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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8

   제블람의 일을 마치고, 크라슈가 눈을 뜬 시점은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은 후였다.

   크라슈의 육체가 용왕족으로 바뀌고 난 뒤 자체 회복률이 워낙 올라간 덕분이었다.

     

   거기에 크라슈는 성녀, 아스트리아에게 뜻밖의 말을 들었다.

     

   “당신, 몸이 어떻게 된 거야? 원래도 저주 같은 힘을 쓰고 있다는 건 알았는데. 이제는 진짜 그 힘 자체가 됐잖아.”

     

   자칫하면 치료가 안될 뻔했다는 것.

     

   신성력은 세계 침식의 힘과 반하는 힘 중 하나다.

   그러니 아스트리아가 치료하려 한다면 오히려 크라슈를 좀 먹게 되는 상황에 부닥쳤다.

     

   용왕족이 된 부작용이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의외의 일 덕분에 해결되고 말았다.

     

   바로 바이오렌의 특성 기문 덕분이었다.

     

   세계 침식의 힘과 아우라조차 서로가 어우러지는 진귀한 특성.

   이 특성 덕분에 세계 침식의 힘은 아스트리아의 신성력도 거절 없이 잘 받아들였다.

     

   ‘바이오렌에게 받아내지 못했으면 앞으로 아스트리아의 치료는 받지 못할 뻔했다는 소리인가.’

     

   여러모로 섬찟한 이야기였다.

   크라슈의 무대포는 아스트리아의 치료라는 전제가 있었기에 나올 수 있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아스트리아의 치료받지 못하게 됐을 때를 떠올린 크라슈는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여러모로 잘 맞물렸군.’

     

   이건 정말로 순전히 운이 좋았다.

     

   ‘앞으로 부작용을 아예 생각 안 해두고 움직여서는 안 되겠어.’

     

   최소한 치료는 받을 수 있는 몸이 여야지.

   크라슈는 그리 생각하며 병실의 문을 열던 참이었다.

     

   “오, 크라슈!”

     

   병실 문을 열자 보인 것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진한 피부색과 옷 사이로 보이는 문신.

   거기에 크라슈가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거대한 체구.

     

   프레아의 아이, 아르숄더 프레아.

     

   그가 그곳에 있었다.

   크라슈는 그를 마주하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애들이야 크라슈가 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다지만.

   아르숄더가 찾아온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르숄더,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냐?”

     

   크라슈가 의문스럽게 물은 순간 아르숄더가 대뜸 씨익 웃었다.

     

   “당연히 볼 일 있지! 날 사자단에 넣어줘라.”

     

   다음 말을 듣고, 크라슈의 눈에 의아함이 서렸다.

   그도 그럴 게 아르숄더가 어느 학생단에 들어가 있는지 크라슈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백양단은 어쩌고?”

   “아, 백양단.”

     

   그는 말도 말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백양단은 이제 곧 해체돼.”

     

   그리고 이어진 말은 크라슈를 멈칫하게 했다.

     

   “백양단이 해체된다니?”

   “시그린이 아카데미를 떴거든.”

     

   다음 말도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시그린이 라헬른 아카데미를 떠났다.

   그 말은 즉.

     

   “시그린이 자퇴했다는 거냐?”

   “그런 셈이지.”

     

   이건 또 정말 생각도 못 한 변수였다.

     

   시그린이 자퇴라니.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자퇴라는 강수까지 놓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시그린에게 라헬른 아카데미는 아서와의 연결점이니까.

     

   이 말은 즉, 시그린은 아서를 완전히 포기했다는 말이 된다.

     

   ‘결국 무너졌나.’

     

   크라슈로서는 마냥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시그린이 무너졌다는 것은 곧 그녀가 지닌 검황의 비기를 훔쳐 올 수 있다는 소리니까.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시그린 녀석, 자퇴하고 나서 어디로 갔는지 알아?”

   “제국으로 갔다던데.”

     

   크라슈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역시나 결국 그녀가 도피처로 선택할 곳은 제국밖에 없었다.

     

   ‘제국에서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지금의 시그린은 정상인 상태가 아니다.

   분명히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제국으로 넘어갔을 터.

     

   ‘황제가 병을 완치하고, 살아 있는 만큼 예전처럼 제멋대로 굴지도 못할 텐데.’

     

   하물며 라헬른 아카데미를 졸업조차 하지 못하고 돌아온 황녀에게 제국이 따사로울 리가 없었다.

   이건 사실상 시그린의 독단 행동이라 봐도 무방했으니까.

     

   ‘문제는 아서를 황제 자리까지 올렸던 시그린이니 제국의 사정에 관해 깊숙이 알 거란 건데.’

     

   크라슈마저도 제국의 비밀 몇 가지가 터진다면 제국이 흔들릴 거란 걸 안다.

   시그린이라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겠지.

     

   ‘쯧, 가뜩이나 바빠지고 있는데.’

     

   아벨라도 그렇고, 시그린도 그렇고 아주 여기저기서 사고를 터트린다.

     

   “알려줘서 고맙다. 사자단 건은 샬롯 누님한테 물어봐. 단장은 샬롯 누님이니까.”

   “샬롯한테 물으니 너한테 허락받고 오라던데?”

     

   벌써 샬롯을 만나고 왔나.

     

   샬롯의 성격상 상대하기 귀찮으니 냉큼 넘긴 거겠지.

     

   “그리고 샬롯이 전하라더라. 직접 찾아가기 전에 얼굴이나 좀 비치라고.”

     

   다음 말에서 크라슈는 오싹함을 느꼈다.

   이만큼이나 성장한 크라슈지만 샬롯의 말은 여전히 섣부르게 넘길 수가 없었다.

     

   “허락했다고 전해줄게.”

   “오, 고맙다! 그럼 들어간 김에 오랜만에 한판 하자고!”

   “미안, 지금은 바쁘니 다음에.”

     

   가능하면 창제무신부터 배우고 싶었지만.

   아카데미를 비운 동안 꽤 여러 일이 터졌다.

     

   ‘사자단실이라면 시즐리도 있겠지.’

     

   제국 내에 귀를 만들어둔 그녀라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 판단한 크라슈는 곧장 사자단 교실로 향했다.

     

   제블람에서 생각보다 오래 있었기 때문인지.

   크라슈는 복도를 거닐며 여러 상념이 들었다.

     

   그에게 떠올린 기억들은 회귀 전 기억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썩 달갑지 않은 기억이었다.

     

   라헬른 아카데미에서 크라슈는 언제나 반푼이 취급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라헬른 아카데미에서 이제 크라슈를 반푼이 취급할 수 있는 인물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예전과 같이 이 복도를 지나는 게 힘들지 않았다.

     

   ‘많은 게 달라졌다.’

     

   그리고 달라졌기에 이곳을 반드시 지키고 싶어졌다.

   크라슈가 사자단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뜻밖의 인물이 앉아 있었다.

   긴 금발의 어딘가 여성적인 느낌이 나는 외모의 사내.

     

   아서 그라말테.

   크라슈가 가짜 아서라고 불렀던 이였다.

     

   창문을 타고 흘러 들어온 햇빛이 그의 금발을 빛냈다.

   그 탓인지 머리카락에 가려진 얼굴에 의해 그림자가 생겨 어쩐지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크라슈 쪽을 돌아보더니 입술을 떼었다.

     

   “왔군.”

     

   사자단 교실은 조용했다.

   다른 인기척이 없는 걸 보니 그 혼자뿐인 것 같았다.

     

   “왜 혼자 있냐.”

     

   크라슈가 질문하자 아서는 보던 책을 닫았다.

     

   “사자단 전체 훈련이라더군.”

   “너도 사자단 인원이잖아.”

   “잠깐, 일이 있어서 외부에 다녀왔다.”

     

   아서의 대수롭지 않은 대답을 들은 크라슈는 침묵했다.

   그러고는 이내 터벅터벅 걸어가 그의 앞에 의자를 빼 앉았다.

     

   아서는 그런 크라슈를 계속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다시 보아도 아서는 기억 속 아서와 달랐다.

   하지만 어쩌면 저게 진짜 아서의 모습이라 생각하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벨라와는 잘 지내고 있냐?”

     

   그러니 크라슈는 먼저 수를 던지기로 했다.

   크라슈가 수를 던진 그 순간 아서의 눈이 아주 짧게 깜빡였다.

     

   그리고 크라슈는 그게 아서의 평소 무언가 상황이 틀어졌다고 생각할 때 나오는 버릇이란 걸 눈치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시치미 떼지 말자고, 메리한테 다 듣고 왔으니까.”

   “메리…….”

     

   아서의 눈빛이 미묘해졌다.

   크라슈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크라슈는 아벨라가 자신을 회귀했을 거라는 의심하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다.

   그리고 그건 줄곧 라헬른 아카데미를 감시하던 아서도 같을 터.

     

   “메리, 시그린, 아벨라, 그 셋은 한낱 한시에 회귀했다.”

     

   크라슈는 정말 남에게 들은 이야기인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회귀의 중심에는.”

     

   크라슈의 손가락이 아서를 가리켰다.

     

   “그들의 연인, 아서 그라말테, 네가 있었지.”

     

   진짜 회귀한 장본인.

   아서 그라말테.

     

   그것이 너 아니냐고 크라슈는 물었다.

     

   아서는 침묵을 한 채로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하지만 크라슈는 이대로 그가 생각을 정리하게 둘 생각 없었다.

     

   “그런데도 메리는 널 가짜라고 부르고 있었다. 시그린에게서도 널 향한 호의는 전혀 보이지 않았어.”

     

   그리고 이건 아벨라도 마찬가지다.

   아벨라가 그를 정말로 진짜 아서처럼 대했다면 옆에 끼고 놔주지를 않았을 테니까.

     

   “너 대체 무슨 목적인 거냐.”

     

   아서가 조용히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그가 핏하니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아직 크라슈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곧 다음 말이 이어진 순간 도리어 크라슈가 굳었다.

     

   “내 회귀를 빼앗은 네가 그걸 묻는 건가?”

   

   

   

   

     

   크라슈가 순간 멍해진 표정으로 아서를 바라보았다.

   아서는 마치, 그걸 직접 겪어보기라도 했다는 표정이었다.

     

   아직 여름이 되기 전이라 그런지 창문에서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불어온 바람은 커튼을 거칠게 휘날렸다.

     

   “왜 크라슈? 너라도 정곡이 찔리니 말문이 막히나?”

     

   그리고 크라슈의 얼굴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아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회귀를 빼앗긴 아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다는 건 지금 저 말은 현재의 아서가 겪어온 일들을 통해 내놓은 추측이다.

     

   ‘문제는 이 추측을 어떻게 내놓을 수 있었는가.’

     

   테라시우스는 아서에게 시간 마법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말하였다.

   크라슈는 테라시우스가 흔적을 더듬는 걸로 그치는 수준의 시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붉은 마녀, 아벨라.

   세상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마법사이자 크라슈가 아는 한 가장 다양한 지식을 갖춘 자.

     

   그녀는 실제로 시간 마법에 관해 관심을 보였고, 연구한 경력이 있다.

     

   그것이 비록 실패로 끝났다는 말은 들었으나.

   그녀가 내놓은 시간 마법에 연구 결과는 이러하였다.

     

   그런 아벨라가 아서에게 건 시간 마법은 대체 무엇인가.

     

   시간 마법의 방향성은 두 가지가 있다고 들었다.

   하나는 현재의 나를 미래로 보내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무수히 많은 시간선에서 시간선 하나를 현재로 이어 붙이는 것.

     

   즉, 시간 마법이라는 것은 결국 미래로 가거나.

   혹은 이미 과거의 새겨진 기억을 현재로 가져오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

     

   이러한 시간 마법의 개념을 박살 내는 것이 바로 회귀다.

   회귀란 자신이 기억해둔 시간선으로 되돌아가 다시금 시작하는 개념이니까.

     

   아벨라가 설립한 시간 마법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능력이었다.

     

   ‘그렇다면 아벨라가 현재의 아서에게 사용한 시간 마법은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 회귀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두 가지 안에서 해답이 나온다는 것인데.

   아서를 미래로 보내는 것은 아벨라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다.

     

   ‘즉, 현재의 아서에게 부여된 시간 마법은 과거의 시간선을 더듬어 과거를 이어 붙이는 것.’

     

   하지만 크라슈는 여기서 또 다른 의문점을 품어야 했다.

     

   아무리 아서에게 과거의 시간선을 붙인다 한들.

   아서가 지닐 수 있는 기억은 기껏해야 17년에 지나지 않는다.

     

   당연히 고작해야 17년이라는 시간으로는 아무리 많은 시간선을 이어본다 한들 아벨라가 기억하는 아서를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벨라도 그걸 모르지 않았을 텐데.

   왜 그녀는 아서에게 시간 마법을 사용했는가.

     

   그 순간 크라슈의 머릿속에 번쩍하고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아벨라의 시간선은 현재가 아니야.’

     

   앞서 말한 시간 마법을 아벨라가 실패라고 여긴 것은 마법을 사용하는 당사자의 시간선을 기준으로 시간 마법이 발동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는 현재와 과거밖에 얻을 수 없다.

     

   현재와 과거의 시간선을 아무리 넘나든다 한들 그 한계는 너무나 명확하다.

     

   하지만 아벨라의 시간선은 지금에 머물러 있지 않다.

     

   ‘아벨라는 회귀를 통해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온 거니까.’

     

   그녀는 이미 더 넓은 미래의 시간선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사용자인 그녀의 기준으로 발동되는 시간 마법은 현재의 아서에게는 미래인 시간선을 부여할 수 있었다.

     

   이걸 예상하지 못했던 크라슈는 굳은 얼굴로 아서를 바라보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아서는 과연, 어느 시간선까지 기억을 얻게 된 아서인가.

   아서의 금빛의 눈동자가 방 안에 불빛을 따라 조용히 일렁였다.

     

   어쩌면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은 증오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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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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