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99

    지구의 그림자에 집어삼켜진 우주 정거장.

    여자는 그런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을 뿜어내는 괴생명체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우주 정거장은 물론, 지구상에서도 본 적 없는 기이한 모습의 생명체였지만, 이상하게도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밍!”

    귀여운 울음소리.

    품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크기.

    마음의 안정을 주는 따스한 황금색 빛의 두 눈.

    비가 온 다음 날의 풀내음을 닮은 상쾌한 민트 향기.

    아마 괴생명체를 이루는 이런저런 요소들이 모두 합쳐져서 그렇게 느껴지는 거겠지.

    여자는 무심코 손을 뻗어 쓰다듬고 싶었지만, 오브젝트 연구원으로 봐왔던 오브젝트들이 생각나 그 행동을 멈췄다.

    저런 식으로 무해해 보이는 외관을 하거나, 그렇게 느껴지게 만드는 정신 오염을 지닌 오브젝트는 경계해야만 했으니까.

    손을 대는 순간 손목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저 괴생명체의 입이 수상하게 느껴졌다.

    손을 가까이하면 저 입으로 냠냠 해버릴 것 같은 기분!

    여자는 안전을 위해 괴생명체를 쓰다듬고 싶은 마음을 참으려고 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우주 속에서 쓸쓸히 죽어갈 텐데, 귀여운 소동물 같은 오브젝트 좀 쓰다듬어도 별 차이가 없는 거 아닌가?’

    당장 그림자에 삼켜진 정거장에 드리운 끝없는 추위 속에 얼어 죽을 확률도 높았다.

    자포자기의 마음과 외로움 그리고 추위가 어우러져, 여자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여자의 손끝이 촉촉할 것 같은 녹색 표면에 닿자,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밍?”

    마치 고급 모피를 만지는 것처럼 부들부들하고, 핫팩처럼 따끈따끈했다.

    “따뜻해.”

    여자는 그 온기에 취해서 천천히 괴생명체를 품에 안았다.

    “정말 따뜻해.”

    품 안에서 박동하는 따스한 온기를 느끼자, 여자는 괴생명체를 꽉 끌어안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홀로 남은 정거장에서 느꼈던 공포와 외로운 감정들이 온기에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아직도 생존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이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니 그런 걱정이 사그라들었다.

    “미이잉!”

    하지만 괴생명체는 불편한지, 여자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렸다.

    “하하.”

    그 모습이 어쩐지 귀엽고, 우스워서 여자는 웃었다.

    그렇게 여자는 녹색 달에 점거된 뒤 처음으로 소리 내서 웃을 수 있었다.

    ***

    마치 양탄자처럼 수풀이 폭신폭신하게 자라난 세희 연구소 안뜰.

    나는 침대처럼 부드러운 잔디 위에 누워서 VR 헤드셋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얼마 전에 세희 연구소를 찾아왔던 청이 선물로 주고 갔는데, 지금에서야 생각이 닿아서 처음으로 써보는 중이었다.

    청 일행은 미니 사신을 데리고 있어서 꽤 오랜 기간 세희 연구소에서 머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금방 떠나가 버렸다.

    전 세계를 여행하고 다닌다고 했던가?

    그 말을 듣고 나도 ‘여행이나 가볼까?’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왠지 귀찮을 것 같아서 단념했다.

    내가 여행만 가면 온갖 사고가 터지니까, 집에서 편안히 누워있는 쪽이 낫겠지.

    청과 함께 왔던 롤케이크 인간 쪽은 롤케이크의 맛에 현혹된 황금 사신 하나를 분양받았다.

    롤케이크 인간은 오브젝트인데도, 이상하게 미니 사신들이 나름대로 관심을 보이곤 했다.

    아마 미니 사신들은 정원 소속 간식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거랑 비슷한 현상이겠지.

    그렇게 VR 헤드셋을 뒤집어쓴 채 누워있었더니, 황금 사신이 VR 헤드셋 안으로 꾸물꾸물 기어들어 오고 있었다.

    황금 사신은 내 볼 쪽에서 천천히 내 눈 근처로 기어들어 왔다.

    ‘엄마!’

    내가 TV를 보고 있을 때는 얌전히 내 근처에 있던 미니 사신들이었지만, 내가 VR 헤드셋을 뒤집어쓰자, 이상하게 자꾸 그 안으로 밀고 들어오려고 했다.

    그렇게 VR 헤드셋 밑 공간에 머리만 들이민 황금 사신이 벌써 4번째였다.

    내가 몸을 일으켜서 잔디 위에 앉자, VR 헤드셋 밑으로 황금 사신 4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마치 교수형 당한 느낌으로 머리만 VR 헤드셋 속으로 쏙.

    ‘이건 미니 사신들이 있을 때는 못 쓰겠네.’

    내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VR 헤드셋을 벗자, 4명의 황금 사신도 후두둑하고 내 무릎에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VR 헤드셋을 대충 안뜰에다 던져두고, TV를 보기 시작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오브젝트의 영향으로 보이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식물들은 하룻밤 사이 크게 자라나고, 이미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동물들이 다시 출현하는 등 지구 생태계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는데요,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의 오브젝트 전문가들조차 그 원인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면서 전 세계인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미국 오브젝트 협회는 오늘 공식 성명을 통해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우주에서 관측된 녹색 달 때문일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현재로서는 우주 공간에 있는 이 특이한 오브젝트를 직접 제어하거나 제거할 방법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각국의 오브젝트 협회와 연구소들은 녹색 달에 대한 긴급 조사에 착수했지만, 아직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우주 공간에서 지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오브젝트를 다루는 것은 인류에게 새로운 도전입니다.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녹색 달을 제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입니다.”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녹색 달!’

    나는 그 뉴스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내 무릎에 앉아있던 황금 사신들이 굴러떨어졌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드디어 녹색 달이 나타났어.’

    사실 여러 가지 색깔의 달들을 해치우면서 생각하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것은 강철탑의 파괴.

    강철탑과 강철탑의 파괴 조건, 그리고 강철탑 위에서 볼 수 있는 풍경.

    <Nostalgia>라는 두루뭉술한 파괴 조건과 형형색색의 달이 떠오른 풍경은 분명 연관이 있어 보였으니까.

    게다가 내가 달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내 추측은 점점 현실성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철탑을 파괴할 마지막 조각이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녹색 달을 해치우려고 마음먹었더니 문제가 하나 있었다.

    ‘우주는 어떻게 가지?’

    아무리 오브젝트라도 구름 고기로는 그렇게 높이 날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역시 로켓 같은 현대 문물을 타고 가는 수밖에 없나?’

    안타깝게도 미니 사신들과 놀고먹기 바쁜 세희 연구소에는 로켓을 만들만한 기술력이 없어 보였다.

    꽤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 순간, 내 뇌리에 ‘초대형 검은 사신 발리스타로 발사되기’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지만, 우주여행은 생각보다 훨씬 정교해야 한다는 것이 떠올라서 포기했다.

    우주 미아가 되면 서글플 것 같아.

    진짜 어떡하지?

    ***

    엄마가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는 세희 연구소 안뜰.

    녹색 달의 영향인지, 발목까지 푹 잠겨버릴 만큼 높이 자란 잔디 사이에서 미니 사신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찾았다!’

    그런 미니 사신 중, 황금 사신이 행복한 표정으로 의지를 내뿜었다.

    그런 황금 사신의 손아귀 안에는 조그마한 새 한 마리가 잡혀있었다.

    녹색 달의 영향으로 세희 연구소에서 자연 발생하기 시작한 미니 오목눈이들이었다.

    자기 머리만 한 오목눈이를 잡은 황금 사신은 머리 위에 오목눈이를 올리더니, 안뜰에 모여있는 미니 사신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작은 아기 새!’

    미니 사신들은 황금 사신이 데리고 온 오목눈이를 둘러싸고 자신이 아끼던 간식을 조금씩 잘라서 먹이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밖에도 미니 햄스터나 미니 토끼등이 미니 사신들에게 붙잡혀 애호받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구경하던 연구원은 한 가지 의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세희 연구소에는 저런 터무니없이 작은 ‘미니 생물’들만 생기는 걸까요?”

    “모르죠. 하지만 귀여우니까 좋지 않나요?”

    그 대화는 오브젝트 전문 연구원들의 대화라고 생각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그때 서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부소장실에 앉아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녹색 달 현상이 초자연적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 및 대중 인식과의 상관관계 분석>

    <서론: 최근 발생한 녹색 달 이후, 봉황과 드래곤 등 초자연적 생명체들이 출현하였다. 이 연구는 대중 인식이 녹색 달의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자 한다.>

    <….>

    <결론 및 제언: 녹색 달 현상으로 인해 초자연적 생명체들이 출현하였으며, 이들은 대중의 인식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보고서 밑에는 볼펜으로 휘갈겨 쓴 메모가 하나 있었다.

    <그렇다면 세희 연구소는?>

    ***

    송파구 외곽, 제임스 타워.

    제임스 타워 내부에 마련된 커다란 시설 안에서 제임스 타워 직원들의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녹색 달을 해결하기 위한 긴급 티라노 프로젝트였다.

    한국 오브젝트 안전 관리 협의회와 미국 오브젝트 협회의 이례적인 협력 아래, 발사대부터 로켓까지 전부 미국에서 공수해 올 수 있었다.

    다크 서클이 굉장히 짙어서 피곤해 보이는 제임스는 설계도를 내려다보며 작업을 체크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회색 사신이 관심을 보이겠지.”

    그런 제임스의 지친 눈동자에는 거대한 로켓이 비치고 있었다.

    황금색으로 번쩍번쩍 빛나고, 티라노 모양을 한 골든-메카-티라노 로켓이었다.

    다음화 보기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