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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8

    루크가 대량생산에 적합하도록 지나친 피로회복의 성능을 억제해 레시피를 개량한 차의 맛과 향이 숲지기들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은 후.

    숲지기들은 루크에게 ‘내일도 판매하냐’고 물어왔으나, 루크는 ‘더 이상은 재료가 없다’며 재판매를 기약없이 연기시켰다.

    그 말에 많은 숲지기들이 실망을 한 것이 바로 며칠 전.

     

     

    그리고 지금, 루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방 안에 며칠간 틀어박혀 밥을 먹을 때 말고는 방에서 전혀 나오질 않고 있었다.

     

    다이튼은 인기척 없는 계단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오늘도 루크는 마법 경시대회 준비하나보네.”

     

    그 말에 예르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게, 공부할 게 아주 많은가 봐.”

     

    국제 마법 경시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기.

    이번에는 에이레스의 마탑이 아니라 무려 베리튼의 백탑까지 가서 시험을 치러야 하는 만큼,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았다.

    때문에 지금은 공부는 물론이고, 대회장에서 긴장하지 않으려면 심리적인 안정도 필요한 순간이다.

       

    하지만 최근에 이사로 정신도 없는 와중에 용돈 좀 벌겠다고 음료까지 만들어 팔았으니 아마 정신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가 시킨 게 아니라 다 자기가 하겠다고 한 일이니, 누굴 탓 할 수는 없었다.

       

    전국 마법 경시대회는 말 그대로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수재들이 모여서 치르는 시험.

    어딜 가나 천재소리를 듣는 루크지만, 여기서는 떨어진다고 해도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루크는 고작 2학년이니까.

    자신들은 만약 입상한다면 축하를, 떨어진다면 위로를 건네는 역할이 되겠지.

     

    마음같아서는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만, 공부에 재능이 없는 예르나는 조언도 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이렇게 깎은 과일을 가져가 루크의 책상 옆에 올려다 주는 정도의 응원만이 줄 수 있는 도움의 전부.

    예르나는 사과를 집어 자르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경쾌한 손맛이 썩 마음에 든다.

    그렇게 예르나가 이제는 과일 자르는 것도 나름대로 익숙해졌다는 생각에 홀로 만족스런 웃음을 띄우던 찰나, 다이튼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

    “왜?”

    “아, 아니야. 안 다치게 조심하기만 해…….”

     

    다이튼은 예르나의 독특한 칼 쓰는 방식에 아무래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이, 걱정도 참. 내가 이런 칼에 다칠 리가 없잖아? 이런 건 벌써 옛날에 통달했다구. 게다가…….”

     

    예르나는 씨익 웃고는 과도를 손 안에서 현란하게 돌려보이며 말한다.

     

    “나, 최근에는 칼이 더 가볍게 느껴지거든.”

    “그, 그래?”

     

    마치 묘기와 같은 그 움직임에 다이튼은 식겁하며 예르나의 시선을 피했다.

     

    ‘뭐지……. 칼을 든 예르나에게 느껴지는 이 한기는…….’

     

    마력을 감지할 수 있는 체질인 다이튼은 예르나에게서 느껴지는 미묘한 기운에 소름이 돋았다.

    예전에 집에서 요리 가르쳐 줄 때는 이 정도 까지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다이튼의 두려움섞인 시선을 받으며 과일 손질을 마친 예르나는 루크의 특유의 멋진 필기체로 쓰여진 ‘루크의 방. 노크 필수!’라고 적힌 방 문 앞 팻말 앞에 서서 주먹을 말아쥐었다.

     

    -똑똑똑.

     

    ——

     

    그 무렵, 루크는 리브를 품에 안은 채 자신의 방과 연결해 둔 아공간, 아린세이아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아린세이아의 날씨는 따듯하구나. 언제나 그렇듯이.”

     

    루크는 추억에 잠겨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리브 역시 아린세이아의 리빙아머.

    그러니 거리에 나름대로 추억을 가지고 있을 터이나, 리브는 별다른 호응이 없었다.

     

    오히려, 간간히 몸을 비틀며 버둥거리는 것이 조금은 불만스러운 것 같기도 해 보였다.

    찬란했던 옛 시절을 추억하기엔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환경이 없을 텐데 어째서일까?

     

     

    사실 그 이유는 정말로 단순했다.

     

     

    루크가 손으로 리브의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풍경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리브는 또 한차례 루크의 손아귀에서 버둥거렸다.

    얼른 자신을 내려주던가, 눈을 가린 손을 치우라는 듯 한 모습이었다.

    그 앙증맞은 저항에 루크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조금만 더 참게나. 거의 다 왔으니.”

    “…….”

     

    그럴거라면 애초에 아린세이아의 풍경을 묘사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분통을 터트리는 리브.

    그리고 한편으론, 대체 주인이 자신에게 무엇을 보여주려고 이토록 뜸을 들이나 궁금증도 들었다.

     

    그렇게 잠시 후.

     

    “자아, 이제 도착했네. 한번 주변을 둘러보게!”

     

    드디어 루크의 손이 리브의 눈에서 치워졌다.

    리브는 이내 자신의 시력기관인 인형 눈에 집중하며 주변의 사물을 차츰 분간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리브는 자신이 보게 된 광경에 경악했다.

     

    겨울의 첫눈과 같이 찬란히 빛나는 광택, 성벽마저 연상되는 강건함과 육중함, 그리고 조각과도 같은 화려함.

    그것은 분명 ‘리빙아머’였기 때문이다.

    “……!!”

     

    좌우로 늘어선 아세릴 갑주들을 보며 리브는 입가를 틀어막았다.

    루크는 그런 리브의 반응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떠냐? 저번에 음료를 팔아 번 돈으로 갑주를 고칠 재료를 좀 구했다. 지금은 상태가 좋은 4 기만 간신히 복원했지.”

     

    루크의 당당한 목소리에 리브는 루크를 가만히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마치, ‘어떻게?’라고 묻는 듯 하다.

     

    아린세이아의 이름을 딴 아세릴은 솜씨 좋은 대장장이만이 다룰 수 있다는 합성광물.

    일단 한번 완성이 되면 자신에게 닿는 충격을 흘리거나 분산시켜 결코 쉽게 파괴되지도, 변형되지도 않는 특성을 가졌다.

    그 뿐아니라 동시에 높은 마법 저항력도 지니기에 마법으로나 검으로나 파괴하기란 어려웠다.

     

    그렇기에 고장 난 갑옷을 고치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었다.

    웬만한 마법과 충격들은 닿는 즉시 튕겨내버리는 아세릴은 그것을 고치기 위한 마법사와 대장장이의 손길 역시 그렇게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 기억은 역천의 모래시계로 시간을 돌린 탓에 리브의 기억에는 없지만, 루크도 이미 완성돼 그 모습이 고정되어버린 리브의 아세릴 갑주는 부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지 않은가?

    이미 녹슬어버린 아세릴을 고치는 것 보다 새로 만드는 것이 더 쉽다는 이야기는 마냥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루크는 그저 뒷목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 요즘에는 만들어지는 녹 제거제가 꽤나 성능이 좋더구나. 정밀 세공기도 생각보다 더 성능이 좋았고…….”

    “……?”

     

    여러모로 현대의 문물이 너무 대단했다.

    하기사, 아무리 그래도 5000년 전에 인간이나 드워프의 손으로 만들어진 광물보단 현대의 압도적인 정밀가공방식이 훨씬 더 단단했다.

    광물을 녹이고 두드려 모양을 잡아 만드는 것 보다는 마나를 배열단위로 조작해 모양을 잡는 금속이 더 좋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적어도 야금술이라는 분야는 이제 과거의 인간은 도저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서, 사실 아세릴이 요즘엔 그렇게까지 엄청난 금속은 아니더구나. 다루기 까다로워서 잘 안 쓰일 뿐이지.”

     

    심지어 요즘은 인챈트도 그냥 하지 않고, 재료 단위에서 인챈트를 하고 엮어서 쌓아올리는 방식을 취하지 않던가?

    그리고 그런 걸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기술이 있는 시대이니…….

     

    새로운 걸 알아갈 때마다 놀라울 뿐이다.

     

    “…….”

     

    루크의 말을 들은 리브는 살짝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때 자신의 몸이었던 아세릴이라는 금속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던 리브다.

    헌데 지금은 아세릴도 그저그런 금속 중 하나가 되었다니……!

     

    “…….”

     

    그래도, 자신의 부하들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기분은 좋았다.

    리브는 루크의 품에서 빠져나와 깊은 추억에 잠긴 채 나열한 리빙아머들을 툭툭 건드려보았다.

     

    “……?”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혀 반응이 없다.

    리브가 의아함을 담아 루크를 바라보자, 루크는 해명하듯 말했다.

     

    “아, 사실 안 쪽은 다 못 고쳤다. 마석은 완전히 고칠 수 없을 정도로 고장이 나 있었거든. 그래서 지금은 단순히 명령한 작업만 할 수 있을 게야.”

    “…….”

     

    그러자 굉장히 실망했다는 듯 한 리브의 몸짓에, 루크는 허겁지겁 변명을 주워섬기기 시작했다.

     

    “그, 그렇게 보지 말거라. 나라고해도, 시간조작의 도움 없이 원소조작만으로 완전히 부서진 마석을 다시 고쳐내는 건 무리야. 그리고, 이미 한계까지 덮어씌워진 상태라 복원을 할 수도 없었고…….”

    “…….”

     

    변명에 실망한 듯 한 리브의 몸짓에, 루크는 리브의 곁에 앉아서 위로하듯 말을 이었다.

     

    “대신 내가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서 ‘역천의 모래시계’를 고치면, 리브 그대의 군단도 다시 온전히 만들 수 있을게다.”

    “…….”

     

    하지만 리브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갑주를 고쳤느냐는 질문이겠지.

     

    “지금은 여러가지로 필요해서 말이다.”

     

    리빙아머는 루크에게도 여러모로 쓸모가 있었다.

     

    단순히 밭을 가꾸기 위한 노동력으로도, 그리고 위험할 때 불러낼 수 있는 방호력으로도, 그리고 현재 자신에게 닥친 거대한 위협, ‘시가르마타’에 대응할 수 있는 전력으로도.

    특히 시가르마타는 서클로 압도할 수 없는 상대이니만큼, 이러한 전력이 있으면 루크도 조금은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최종적으로, 리빙아머의 군단은 리브 뿐 아니라 루크도 바라는 바였다.

    그런 이유로, 루크는 그들을 리브와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현실쪽과 연동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아린세이아의 갑주를 저 밖으로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가만, 리브와 같은 인형군단이라……?’

    오호라, 그것도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형을 방에 한가득 들여놓고 조수로 쓰면 연구의 능률도 상당히 좋아질 테고.

    케이트의 인격을 마무리하면서 같이 생각해보면 될 것 같다.

    그 순간, 거대한 울림이 천둥과도 같이 아린세이아의 하늘에서부터 터져나왔다.

     

    -둥–.

    -둥–.

    -둥–.

     

    엄청난 소음에 당황할 법도 하건만, 루크는 오히려 한숨을 쉬었다.

    이건 그리 당황할 만한 일은 아니니까.

     

    “또 예르나가 과일을 가져왔나보군.”

     

    저 세상이 늘어지는 듯한 거대한 울림 소리는 사실, 루크의 방문과 연동된 이 세계가 받아들이는 노크 소리였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시간배율을 뒤집어 놓았더니, 노크소리가 마치 커다란 종을 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얼른 나가보자꾸나.”

    “…….”

     

    리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가 ‘나는 군단이다.’라고하며 아공간을 열자 소드마스터 인형들이 쏟아져나오는 상상을 했어요.

    오… 개무섭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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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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