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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7

    벌써 며칠째 연락이 두절된 우주 정거장.

    우주 정거장에 홀로 남겨진 한 여자가 공포에 떨며 통신 콘솔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우주에서 오는 정신 오염 관련 연구도 끝나서, 곧 지구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지금쯤이면 이미 지구에 도착해서 한국에 있는 제임스 타워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겠지.

    ‘왜 나는 이런 곳까지 온 걸까.’

    여자는 품 안에 있는 통신 시스템 마이크를 다시 들어 올리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JamesSS, 오브젝트 센터에 응답 바랍니다. 우주 정거장에 이상 상황 발생, 우선순위 코드 레드.”

    하지만 아무리 외쳐도 통신 콘솔에서는 그저 잡음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끼기기기긱.

    그 순간, 정거장 내부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미 정거장을 가득 채운 녹색의 식물들이 점점 자라나면서, 정거장의 구조물들이 마구 뒤틀리는 소리였다.

    마치 생명의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는 죽음의 카운트 다운 같았다.

    당장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정류장 전체가 벌벌 떨리고 있었다.

    탁.

    마이크를 품에 안은 채, 눈을 꼭 감고 있는 여자의 앞에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그 소리를 듣고 눈을 뜨자, 문득 낯익은 물건이 들어왔다.

    한국 제임스 타워에 근무 중인 친구가 보내준 조그마한 사진첩이었다.

    사진첩을 열어서 그 안을 바라보자, 친구가 찍은 사진이 한 장 들어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의 모습과 그 옆에 찍힌 조그마한 황금색 오브젝트가 보였다.

    사진기가 뭔지도 모를 텐데, 해맑은 표정으로 만세를 하는 황금 사신.

    “나도, 황금 사신, 보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목이 메어 더 이상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여자는 흐릿해진 시야로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한참 동안 사진을 내려보던 여자는 다시 마이크를 들어 올리더니, 마이크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다시 말을 시작했다.

    “오브젝트 센터, 여기는 JamesSS. 정거장 내 이상 식물 생장 및 동물 활동 감지. 대원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긴급 구조 요청합니다. 리피트, 긴급 구조 요청합니다.”

    하지만 그 촉촉한 목소리에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여자가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리자, 전에 보지 못한 제어실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뒤틀려서 찢긴 정류장 외벽 틈으로 우주가 보이고 있었다.

    “하, 하하하.”

    하지만 공기의 유동 같은 당연한 변화들이 보이지 않았다.

    ‘역시 오브젝트인가.’

    여자는 그렇게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이윽고 태양이 지구 너머로 사라지고 지구의 그림자가 정거장을 집어삼켰다.

    살을 에는 듯한 혹독한 추위가 엄습해 왔고, 불길한 어둠이 정거장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 기어다니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움츠러들어,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제발 살려주세요…. 여기는 우주 정거장…. 제발 응답해 주세요…. 긴급 탈출 지원 요청합니다…. 리피트, 긴급 탈출 지원 요청합니다.”

    “누구든지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하지만 우주 정거장에서 흘러나오는 무전은 이제 영원히 응답받지 못한 채, 우주를 떠돌 뿐이었다.

    ***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세희 연구소 안뜰.

    나는 말랑말랑한 마시멜로 위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다.

    따뜻해서 왠지 잠이 오는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

    그리고 작은 TV 소리가 휴식을 돕는 백색 소음처럼 들려왔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미국 오브젝트 협회는 소속 우주 정거장과 연락이 끊어졌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원거리 관측 결과, 우주 정거장에는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와 관련해 국내 우주 개발 전문가들은 단순 통신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쉬고 있는 내 배 위에 미니 사신들이 잔뜩 몰려들어서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엄마 댖지!’

    ‘말랑말랑해!’

    마치 내 뱃살이 트램펄린인 것처럼 폴짝폴짝.

    으음.

    사실 살찌든 말든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이상하게 계속 미니 사신들이 살쪘다고 하니까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솔직히 예전이 너무 마른 거고, 지금은 군살도 없고 적당한 편 아닌가?

    ‘와앙!’

    나는 갑자기 몸을 일으켜서 내 배 위에서 뛰어놀던 황금 사신을 놀래줬다.

    ‘!’

    ‘앗! 엄마가 화났어!’

    그리고 후다닥 도망가는 황금 사신 하나를 붙잡아서, 장작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일명 황금 사신 돼지 만들기!

    황금 사신은 깜짝 놀라서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히히.

    잡히기 전이면 몰라도, 잡히고 나면 유령화도 안 통하고 힘 차이도 나서 벗어날 수 없지!

    ‘앙대!’

    황금 사신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버둥거렸다.

    하지만 내 심장에 있는 장작을 반이나 퍼부어도, 황금 사신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럴 수가.

    그럼, 평소에 뿜어져 나오는 예린이의 장작이 도대체 얼마나 많다는 거야?

    내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동안, 황금 사신은 조심조심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미니 사신 정원으로 도망가 버렸다.

    뀨웅. 뀽뀽.

    뀨뀨. 뀨우뀽. 뀽뀽뀽.

    그런 내 귀에 아귀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려보자, 저 멀리 세희 연구소 지붕 위에서 하얀 아귀 한 마리가 입을 막고 비웃고 있었다.

    ‘!’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는 것을 느낀 건지, 하얀 아귀는 황급히 내 시야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

    ‘?????’

    요즘 붉은 사신들이 자꾸 불로 태워서 그런가?

    아니면 요즘 내가 안 괴롭혀서 하얀 아귀가 미쳐버린 건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도망간 아귀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한적한 오브젝트 연구소 단지 주차장 안으로 한 대의 택시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 택시에서 내린 것은 청과 이탈리아 남매였다.

    “드디어 도착!”

    남매 중 여동생 쪽이 기지개를 켜며, 세희 연구소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방문 신청도 했어요. 세희 연구소 입구에 안내인이 나온다고 하네요.”

    청이 자신의 핸드폰을 들여보며 말했다.

    그리고 머리 위에 주황 사신을 얹은 채, 천천히 세희 연구소를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세희 연구소 주변을 뚜방뚜방 돌아다니던 황금 사신들의 시선이 청을 향하기 시작했다.

    ‘!’

    깜짝 놀란 표정으로 청을 바라보던 황금 사신들은 마치 사탕에 이끌린 개미처럼 우글우글 청을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앗!”

    “여전히 미니 사신들에게 사랑받는 체질이네.”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청, 그리고 약간 부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이탈리아 여동생.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요?”

    미니 사신들이 다리 근처에 달라붙어서 움직이기 힘들 정도가 되자, 세희 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뛰어나왔다.

    그러자 미니 사신들이 적당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방문 신청하신 분들이죠? 안내를 맡은 오예린 연구원이라고 합니다.”

    예린의 인도에 따라 청 일행이 연구소 내부로 들어가자, 겉보기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의 복도가 그들을 반겨주었다.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한 연구소 같았는데, 내부는 연구소라기보다는 놀이공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머리 위에 미니 사신을 얹고 돌아다니는 연구원들과 곳곳에 놓인 사탕 바구니, 그리고 사방에 놓인 미니 사신 폼보드.

    여기가 연구소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미니 사신들이 이렇게 심하게 몰려드는 게 정상인가요?”

    청은 앞장서서 걸어가는 예린에게 평소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음. 애착 사신이 없으면 미니 사신들이 자주 달라붙긴 하죠. 게다가 처음 보는 사람이면 더욱 달라붙어요.”

    예린은 고개를 돌려서 청의 정수리에 누워있는 주황 사신을 힐끗 바라보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애착 사신이 있는데도 그렇게 달라붙는 경우는 저 말고는 처음 보네요.”

    미니 사신들이 잔뜩 모여있다는 안뜰을 향해가는 동안, 청이 보기에 조금 이상한 것이 또 있었다.

    연구소 복도 구석구석 TV가 배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모든 TV에서는 전부 뉴스 전문 채널만 흘러나왔다.

    [관악구에 위치한 관악산 인근에서 떼를 이룬 호랑이 30마리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같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인근 주민들은 큰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오브젝트 안전 관리 협의회에서는 갑작스러운 호랑이 출몰이 어떠한 오브젝트와 연관이 있는 것인지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청 일행은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뉴스가 흘러나오는 화면을 스쳐 지나가듯 힐끗 바라보다가, 이내 세희 연구소의 안뜰로 시선을 돌렸다.

    “와!”

    청의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안뜰은 황금빛 사신들로 가득 차 있어, 마치 동화 속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아름답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

    송파구 외곽에 있는 제임스 타워 안의 어둑어둑한 방.

    그 안에서 녹색 달에 의해 점거된 우주 정거장, 그 처리 방안에 대한 온라인 화상 회의가 한창이었다.

    [당장 문제가 없으니, 제대로 된 방법이 나올 때까지 그냥 방치해도 되는 거 아닌가?]

    미국 오브젝트 협회 이사가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우주에 있는 오브젝트라니, 시도 자체에도 너무 비용이 들고 처리할 수 있다는 확신도 들지 않는군요.]

    연방 정부 오브젝트 부처 실무진이 또다시 부정적인 의견을 내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아니요, 당장 처리해야 합니다! 이대로 두면 안 됩니다.”

    하지만 회의는 지지부진했다.

    일곱 가지 색의 달이 회색 사신에게 파괴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참가자 대부분은 미국 제임스 시티에 있던 남색 달처럼, 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처리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녹색 달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회색 사신을 우주로 보내야 하는데, 그 방법이 있기는 한 건가?]

    [인간이 직접 처리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오브젝트를 상대하는 것도 힘든데, 그 배경이 우주라니 무리예요.]

    [우주 정거장으로 회색 사신을 유인할 방법은 없을까요?]

    [인간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에 회색 사신이 관심을 가질까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회의는 계속되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만 끌다가 끝나버렸다.

    우주에 있는 녹색 달이 실질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회색 사신을 우주 정거장으로 보낼 획기적인 방법이 나와야 할 것처럼 보였다.

    “젠장.”

    막막해진 제임스는 어두워진 원격 회의실에서 눈을 감았다.

    황금 사신은 그런 제임스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달라붙어서, 정수리를 토닥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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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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