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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9

       어떻게 하면 검성의 대답에서 내 이름만 빼고 전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봤지만, 내가 내릴 수 있었던 결론은 ‘그런 방법은 없다’였다.

        

       나는 이 세상이 원작과 다르게 굴러간 가장 큰 이유를 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검성의 대답은 그 ‘이유’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유만 쏙 빼버리면, 결국 ‘그래서 검성은 왜 교사 자리에 지원했나?’ 하는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할 수 없게 된다.

        

       검성이 나를 보고 웃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리라.

        

       아마 그 양반은 처음부터 내가 그런 상황에 부닥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거다. 그래서 반쯤 놀리면서 대화를 그쪽으로 유도한 거고.

        

       결국 함정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건 나였지만.

        

       누굴 탓할 수도 없으니 더 난처했다.

        

       그렇게 나는 며칠 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만 보냈다. 제니퍼가 우리 반 담임이 아니라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제니퍼가 우리 반 담임이었다면 수업 끝나자마자 기숙사로 도망가는 짓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어찌 된 일인지, 제니퍼가 다시 나한테 학생을 보내 나를 찾거나 나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나에게 시간을 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아카데미 교사들 나름대로 다른 결론을 내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나로서는…… 어, 좋은 일이라고 하기는 조금 그래도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아무리 나라도 그런 일을 무한정 뒤로 미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전전긍긍하게 되는 것이다.

        

       검성과의 대면 후 나흘 정도 지났을 때부터는 앨리스가 나를 수상하다는 듯 보기 시작했다. 시간을 돌리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표정 관리를 하던 나의 감정도 꿰뚫어 보던 앨리스였으니, 그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지금의 내 표정은 훨씬 쉽게 간파할 수 있겠지.

        

       그렇게 슬슬 다 포기하고 그냥 제니퍼한테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아카데미 축제에 그리폰을 부르고 싶다고요?”

        

       “아, 그, 부른다기보다는, 그냥 하늘 위를 한 바퀴 정도 돌고 지나가는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만.”

        

       —정말 놀랍게도, 문화제 준비를 하던 학생회에서 나에게 면담을 청했다.

        

       일전에 설명했듯, 제국 황실은 다른 귀족가와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다.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괜히 예산 집행에 끼어들면 심히 좀스러워 보인다. 마치 내가 돈을 냈으니 내가 원하는 대로 하라, 하고 말하는 것 같은 꼴이 될 테니까.

        

       완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게 당연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극단적인 자본주의 사회이면서도 귀족과 황실이라는 극단적인 적폐가 당당하게 남아있는 이 세계에서는 그런 명분이나 자존심도 굉장히 중요한 법이다.

        

       같은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긴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 황태녀와 제국 서열 제2위가 되어버린 앨리스와 나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우리한테 뭔가 요청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폰이 굉장히 사나운 맹수라는 건 알고 있지?”

        

       앨리스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그렇게 말하자, 학생회 모두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사실 그냥 맹수라고 표현하는 것도 너무 얌전한 거지. 그리폰이라면 앞에 호랑이나 사자가 있어도 발톱만으로 찢어버릴 수 있을 텐데.

        

       아니면 마법으로 구워버리거나.

        

       지금은 황궁 정원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먹고 싸고만 반복하고 있어 이게 날개 달린 돼지인지 그리폰인지 잘 구별이 안 되기는 한다만, 일단은 전설 속에 등장하는 환수…… 비슷한 거긴 했다. 제국의 상징이기도 했고.

        

       정황상 훨씬 많은 개체가 있을 법하지만, 이상하게 그 녀석은 아직도 자기 종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맹수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하늘을 날아가는 것을 보는 정도로 만족하려는 것이겠죠.”

        

       내가 그렇게 말하자, 학생회장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솔직히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조금 궁금했다. 굳이 앨리스와 나를 끌어들이려는 것은 둘째치고, 무려 아카데미 축제에 그리폰을 데리고 올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 그 배짱에 가산점을 주고 싶다.

        

       분명히 생각이 좀 모자란 친구일 테지만.

        

       “아, 그것이…….”

        

       학생회장은 곤란하다는 듯 시선을 돌렸지만, 학생회의 다른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 그 시선을 슬쩍 피했다. 의리도 없지. 하긴 귀족 사이에 의리라는 게 있긴 할까 싶다만.

        

       “……현재 아카데미 1학년 학생 중에는 외국에서 온 손님이 두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샤를로트와 레나. 샤를로트는 왕녀라서 존댓말을 쓴다고 쳐도, 군대를 중심으로 굴러가는 자치국은 제국보다 귀족 체계가 희미할 텐데도 존댓말을 써주는구나. 하긴 그런 식으로 따지면 작위가 1대1로 매칭되지 않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죄다 아래 깔고 보게 될 테니까.

        

       일반 서민을 평민이라고 깔보는 것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길 일은 없겠지만, 만약 깔본 상대가 국가 이인자의 자녀라고 한다면 문제가 크다. 심지어 깔본 사람이 제국의 공작이라면 그저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혼자 납득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이번 문화제는 이전의 문화제와는 다르게 1년의 마지막 날과 한 해의 첫날이 끼어있습니다.”

        

       아, 대충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다.

        

       앨리스도 학생회장이 하는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 이미 눈치챈 모양이었지만, 여전히 미묘하게 찡그린 표정인 건 그대로였다.

        

       “그래서…… 그, 대륙의 패권을 쥔 나라로서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지녔는지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만…….”

        

       우리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이야기만 듣고 있자, 학생회장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어서 결국에는 침묵만 남았다.

        

       일리는 있는 말이다.

        

       샤를로트도, 레나도 한 나라의 높은 분들의 딸들이었으니까. 레나야 뭐 그렇다 쳐도 샤를로트는 아예 왕녀다. 심지어 다음 왕위를 물려받을 적자.

        

       그리고 아카데미 문화제에는 그 학생들의 부모나 형제, 친척들이 방문하는 일도 많다. 귀족들은 사교의 장을 가지고, 평민들은 그 귀족들 앞에서 자기 능력을 펼쳐 보일 장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샤를로트의 아버지, 그러니까 벨부르 국왕이 이곳에 방문하게 된다면 ‘혼자’ 오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국왕을 보좌하는 일부 귀족들이 딸려 올 것이고, 그 귀족들을 보좌하는 사람들이 따라올 것이고…… 하나의 사절단이 되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 학생회에서 부담을 느끼는 것도 그럴 만 했다. 제국의 상징을 직접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발상이긴 하지.

        

       만약 샤를로트의 아버지가 ‘진짜로’ 온다면 말이다.

        

       한 나라의 국왕이 다른 나라를 방문한다는 것은, 대통령이나 총리가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대통령이 아무리 한 나라를 대표하고 그 권한이 왕에 필적한다고 하더라도 진짜로 ‘왕’은 아니다. 정말 큰 일이 일어나 대통령이 죽게 된다고 하더라도 새로 뽑으면 그만이다.

        

       사회적인 혼란이 있기는 하겠지만, 애초에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죽거나 불미스러운 일로 자리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체계가 전부 잡혀있으니까. 그다음으로 올 대통령이 이전 대통령의 피를 잇고 잇지 않고는 중요하지도 않다. 아니, 애초에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바보 취급당하기 딱 좋겠지.

        

       하지만 왕이라고 한다면, 심지어 그 권력도 ‘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권력을 가진 이라면 함부로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은 위험하다. 왕이라는 존재는 대체할 수 없는 존재다. 왕의 권력은 명분에서 나오고, 그렇기에 그 명분은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자기 나라의 중심에 굳건히 버티고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샤를로트가 이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는 것도 벨부르 왕국 기준으로는 엄청나게 리스크가 큰 행동이었다. ‘자국의 차기 국왕’이 ‘다른 나라’, 그것도 잠재적으로 적국이 될 수 있는 나라에 가서 뭔가를 배우고 있다는 소리니까.

        

       그나마 유럽이 모티브인 세계관이라 망정이지, 동아시아식 관점으로 봤다면 그냥 ‘볼모’로 해석되었을 수도 있다.

        

       “겉모습에만 치중하여 괜히 문제가 생길 여지를 만드는 것 보다는—”

        

       “협조하도록 하겠습니다.”

        

       앨리스도 나와 비슷한 결론을 내린 것인지 학생회장의 제의를 거절하려 한 모양이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팬그리폰의 이름 아래 제국이 탄생한 이래로, 그리폰의 등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에 대한 전승은 따로 전해지지 않는다. 그냥 지어낸 이야기 하나쯤 있을 법도 했건만, 정말로 ‘전혀’ 없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이겠는가?

        

       그렇다.

        

       그리폰을 조련하는 데 드는 노력과 시간이 얼마나 드는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소리다.

        

       바꿔말하자면, 내가 어디 짱박혀서 시간만 보내다 나타나 ‘그리폰 조련하다 왔다’라고 해도 알아들을 사람이 없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한 번 더 바꿔 말해보자면, 내가 제니퍼와의 만남을 뒤로 미룰만한 그럴싸한 이유가 생긴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문화제 날, 하늘을 가르는 그리폰의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죠.”

        

       그래서, 나는 그 말을 수락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는 최대한 빠르게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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