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98

       예? 저요?

        

       하고 놀라지는 않았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검성은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사망하지만, 만약 검성이 살아있었다고 해도 전쟁 뒤에 아카데미 교사로 취업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심지가 곧지만 동시에 괴팍한 면이 있고, 어딘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는 것이 스토리가 진행되는 내내 묘사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성격이 바뀌었다면, 그 이유는 나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면 자의식 과잉 아니냐는 말을 듣기 딱 좋은 소리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는 나 하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이 원작의 스토리대로 굴러가지 않은 이유가 나였으니까.

        

       나라는 존재 딱 하나 때문에, 원작의 스토리는 틀어졌다. 죽어야 할 사람이 죽지 않게 되었고, 마땅히 와야 했을 결말이 오지 않았다.

        

       그러니 검성의 마음이 바뀌었다면 그 이유는 나일 게 뻔했고, 검성이 대는 이유에도 내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저 말씀이십니까?”

        

       “별로 놀라지 않는구나. 혹시 예상하였느냐?”

        

       “예, 뭐.”

        

       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검성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비슷한 말을 많이 들었던 모양이구나.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스승님도 제가 했던 일들을 다 기억하십니까?”

        

       “기억하니 이렇게 여기 와 있는 것이고, 그런 이유를 대는 것이다. 끝까지 듣겠느냐? 솔직히, 내가 판단한 너의 성격을 보면 끝까지 다 못 들을 법도 한 이유다만.”

        

       “…….”

        

       나는 다시 한번 깊이 고민했다.

        

       아니, 대체 얼마나 오그라드는 이유를 대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봤지만 마땅한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당신보다 더 강한 이를 만나게 해주겠다’라는 거래를 제시했고, 그다음에는 ‘이미 이 정도의 기술을 배웠다’라는 것을 시연해 보였다. 그쪽으로는 아무런 재능도 없는 나였기에 시간을 몇 번씩 돌려가며 겨우겨우 익힌 뒤 ‘한 번에 익혔다’라고 거짓말을 하는 식이었다.

        

       솔직히, 가르치는 사람으로서는 복장 터질 일 아닐까?

        

       “일단 한가지 말해두마. 네게는 검술에 대한 재능이 없다. 머리는 꽤 좋은 것 같지만, 신체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지도 않고, 내가 지금까지 가르친 제자 중 네 무력 순위를 따지라면 저 아래쪽에 있다. 솔직히 검을 휘두를 인재는 아니지.”

        

       “…….”

        

       나한테 재능 없다는 말을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였나? 하지만 그 말은 이미 이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었다. 나 자신도 내가 재능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내가 그런 말을 하면, 보통 다른 이들은 어떻게 행동할 것 같으냐?”

        

       “……포기하고 돌아갑니까?”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렇지. 보통은 포기하고 돌아간다. 무려 ‘검성’이 한 말이 아니냐. 정점에 오른 이가 ‘네게 재능이 없다’라는 말을 하니 오히려 개운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녀석도 있었다. 보통은 바로 하산하여 다른 먹고 살길을 찾지.”

        

       검성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편히 기댄 채 말했다.

        

       “그리고 설령 그 말에 포기하지 않는 녀석이라도 그렇게 오랫동안 버틴 녀석은 없다. 보통은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하산한다. 훈련하면 할수록 자기한테 그게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이해한다. 차라리 누가 옆에서 응원이라도 해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무려 스승이라는 인간이 재능 없다는 소리를 해대면 의욕이 솟아나려야 솟아날 수가 없는 법이다.

        

       내가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검성을 바라보자 검성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렇다면 뭐라고 해주겠느냐? 신체 능력이라는 것은 극복할 수 없는 한계선이 있는 법이다. 자기 한계도 모른 채 계속 훈련만 해봐야 몸만 상할 뿐이야.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에 맞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 낫다. 보통은 그것도 버티지 못하고 하산하지만.”

        

       찔리기라도 했는지 그런 말을 한 검성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너는 달랐다. 재능이 없다는 말을 듣고도 끝까지 훈련받겠다고 하고, 기어코 훈련받았지. 그리고 몇 번이고 시간을 돌려가면서 수련하여 결국 원하는 능력을 터득했다. 솔직히 그게 검사로서 대단한 경지에 올랐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단한 일은 대단한 일이지. 너는 남들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훈련하여 내가 불가능할 거로 생각했던 지점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건 제 능력 덕분일 텐데요.”

        

       검성 본인도 직접 말하지 않았는가. 몇 번이고 시간을 돌렸다고.

        

       내가 터득한 경지는, 검성 본인이 직접 말했듯 빈말로도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경지였다. 애초에 검사로서 반드시 올라야 할 경지의 초입쯤 되는 위치.

        

       재능 없는 사람으로서 거기까지 오르는 것이 대단해 보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누구나 거기까지 오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시간을 온전히 노력에 쏟아붓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검성은 느긋하게 말했다.

        

       “남들보다 두 배, 세 배의 노력을 해야 겨우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면, 보통은 다른 일을 찾아보는 법이다. 그건 시간을 되돌리는 법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확신한다.”

        

       “…….”

        

       내가 입을 꾹 다문 채 아리송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검성은 허허하고 할아버지 같은 웃음소리를 냈다.

        

       “네 이야기를 들었다.”

        

       “제 이야기를요?”

        

       “그래. 내게는 다른 제자들도 있으니 말이다.”

        

       “…….”

        

       어…….

        

       그러니까, 나 만나러 오기 전에 다른 애들을 먼저 만났다는 소린가?

        

       클레어나 레오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둘이 언제나 나와 붙어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앨리스도…… 음, 따지자면 나와 언제나 붙어있는 건 아니지.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이가 어떤 시험을 본다면 무슨 행동을 할 것 같으냐? 굳이 시간을 돌려가면서 공부를 할 것 같으냐?”

        

       검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보통은 시험을 본 뒤 시험문제를 기억해 그 답만 골라내겠다고 생각하겠지. 내가 듣기로 너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만. 그 시간을 들여서 그저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느냐?”

        

       “그야 한 번 배운 것은 확실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다른 곳에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앨리스가 그렇게 열심히 하는 데 나도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결국 고른 것은 반칙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지만.

        

       “보통은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설령 네가 시간을 돌리지 못한다고 했더라도 너는 이미 그걸 이해할 시간이 충분했다. 제국의 황녀가 아니냐. 가정교사한테 물어보면 시간을 들여 알려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느냐?”

        

       “…….”

        

       어…….

        

       그 말에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게, 그런가?

        

       확실히, 내가 처음에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물어봐도 가정교사는 성심성의껏 가르쳐주긴 했다.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고 알려져도 일단 황녀였고, 황제는 자기 자식들을 굳이 피가 이어졌는지로 구분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음, 만약 내가 몇 시간이고 물어보더라도 그 사람은 친절하게 가르쳐줬을 수도…… 있나?

        

       황실에서 추가 수당이 나왔으려나?

        

       “그러니까, 나는 궁금해졌다.”

        

       내가 고민에 빠져있으려니 그사이에 검성이 말했다.

        

       “아카데미에 있으면서 너 같은 녀석 몇 놈만 더 건지면 인생이 참 재미있지 않겠나 싶었다. 그렇지 않으냐? 재능이 있건 없건, 그저 자신이 원하는 방향만 바라보면서 앞으로 나가는 녀석을 보면서 기특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만.”

        

       거기까지 말한 검성은 나를 보며 씩 웃어 보였다.

        

       굳이 말로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미소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자, 내가 여기까지 말했으니, 너는 아카데미에 어떻게 전할 거냐?

        

       확실히, 검성의 말대로였다.

        

       이대로 제니퍼한테 돌아가서 ‘검성이 저 때문에 이 아카데미에 오고 싶어졌다는데요?’라고 말하면 제니퍼는 엄청나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일 테니까.

        

       그리고 아카데미 안에서 나의 명성이 더 널리 알려지겠지. 이미 너무 구석구석 알려져 더 알릴 것도 없을 지경이지만, 그 위에 무게를 더 하는 것은 아마 가능할 것이다.

        

       “…….”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일단 알겠습니다. 아카데미 측에는…… 제가 제대로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은 그렇게만 대답했다.

        

       “그래, 기왕이면 내가 한 말을 최대한 그대로 알려줬으면 좋겠구나. 제자를 생각해서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본인이 그렇게 듣고 싶다고 매달려서 들은 것이 아니냐?”

        

       아뇨, 딱히 매달린 적은 없는데요.

        

       무엇보다 나는 말을 그대로 전할 생각이 없었다.

        

       그대로 전하지 않으면 어떻게 전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데 진짜 뭐라고 전해야 하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

    3시에 올린다고 해놓고 한시간 넘게 늦어진건…… 사실 제가 시간을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전에 일을 하고, 오후에 이쯤부터 쓰면 되겠지 했는데, 그게 너무 늦어버린 시간이라…… 정말 죄송합니다ㅠㅠㅠㅠ

    오늘도 기다리게 해드려 너무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