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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9

    <299 – 부모의 마음으로>

     

    칠일차의 경매를 끝마치고 경매장 바닥에 누워서 모래성 쌓기를 하고 있자니 투쾅투쾅 요란한 소리가 저 멀리 크루즈선에서부터 들렸다.

     

    “힝. 다들 재밌겠다. 나만 빼고 놀고 있어.”

    “지금이라도 배로 돌아가십시오. 그러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습니다.”

    “흥. 절대로 싫어요. 뭘 위해서 잔뜩 모아온 포인트인데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가겠어요?”

     

    9만 포인트의 지출쯤은 남은 포인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경매장의 안전구역은 경매시간이 아니면 개방되지 않습니다. 나가계십시오, 아가씨.”

    “힝. 조나 미워.”

     

    밖으로 나오자마자 좋다고 달려들어야 했을 자이언트킹크랩들은 뜻밖에도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거나 그냥 지나쳤다.

    암흑마나의 신묘한 공능이나 업적효과 때문은 아니고 훨씬 간단히 사냥할 수 있는 먹잇감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리프. 에이프릴. 참가자로 참석한 이상 두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만 나가십시오.”

     

    리프가 안전구역 밖으로 나왔다.

    자이언트킹크랩들은 여전히 안전구역 안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에이프릴이 슬쩍 경계 밖으로 발을 올리자 다각다각 사방에서 게 걸음소리가 울렸다.

    에이프릴이 도로 경계 안으로 발을 집어넣자 게들이 실망한 것처럼 다시 바위 위에 납작 앉았다.

     

    “제가 먹이로 노려지고 있었습니까…”

     

    에이프릴은 빠르게 기권했다.

    참가자 자격을 잃더라도 안전구역 안에 머무를 줄 아는 것도 객기를 부리지 않고 살아남는 지혜였다.

     

    “리프. 리프도 빨리 포기하면 안 돼요?”

    “그건 곤란합니다. 참가자의 자격을 얻는 것은 몹시 귀한 경우기에.”

    “치사해요. 학생끼리만 경쟁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리프가 남아버리다니.”

    “걱정 마십시오. 아가씨보다 많은 포인트를 모아오지는 못했으니.”

    “리프는 얼마나 모았는데요?”

    “분하게도 900만 포인트밖에 모으지 못했습니다. 천만 포인트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암살메이드로서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암살메이드는 천만 점이 기준점이구나!

    고인물의 시선에서 보기에도 상당히 위협적이다.

    그 용사의 두배나 되는 포인트를 내민 시점에서 충분히 놀라울 수밖에 없긴 하지.

     

    “설마 장학금을 받아온 건 아니죠?”

    “아가씨. 학생들 사이에서 놀다 오셨다고 저를 너무 얕보시는군요.”

     

    딱밤 포즈를 취하는 손을 피해 가볍게 회피를 거는데 따악! 소리와 함께 눈앞이 새하얘졌다.

     

    “아얏!”

    “아가씨의 성장력은 인정해도 아직 완성된 실력자들에 비하면 부족함이 많습니다. 가르칠 일이 많다는 점에서는 모시는 입장에서 기쁠 따름입니다.”

    “씨잉. 분명 피했는데.”

     

    이건 사술이야!

     

    “도전해보시겠습니까? 오늘 하루, 암살메이드의 비기 <벌레잡기>의 회피에.”

    “다 하면 뭐 먹어요?”

    “아가씨께서 처음 먹어보는 레어등급 보존식을 드리겠습니다.”

    “와! 신난다!”

    “대신 경매가 시작할 때까지 도전에 실패하면 맛없는 일반등급 샐러리 요리를 드셔야 합니다.”

    “와…! 신 안 난다……!”

     

     

    * *

     

     

    청소메이드 에이프릴의 허접한 몸재간과 달리, 리프의 움직임은 읽기가 까다로웠다.

    언제 어디서나 주인의 움직임을 읽어내고, 소리 없는 걸음으로 감각을 거스르지 않고 파고들며, 한번 손을 쓰면 어느새 당해있다.

    치렁치렁한 롱스커트 아래로 대체 어떤 요망한 발놀림을 하는 걸까.

    조신한 차림새와 달리 사람 마음을 쥐락펴락 흔드는 음흉한 기술의 실체는 무엇인가!

     

    [안목 기능이 낮습니다.]

    [관찰의 정밀도가 낮습니다.]

    [자동기술분석에 실패합니다.]

     

    놀랍게도 리프의 기술은 카피에 실패했다.

    자기 기술 아까운 줄도 모르고 아낌없이 다 드러내는 아카데미 저학년들과 달리, 리프의 기술은 극도로 은밀했다.

    하지만 이 오크노디님의 눈은 속여도 뛰어난 머리마저 농락할 수는 없는 법!

     

    “이러면 어때요?”

    “암흑장막을 지면에 매설했다가 의도적으로 열어둔 틈으로 공격을 유도해서 장막으로 딱밤을 저지하는 재주는 칭찬해드리겠습니다.”

    “헤헤. 칭찬 받았당!”

    “50점입니다.”

    “…50점이요?”

    “아카데미 저학년을 상대로는 충분히 통할 기술이지만 이곳은 아카데미 외부. 평가기준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백점 만점에 오십 점이요??”

    “장막에 점착속성을 추가했다면 장막 특유의 빠른 전개력과 합쳐 상대의 움직임을 봉인하는 속박트랩이 되었을 겁니다.”

    “그래도 이러면 못 때리잖아요!”

    “잊으셨습니까? 금일 목표는 방어술이 아닌 회피술임을. 회피조차 필요 없을 정도의 속박이라면 인정해드릴 수 있었겠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리프가 암흑장막이 매설된 얼음방벽 앞에서 발을 쿵 구르자 흡착마나를 감지한 장막이 지 멋대로 쑥쑥 딸려 나왔다.

     

    “같은 마법도 속성력을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를 발휘하고 간단히 파훼할 수 있습니다. 상대도 아가씨처럼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능동적인 대응책을 세우십시오.”

    “힝. 원작보다 난이도가 더 올라갔어. 하드코어모드는 너무 빡세.”

     

    덕분에 맛없는 노말등급 산채비빔밥을 먹게 됐다.

    갈색나물은 먹으니 손이 저리고 자색나물은 손가락이 막 따끔거렸지만 기합을 넣어서 암흑마나로 독성을 배출하니 멀쩡해졌다.

     

    “내기는 졌지만 경매는 달라요!”

     

    뭐든 나오기만 해라.

    아주 혼쭐을 내주마!

     

    “무인도경매 여덟 번째 상품을 공개하겠습니다. 오늘의 상품은 <아카데미 식당메뉴를 1년간 영양만점 런치세트로 통일하기>입니다.”

    “!?!?!?!?”

     

    아니 세상에 어떻게 저런 흉악한 상품이 존재할 수가 있지!?

    식품도감 수집을 1년간 반 강제로 봉인한다니 저건 너무하잖아!

     

    “경매 시작가는 50만 포인트. 시가는 50만씩 올리겠습니다. 입찰에 참여하실 분 있습니까?”

     

    조나가 나와 리프를 보며 물었다.

    리프는 굉장히 구미가 당겨했다.

     

    “아가씨의 영양소를 챙겨드릴 수 있다니 이건 참을 수 없군요. 오십만 포인트를 부르겠습니다.”

    “안 돼!! 무료로 즐기는 식품도감수집이 봉인되는 건 손해가 너무 막심해. 백만 포인트로 막겠어요!!”

     

    에이프릴이 어이 없다며 투덜거렸다.

     

    “먼저 탈락한 애들이 저딴 상품에 백만 포인트를 태우는 꼴을 봤어야 했는데.”

     

    입찰가는 거침없이 올라갔다.

     

    “리프. 150만 포인트.”

    “오크노디. 200만 포인트.”

    “리프. 300만 포인트.”

    “오크노디. 400만 포인트.”

     

    리프는 아주 홀가분한 얼굴로 손을 뺐다.

     

    “가지십시오. 아가씨의 풍요로운 식사를 응원하며 기꺼이 상품을 양보해드리겠습니다.”

     

    당했다.

    음식에 약한 약점을 이용해서 포인트를 거덜 내다니.

    약점상품의 목적이 포인트를 증발시키기 위한 것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뼈저리게 아프다.

    하지만 의심도 든다.

    이건 내가 새로운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하고 같은 음식 먹기를 싫어해서 나온 상품일까.

    아니면 식품도감의 메커니즘을 깨닫고 도감수집을 하는 내 행보를 방해하려는 의도로 세운 상품일까.

     

    ‘모르겠어!’

     

    리프도 조나도 모두 포커페이스의 달인.

    언제나 험악한 얼굴의 조나도, 언제나 냉막한 얼굴의 리프도 가면을 쓴 것처럼 단단한 얼굴표정 탓에 속 감정을 읽어낼 겨를이 없었다.

     

    “내일 경매는 당하지 않아요!”

    “기대하겠습니다.”

     

    리프가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로 웃는 표정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 *

     

     

    전날보다 한결 화려해진 폭음에 배 주변의 해역이 얼어붙고 불보라가 내리치고 난리가 났다.

    애들은 좋겠다.

    불꽃놀이도 하고 얼음놀이도 하고.

    모래사장에서 모래성을 쌓다가 멍하니 크루즈선을 바라보니 등껍질이 터진 자이언트킹크랩을 리프가 질질 끌고 왔다.

     

    “아가씨는 아직 성장기입니다. 저녁은 드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입맛 없어요…”

    “삐지셨습니까?”

    “흥. 누가 삐졌대요? 하나도 안 삐졌거든요? 흥흥.”

    “그런 걸 사회에서는 삐졌다고 부르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했습니다.”

     

    리프가 자이언트킹크랩의 껍질을 뚝 따자 안에서 맛있는 냄새와 김이 모락모락 뿜어져 나왔다.

     

    “아가씨와 함께 먹으려고 3시간동안 요리한 자이언트킹크랩 게딱지 내장볶음밥입니다.”

    “우와. 무슨 볶음밥이 3시간이나 걸려요? 비장의 조리법을 사용해서?”

    “불을 지피는데 1시간이 걸렸습니다.”

    “2시간은 약불로 볶는데 썼어요?”

    “장작을 구하는데 2시간을 썼습니다.”

     

    섬 전체에 초목이란 초목은 불에 한번, 얼음에 한 번, 금속에 한 번 쓸려나갔다.

    땔깜 구하는데 애를 먹을만도 했겠다.

    리프의 정성이 느껴지자 서운했던 마음이 얼음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헤헤. 리프 짱 조아!”

    “보고로도 받았지만 아가씨는 새로운 취미가 많이 생기셨군요. 모래성 쌓기가 그리 즐거우십니까?”

    “훌륭한 성에는 보물상자가 생기니까요! 일퀘 보물상자 랜덤득템은 못 참죠!”

    “…도와드리겠습니다.”

    “갑자기요? 전에는 잘 시간이라고 혼내셨잖아요.”

    “나쁜어른은 원래 밤에 잠을 자지 않습니다.”

    “그럼 저도 나쁜아이?”

    “저한테는 귀여운 아가씨일 뿐입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역시 가족이 최고지.

    조나와 리프랑 함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 *

     

     

    친구는 많지만 실상은 대부분이 추종자인 아가씨.

    진정으로 서로 마음을 연 친구들도 실력차이가 심해서 함께 수련을 하지도 못하고 홀로 모래사장에서 모래성쌓기 놀이나 하는 아가씨.

    자료를 받을 때에도 생각했지만 참 안타깝다.

    너무 강해서 고독하고 외로운 아가씨가.

    저토록 강한 힘과 재능을 지니고도 실상은 그저 놀고 싶을 뿐인 아이라는 사실이.

    그 사실을 외면하고 무인도 경매처럼 흉흉한 실험이나 하는 재단과 그에 협력하는 자신의 처지가.

     

    ‘하룻밤쯤이라면 괜찮겠지. 아가씨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것도.’

     

    아이는 아무리 자라도 걱정이 된다는 부모의 마음을 깨달은 리프였다.

    모래성 따위를 쌓아봤자 보물상자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을 리가 없다.

    아이의 동심 비슷한 거겠지.

    어디서 별난 그림책을 읽은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장단을 맞춰주자.

    아이와 노는 건 원래 그런 법이니까.

    암살메이드의 손재주를 적극 발휘해서 모래성을 만들던 리프.

    성벽의 문양까지 단검으로 슥슥 그어가며 불에 타다 남은 재와 얼음조각을 섞어 불과 얼음의 모래성을 제작해낸 순간, 눈부신 빛이 모래성 안에서 뿜어져나왔다.

    신이 난 오크노디가 성을 와르르 부수며 안에 깃든 보물상자를 꺼냈다.

    그 꼴을 본 리프의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이게 왜 진짜지?’

     

    진짜 보물상자가 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매일 혼자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에서 모래성을 만드는 불쌍한 아이가 아니라 성실한 일퀘노동자였던 오크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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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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