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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저, 저한테 계약금을 주시겠다고요? 그것도 5000만원?”

         

       “그래.”

         

       내가 형제기획 전속 계약서를 보고 놀랐던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내가 계약하기만 해도 계약금으로 우리 가족이 진 빚 2억 중 5000만원을 변제해준다는 것.

         

       연습생한테 계약금이라니…, 그것도 5000만원이나….

         

       보통 아무것도 없는 연습생과 계약할 때 계약금을 주는 회사는 없다.

         

       설사 연습생의 재능이 너무 출중해 계약금을 준다 하더라도 5000만원이라는 거금을 주지는 않지.

         

       이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가 이내 침착함을 찾고 다시 계약서를 읽기 시작했다.

         

       어쩌면 계약금은 미끼고 어느 부분에 어마어마한 독소조항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없어….’

         

       나머지 조항들도 내게 좋으면 좋았지 내게 불리하거나 나를 강제로 억압하는 조항들은 없었다.

         

       혹시 몰라 5번 다시 정독하고 나서야 나는 인정할 수 있었다.

         

       이 계약서…, 내게 어마어마하게 유리한 것이었다.

         

       “왜….”

         

       “…?”

         

       “제게 왜 이렇게 잘해주시는 거예요…?”

         

       지금까지 얼마나 데여 왔던가.

         

       세상은 절대 따뜻한 곳이 아니다. 피가 섞인 가족까지 미워하게 만드는 이 세상에서 나는 이런 따뜻한 계약서를 믿을 수 없었다.

         

       “…설마 아저씨 스폰….”

         

       “농담이라도 그런 개소리 다시는 하지 마라. 너랑 나랑 나이가 몇 살 차이인지는 아냐?”

         

       “…….”

         

       …정색을 하는 걸 보니 정말 기분 나빴나보다.

         

       그래…, 강형만이 그런 양아치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계약서가 다 진짜라는 건데….

         

       ‘어떡할까….’

         

       내가 진지하게 아이돌을 진로로 고민하고 있다면 눈앞의 계약서는 최상의 것이 맞다.

         

       하지만….

         

       ‘역시 고민을 더….’

         

       이 계약서의 기한은 5년.

         

       그것은 이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내가 형제기획에 법적으로 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5000만원을 한 번에 얻을 수 있다는 눈앞의 이득에 속아 서명했다가 나중에 후회할 수 있으니 고민을….

         

       쾅.

         

       “여기다가 찍으면 되죠?”

         

       “…….”

         

       그때 내 법적 보호자인 아빠가 주저 없이 자신의 서명란에 도장을 찍었다.

         

       “계약금은 빚에서 변제해주는 대신 지급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계좌를 가르쳐 드릴 테니….”

         

       …이런 미친.

         

       ‘저것도 아빠라고….’

         

       물론 내가 서명하지 않는 이상 법적 효력이 없다 해도….

         

       ‘어떻게 계약금만 보고 딸의 미래를 주저 없이 결정하는 걸까.’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꼬옥.

         

       “예린아.”

         

       “…엄마.”

         

       엄마가 인자한 표정과 함께 내 손을 꼬옥 잡아 왔다.

         

       너무나도 푸근한 미소와 따뜻한 감촉의 손.

         

       마치 나를 위로하는 듯한 엄마의 표정에 서운했던 마음이 사르르….

         

       “어서 펜 잡아. 얼른 싸인해야지.”

         

       “…….”

         

       …사르르 녹기는 개뿔 씨이바….

         

       “예린아, 뭘 고민하는 거야. 5000만원 얻기가 쉬운 줄 알아?”

         

       “네가 이렇게 아이돌 할 수 있는 얼굴인 것도 다 엄마, 아빠 덕분이니까 나중에 엄마 아빠 늙으면 꼭 효도해야 한다?”

         

       “…….”

         

       한국에는 고려장이라는 허구의 풍습이 있다.

         

       하지만 우리 엄마, 아빠한테는…, 그 허구의 풍습을 실제로 해주고 싶다는 불효막심한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

         

         

         

         

         

       결국 나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꼭 부모님 때문만은 아니고….

         

       “정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떠냐?”

         

       “…어떻게요?”

         

       “이번 ‘나의 아이돌 아카데미아’를 마칠 때까지만 유예 기간을 두고 만약 그 후에 계약을 원치 않는다면 계약을 해지하더라도 5000만원 외에 별도의 위약금을 물지 않겠다.”

         

       “……!”

         

       …강형만이 새로운 계약 조항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유리한 조항이 하나 더 추가되니 나는 지체 없이 도장을 찍었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해지해도 되니 내가 절대 손해 볼일 없는 계약이었다.

         

       “꺄르르~, 꺄르르~.”

         

       “감사합니다~ 강 사장님!”

         

       자신들의 빚 5000만원이 변제된다는 사실에 만족한 건지 아빠, 엄마는 웃는 얼굴로 강형만과 부하들을 배웅해 주었다.

         

       강형만은 그런 내 부모를 벌레 보듯 보다가 같이 배웅 나온 나를 구석으로 이끌고는…..

         

       “…잠시.”

         

       “……예?”

         

       …내 귀에 속삭였다.

         

       “나는 네 부모의 빚 2억에서 5000만원을 변제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게 무슨….”

         

       “대신 네게 5000만원을 입금해주겠다. 계좌 불러.”

         

       “…예?”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잠시 어버버하다가 겨우 정신을 되찾고 물었다.

         

       “아니, 그걸 왜 제게….”

         

       “당연한 것 아닌가. 2억의 빚을 진 건 네 부모고 내가 5000만원의 계약금을 주기로 한 건 넌데 왜 내가 그들의 빚을 변제해 줘야 하는 거지?”

         

       “…….”

         

       “네 부모가 얼마나 억척같은 사람들인지 안다. 집 안에서 얘기했다간 네 부모가 길길이 날뛰었겠지. 그러니 여기서 이야기해주는 거다. 어서 계좌번호나 불러.”

         

       강형만에 재촉에 우물쭈물 계좌번호를 찍으니 곧바로 돈이 입금되었다.

         

       “이번엔 돈 잘 숨기고 그 곱등이들에게 빼앗기지 마라.”

         

       “저…! 잠시만요…! 아저씨…, 5000만원이 아니라 5100만원이 들어왔는데요?”

         

       100만원이 더 입금되자 나는 뒤돌려는 그를 세우고 애타게 불렀다. 그러자 그가 특유의 무표정을 유지하고는 말을 이었다.

         

       “네가 우리 회사에 들어온 첫날이니 용돈 삼아 더 넣었다. 편하게 써라.”

         

       “…….”

         

       그의 말투는 무심했지만 내용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저씨.”

         

       “음?”

         

       “…왜 이렇게 저한테 잘해주세요?”

         

       세상은 차갑다.

         

       그 차가운 세상에서…, 눈앞의 남자는 사채업자라는 잔혹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그가…, 내 몸을 바라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이렇게 친절을 베푸는 것일까.

         

       내가 진지하게 묻자 그가 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불쌍해서.”

         

       “아.”

         

       왠지 모르게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뭣같은 부모 만나서 고생하는 네 모습이 불쌍해서 그랬는데.”

         

       “…불쌍해서, 역시 그랬군요.”

         

       결국은 동정심이었나.

         

       전생에서 고아였기에 나는 타인의 동정심에 무척이나 익숙했다.

         

       부모가 없어서, 가난해서, 불쌍해서….

         

       물론 동정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뒷맛이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새로운 삶에서는 더 이상 동정 받으며 살기 싫었는데….’

         

       역시 나는 전생과 바뀐 게 없….

         

       “아, 물론.”

         

       그때였다.

         

       “너에게 거는 기대가 커서 잘 보이기 위함도 있었다.”

         

       “…예?”

         

       차로 돌아가던 강형만이 잠시 멈추고는 나를 향해 뒤를 돌며 말했다.

         

       “내가 사실 사람 보는 눈이 좋아서 말이야…. 그런데 딱 너를 보자마자 우리 기획사로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

         

       “…….”

         

       “그래서 다소 무리한 조항을 넣어서라도 너와 계약하고 싶었다.”

         

       그리 말하는 강형만의 입가에는 처음으로 작은 미소가 실려 있었다.

         

       마치 한 치의 거짓도 담기지 않았다는 듯한 그의 말투에 나는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얼어붙었다.

         

       ‘나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고?’

         

       내가 그 말뜻을 생각하며 멍하니 서 있자 강형만이 다시 뒤로 돌아 자신의 차로 향했다.

         

       “대답이 되었으면 나는 돌아가도록 하지. 며칠 내로 다시 연락하마.”

         

       “…예, 아저씨.”

         

       “아, 그리고….”

         

       쿵.

         

       그가 차에 들어가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사장님이라 불러라. 너도 이제 우리 식구니까.”

         

       “……!”

         

       그 말을 끝으로 강형만의 차는 우리 빌리가 있는 골목을 떠났다.

         

       나는 강형만과 부하들의 검은색 승용차를 눈으로 쫓으며 아까 강형만이 한 말을 되뇌었다.

         

       “식구….”

         

       강형만은 아무 의미 없이 한 말이겠지만…, 그 단어는 왠지 내 마음을 간지럽혔다.

         

         

         

         

         

         

         

       **

         

         

         

         

         

         

       “어휴, 저 험악한 인간들 드디어 갔네….”

         

       “그러게나 말이에요….”

         

       웃으면서 강형만 패거리를 배웅한 부모는 강형만이 사라지자마자 미소를 지우고 그들의 뒷담을 퍼부었다.

         

       그리고는 아직 여운에 잠겨 있던 나를 향해 몸을 돌리고 말했다.

         

       “그보다 예린아! 우리 얼른 밥부터 먹자. 아이고…, 배가 너무 고파서 뱃가죽이 등에 붙었어.”

         

       “그래, 너무 배고팡…. 들어가면 어서 밥부터 해 줘. 계란후라이도 반숙으로 3개만 부탁해용~”

         

       저녁은 나도 안 먹었고 나도 배고프다.

         

       평소였다면 부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들어가 저녁밥을 했겠지만….

         

       “……아뇨.”

         

       “…음?”

         

       “…죄송해요! 엄마, 아빠! 저 확인해 볼 게 있어서 잠시 시내 좀 갔다 올게요!”

         

       “…에엥?”

         

       확인할 게 있었던 나는 곧바로 저녁밥을 하는 대신 시내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안 돼애애애-! 예린아 이 시간에 어디 가는 거야-!”

         

       “너 없으면 밥은 누가하고-!!”

         

       뒤에서 배고픈 부모의 처절한 외침이 들렸지만 나는 시내로 달렸다.

         

       “허억…, 허억….”

         

       그리고 곧이어 아직 불이 환한 번화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코인 노래방…, 코인 노래방….”

         

       거리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코인 노래방 간판을 찾던 그때였다.

         

       턱.

         

       “저기…, 잠시만요.”

         

       “……?”

         

       누군가가 코인 노래방을 찾던 내 팔을 잡았다.

         

       “…무슨 일이죠?”

         

       “아, 죄송해요. 제가 수상한 사람은 아니고….”

         

       처음에는 평소처럼 번호를 따려는 사람인가 했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이제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명함을 꺼내 내게 건넸다.

         

       “이런 사람인데 학생도 저희 회사 아시죠?”

         

       “…….”

         

       그가 내민 명함에는 제법 규모가 있는 기획사 이름과 함께 실장이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제가 원래 이렇게 아무렇게나 명함 주지 않는데 학생이 너무 눈에 밟혀서요. 혹시 저희 회사 연습생으로 들어올 생각 없어요?”

         

       “…….”

         

       “이번에 저희가 새로 걸그룹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2년…? 아니, 1년. 학생한테는 1년 안에 걸그룹으로 데뷔할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는데 생각 없으세요?”

         

       이 나잇대의 학생들이라면 누구라도 꿈꿀만한 상황.

         

       하지만 나의 대답은 당연히….

         

       “아뇨, 죄송합니다.”

         

       …거절이었다.

         

       애초에 어렸을 때부터 기획사란 기획사 명함은 다 받아 봤던 나다.

         

       그중에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빅3 기획사들도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었다.

         

       그런 내가 겨우 이런 기획사를 택할 리가.

         

       그런데 내가 이리 칼 같이 거절할 줄은 몰랐는지 실장이란 사람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으음, 학생. 내가 한 말의 의미가 얼마나 무거운지 모르는 것 같은데….”

         

       “아뇨, 다 압니다. 그래도 거절입니다.”

         

       “…허어, 학생. 다시 한번만 생각을….”

         

       평소였으면 질척대는 실장을 정중한 말투로 다시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코인 노래방을 찾느라 마음이 급했고….

         

       “아, 괜찮다니까요.”

         

       “……!”

         

       …평소보다 조금 언성은 높이고 말았다.

         

       “아…, 그….”

         

       이에 실장은 나를 잡던 손을 놓고 잠시 당황하다가….

         

       “미, 미안해요, 학생. 이렇게 기분 나쁘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저는 갈 길 가겠습니다…! 화, 화 푸세요…!”

         

       황급히 내게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마치 달아나듯 사라졌다.

         

       “……아.”

         

       나는 기획사 실장이 사라진 자리를 황망하게 바라보다가 내 앞에 서 있는 자동차 사이드미러를 통해 내 표정을 확인했다.

         

       그 속에는 매우 화가 난 것처럼 눈매가 치켜 세워져 있는 차가운 인상의 미인이 있었다.

         

       “후우…, 또 사람을 내쫓아 버렸네.”

         

       전생도 그렇고 이번 생도 그렇고 웃을 일이 없어서 그런지 내 인상은 한없이 차가웠다.

         

       조금만 눈썹을 치켜세워도 몹시 대노한 것처럼 보이고 미간을 찌푸리면 마치 경멸하는 듯한 눈초리가 된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 하면 마치 안면 마비가 일어나는 것처럼 경련이 인다.

         

       이것이 내가 이 외모를 가지고도 연예계를 포기한 첫 번째 이유였다.

         

       아무리 외모가 뛰어나도 표정이 이러면 팬들과의 교감이 전혀 되지 않으니까.

         

       시종일관 무표정에 웃지도 못 하는 연예인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리고 내가 연예계를 포기한 이유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 찾았다, 코인 노래방.”

         

       나는 내가 연예계 특히 아이돌을 포기했던 두 번째 이유를 확인하러 코인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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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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