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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8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어제 술을 엄청나게 마셨었지. 숙취가 몰려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마음 같아선 해장국이라도 한술 들이키고 싶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런 게 없다. 아니, 애초에 과음한 적도 몇 번 없었는데, 해장에 익숙할 리가.

       

       아무튼, 이런 망령된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술이 덜 깼구나 싶었다.

       

       몸은 가위에 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묵직하고, 정신은 코마 상태에 빠져든 것처럼 혼미하다. 얼굴은 후끈 달아오른 느낌이다.

       

       “흐으.”

       

       알딸딸한 알코올 향이 비강을 찌른다.

       

       중력을 이겨내고 가까스로 상반신을 일으켰다. 짚은 손 아래로 푹신하고 포근한 감각이 느껴진 건 그 무렵이었다.

       

       “……뭐지.”

       

       정신을 차려보니 침대 위였다.

       

       이상하다. 분명히 필름은 마룻바닥에서 끊겼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로테와 프레이가 날 여기로 옮겨놓은 모양이다.

       

       힘도 장사지. 이 몸은 금속이 섞여 있는지라 일반 여성보다도 살짝 무거울 텐데 말이다.

       

       “윽!”

       

       부정맥이라도 온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반사적으로 가슴을 팍팍 두들기자 목울대에서 무언가가 넘어오는 감각이 들었다.

       

       필사적으로 참아보려고 했지만 늦었다.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유화 물감처럼 진한 피가 새어 나온다.

       

       “…….”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로테와 프레이 둘 다 먼저 출근한 모양이다. 이럴 땐 출퇴근이 자유로운 윗사람 입장이 좋구나 싶었다.

       

       피를 한 움큼 머금고 세면대로 가기 위해 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아윽…!”

       

       뭔가 말랑말랑한 게 발끝에 닿았다. 동시에 요태를 푸리는 듯한 신음이….

       

       이거, 촉이 안 좋은데.

       

       고개가 고장 난 로봇처럼 슬슬 내려간다.

       

       “…….”

       “…….”

       

       그리고, 침대 아래에 누워있던 사람과 눈이 맞았다.

       

       금실로 자수를 놓은 것처럼 흐늘흐늘한 머리카락에, 살짝 노곤한 듯 풀어져 있으면서도 제대로 초점을 잡고 있는 루비색 눈동자.

       

       취기에 올라 불그스름해진 목덜미와 가슴골이 가히 뇌쇄적이다. 마치 남자라는 벌을 홀리는 한 송이 꽃과도 같은 모양새였다.

       

       그만큼 고혹적인 인상을 지닌 여인이다. 여인인데….

       

       “윽, 저, 발을 좀…….”

       “미은흡니드.”

       

       나는 그녀의 허벅지를 밟고 있던 발을 서둘러 치웠다. 얼떨결에 사과도 같이 건네긴 했는데, 핏물 때문에 제대로 발음이 안 나왔다.

       

       서둘러 세면대로 달려가 피를 내뱉고는 칫솔을 입에 쑤셔 넣었다.

       

       상큼발랄한 스피어민트. 알코올을 몰아내기엔 최적의 선택이다. 칫솔질을 하고 있자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생각하자.

       

       클라이스가 왜 내 밑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있었던 거지?

       

       “…속은 어떠세요?”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양치질하고 있자 클라이스가 화장실로 따라 들어왔다. 나는 무심코 예비용 칫솔을 꺼내 건네주었다.

       

       클라이스는 그런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얼굴을 굳히며 칫솔을 받았다.

       

       “저어, 장관님.”

       “사석에선 이름으로 부르셔도 됩니다.”

       

       치약 거품을 뱉고는 그리 말했다.

       

       클라이스의 눈동자가 왕방울만 해졌다.

       

       “…정말, 그래도 되나요?”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는 클라이스. 그 모습이 예전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저희가 무엇 때문에 술자리를 가졌을까요? 선생님.”

       “……!”

       

       선생님.

       

       이 사람에게는 생경한 표현일 것이다.

       

       그야 나는 클라이스에게 단 한 번도 선생이라고 불러준 적이 없었으니까.

       

       “예전에 헤를라인 선생님께 들은 적 있습니다. 두 분께선 재학생 시절 술파티를 벌이고 난 다음부터 친해지셨다고.”

       

       헤를라인 선생님은 당시 평민이었다. 고위 귀족인 클라이스와는 전혀 다른 길을 살아온 인물.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교분을 나눌 수 있었을까?

       

       답은 하나뿐이다. 술이지.

       

       적당한 알코올은 신분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괜히 연회 자리에서 사람들이 술잔을 나누는 게 아니다.

       

       따라서, 내가 클라이스와 술자리를 가진 덴 다른 이유가 없었다. 단순히 심리적 거리를 가깝게 하기 위함이었지.

       

       필름은 끊겼어도 그때의 분위기는 남아 있었다. 클라이스는 그것을 부끄럽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좋은 경험이었다.

       

       클라이스도 어젯밤의 기억을 떠올린 모양인지 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간 탓에 웃긴 얼굴이 되었다.

       

       “첫 매듭이 잘못 지어진 건 제 책임도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원수였습니다. 아마, 정체를 알았더라면 일백 번 죽여 마땅했겠죠.”

       

       그런 클라이스를 향해, 나는 먼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그녀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 그러니까 금안이 ‘열등한 눈동자’라는 사실이 당연했던 시절의 일이었다.

       

       금안족은 박해받았기에 마왕군을 결성했다. 처음에는 차별받지 않기 위하여. 그러나 나중에는 자신들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의 일부가 하스펠트 가문과 대치했고,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마수는 제국인을 죽이고. 제국인은 마수를 죽이고.

       

       그렇게 분노의 사슬은 돌고 돌아 우리 둘까지 내려왔다. 그 결과, 그녀는 플레어에 미치게 되었고, 나는 흑주에 미치게 되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느 순간 분노를 끊어내셨습니다. 마수라며 저를 욕하는 대신, 사과하셨죠. 그때 모질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

       “그때 저도 알게 되었습니다.”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새로운 매듭을 짓기 위한 전 단계이기도 하다는 걸.

       

       “클라이스 선생님.”

       

       나는 거울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거울에 반사된 여인의 눈동자가 새벽이슬처럼 반짝거렸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마왕군에게 죽임당한 가족? 지난날 나를 굴렸던 기억? 마왕성에서 노예처럼 살아가던 나날들? 어쩌면 전부 다일 수도 있겠다.

       

       그런 앙금을 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털어냈다. 술 한 잔과 함께 저 망망대해로. 그 점이 자못 존경스러웠다.

       

       “출근합시다.”

       

       미안하다거나, 고맙다거나.

       

       다른 표현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 말 한마디로 양치질을 끝냈고, 클라이스도 머리를 빗으며 슬며시 웃었다.

       

       “……네, 에테르.”

       

       길고 길었던 악연이, 오늘에서야 끝났다.

       

       

       **

       

       

       보았다.

       

       똑똑히 봤었다.

       

       “…피였지, 그거.”

       

       어젯밤 클라이스 선생님과 술을 마시던 에테르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와인의 색이라기엔 조금 달랐다. 로테는 성인이 된 이후로 와인을 즐겨 마셨기에 잘 알았다. 그건, 확실히 사람의 응혈이었다.

       

       – 죽을 때 죽더라도 술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아?

       

       투욱.

       

       실험하던 로테의 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자신은 지금 학부생 인턴 자격으로 한 연구소에 있었다. 마왕군에 대항하기 위한 흑주 개발 계획. 즉 ‘아이비 프로젝트’에서 말단으로 일하는 중이었다.

       

       총지휘자인 에테르와는 달리, 로테에겐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때문에 에테르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나왔다.

       

       당연히 심기가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생각 하고 있니?”

       

       그때 한 소녀가 다가오며 그리 물었다.

       

       출렁이는 바다처럼 영롱한 눈동자를 지닌 아이였다.

       

       앞머리는 가지런히 아래로 내렸고, 뒷머리는 자연스레 옆머리와 연결하여 빡빡하게 묶었다. 실험실에서 흔히 하는 꽁지머리였다.

       

       “……유피엘.”

       

       유피엘 피어바인.

       

       카우렐리아의 전통적인 권세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일종의 마력 장애를 안고 있는 가련한 소녀였다.

       

       “응, 잠시 멍때리고 있었어. 미안. 아무것도 아니야.”

       

       로테는 유피엘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에테르가 아픈지 아닌지는 자기 친구에게 직접 물어보면 될 일 아닌가.

       

       그러나 로테의 표정을 살핀 유피엘이 곧바로 질문을 던져왔다.

       

       “힘든 일 있구나?”

       

       날카로운 바늘로 풍선을 찌르는 것처럼 가슴이 펑 터지는 감각이었다.

       

       로테는 저도 모르게 가슴께에 손을 얹었다.

       

       “어, 응? 어어, 아니…….”

       “우리는 같은 반 친구잖아.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유피엘은 기구를 교체하며 말을 이었다.

       

       “사실 말이야. 나도 예전에는 털어놓는 걸 잘 못 했거든. 괜히 집안 어르신들 눈치 보여서…. 하지만 몸에 장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아무런 생각이 안 들더라. 그냥, 학생일 때 많은 걸 물어봐서 가능한 한 많이 알려고 했어. 그게 공부에 대한 일이든, 일이 아니든.”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 주제로 유피엘은 수 분간 로테에게 연설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로테는 유피엘에게서 자신과 에테르를 동시에 보았다. 말 그대로 자신과 에테르가 반반 섞인 엘프 같았다. 그 때문에 동질감과 친밀감이 동시에 느껴지기도 했다.

       

       이 친구라면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슬며시 입을 열었다.

       

       “……뭐? 하이젠버그 선생님이 편찮으셔?”

       “나도 확실히는 몰라.”

       

       입에서 피를 흘리는 건 확실히 보았다. 프레이와는 달리 자신은 술도 마시지 않고 장롱에 들어갔으니 확실하다.

       

       “…단순히 지병일 수는?”

       “고질병이었으면 진작 알았어.”

       

       로테와 에테르가 알고 지낸 것도 2년이 다 되어간다. 특히 처음 몇 개월 정도는 둘이서 한 몸처럼 붙어 다녔는데.

       

       병환이 있었다면 모를 리 없었다.

       

       “그러면 여기 와서 걸렸을 가능성도 있겠네.”

       “풍토병인 거야?”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아닐 거야.”

       “……혹시 마왕이 건 저주일 가능성은?”

       “그건…. 잘은 모르겠네.”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어 봤지만 이렇다 할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아카데미 학부생에 불과한 두 사람이었다. 의술이나 치유 전문 마법을 익히지도 않았는데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판단할 수 있다면 어불성설이다.

       

       “만약 마왕이 건 저주라면 해주할 방법이 있을 거야. 그 녀석을 쓰러뜨린다든지, 적어도 정령왕께 데려가 본다든지.”

       

       그래. 그게 좋겠다.

       

       일단 치유마도사에게 데려가 보고, 잘 모르겠다 싶으면 정령왕에게 여쭈어보러 가는 것이다.

       

       설령 병이 있다고는 해도 고칠 수 있을 터. 설마 죽기야 하겠는가?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자신도 따라 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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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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