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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9

       나를 붙잡고 울던 엘라는 내 상처가 거의 다 아물어 갈 때쯤 돼서야 잠잠해졌다. 그녀가 단검으로 찔렀던 곳들도 모두 말끔하게 회복되었다. 퀘스트 보상으로 들어온 데볼루트를 사용해 사신이 깎아낸 재생력을 원래대로 복구한 덕분이었다.

         

       “우우웅…….”

         

       나는 잠든 그녀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혀 주고 이만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러 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내 몸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싫어……. 가지 마…….”

         

       그녀는 아기처럼 옹알이하면서 내 허리를 꼭 붙잡았다. 작정하고 떼어내고자 한다면 충분히 그녀를 떼어낼 수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이 그녀의 마지막 포옹일지도 몰랐다. 오늘 이후로 그녀가 이렇게 내게 가까이 다가올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기는커녕 내게 미소 한번 지어주기나 할지 의심스러웠다. 나는 좀 더 그녀의 응석을 받아주기로 했다.

         

       “좋습니다. 이리 오세요.”

         

       그러나 그녀에게 말을 건 건 실수였다. 그녀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눈썹을 파르르 떨더니 신음을 흘리며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하앗……읏!”

       “엘라 양?”

       “드, 듣기 시, 싫어……!”

         

       순간 나는 아까 그녀가 내게 요청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녀는 나보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안아주기만 하라고 했다. 나는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원더스타인에 대한 미움이 크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이렇게 반응해버릴까.

         

       “하아……아, 안 돼……!”

         

       그녀는 악몽을 꾸는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며 잠꼬대를 해댔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젖어서 퉁퉁 부은 그녀의 눈가를 손으로 닦아주며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나는 그녀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물을 필요도 없이 답은 너무 뻔한 것이었다. 아마도 나에 대한 꿈일 것이다.

         

       “그만……우웅…….”

         

       내 포옹을 받으며 그녀의 몸은 차츰 떨림이 가라앉았다. 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이 꼴이라니. 과연 그녀의 정신은 괜찮을까? 깨어난다고 해도 나만 보면 발작하는 것은 아닐까?

         

       지난 3개월간의 즐거웠던 순간들이 모두 먼 과거의 일만 같이 느껴졌다. 기억을 되찾고 나서도 여전히 나를 좋아하겠다는 그녀의 호언장담은 대부분 사랑의 맹세들이 그렇듯 덧없이 흩어져 버렸다.

         

       나는 상황을 이렇게 악화시킨 자를 떠올려 보았다.

       미스테릭서.

         

       나는 그를 향한 원망을 토해내려다가 곧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은 엉뚱한 화풀이였다. 원더스타인이 그녀에게 한 짓을 생각해 보면, 찰리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미움받는 것은 내가 원더스타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짊어져야 할 업보였다.

         

       “가, 가지 마…… 가지 마…….”

         

       그녀는 또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울먹이는 소리를 내며 몸을 벌벌 떨어댔다. 지하수 아래로 추락한 친구를 찾는 것일까? 나는 그녀의 몸을 품속으로 더 깊게 끌어당겼다. 물론 이번에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헤……헤에……잡았다…….”

         

       그녀는 몸부림치던 것을 멈추고는 내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거기다 얼굴을 마구 비벼댔다. 그녀는 흐릿한 미소를 띤 입술 사이로 웃음기 섞인 숨을 달싹거렸다. 이렇게 비몽사몽간에나마 그녀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이 무너져 내리며 돌과 흙이 쏟아져 들어왔다. 설마 아까 미처 터트리지 못한 불발탄이 터진 것일까? 나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먼지가 가라앉으면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곳에 나타났다.

         

       “뚫렸다!”

       “젠장, 조심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그게 내 탓이냐. 갑자기 밑에서 폭발이…… 잠깐, 빛이 보이는데?”

       “여기 꽤 넓은 것 같은……앗, 저거!”

       “저기 사람 아냐?”

       “앗, 맞다! 찾았다, 반장님, 반장님! 찾았어요! 위에 연락을!”

         

       그들은 레카체프 측의 발굴 인부들이었다. 그들은 엘라가 떨어진 통로를 따라 무너진 잔해들을 치우며 이곳에 도달한 것이다. 그들은 학교 지하에 이런 구조의 공간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이곳에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있는 것에 또 놀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구조자로서 자신들의 본분은 잊지 않았다. 그들은 재빨리 도르래를 설치하더니 부상자들을 위로 올려보낼 준비를 했다.

         

       “저기…… 괜찮으십니까?”

         

       그들 중 대표로 보이는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들은 피로 물든 내 모습을 보고 내가 살아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문제없다고 답해준 뒤, 마야를 우선 위로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몸속에는 아직도 엘라가 쏜 총알이 박혀 있었다. 아까 상황이 정리되자마자 그녀를 치료하려고 했는데, 잘되지 않았다. 아마 이곳에 잔존하고 있는 성역의 힘과 그녀의 몸 안에 있는 마력이 데볼루트에 저항하기 때문인 듯했다. 그녀에겐 의사의 손길이 필요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기……이 학생은……?”

       “그녀는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마야, 루엘로, 레이나, 카렌, 미키가 차례차례 위로 실려 갔다. 나는 여전히 내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엘라를 품에 안고 도르래에 몸을 실었다. 통로는 수직으로 뚫려 있지 않았기에 우리는 도중에 도르래를 몇 번 갈아타야 했다.

         

       지상은 어느새 밤이 되어 있었다. 관중들은 이미 철수했는지 경기장 안에는 학교 측 관계자들과 우리 단원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엘라다!”

       “단장님!”

       “무사했구나!”

       “좋았어! 모두 살았어!”

         

       단원들이 반가운 함성을 내지르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내가 어떻게 엘라와 함께 나온 건지 묻지 않았다. 아까 통신 마법을 통해 사정을 대강 설명한 덕분이었다.

         

       병동에서 간단한 진료를 받은 나는 학교 측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 교수들은 저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범인들이 엘라의 고향 친구들이라는 것은 숨기고 그들에게 적당히 이야기를 각색해 들려주었다. 나는 그들을 정체불명의 테러리스트들로 둔갑시켰고, 엘라를 납치한 이유도 그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좋은 본보기로 운 없이 걸렸을 뿐이라는 식으로 설명했다. 아래에 남은 마귀의 흔적도 그들이 소환한 것으로 덮어 씌었다.

         

       그렇게 내 이야기가 끝났을 때, 교감인 엘파라 교수가 내게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혹시 그 무리 중에 이 청년도 있었나요?”

         

       나는 사진에 나온 남자를 알아봤다. 그것은 찰리였다. 그녀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몰라 나는 일단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네. 저희를 공격한 무리의 리더가 바로 이 남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얼굴을 아시는지?”

         

       엘파라 교수는 주변에 엿듣는 사람이 없는지 살피더니 아까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교수들은 엘라가 있던 석실이 붕괴하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사고가 아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작동시킨 함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들은 관련자들을 불러 어떻게 된 일인지 문책했다.

         

       그러자 용의자가 대번에 수면 위로 끌려 나왔다. 공사 현장을 감독했던 소장이 찰리의 추천을 받고 온 젊은이 몇을 경기장 공사 일에 끼워줬다고 증언했고, 학생회 간부 몇몇이 역시 몰래 자신을 찾아온 찰리의 요청을 받고 경기장의 내부 설계를 알려줬다고 밝혔다.

         

       “그걸 여태까지 숨겼단 말입니까?”

       “찰리 학생이 교수님들의 명령을 받고 움직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저희도 ‘땜장이 요정’이 찰리 선배인 줄 알았어요……. 아, 이렇게 의외의 인물을 쓰는구나 싶었죠. 저희가 어떻게 찰리 선배를 감히 의심했겠어요?”

         

       그들의 반박에 교수들도 더 이상 그들을 추궁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들의 증언은 정황 증거일 뿐이었다. 찰리가 이 사고를 기획했다는 명백한 물증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결정적인 증거가 도착했다. 그것은 원더스타인 일행이 구조되기 몇 분 전에 교감 앞으로 전달된 편지였다. 그것의 발신인은 찰리였다. 편지 속에는 학교를 무대로 사고를 쳐서 죄송하다는 짧은 사죄의 말과 함께 다른 관련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협력했을 뿐이라는 글이 찰리의 친필로 쓰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그녀에게 건넨 것이 그가 키우던 원숭이었다는 것을 듣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차렸다. 그는 만약 일이 잘못될 때를 대비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편지를 쓰고, 원숭이에게 전달하도록 미리 명령을 내려두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찰리가 자살했다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 살아남은 우리에게 관심이 몰릴 가능성이 컸다. 그는 여전히 살아서 도주 중인 것으로 해야 했다. 수석 졸업생인 그가 왜 학교를 대상으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아마 무수히 많은 추측과 소문을 낳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

         

         

       엘라가 깨어난 것은 새벽녘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레카체프의 병동이라는 것과 자신의 머리맡에 누군가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꾸벅꾸벅 졸면서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침을 쩝쩝 다시는 여인의 머리카락은 달빛 속에서 푸른색으로 물결쳤다.

         

       “클라라 선배?”

         

       그녀의 부름에 클라라는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 나 안 잤어!”

         

       그녀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곧 자신을 향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엘라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우핫, 놀랐잖아! 언제 깬 거야? 이제 정신이 좀 들어?”

       “어떻게……된 거야……? 내가 왜 여기에……?”

       “아, 그게 말이지.”

         

       클라라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엘라는 친구들이 모두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했다가 찰리가 수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물론 그녀가 놀란 것은 그 소식의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그 소식을 전한 사람 때문이지.

         

       “선배는……괜찮아?”

       “응? 뭐? 아, 찰리 선……배……말이지.”

         

       클라라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알지도 못하는 인간 따위였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이 몸이 사랑해서 쫓아다녔던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녀는 며칠 동안 그 사실로 놀림 받으면서 이제는 대처법을 터득했다. 악쓰고 부정해봤자 놀리는 사람들의 즐거움만 충족시켜 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울적한 표정을 지으면 그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찰리에 대해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진 것은 그런 놀림으로 인해 학습된 반사신경이 빚어낸 것이었다. 엘라는 클라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보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딘가 맹해 보일 정도로 항상 밝은 모습만 보이던 선배가 저런 얼굴을 하는 것은 처음 봤다.

         

       물론 클라라는 지금은 찰리로 자신을 놀리려는 상황이 아님을 알았기에 재빨리 표정을 밝게 고쳤지만, 엘라의 눈에는 슬픈 티를 감추려고 애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 사람 속을 어떻게 알겠어? 그걸 몰라서 내가 차였잖아. 안 그래? 하하.”

       “선배…….”

         

       그녀의 억지웃음에 엘라는 하마터면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클라라를 와락 껴안았다.

         

       “어어, 에, 엘라? 왜, 왜 그래? 나 괜찮아, 괜찮대도…….”

       “선배……그게 있지……찰리는…….”

         

       엘라는 거기까지 꺼내고 입을 딱 다물었다. 차마 그녀에게 진실을 얘기해줄 수 없었다. 자신이 그를 쐈다는 것을. 그가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했다는 것을. 그가 원더스타인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그녀의 연약한 정신은 그 사실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신경 쓰지 마. 나는 그 찰리 선배보다 너희를 더 걱정했어. 단장님이 너희를 구해줬다며?”

         

       그녀의 말에 엘라는 더욱더 죄책감에 몸부림쳤다.

       그게 아닌데. 아니, 그게 맞긴 하지만, 그 인간은, 그 인간은 선배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엘라는 차마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그녀를 더 세게 껴안았다.

         

       “미안……. 미안해…….”

       “저, 정말 괜찮다니까…….”

         

       그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클라라 양, 엘라 양이 깨어났습니까?”

         

       엘라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문가를 노려봤다. 원더스타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남고생 님, 100코인 후언!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초우유 님, 14코인 후원!

    1주일 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푹 쉬면서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서커스 찰리는 다음 화로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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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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