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98

        

         

       [ 내가 떡갈나무의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 산꼭대기에 닿을 때까지 살았는데도. ]

         

       요정은 한탄하듯 말했다.

         

       [ 너 같은 끔찍한 술꾼은 처음 보는구나! ]

         

       주름진 얼굴을 꾸깃꾸깃 구겨가며 요정을 푸념하듯 한숨을 푹 쉬더니 망치를 다시 허리춤에 찼다. 그리고는 적당한 곳에 털썩 주저앉고는 담뱃잎을 입 안에 집어넣으며 질겅질겅 씹으며 이제순을 바라보았다.

         

       [ 그래, 술꾼아. 끔찍한 술꾼아! 너를 보니 깊은 바닷속에 사는 어떤 늙은 메로우(Merrow)가 생각나는구나! 커다란 통 하나에 술을 가득 채워서 식사때마다 비우는 끔찍한 녀석이었지! ]

         

       아, 술에 취하면 신발을 안주로 삼는 통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겠구나!

         

       요정은 그렇게 말하며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너 인간의 아이야. 이름이 무엇이냐? ]

       “아, 제 이름은.”

         

       이제순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가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닫았다.

         

       『 요정에게 이름을 알려주지 마라. 』

       『 그것은 알려주면 요정은 그 이름을 좌표 삼아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

       『 그것이 크게 나쁜 것은 아니나, 그 대가는 적지 않을 것이다. 』

       『 그러니 소개할 때 최대한 돌려서 말하도록 하라. 중요한 것은 이름이니까. 』

       『 다만 절대 거짓을 말하지 말라. 』

       『 거짓을 말할 때마다 요정이 너에게 가지는 호감도가 깎여나갈 것이고, 그 끝에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

         

       종이에 적혀 있던 섬뜩한 경고문구가 그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게 막아버린 것이다.

         

       그는 천천히 입술을 움직여 이름 대신에 다른 것을 말했다.

         

       “저는 이씨 성을 쓰는 집의 둘째 아들입니다.”

       [ 오, 입에 착 달라붙지 않는 성이로군! 바닥에 굴러다니는 호두 껍데기에 사는 벌레가 그런 성을 가지고 있겠어! ]

       “제 고향은 돌과 철이 가득하지요. 사람도 많지만, 그리 정이 있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 돌과 철! 하-하-하! ]

         

       이제순은 서울 토박이였다.

       게다가 그가 태어났을 때는 한국이 꽤 발전해 있었던 터라, 개발이 안 된 곳은 없었다.

         

       즉, 그가 말한 돌과 철은 ‘콘크리트’와 ‘철근’을 뜻하는 것.

         

       도시에서 자랐다는 정보조차도 이제순은 돌려서 말한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어쨌든 도시는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것은 돌과 철이 아닌가?

         

       “저는 어릴 적에는 내장에 속을 꽉꽉 채워서 만든 음식을 참으로 좋아했었죠. 그것을 순대라고 하였는데, 그 때문에 저는 어릴 적 순대라고 불렸습니다.”

       [ 오, 그렇군? 그렇다면 나는 자네를 순대라고 부르겠네! ]

         

       요정은 순대라는 단어를 듣자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어릴 적의 별명이야말로 그 사람의 순수성을 반영하는 것이니까! ]

         

       태양이 어릴 적 가장 밝듯이.

       땅에서 막 솟구쳐 오른 새싹이 가장 부드럽듯이!

       어미의 배에서 막 나온 새끼가 야들야들하듯이!

       이름 역시 그러한 것!

         

       [ 자아, 순대. 순대, 순대! 우스꽝스러운 별명을 가진 먼 핏줄의 인간아? 그래, 이름도 알고 이야기도 나눴으니 너에게 선물을 하나 주고 싶구나! ]

       “오, 선물이라니. 너무 과분합니다!”

       [ 아니다. 너는 허구한 날 나에게 날을 세우며 돈이 있는 곳을 말하라며 윽박지르는 밀레시안(Milesian)과도, 연못에서 나와 칼을 주는 법밖에 모르는 이상한 요정을 섬기는 놈들과도 전혀 다르지. 너는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였고, 마땅히 올바른 대접을 하였다. 그러니 나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니! ]

         

       요정은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자기 목에 걸었다.

         

       가죽으로 만든 앞치마였다.

         

       일반적인 앞치마라기보다는, 장인이 작업을 하기 전에 착용하는 앞치마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 자아, 너는 목까지 금화를 가득 채워도 쉬이 얻을 수 없는 나의 솜씨를 맛보게 될 것이다! 무엇을 원하느냐?! ]

         

       요정은 흥겨운 듯 콧노래를 불렀다.

         

       부츠, 샌들, 구두!

       샌들의 밑창에 고양이의 발소리를 바르면 소리가 나지 않고!

       부츠에 게으른 인간의 생각을 박으면 바람보다도 빠르게 걸을 수 있지!

       구두의 밑창을 첫날밤을 마친 여인네의 치맛자락으로 만들면 여자에게 인기가 있을 것이고!

       시끄럽게 지저귀는 새의 부리를 비틀어서 신발로 만들면 엄청나게 시끄러울 거야!

         

       [ 틱택, 틱탭, 립탭! 말해라 말해! 어떤 구두를 원하나! ]

         

       이제순은 요정이 망치를 든 채 자신에게 노래를 부르며 재촉하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곤 머릿속에 그가 원하는 ‘구두’에 대해서 말했다.

         

       “수, 수다쟁이! 수다쟁이의 혀를 재료로 신발을 만들어 주십시오!”

       [ 오, 수다쟁이! 그것참 시끄럽겠다! ]

         

       요정은 이제순의 말에 씨익 웃었다.

         

       [ 신발에 왜 그런 것을 사용하나! 큰바다쇠오리의 부리를 두들기는 게 더 좋지 않을까! ]

       “아닙니다! 큰바다쇠오리는 시끄럽기는 하지만 말을 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 그럼 사슴의 큰 뿔을 두들기는 것은 어떨까? 숲에서 일어난 일을 너에게 말해줄 거야! ]

       “아닙니다. 숲에서 일어나는 일은 분명히 중요하나, 저는 사냥꾼이 아니지 않습니까?”

         

       꿀꺽.

         

       이제순은 정해진 대사를 읊었다.

         

       “저는 그저 술을 마실 때 말동무가 필요할 뿐입니다!”

       [ 하-하-하-! ]

         

       그 대답을 들은 요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 이 지독한 술꾼 같으니라고! 내가 졌다! 오래전 내가 직접 뿌리까지 뽑았던 수다쟁이의 혀로 신발을 만들어주겠다! ]

         

       이제순은 요정이 신발을 만들어주겠다고 하자 재빨리 몸을 숙여 신발을 벗었다. 그리곤 요정을 향해 그 신발을 던졌다.

         

       “디니 마하시여! 그 신발은 저의 훌륭한 동반자이고, 술을 먹을 때에는 훌륭한 술잔이 되어 주었습니다! 부디 그 신발에 수다쟁이의 혀를 넣어 제 술친구가 되게 해주십시오!”

       [ 뭐라? ]

       “기왕 술친구가 될 거라면, 오랫동안 같이 지낸 술친구가 낫지 않겠습니까!”

       [ 옳다! 그 말이 맞다! ]

         

       요정은 피식 웃으며 이제순의 말에 긍정했다.

         

       [ 좋아! 훌륭한 수다쟁이를 만들어주마! ]

         

       요정은 그렇게 말하고는 가죽 주머니에서 길쭉한 선홍빛의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막 사람에게 뽑아내기라도 한 듯 침으로 보이는 걸쭉한 액체에 절어 있었고, 무언가 말을 할 것이 있다는 듯 꿈틀대면서 뱀처럼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격렬한지 요정의 손아귀에서 금방이라도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볼품없어 보이는 요정의 손은 집게처럼 혀를 단단하게 잡았다.

         

       쿠웅!

         

       요정은 꿈틀거리는 혀를 향해 망치를 세게 내리쳤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말이다.

         

       그러자 계속해서 꿈틀거리던 혀는 기절하기라도 한 것처럼 축 늘어져 버렸고, 그렇게 늘어진 상태에서 망치에 두들겨지며 얇은 종이처럼 되었다.

         

       요정은 얇게 변한 혀를 신발의 안쪽에 덧대더니 바늘과 실, 망치를 이용해 혀와 신발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작업을 한 것일까?

         

       밤하늘이 가장 어두워졌을 때.

         

       요정의 작업이 끝을 맺었다.

         

       [ 자아, 순대라는 우스꽝스러운 별명을 가진 인간아! 여기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받아라! ]

         

       요정은 땀을 훔치며 신발을 이제순을 향해 집어 던졌다.

       요정이 집어던진 신발은 아무런 제지 없이 허공을 날아 그대로 원 안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떨어진 신발은 아프다는 듯 한 번 꿈틀거렸다.

         

       [ 끌끌, 오늘도 즐겁게 일했구나! 비록 금화는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먼 핏줄의 녀석에게 선물을 줬으니, 이거 참 잠을 자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겠어! ]

         

       요정은 그것을 보고는 흐뭇하게 웃었다.

         

       [ 자, 잘 구워진 팬케이크가 데굴데굴 구르며 인사를 할 때! 도토리가 쩍 갈라지며 기다란 강의 물을 한 번에 빨아들일 때! 머지않을 때에 만나자꾸나! ]

         

       요정은 이제 자신의 볼일이 끝났다는 듯 그대로 몸을 돌려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그는 어둠에 녹아들기 전 이상한 인사를 남겼고….

         

       그렇게 기이했던 만남은 끝을 맺었다.

         

       “아.”

         

       요정이 사라진다.

       해가 뜨기 전 가장 어두웠던 어둠이 걷히고 있다.

       저 멀리에서 흐릿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고, 어둠의 농도가 옅어져 간다.

         

       그리고 마침내 깊은 골짜기의 틈 사이에서 발간 해가 사뿐하게 떠올랐을 때.

         

       그때 이제순은 실감했다.

         

       “흐, 성공했어.”

         

       자신이 주술에 성공했음을.

       성공적으로 주술을 마치고, 요정에게 ‘선물’을 받았음을 말이다.

         

       털썩.

         

       그는 긴장이 탁 풀리자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실성한 사람처럼 흐흐, 하는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를 흘리며 자신의 옆에 던져져 있는 신발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온갖 고생을 하며 만들어낸 주물(呪物).

       그리고 자신을 성공의 길로 이끌어줄 보물.

         

       이제순은 몸을 끌다시피 움직여 신발까지 다가갔다.

       그리곤 신발을 알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자신의 품에 안았다.

         

       『 의식이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다면 주물이 완성되었을 것이다. 』

       『 주물의 성능은 크게 대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네가 원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말할 것이로다. 』

       『 다만 그것은 영원한 것은 아닌바, 말을 하면 할수록 신발이 해질 것이며, 종국에는 말을 할 수 없게 되리라. 』

       『 거기서 만족할 것인지. 』

       『 한 발자국 더 나아갈 것인지는 오직 자신의 선택에 달렸음이로다. 』

         

       그는 종이의 하단부에 적혀 있던 내용을 떠올리며 웃었다.

         

       “흐흐, 흐흐흐.”

         

       크게 대단하지 않을 거라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기자는 기사로 쓸 정보만 있으면 된다.

         

       세상의 온갖 비밀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이제 난, 난.”

         

       그는 눈을 빛내며 웃었다.

         

       “나는 이제 무적이다…!”

         

         

         

         

        * * *

         

         

         

       『 주술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

       『 다만 이번에는 인과가 나에게 이어져 있는바. 』

       『 너에게 가는 대가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니라. 』

       『 다만 그 이후부터는 오직 너의 선택에 따른 것이니. 』

       『 온전히 그 대가를 감당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

       …

       …

       『 나는 종이에는 올바른 것을 적었다. 』

       『 다만 종이에 바르지 않은 것이 적힐 수도 있으니. 』

       『 만약 모순되는 항목이 있었다면. 』

         

       『 행운을 빌겠다. 』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