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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9

       클라이스와 술자리를 가진 이후, 더는 켕길 게 없어졌다.

       

       이로써 대부분의 관계가 정리되었다. 남은 건 마왕을 물리치고, 세상에 작별을 고하는 것뿐.

       

       사실 작별하는 단계가 가장 힘들겠지만 당장 걱정할 건 아니다.

       

       나는 클라이스와 함께 초전도 연구실에 도착했다.

       

       “진행 상황은 어떤가요?”

       “장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물질의 가능한 조합을 일일이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섭씨 100도 정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을 이론에 근거하여 찾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마왕군이 지척까지 다가와 있다. 일 분 일 초도 낭비할 수 없는 상황.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경우의 수’였다.

       

       말 그대로 가능한 물질을 전부 만들어 본 다음, 실험실 환경의 온도를 천천히 낮추어 어디서부터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지 확인한다.

       

       단순하고도 무식한 방법이었다. 자원 낭비도 극심하고.

       

       게다가, 어떤 물질은 만드는 것만으로도 고역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그거 아는가?

       

       세상은 돈이면 다 된다.

       

       시간과 예산을 존나 때려 박기만 하면 일단 성과는 나온다. 그것이 알앤디라는 것이다.

       

       “현재 베릴륨, 탄탈럼, 오스뮴 계열에서 상온 근처의 초전도체를 발견했습니다.”

       “기압 조건은?”

       “대륙 기압의 1만 5천 배 정도입니다.”

       “나쁘지 않은 성과네. 다른 물질도 더 찾아보도록.”

       

       카우렐리아는 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돈만 있으면 어디서든 원소를 구해올 수 있어.

       

       단 하나, 피치블렌드 마석이 엘랑카야 지대 아니면 구하기 힘들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것 때문에 일반적인 방식으로 흑주를 만들 수 없는 거고.

       

       결국 자기장과 레이저로 핵융합 반응을 끌어내야 한다.

       

       “장관님, 생각해 본 게 있어요.”

       “뭔데요?”

       “어제 술자리에서 하셨던 말 말이죠…….”

       

       그러고 보니 술주정으로 토론했었지.

       

       클라이스와 함께 고위 마도학 서적과 이면지를 펼쳐 놓고 이런저런 수식을 전개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하신 말씀대로라면 중수소화 리튬은 필요 없는 거 아닌가요?”

       

       놀랍게도, 클라이스는 해당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주사를 부리면 사람이 개처럼 변해서 기억이 날아간다고 하는데, 우리는 조금 달랐다. 정확히 어떤 어조로 말을 했는지는 기억 안 나는데,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또렷하게 생각나는 것이다.

       

       그때 내가 이야기했던 건 초전도체가 필요한 이유, 그리고 플레어의 유도 증폭을 이용한 핵반응을 일으키는 방법이었다.

       

       “그게 가능해지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첫 회의에서 말했잖아요. 초전도체, 리튬, 그리고 레이저.”

       “그런데요.”

       “리튬을 기폭 재료로 쓰려면 피치블렌드가 있어야 해요. 그런데 대부분의 피치블렌드 원석은 지금 마왕군 수중에 있죠.”

       

       날카로운 지적이다.

       

       나는 주변을 확인한 뒤 귓속말로 속삭였다.

       

       “…맞습니다.”

       

       클라이스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갈 곳 잃은 황망한 눈동자가 주위 풍광과 나를 번갈아 훑는다.

       

       “이미 광부들이 리튬을 채굴하고 있어요. 예산을 들여 플랜트도 짓는 중이고……!”

       “쉿. 조용.”

       

       입가에 검지를 대며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멀뚱거리는 클라이스.

       

       그녀는 아버지와는 달리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겁니다.”

       “…….”

       

       한시라도 빨리 마왕을 격퇴하고 싶은 클라이스에겐 이것이 낭비라고 생각하겠지.

       

       그러니 지금 말해준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선생님, 절 믿으십니까?”

       

       대신 이런 식으로 말해주는 수밖에.

       

       “…뭐예요, 갑자기. 사이비도 아니고.”

       “절 믿으시면 복 받으실 겁니다. 현재는 모르더라도, 미래에는 필경.”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날 때쯤이면, 필시 그러리라.

       

       

       **

       

       

       “에테르, 나랑 병원 좀 가자.”

       

       집으로 돌아오니 로테가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너 어디 아파?”

       

       어쩐지 로테의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 술을 마신 여파로 지금까지 정신이 몽롱한 나보다도 더 심각한 듯했다.

       

       “아프면 말하지. 바로 데려다 줄 수 있는데.”

       “아니, 나 말고.”

       “뭐? 그럼 누구?”

       “너 말이야, 너.”

       

       먹잇감을 노리는 이리처럼 가늘어지는 눈매.

       

       로테와 오랜 시간 함께한 나로서는 이게 무슨 징조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송곳처럼 따가운 시선을 받고도 나는 여전히 태연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태연함을 가장했다.

       

       “실은 아픈데 무리하고 있는 거 아냐?”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척, 하고 로테의 손길이 내 얼굴에 얹어졌다.

       

       그러더니 양손 엄지로 내 눈가를 문대기 시작한다.

       

       “이 다크서클 좀 봐! 이게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눈그늘이냐고!”

       “로테, 나 사람 아닌 거 알잖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사람이 아니라니.

       

       사실이긴 했지만, 오랜 친우가 듣기에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말이었을 것이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머지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내뱉은 결과였다.

       

       로테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가자, 병원.”

       

       그렇게 근처 아카데미 병원으로 끌려갔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잘 모르겠습니다.”

       

       뭐지.

       

       의사가 돌팔이인 건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잘 모르겠다니요….”

       “사람을 치료해 본 적은 있어도, 마수는 처음이라서요. 그…. 장관님껜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신체구조가 다르지 않습니까?”

       

       로테가 의사를 찌릿찌릿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내가 둘 사이를 가로막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전혀 무례가 아닙니다. 전문의의 소견인걸요.”

       “감사드립니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고, 기계가 아프면 정비소에 간다. 그런데 기계이면서 동시에 인간인 존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사실 그 점이 궁금하긴 했다. 나도 감기에 걸리는 걸 보면 생물학적 특성이 있기는 있는데, 과연 이 세상 의학이 어디까지 먹힐지.

       

       “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이런 문제는 정령왕과 상의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저주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런, 가요.”

       

       로테의 어깨가 힘없이 떨어진다.

       

       의사는 소견서를 적어 간호사에게 전달했고, 그것이 전부였다. 우리는 별다른 답을 얻지 못한 채 병원을 나왔다.

       

       응급실 앞에서 한동안 생각하던 로테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정령왕을 만나러 가 봐야겠어.”

       

       뭔.

       

       “…지금?”

       “지금 아니면 언제 가?”

       

       그렇게 나는 물의 정령왕이 기거하는 곳까지 끌려갔다.

       

       미친. 같이 쇼핑했을 때보다 배는 힘들다.

       

       “…어머. 여긴 어쩐 일로 오셨나요?”

       

       수소 처리 시설에서 바닷물을 분해하던 물의 정령왕, 시큐엘. 그녀가 작업을 처리하다 말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혹시 시간이 될까요?”

       “그쪽은…. 장관님의 친구분이시군요. 좋아요. 잠깐이라면 괜찮아요.”

       

       본래 정령왕씩이나 되는 존재는 아무하고나 만나주질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매우 급박하다.

       

       게다가 내 친언니가 전계마도의 차기 정령왕이니. 제아무리 시큐엘이라도 만나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검붉은 피를 흘린다라. 그래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시큐엘은 나를 흘깃거리며 눈치를 주었다.

       

       “혹시 마왕의 저주 같은 게 아닐까요?”

       “생명의 위협이 갈 만한 저주라면 딱히 느껴지는 게 없네요.”

       

       있어 봤자 ‘철화의 저주’ 뿐이라고 덧붙이는 시큐엘.

       

       “병원을 다녀오셨다고 했죠? 의사가 혹시 이러지 않았나요? 폐에 문제가 있다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은 해주셨어요.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다고 하셨고요.”

       “저희 정령도 만능은 아니에요. 감지할 수 있는 건 삿된 기운과 선한 인의뿐이죠. 저주가 아니라 그냥 병이라면, 저도 말씀드릴 수 있는 게 그다지 없어요.”

       “그런가요….”

       

       로테의 어깨가 다시 한번 축 늘어진다.

       

       그녀의 시선이 힘없이 땅으로 떨어진다. 그 틈을 타서 시큐엘은 나에게 쓰읍, 하며 경고를 주었다.

       

       – 왜 들키고 난리예요?

       

       그런 말을 하는 듯하다.

       

       사실 시큐엘과 나는 내 각혈의 원인을 알고 있다.

       

       이것은 죽음과 재구축의 징조다. 이 세상의 육신을 지우고, 다른 세상으로 전송하는 작업.

       

       몸을 구성하는 ‘파일’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삭제하는 사람은 몰라도, 삭제당하는 입장에선 괴로울 수밖에.

       

       아직 여름이니 앞으로 수개월의 시간이 남았다. 못해도 내년 봄까지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가을까지 흑주를 끝내고, 겨울에 마왕을 쓰러뜨린 다음, 봄이 되었을 때 사실을 말하고 로테 품에서 사라지는 것이 소원이다.

       

       물론 그때가 되면 복날 개 처맞듯 로테에게 혼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사실을 고할 때가 아니다.

       

       “로테, 그냥 네가 잘못 본 것 같아. 나는 이렇게 멀쩡한데.”

       

       엑토플라즘의 그림자 앞에서 몸을 날렸을 정도로 헌신적인 아이다. 내가 자신 때문에 시한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틀림없이 펑펑 울겠지. 그리고 정령의 샘으로 갈 것이다. 가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 수명을 돌려놓겠지.

       

       그건 죽어도 안 된다.

       

       그래서 이리 거짓을 고한다.

       

       “난 멀쩡해.”

       

       다크서클은 그냥 졸려서 생긴 것이다. 요새 할 일이 워낙 많지 않은가? 어젯밤 충분히 자긴 해서 개운했지만, 그런 식으로 둘러댄다.

       

       “……알았어.”

       

       단념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혹시 몰라. 다시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화제를 전환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프리트는 죽고, 물의 정령왕 시큐엘과 땅의 정령왕 노움은 최대한 후방으로 빠져 흑주의 완성을 앞당기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람의 정령왕은 어디로 갔는가?

       

       “그 치녀… 가 아니라, 에어리얼 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아시나요?”

       “으음, 바람의 정령왕 말인가요?”

       

       손으로 밑가슴을 받친 채 곰곰이 고민하는 시큐엘.

       

       “에어리얼이 꼭 필요한가요?”

       “초전도체를 만들 때 고압 설정이 필요하거든요. 도움을 주신다면 일이 금방 진척될 겁니다.”

       “그래도, 글쎄요…. 워낙 자유분방한 성격이라서요. 말 그대로 바람과 같아 한 곳에 묶어두기 어려워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에어리얼을 만난 건 리바이어던 토벌전 때였다.

       

       생각해 보면 그 변태녀, 버멜에게 호기심을 보였었지.

       

       그리고 버멜은 얼마 전 최전선으로 끌려갔고.

       

       “……설마.”

       

       순간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이대로라면, 정령왕이 한 명 더 죽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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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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