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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8

     카르멘 왕비가 거짓된 황금을 먹고, 그로인해 몸 속에서 폭발이 일어나 죽기 일보 직전까지 몰렸다.

     

     이에 대하여, 아버지의 책임이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법적인 책임은 어디에도 없다.

     과거의 환상 때문에 나에게 자기가 12번째 부인이라고 달려들었던 이가 내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죽음으로 관심을 끌겠다고 하여, 거기에 대해서 내가 책임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버지의 경우는 조금 복잡하다.

     

     카르멘 왕비가 자신을 사랑했던 것도 있기도 하지만, 결국 그 사랑을 배신하고 어머니만을 택했던 건 분명 아버지의 선택이었다.

     그 선택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자신을 잊지 못하고 사랑하고 있으며, 그 사랑이 이루어진 환상을 좇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나름대로 고심하게 되었겠지.

     ‘변하셨네.’

     예전 같았다면 카르멘 왕비가 그런 일로 쓰러졌다고 한들,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도우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여인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아아.

     자신의 마력을 직접 카르멘 왕비의 몸 속으로 밀어넣어, 카르멘 왕비의 몸에 활력을 불어넣거나 하는 그런 행동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험하다.

     말려야 한다.

     마나를 건네준다는 것은 그만큼 약해진다는 것이며, 안 그래도 회귀 전보다 강했던 그 아버지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해진 아버지가 더 약해지고 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사사로운 정을 떼어놓아야 한다.

     

     황제의 목소리가 겹친다.

     강해지기 위해 죽은 이들의 시신을 백은으로 만들어 그 마나를 긁어모았던 이가 내뱉는 속삭임이 흘러들어온다.

     그는 지금도 분명 그렇게 강해지고 있겠지.

     아버지가 카르멘 왕비에게 마나를 불어넣는 걸로 약해진다고 하여, 그걸 막으려고 할 위인도 아니다.

     막으려고 한다면 이 자리에는 오직 나 한 사람 뿐.

     ‘막아야 하나?’

     카르멘 왕비는 아직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법사들이 응급조치로 상처를 마법으로 치료했다고 해도,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은 바람에 혼수상태에 빠져있다.

     백은에 중독된 이들 중에는 갑작스러운 쇼크로 인해 숨은 쉬지만 영혼이 나간 것처럼 살아가는 이들도 존재했다.

     제국에서는 그들을 두고 ‘식물인간’이라고 불렀고, 카르멘 왕비도 지금 그 상태와 다를 바가 없다.

     애시당초, 거짓된 황금에 빠져있던 건 카르멘 왕비다.

     그러니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카르멘.”

     아버지가 남은 손으로 카르멘 왕비의 손을 잡는다.

     “미안하오.”

     아버지의 진지한 사과에 나는 뻗어나가려던 손이 저절로 멈췄다.

     

     ‘나도 정신이 나갔군.’

     거짓된 황금이 보여준 세상.

     아버지와 카르멘 왕비가 부부가 되고, 나는 카르멘 왕비로부터 태어나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던 세상.

     그 세상이 겹쳐보인 걸까, 아니면 그 세상을 보고왔기 때문에 말릴 수 없는 걸까.

     그저 이용하기 위해 정치적 어머니라고 불렀던 때와 달리, 지금은 그 환상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완전한 타인이라고 보기 어려워진다.

     내가 이런데, 과거에 연인 관계였던 아버지라면 더더욱 생각이 깊어지겠지.

     설령 아버지가 자신의 마나를 불어넣는 걸로 아버지가 조금은 약해진다고 하더라도, 아버지의 행동에는 후회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나을지도 몰라.’

     카르멘 왕비가 죽거나 식물인간이 되어 영영 깨어나지 않게 되었을 때, 아버지가 그로 인해 흔들리거나 다른 이들이 악영향을 받는다면 그게 오히려 손해일 수 있다.

     무엇보다, 나라는 인간 개인에게 있어서도 그렇다.

     무능왕에게 당한 이들 다들 그렇겠지만, 적어도 카르멘 왕비는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사아아.

     아버지의 오러가 카르멘 왕비의 몸 속으로 들어가기를 한참.

     “……쿨럭.”

     카르멘 왕비가 기침을 토해냈다.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흘러나왔고, 그 사이에 황금으로 반짝이는 액체가 함께 흘러나와 베개를 적셨다.

     

     “…백작, 님…?”

     

     카르멘 왕비는 아버지를 보며 백작이라고 불렀다.

     몽롱한 가운데, 카르멘 왕비는 힘겨운 얼굴로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저…꿈을…꿨어요. 백작님이 제가 아닌, 쿨럭, 셜롯만을 아내로 삼고…저는 세인트와 결혼하는 그런….”

     “…카르멘.”

     “제 아들 그레이가, 흐끅, 아들이 아니게 되고, 아아….”

     “카르멘.”

     “…아.”

     카르멘 왕비가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서서히 흐려져있던 눈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꿈이, 었군요.”

     “…….”

     “…….”

     카르멘 왕비는 눈을 감았다.

     입에 가득한 핏기 때문에 현실의 고통이 서서히 자신을 일깨우기 시작했을 것이며, 점차 환상 속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깨닫는 중이리라.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지브롤터 후작.”

     그리고 그녀는 곧 정신을 되찾았다.

     “저는….”

     “쉬시오. 그리고 이후의 일은 나와 그레이에게 맡기고, 푹 쉬시오. 이 말이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카르멘 왕비를 향해 뭔가를 속삭였다.

     내게도 들리지 않게 입모양으로 뭔가를 말하자, 카르멘 왕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안심하고 쉴 수 있….”

     털썩.

     카르멘 왕비가 눈을 감았다.

     아버지는 한참이나 카르멘 왕비의 손을 잡은 채 가만히 있었다.

     “…….”

     나는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한참을 옆에서 지켜야만 했다.

     * * *

     잠시 뒤, 아버지와 나는 캐롤라인 성에 있는 서재로 향했다.

     한 가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카르멘 왕비.

     “그레이.”

     “예, 아버지.”

     사망.

     “이건 고인모독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인격모독이라고 해야?”

     “민심을 달래기 위한 일시적인 행보일 뿐입니다, 아버지.”

     하지 않았다.

     카르멘 왕비는 아버지의 마나 덕분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물론 체력적인 문제로 인해 다시 깊은 잠에 빠졌지만, 적어도 죽지는 않았다.

     “죽은 줄 알고 애도를 하고 장례식까지 열었는데, 황금룡의 기적 덕분에 되살아났다. 이 얼마나 영웅적인 서사란 말입니까?”

     “그래. 딸의 여왕 등극에 맞춰 깨어난 것이다?”

     “예. 그리고 지금 당장 장례식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요.”

     우리는 모두 검은색 정장과 검은 넥타이를 매었으나, 그건 카르멘 왕비의 죽음을 애도하는 게 아니다.

     “아버지. 우리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이렇게 옷을 입은 겁니다. 카르멘 왕비가 아직 공식적으로는 일어나지 못했지만, 공식적으로 죽었다고 발표된 것도 아니죠.”

     “사람들은 멋대로 오해하겠지. 카르멘이 죽었다고.”

     “그건 오해입니다. 왕국이든 지브롤터든, 공식적인 발표로는 카르멘 왕비가 죽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에 준하는 애도를 표할 뿐.”

     거짓된 황금을 먹은 바람에 희생된 수백 명의 왕도 백성들을 향한 애도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더 죽어나갈 이들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다.

     “아버지. 엄숙한 죽음을 애도하는 가운데, 장례식장을 습격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건 어떤 자들입니까?”

     “인간 이하의 자들이거나, 그래야만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이들이지.”

     

     아버지가 서재에 있는 노스트럼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지브롤터 영지로 백성들이 들이닥칠 거다. 자기 뱃속에 있는 거짓된 황금을 없애달라고 한다거나,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명령을 들어야만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올 것이야.”

     “일주일만 막으면 됩니다. 기절시키고 묶어놓든, 땅에 파묻어버리든.”

     “그러다가 진짜로 죽으면?”

     “죽으면 죽는 거죠. 금목걸이와 팔찌는 내던지면 그만이지만, 몸 속에 들어간 건 저희도 어떻게 할 수 없…지는 않지만.”

     “……무리다.”

     아버지가 조금은 피로한 얼굴로 캐롤라인을 들이켰다.

     “카르멘이니까 한 거지, 이런 거 다시는 못 해. 심지어 수천 수만 명에 이른다면 더더욱.”

     “그러니 더욱더 기다려야죠. 나리아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나눠봐야 할 것 같은데.”

     아버지가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정말 그것만으로 충분한 게 맞느냐?”

     “예.”

     “고작해야 의식일 뿐이다. 이 검도 가보로 내려오는 것이지만, 중간에 녹이 슬 때마다 새롭게 바꿨던 검이야.”

     “따로 마법이 걸린 건 아니란다.”

     “마법이 걸린 건 저희의 이거죠.”

     나는 내 심장을 가리켰다.

     “지브롤터의 피. 그리고 노스트럼의 피. 장소.”

     “노스트럼 국왕의 대관식은 왕도에서 이루어졌지, 지브롤터에서 열린 건 아니다.”

     “그건 태평성대에서 일어나는 선양일 때의 이야기죠. 지금은 경우가 다르지 않습니까. 협곡에 잠들어있는 골드드래곤도 의식을 듣고 바로 권능을 거두어들일 것입니다.”

     아버지가 조금은 미심쩍은 얼굴로 서재의 가운데에 놓인 황금의 원판을 가리켰다.

     “정말로 협곡에서 내가 나리아를 여왕으로 인정한다는 의식만 치르면 된다는 말이더냐? 이 원판…에서?”

     “노스트럼의 기적을 믿어보는 겁니다.”

     “너답지 않구나. 불확실한 상황에 의존해야 한다니.”

     “불확실한 건 아닙니다. 모든 정보를 합하여 추론한 결과, 99%의 가능성으로 생각대로 될 거라는 것 뿐이죠.”

     “1%의 오차는?”

     “지브롤터가 새로이 왕으로 모시는 이가 있는데도, 그 권능이 그저 노스트럼의 피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세인트 지오가 계속 가지고 있을 경우.”

     나는 품에서 100골드 금화를 꺼낸 다음, 손으로 가볍게 구겼다.

     “그 때는 노스트럼을 멸망시킵니다. 노스트럼이 아닌 ‘나리아 왕국’이 되겠네요.”

     “지브롤터 왕국이 아니라?”

     “왕, 귀찮으시다면서요?”

     “…….”

     “아. 혹시 카르멘 왕비 때문이십니까? 왕위를 찬탈하고 왕이 된다면 카르멘 왕비를 받아들이거나 그럴 수 있으니까? 그런 거라면 뭐….”

     “아니, 그런 건 아니다.”

     아버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네가 왕이 될 거라고 생각했단다.”

     “제가요?”

     “제국이 인정하는 지브롤터 공왕.”

     “…….”

     아버지의 말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아스타시아와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거지, 그런 권력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냐.”

     “예. 그러니, 준비를 하시죠.”

     “준비?”

     “예.”

     나는 검은 넥타이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튕겼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을 없앨 무대를.”

     * * *

     제국력 99년 12월 31일, 새벽 4시 57분.

     쏴아아.

     하늘에서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한겨울이라 세상은 어둡기만 하고, 지상에는 어두운 새벽에도 땅을 달리며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기사들로 분주했다.

     빛이 있다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무언가-비행선이 주기적으로 뿜어내는 빛 뿐.

     “후우.”

     비행선의 위에 우산을 쓰고 선 검은 정장의 사내,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제국의 황제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죽거렸다.

     “자신들을 살려주고자 하는 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저 제 목숨이 위험하니 죽어달라고 애원하러 오는 무지렁이들.”

     지상.

     어둠을 틈타, 무언가가 들짐승처럼 땅을 달린다.

     황제는 비행선의 장치를 조작해 발광마석의 방향을 그림자로 향해 비췄다.

     파ㅡ앗.

     빛이 나아간 닿은 곳에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왕도 톨레도에서 온 백성들-노스트럼의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이 갑작스러운 빛에 손으로 눈을 가렸고, 곧 그들을 향해 다급하게 기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갔다.

     “왕국의 왕비마저도 무능왕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꿈 속 세상에서도 본 것처럼, 지브롤터는 제국을 상대로 하는 적으로서 끝까지 왕국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었다.”

     황제의 혼잣말에 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 지브롤터를 상대로 죽음을 강요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자신만은 살려달라고 저렇게 빌붙으러 오는 자들을 정녕 백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

     황제의 뒤로 수많은 그림자들이 있었으나, 황제는 그들에게 말한 것이 아니기에.

     “프란츠.”

     “예, 폐하.”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유일한 노스트럼의 왕에 즉위하는 즉시 황궁으로 돌아간다.”

     황제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누가 황제가 되든, 우리의 미래에 저 벌레들은 필요없으니. 벌레의 왕이 죽는 즉시, 벌레를 전부 소탕하겠다.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들을 치워버리는 것이야말로, 아버지로서 할 일이지. 후후후.”

     “…폐하. 그레이 지브롤터에 관하여,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무엇이냐?”

     “그레이 지브롤터가 그…노스트럼의 기적을 다루는 자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하.”

     황제는 프란츠의 질문에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나의 계획은 한 가지 전제를 두고 움직인다. 그레이 지브롤터가 벌레의 왕을 죽일 거라는 것.”

     “…….”

     “만일 그레이가 실패한다면….”

     “실망하시는 겁니까?”

     “아니.”

     황제가 뭘 당연할 걸 묻냐는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 쓰레기같은 노스트럼, 황금룡의 기적 덕분에 실패한 것일 터. 그레이가 실패한다면, 그건 내가 나서도 실패한다는 말과 같다.”

     “…….”

     “그리고 나는 믿는다.”

     

     휘이잉.

     “500년 노스트럼의 역사에 내려오는 기적이라는 이름의 폐단.”

     바람이 부는 순간, 황제가 우산을 놓으며 두 팔을 벌렸다.

     “그레이 지브롤터라면, 분명 그 기적을 이겨내고 인간의 시대를 열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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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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