없는 무서운 아이다.

     

    ‘암흑마나가 많기에 성검과 성법, 신성술에 약하다는 것도 약점이라고 하기 어려워.’

     

    약점이면 뭐하나.

    애초에 당해주지를 않는데.

    그런 아이의 물리적인 약점은 경매에서 상품으로 얻어봤자 써먹을 수 없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용사파티의 후원세력처럼 오크노디가 생각지도 못한 치명적인 약점이 나와야만 해.’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런 가치도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을 오크노디라고 모를까?

    무려 한 달도 더 이전부터 교수를 죽일 흉계를 세운 아이다.

    다크프린세스의 오명을 쓴 착한아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오크노디의 실체가 명백한 다크프린세스라는 사실은 오늘의 일로 분명해졌다.

    분명 이 순간에 대해서도 치밀하게 설계를 세웠으리라.

     

    “이슈타르. 340만 포인트.”

     

    가진 포인트를 모조리 투입했다.

    이 이상은 부를 수 없다.

    이 정도로 만족해.

    그만 우리를 약점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게 보내줘.

    이슈타르의 간절함에 오크노디가 활짝 웃으며 손을 들었다.

     

    “오크노디. 370만 포인트.”

     

    이슈타르의 고개가 축 늘어졌다.

     

    “미안해, 유피. 내 힘이 부족했어.”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유피…?”

    “제 포인트를 모두 드릴게요.”

     

    유피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승선포인트를 이슈타르에게 모조리 양도하였다.

    40만 포인트.

    유피가 지닌 포인트를 모두 더하자 기적처럼 한번 더 입찰가를 올릴 기회가 찾아왔다.

    이슈타르는 괜히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꿉친구에게 고생만 시키고 포인트까지 빌리는 자신이 글러먹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이 포인트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안해.”

    “사과하지 말아요. 용사파티는 저와 당신, 우리 두 사람이 함께하는 파티잖아요. 이번 경매상품을 놓칠 때의 리스크는 우리 두 사람 모두의 것이에요.”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며 어깨에 실린 힘을 풀어주는 유피가 오늘따라 성녀라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꼭 성공하자.

    크게 출세할 거야.

    그리고 언젠가 유피에게 오늘 진 빚을 갚겠어.

    열배는 더 성대하게, 이자도 두둑하게 얹어서.

     

    “히히.”

     

    그런데 저 아이, 오크노디는 왜 계속 웃고 있지?

    결연한 각오도, 타오르던 의지도 모닥불에 모래를 끼얹은 것처럼 극심하게 흔들렸다.

    소름이 돋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무서운 웃음이 이쪽을 향한다.

    왜?

    대체 왜?

     

    “역시 380만 포인트가 만땅이구나!”

    “너, 설마…!”

     

    이 지경이 되어서도 허락하지 않겠다고?

    경악하는 이슈타르의 마음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오크노디는 매정하게 손을 올렸다.

     

    “오크노디. 490만 포인트.”

     

    더는 올릴 포인트도 없다.

    유피의 힘을 합쳐도 마찬가지다.

    힘없이 고개를 숙이는 두 여자.

    용사파티를 향해 오크노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포기했어요?”

    “잔인한 녀석. 꼭 그렇게 확인사살까지 해야만 성이 풀려?”

    “암살자면 그럴 수도 있지.”

     

    뒤에서 즈앙이 슬쩍 던진 훈수에 화를 내려고 치켜든 고개.

    용사의 분한 눈을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쪼그려 앉은 오크노디가 빤히 눈을 마주하였다.

    …가까워.

    거리감이 불편해.

    속으로 품은 불편함은 어쩌면 이른 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오크노디의 발언에 비하면 그 정도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포인트가 부족하면 여기서 벌면 되잖아요.”

    “너, 설마… 포인트징수를 노리고…?”

     

    오크노디가 품에서 꺼낸 부부젤라를 입에 물고 뿌우우━ 소리를 내었다.

     

    “정답!”

     

    여태까지 제 친구들한테 실컷 아픈 꼴을 겪게 했으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주실 거죠?

    오크노디의 노골적인 발언은 명백한 징벌의 뜻을 담고 있었다.

     

    “참고로 전 이제 입찰을 갱신하지 않아요. 여기서 뒤집을 수 있으면 상품은 챙겨드릴게요!”

     

    이슈타르와 유피의 포인트를 합친 정확한 값은 389만 8900포인트.

    500만 포인트까지는 110만 1100포인트가 부족하다.

     

    ━━━

    징수메뉴판

    ━━━

    채혈 1ml 당 10포인트

    홀서빙 1시간 당 100포인트

    손가락 관절 부러뜨리기 1회당 100포인트

    이빨 뽑기 개당 1000포인트

    재단장학금 받기 10만 포인트

    정략결혼하기 100만 포인트

    ━━━

     

    오크노디가 약속을 지킨다면.

    더 이상의 입찰가 갱신이 없다면.

    장학금을 받으면 된다.

    목줄이 채워진다면 그걸로 풀려날 수 있다.

    미래의 배우자를 고를 기회마저 포기한다면 용사파티의 모험만큼은 이어나갈 수 있다.

    제국의 악법에 희생당한 어린 소녀들이 다시 상심에 빠지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소꿉친구 유피 한 사람만큼은 성공한 성녀로 살게 해줄 수 있다.

     

    “바보 같은 생각 말아요, 이슈타르!”

    “무섭네. 징수메뉴판의 가격을 철저하게 염두에 둔 입찰가는. 이쪽이 모은 포인트를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면 역시 전부 설계대로라는 뜻이잖아?”

    “이슈타르!!”

    “알아도 당할 수밖에 없어. 여기서 넘어가지 않으면 더 큰 피해를 겪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내 결정을 이해해줘, 유피.”

    “차라리 내가…!”

     

    선수 쳐서 장학금을 받겠다고 외치려던 유피의 몸이 픽 쓰러졌다.

    소꿉친구의 사고방식을 빤히 짐작한 이슈타르가 한발 빠르게 유피의 혈관을 짚어 기절시켰다.

     

    “재단장학금은 10만 포인트, 정략결혼은 100만 포인트였지? 손가락 관절 부러뜨리기는 회당 100 포인트였고.”

     

    110만 1100포인트.

    시간초과가 되기 전에 이슈타르는 가차 없이 자신의 손가락 관절을 우드득 꺾었다.

    용사의 회복력을 이용해 빠르게 본래의 각도를 되찾은 손가락을 연달아 다시 부러뜨리는 난폭한 행동.

    시간만 충분했다면 손가락 꺾기만으로도 모든 포인트를 다 채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상위입찰이 없을 시, 지금부터 1분 뒤 경매가 종료됩니다.”

     

    하지만 무인도경매에서 입찰가를 갱신할 시간은 고작해야 집사가 말을 꺼낸 시점에서 1분.

    1분은 손가락 관절을 1100번이나 꺾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각오가 부족했기 때문이야.’

     

    실력이 있음에도 더 큰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자신이 안일했던 탓에.

    용사라는 지위에 우쭐했던 탓에.

    손에 쥔 포인트의 수치에 현혹된 탓에.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의 강함을 경시하였던 탓에.

    모두 자신의 업보였다.

    이슈타르는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다짐했다.

    다시는 방심하지 않겠다.

    다시는 얕보지 않겠다.

    오크노디는 자신의 아래가 아니다.

    모든 힘을 걸고 반드시 해치워야만 하는 숙적이다.

     

    “손가락 꺾기 11회의 대가를 지급해줘.”

    “11000포인트를 인정합니다.”

    “만천…? 천백이 아니라?”

     

    오크노디가 그녀의 의문에 대신 답했다.

     

    “소지포인트가 마이너스가 아니면 징수게시판의 보상의 10배를 받을 수 있대요. 잘됐죠?”

     

    뭐야.

    그럼 손가락은 두 번만 꺾어도 됐던 거야…?

    허탈함도 잠시.

    커다란 기쁨이 뒤따랐다.

     

    “잘됐네요. 정략결혼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어서!”

    “…재단장학금을 받겠어.”

    “100만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남은 10만 포인트를 지불하기 위해 징수게시판에서 1만 포인트 상당의 리스트를 고르자 부족했던 포인트가 모두 충원되었다.

     

    “이슈타르. 500만 포인트.”

    “기권이요!”

    “육일차 경매상품 <용사파티의 후견세력>은 이슈타르 참가자에게 500만 승선포인트로 낙찰되었습니다.”

     

    오크노디가 뒷짐을 지고 짐짓 거만하게 말했다.

     

    “못된 용사야. 앞으로는 착하게 살렴!”

    “…오늘 일은 절대로 잊지 않겠어.”

     

    용사는 기절한 성녀를 어깨에 포대처럼 짊어지고 크루즈선으로 돌아갔다.

     

    [이슈타르가 당신에게 원한을 품었습니다.]

    [이슈타르의 당신을 향한 관계는 ‘원수’입니다.]

     

    게임이라면 분명 그런 문구가 떠오를 순간이었다.

     

     

    * *

     

     

    불이 꺼진 크루즈선을 바라보며 이슈타르의 마음도 새카만 어둠에 물들었다.

    어린 날, 암흑마나라는 사악한 힘에 심취했던 권력자는 궁벽한 벽촌에서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암흑마나와 맞바꾸었다.

    정의에 호소하며 공명정대한 재판을 희망했던 소녀는 권력이 정의를 짓밟는 현실을 목도했다.

    힘이 있으면 당하지 않는다.

    힘이 없기에 당할 뿐이다.

    그 사실이 눈앞에서 이루어졌을 때, 이슈타르는 처음으로 간절히 바라기 시작했다.

    힘을 얻고 싶다고.

    누구보다도 강해지겠다고.

    무엇이 정의인지 옳고 그름을 구분할 방법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녀에게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강해질 재능과 기연이 있었다.

     

    ‘오크노디는 나보다 더 강했어.’

     

    무력이 아닌 심계로.

    그녀에게는 없었던 사악한 지혜로.

    괜히 지‘력’이라는 말이 있던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녀에게는 힘이 필요했다.

    지금까지는 가지지 못했던 새로운 방향의 힘이.

     

    ‘아카데미에 돌아간다면 책사를 구하겠어. 유피는 조언자로서는 제 몫을 다할 수 있지만 정식 책사가 아니야.’

     

    근력이라면 얼마든지 마나연단법을 익혀서 키울 수 있지만 지력은 다르다.

    추구해오지 않았던 길을 걸어가려면 먼저 앞서 걸어가는 이가 손을 내밀어주어야만 한다.

    1학년 중에 그런 책사타입의 인간은 누가 있을까.

    우선 지젤이 있네.

    가챠상품으로 포인트를 싹 털어간 녀석.

    그 남자는 오크노디의 책사지만.

    매스각키 황녀도 은근히 머리를 잘 쓰는 편이고.

    제국의 황녀에게는 절대 머리 숙일 일은 없지만.

    …하급반에 숨은 인재를 기용해야 하나.

    쯧.

    내 평판으로는 쉽지 않을 텐데.

    그래도 찾아보면 한 번쯤 인재등용에 적합한 기회가 찾아오겠지.

     

    “앗, 이번엔 용사가 돌아왔어!”

    “대박. 오크노디가 이긴 거야?”

    “쩐다.”

    “근데 이럼 우리만 더 힘들어지는 거 아니야?”

    “선상반란을 도울 에이스가 없잖아.”

    “아… 괜히 좋다 말았네…”

     

    대놓고 크게 실망하는 학생들.

    개인주의적인 이슈타르가 우리를 도와줄 리가 없어.

    그렇게 생각하던 학생들에게 뜻밖의 변화가 일어났다.

     

    “선상반란? 뭘 하고 있었던 건데?”

    “어? 이슈타르가 하급반 학생에게 말을 걸어…?”

    “그, 그게… 배를 정복해서 마이너스가 된 선상포인트를 갚지 않고도 어떻게든 하려고…”

     

    마침 잘됐네.

    하급반 학생들에게 이미지를 고칠 기회가 찾아왔다.

    겸사겸사 자신에게 목줄을 채운 재단에게도 한 방 먹여줄 기회가.

     

    “도와줄게.”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인물, 용사 이슈타르가 선상반란에 가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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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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