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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8

        

         경매 회사, 수수료 장사를 하는 경매사라고 모든 종류의 물건을 무엇이든 다 대리 판매를 위탁 받는 건 아니다.

         

         처음부터 원칙적으로 수령하지 않는 종류의 상품도 있을 것이고, 자사의 품위 유지를 위해 반려하는 물건도, 보유한 전문 감정사의 여건이나 분야에 따라 가품의 판별이 어려워 거절하는 경우도 당연히 존재하지 않겠나?

         

         전쟁 이전 시대를 기준으로 잡아도, 거의 300년에 달하는 전통과 역사를 지녔던 세계 유명 경매사인 S사와 C사 모두, 경영난을 겪고 부동산과 금융 서비스 쪽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전까지는 미술품, 골동품 등에 특화된 영업 방식을 자랑했다.

         

         이제 고급화된 경매 이벤트로 최상류층을 위한 파티 비슷한 걸 개최하는 포지션이기도 했고….

         또 신뢰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너무 품위가 떨어져서 정작 귀한 예술품을 보유하고, 그걸 구매할 재력이 있는 손님들이 방문하는 걸 꺼려하게 되면 정말 큰일나는 거였으니까.

         

         따라서 자선 행사든, 아니면 엄선된 예약자만 받는 클로즈드 이벤트든지 간에. 회사 측에서 미리미리 참석자들의 양해를 구할 겸 입장 가능한 드레스코드를 공지하는 일이 종종 있었으니.

         

         지금 하하호호 떠들며 나들이 나온 남들과는 달리, 혹시 모를 교전 사태를 상정하고 바짝 기합이 들어간 아나스타샤 일행이 향하는 와중인 크라이테리아 옥션 하우스(Criteria auction house)의 저녁 경매도 그중 하나였다.

         

         이유 불문 보편적으로 ‘너무 편한’ 복장이라 인식되는 차림새는 NG(no good).

         관능적인 스타일과 노출은 허용되지만 성행위(…)가 즉석에서 가능한 수준이라면 공개된 장소에서 외투 착용은 필수.

         

         패션에 있어서 어디까지나 기발한 사이버펑크스러운 해석이나 감성이 포함되는 건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용납되어도, 자신을 남성이라 여기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수트, 여성이라면 화려한 드레스 착용이 기본 매너였고.

         

         뭐, 그 외 지칭하는데 여러가지 접두사와 수식어가 뒤섞이는 복잡한 성별은… 그날 본인의 해석에 따라 알아서.

         

         이 정도가 크라이테리아 경매사 측에서 제시한 ‘기본 규칙’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저녁 경매에 예약한 손님과 동행하는 파트너에게 제시된 가이드라인.  자연스럽게 참석은 허용하되, 이것과 다른 규범을 따르는 예외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어머나…?”

         

         인맥을 쌓고 안면을 넓힌다.

         삶이란 건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누군가와 마주치게 될지, 일신의 미래를 위해 싫더라도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법이니 아군을 만드는 걸 게을리하지 말라.

         

         …그게 정 어렵다면 적이라도 만들지 말던가.

         

         하여간 그런 의미에서 힘주고 다니는 정력적인 사교 활동도 최대 한두 시간이지, 경매 시작 전에 일찍 와도 너무 일찍 온 탓에 사람에 치여 진이 다 빠져 외부 발코니로 나온 부호富豪.

         

         에멜다 여사의 눈에 의전용 리무진과 그걸 뒤따르는 화물 트럭이 경매장 앞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리무진에 따로 박힌 로고나 새겨진 마크가 없으니 어느 기업에서 온 건 아니고…. 아, 오히려 트럭 쪽에 알아볼 도장이 칠해져 있었다.

         은행 대출이 막히거나, 떳떳하지 못한 용도로 쓸 긴급 수혈용 자금이 필요한 상공인이나 중소기업들의 최후의 보루로 명망 높은 요크셔 캐피탈이다.

         

         분명… 세간에 드높은 악명에 비해 꼬장꼬장하지만, 수다 좋아하는 성격으로도 이름이 나오는 알프레드 영감이 일궈낸 사업체였던가?

         

         말이 많은 게 싫어서 인간적으로 기피 당한다면 모를까, 사실 그녀의 눈에는 종목을 고르는 개인 투자자보다도 파라다이스에 견제 받으며 정식으로 대금업을 운영하는 노인이 더 대단해 보였는데 말이다.

         

         ‘돈놀이는 천박하다.’

         

         계좌로 들어온 크레딧에 영구히 남을 출처가 찍히는 것도 아닐진대, 웃기는 고정 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나 이런 류의 행사에서 만나는 인간들은 대부분 사채로 흥한 그를 깎아내리는 걸로 알량한 자존심을 채우는 경우가 많아, 따로 약속을 잡는 게 아닌 이상 만나기 어려운 인물인데… 웬일로 나온 걸까…?

         

         “……후우우.”

         

         입에 물고 있던 가늘고 기다란 담뱃대(Smoking pipe)를 떼어, 시야를 가리지 않게 저 위편으로 폐부에 차 있던 연기를 다 뿜어낸 에멜다가 아예 상반신을 난간밖으로 내민 채 본격적으로 정문 근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제 또 안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체면이나 허례허식에 맞춰주느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기 애매해질 수도 있으니까. 그냥 아예 이 참에 일방적으로 구경이나 실컷 해두려고.

         

         “어이! 밑부분 씨발 조심하고!”

         “엉? 내가 들어서 아는데, 요거 존나 비싼 내충격 금고라 어디 조금 부딪히는 걸로는 절대 고장 안 날 텐데?”

         “…그러다 바퀴가 작살나면 우리가 이걸 들어서 옮겨야 하는 건 알지? 모양 빠지게, 사장님 앞에서 보디가드 아가씨들에게 네가 빌빌 기겠다면 난 굳이 안 말린다. 자, 하나, 둘…… 셋!”

         

         덜컹, 덜커덩…! 쿵!!

         

         내려진 경사 레일에 겨우 태워, 트럭 뒤편에서 수행하는 캐피탈 직원들이 무슨 전차 마냥 궤도가 달린 이동형 금고를 끌어내렸다.

         

         아하, 그도 그렇다.

         오직 순수하게 참석자가 아니라, 경매에 내놓을 물건이 있기에 출품자 자격도 겸해서 나왔다고 하면 좀 더 이야기의 앞뒤가 매끄럽게 맞지 않겠나.

         

         그럼 평소에 카지노를 전전하는 것 말고는 딱히 취미도 없다던 알프레드 노인의 용건도 얼추 알았겠다. 느긋하게 당사자의 모습이나 구경하려고 했는데.

         

         “혹시… 최근 벌이가 정말 괜찮으셨나?”

         

         리무진 문이 열리자 그녀는 외려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만한 게, 사람보다 먼저 내리는 경호용 로봇이 한 대… 두 대…. 아무튼 초-과적 상태가 풀려 전체적으로 지면 근처까지 내려가 있던 차체가 상승할 만큼 우르르 하차했으니까.

         

         더군다나 거기서 끝난 게 아니오, 뒤이어서 내린 여성 두명은 급하게 마중 나오던 경매장 측 안내 직원들도 잠깐이나마 본분을 잊은 채 얼어붙게 만들었으니.

         

         “……조금만 더 하늘하늘하게 입었어도 아무도 뭐라 안 했을 텐데.”

         “내가 절대 싫다니까, 내가…!”

         

         대비되는 흑과 백, 서로가 서로에게 업무상 긴히 할 말이 있는듯, 뭔가를 소곤거리는. 아담한 소녀와 늘씬한 미녀.

         

         조금 화난 느낌이 강한 무표정 계열과, 어딘가 아쉬워 보이는 기색이 역력한 쿨계 여자의 조합에 저절로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 들었다. 

       

       

        

       

       

         

         얼굴과 목 이외의 신체 노출이라고는 일절 찾아볼 수 없음에도 본능이 자극되어 아랫배 근처가 뜨거워진다 할지, 혹은 오히려 신체를 가림으로서 깊이 상상하게 만드는 미학을 체현했다고 할까.

         

         감히 전신에 밀착했다 표현해도 될 만큼 타이트한 검은 정장 차림새로, 각자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수려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낸 미녀 보디가드들은 에스코트를 기다린 채 차량 안에 있던 미스터 알프레드를 모셨는데.

         

         여기서 또 포인트를 한 번 더 강조한 게 느껴지는 순백의 정장과 윤기나는 지팡이, 수염까지 위쪽으로 말아 올려서 정돈한 노인이 나타나자 ‘정말 작정하고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 건 비단 에멜다만이 아니라 구경하던 모두의 공통된 견해일 것이다.

         

         “크하핫…! 이거 영 천장이 낮아서 허리가 뻐근하구먼!”

         

         얼빠진 주변의 반응이 재밌다.

         어쩌다 보니 미녀 용병들만 모셨겠다 아예 힘을 빡 준 준비를 하고 나온 보람이 느껴지리만치, 딱 자신이 원하던 그림이 연출된 것 같아서 호탕하게 웃은 그가 어깨를 풀었다.

         

         이러면 뒤에서 졸부 소리는 들을지언정, 면전에다가 대놓고 궁시렁거릴 놈은 없으리라.

         

         그래도 굳이 만약 나타난다면… 아마 그 인간이 자기 물건에 유달리 관심이 많던 누군가라고 여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상당히 희희낙락한 감상을 품은 채로.

         

         

         

         ★ ☆ ★ ☆ ★

         

         

         

         “아, 진짜. 아.”

         

         안절부절 못하는 양손이 자꾸만 허벅지와… 허리춤과… 가슴팍 근처를 어색하게 매만지게 된다.

         

         방금 막 신체 측정을 해서 맞추고 온 옷이 그새 증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유난을 떠는 건 더럽게 이상하겠으나 나로선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다.

         

         수행인 경험이 부족해 익숙하게 행동하지는 못하더라도, 가급적 자연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는 게 얕보이는 걸 방지한다는 것쯤은 머리로 알고 있건만.

         

         막상 그걸 실천하는 건… 조금 다른 얘기였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헬레나가 제시한 건 하늘하늘한 파티드레스, 못해도 치마는 필수 옵션으로 포함해야한다였고.

         그에 반해 나는 우리가 경호원의 입장인만큼, 한 눈에 봤을 때 신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라도 만약 갈아입어야 한다면 그녀와 나 모두 제대로 된 수트로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뢰인 앞에서 이런 걸 가지고 목청을 높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난 무조건 내 고집이 통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 여성용 정장이라는 단어가 나를 덮치기 전까지는.

         

         그런 개념이 있는 건 알았다. 당연히 알았지. 근데 그건 진짜 정장이라기보단 이제 영락없이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이 입는 단정하고 포멀한 차림새를 뭉뚱그려 지칭하는 표현이라고만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어라? 진짜 그런 상품군이 있네요? 아하하하하.

         

         사이즈를 따로 재야하긴 해도 정장이면 다 같은 정장이지 뭐 다를 게 없을 줄 알았거늘, 여자와 남자는 태생적으로 골격부터 달라서 접히는 부분도 그리는 라인도 어마어마하게 차이나는 무언가를 꼼짝없이 맞추게 되었다.

         

         공짜 옷…이라고 생각하면 나쁜 건 아니지만 의복을 걸치고 있다는 느낌이 희미할 정도로 핏이 딱딱 맞으니까 되려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이거, 절대 아닌 거 같아. 근본적으로 많은 게 틀려먹었다고.

         

         당장 드레스코드 검사를 통과하고 안에 들어가자마자 외투를 걸치게 해주던가, 그게 안 된다면 나는 화장실에 숨어서 제로만 원격 조종할 수밖에 없어…!!

         

         “그래도 잘 어울려서 다행이야. 조금 부끄럽더라도 나한테 신체 측정을 꼼꼼히 받길 잘 한 것 같지? 응??”

         

         “헬레나 언니, 제발…. 우리 그 얘기는 영원히 어둠 속에 묻어두는 걸로 하면 안 될까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 또 코스프레 당한 썰 푼다.

    엄청 지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비록 가내수공업 일러스트지만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해서, ‘이건 예시를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오랜만에 이것저것 켰는데.

    밑에 타이트한 정장 바지 부분도 그렇고 너무 잘 뽑혔는데 시발 포토샵으로 잘 뽑힌 거 두 개 퓨전 시키다가 말아먹은 게 진짜 말인지 방구인지;;
    덕분에 시간 망하고, 유튜브로 강좌 다시 보면서 공부하다가 이렇게 늦어버렸습니다….

    추후에 가능하면 엄청난 성숙미(?)를 자랑하는 일러스트 대신 좀 더 로어 프렌들리한 삽화로 교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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