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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9

     시간. 제국력 99년 12월 31일, 오후 11시 50분.

     장소. 지브롤터 협곡 제 2관문-의 위에 정박한 황금의 비행선 안.

     그리고 나는 황금의 비행선 안, 별실에서 한 명의 여인과 함께 앉아있다.

     “으음….”

     검은 드레스를 입은 아스타시아는 침대에 걸터앉아, 테이블 위에 올려진 유리병 두 개를 빤히 바라보며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대되십니까, 아스타시아?”

     “물론이죠.”

     아스타시아는 발을 동동 구르며 특별실의 안, 벽에 걸린 시계를 가리켰다.

     “이제 10분 정도만 있으면 우리도 ‘어른’이 되는 거잖아요.”

     “예. 법률과 사회가 정한 어른이.”

     미성년자와 어른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사회적으로는 관념과 법으로 정해진 기준이 있다.

      

     그리고 이는 왕국도 제국도 마찬가지.

     19살까지는 왕국 답지 않게 ‘미성년자’로 보지만, 20살이 되는 순간 바로 그들을 법적으로는 어른으로 취급한다.

     

     “어른이 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뭡니까, 아스타시아?”

     “…….”

     아스타시아는 침묵했다.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걸 굳이 말로 해야 하냐며 씩 미소를 지었다.

     “잠시, 옛날 이야기를 해볼까요. 노스트럼에서는 왜 20살이라는 나이를 어른의 기준으로 삼았을까요?”

     “안 궁금한데요.”

     “…….”

     “그야, 이제 9분 정도면 우리 둘 다 어른이 되잖아요.”

     어느새 시간이 또 1분 흘렀다.

     이야기를 하면서 느긋하게 있으려고 하지만, 분명 시간은 일정하게 흐르기 마련인데 지금은 유독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이다.

     “한 1년 전까지라면 왜 그렇게 설정을 한 건지 궁금했겠지만, 지금은 딱히 중요한 일이 아니잖아요?”

     “제법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스타시아.”

     “왜죠?”

     “우리가 성인이 된다는 건 나리아도 성인이 된다는 것. 바로 내일, 나리아가 진정한 여왕으로 등극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제국력 100년 1월 1일.

     제국에서도 기념할 역사의 첫 페이지에 실릴 기념비적인 사건은 ‘나리아 여왕의 등극’이 될 것이다.

     “공동왕이 아닌 한 명의 왕으로서 우뚝 설 것입니다. 왕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제국인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정치적 문제죠.”

     “우리의 문제기는 하지만, 제 관심은 여기 있는 이 물건에 있는데요!”

     아스타시아가 테이블 위에 있는 갖가지 물건들을 가리켰다.

     “술이죠?”

     “예.”

     “공식적으로, 우리는 지금 마시면 안 되죠?”

     “네.”

     “그러면 자정을 넘어선 시간부터는?”

     “제국법에도 왕국법에도, 성인이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나는 테이블로 다가간 뒤, 두 개의 와인을 각각 가볍게 열어젖혔다.

     “와. 엄청 능숙한데요. 평소에 마셔본 적이 있나요?”

     “오늘을 위해 몇 번이고 연습했습니다.”

     회귀 전에도 자주 내가 열기도 했지만, 회귀 이후에도 나는 와인병을 여는 연습을 자주 하고는 했다.

     연습이 필요하냐고?

     필요하다.

     능숙하게 여는 모습을 보이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와인병을 여는데 서툰 모습을 보이면 그게 더 심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으니까.

     “제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간혹 와인을 즐기시고는 합니다. 각각 한 잔씩 마시는 정도로, 말 그대로 ‘음미’만 하신다는 느낌이죠.”

     “보통 술은 한 병을 다 비울 때까지 전부 마시는 게 아닌가요?”

     “취하려고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취할 필요가 없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그저 하나의 음료일 뿐이죠.”

     나는 빈 잔에 각각 와인을 채웠다.

     “왜 취할 필요가 없죠? 아, 알았다. 막 서로에게 이미 취해있으니까, 그런 말 하려는 건 아니죠?”

     “제가 그렇게 말하려고 할 것 같았습니까?”

     “그럼, 아니에요?”

     “낭만적이기는 하지만, 와인으로는 소드 마스터를 취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아스타시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으나, 나는 와인을 잔에 담기만 하고 잔 위에 깨끗한 냅킨을 올렸다.

     “와인은 그저 일종의 신호일 뿐입니다. 다른 평범한 이들과 같이, 술을 마시고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어른의 시간을 가지자는 표현을 음료로 대신하는 거죠.”

     “어른의 시간….”

     “지금까지 제가 아스타시아, 당신에게 와인을 마시자고 제안한 적이 있습니까?”

     “없었죠.”

     아스타시아는 특별실 한쪽에 놓인 찻주전자를 눈으로 가리켰다.

     “솜누스 꽃을 우려낸 차랑 따뜻하게 데운 우유랑 꿀을 섞어서, 그걸 밀크티라고 자주 준 적은 있어도.”

     “괜찮았죠?”

     “네. 괜찮았죠. 괜찮기는 한데, 술은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준비한 겁니다.”

     나는 유리병에 붙은 라벨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당신이 이 지브롤터에서 처음 지냈던 그 때, 당신이 ‘엘리’라는 이름의 메이드로서 지냈던 그 때. 이건 그 때 주문하여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와인입니다.”

     “…언제 이런 걸 사셨대요?”

     “샀다기보다는, 당시에 장물을 팔고 위조화폐를 써먹었던 상단을 상대로 징발했던 물건이죠.”

     “그런 걸 이런 자리에서 마셔도 되는 거예요?”

     “지브롤터가 가지고 있는 와인 중에 가장 깔끔하고 훌륭한 와인입니다.”

     “그런 걸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죠?”

     “…….”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스타시아와 좋은 술자리를 가지기 위해 지금까지 연구하고 공부해왔다고 하면 믿어주시겠습니까?”

     “차라리 크림슨 후작님에게 여쭈어보고 난 뒤에 알아낸 정보라고 한다면 믿겠는데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이 와인에 담긴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를 말씀드려야겠군요.”

     

     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와인을 각각 두드렸다.

     “하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처음 마셨던 술이고, 다른 하나는 저를 만들어낸 술입니다.”

     “…예?”

     “연인의 첫 시작을 알리는 술. 그리고 이쪽은….”

     “자, 잠깐만요! 그렇게까지는 알고 싶지 않았어요!”

     아스타시아는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덮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걸 알게 된다면, 앞으로 이걸 마실 때마다 의식하게 되잖아요….”

     “의식하지 않아도 어차피 알게 될 겁니다.”

     나는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는 시늉을 했다.

     “앞으로 우리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술을 마실 거니까요.”

     “……술을 가지고 온다는 신호는 어른의 시간을 즐기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서요?”

     “예.”

     “…….”

     

     아스타시아가 가볍게 볼을 긁적이더니, 게슴츠레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저는 제국의 술을 준비하겠어요. 아, 혹시 남자가 준비할 때만 어른의 술이 되는 건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환영이죠. 나름 칵테일을 만드는 법도 연습해뒀습니다.”

     “칵테일?”

     “술은 그냥 그대로 마시는 것도 좋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는 두 개의 술을 섞어 마실 때 새로운 술이 탄생한다고 하더군요.”

     “…….”

     아스타시아가 입술을 오물거리며 뭔가를 곱씹었다.

     “그거 아십니까? 술 또한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있다는 걸.”

     “복잡한 이야기는 지금 하고 싶지 않은데요.”

     “의전을 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대접하는 술로 상대방에 대한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는 거죠.”

     “…지금처럼요?”

     “예.”

     한 병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으로 마셨던 술.

     다른 한 병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 술을 마신 날, 아마도 내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술.

     ‘확실하지. 근 한 달 내내 이 술만 드셨다고 했으니.’

     만일 다른 술을 마셨다고 한다면 준비하는데 제법 애를 먹었겠지만, 다행히 아버지도 어머니도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두분은 술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른의 시간을 가지자는 일종의 신호였죠.”

     “……흠흠. 그래서요?”

     “이제, 어른의 시간까지 3분 남았습니다.”

     아스타시아가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술을 바라본다.

     술을 마시는 것이 어른이 되는 의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는 당장 저 시침과 분침이 ’12’를 향해 넘어가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기대되십니까?”

     “그럼요. 오늘만을 기다려왔는 걸요.”

     “언제부터요?”

     “으음….”

     아스타시아가 잠시 고민하더니.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바라왔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침대에서 앞으로 손을 쭉 뻗어, 자기 몫의 잔을 들었다.

     “잔을 잡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군요. 연습하셨습니까?”

     “술은 마시지 못하더라도, 잔을 잡는 법은 교양으로 배웠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또한 내 몫의 잔을 들었다.

     “어렸을 때는 사치를 부린다고 여기에 탄산수를 채워 마시며 어른의 시늉을 냈고, 그 날 이후로는 이 안에 솜누스 차를 우려낸 차를 마셔왔죠.”

     “그 날?”

     “아버지께서 매국노가 되기로 결정한 날.”

     “…….”

     나는 가볍게 잔을 흔들었다.

     “저에게 있어 이 잔은 일종의 트라우마입니다. 아버지께서 이 잔을 들기로 한 날, 가문 내의 첩자를 죽이고 왕국을 배신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 때 이후로…당신은 변하기로 결심한 거로군요.”

     “아니요.”

     틀렸다.

     “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계기가 있다면, 누군가와 서로 사랑하기 시작한 순간부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서로, 사랑.”

     아스타시아가 잠시 내 말을 그대로 따라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은 꿈 속 세상의 그녀들인가요?”

     “…….” 

     “저도, 마냥 바보는 아니에요. 오히려….”

     “누구보다도 똑똑하신 분이죠.”

     아스타시아는 순수해보이지만, 마냥 선인인 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에르윈 황후의 선함을 물려받았다고 해도, 그 나머지 절반에는 합스베르크 황제의 피가 흐르고 있다.

     한 인간의 피를 ‘악함’이라고 표현하는 게 올바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아스타시아는 왕국의 여러 영애들과 같이 머리가 꽃밭이거나 그러지는 않다.

     “그렇지만, 당신은 바보입니다.”

     “예?”

     “몇 번이고 말하지만, 저는 그 꿈을 ‘거짓된 황금’으로 들어가는 세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나는 잔을 내려놓은 다음, 아스타시아의 잔을 빼앗아 테이블에 놓고 아스타시아와 시선을 맞췄다.

     “그, 그레이?”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뿐입니다.”

     “어…그러니까….”

     “쉿.”

     나는 아스타시아의 어깨를 붙잡은 뒤, 그녀가 더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항상 그렇지만, 당신에게서는 솜누스 꽃의 맛이 나네요.”

     

     아스타시아가 눈을 깜빡이며 내게 묻는다.

     “술을 마시자는 게 신호라면서요?”

     “꼭 술을 마셔야만이 어른이 되는 건 아니죠. 어른의 시간을 가지자는 신호일 뿐.”

     “……흐응.”

     아스타시아가 시선을 시계로 돌린다.

     “술도 안 마셨는데, 어른의 시간을 가져도 되는 건가요?”

     “어른이 될 테니까요.”

     셋.

     “아스타시아.”

     둘.

     “사랑합니다.”

     하나.

     “이 순간만을 기다린 건.”

     제국력 100년, 1월 1일 00시 00분.

     “당신 뿐만이 아니니까.”

     와장창ㅡㅡㅡㅡ!!

     “…….”

     아스타시아의 눈이 질끈 감긴 순간.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아스타시아에게 입술을 맞춘 뒤, 바로 방을 뛰쳐나갔다.

     소리가 난 곳을 향해.

     우리가 성인이 되는 날.

     나리아가 성인이 되는 날.

     그걸 기다린 건, 우리만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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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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