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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화들짝 놀라서 굳은 나는 발광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발광석에서 난 소리는 아니었다. 

       

       소리가 난 곳은 동굴 반대편.

       정확히는 그쪽에 있는 거대한 돌 선반 위쪽이었다.

       

       실눈을 뜨고 자세히 보니 그 거대한 선반 위에 뭔가 둥그런 게 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뭐지?’

       

       위험하니 가까이 가지 말라는 본능과, 그래도 여기서 당장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뭔지 확인은 해 봐야 될 것 아니냐는 이성이 충돌했다.

       

       “…….”

       

       그리고 잠시 후, 결국 나는 뽑은 발광석을 대충 주머니에 챙긴 뒤 거대한 돌 선반 위로 올라갔다.

       

       “이건….”

       

       난데없이 쩌적 소리를 낸 둥그런 물체의 정체는.

       

       “알…?”

       

       타조알의 세 배 정도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알이었다. 

       

       거기에는 방금의 쩌적 소리를 낸 게 자신이라고 증명하듯, 커다란 금이 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

       

       쩌저적!

       

       한 번 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알에 더 큰 금이 갔다.

       

       “뭐, 뭐야. 설마 깨어나려고? 이 타이밍에?”

       

       그제야 정신이 든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알의 크기로 볼 때 평범한 동물은 절대 아닐 거고, 만약 마물이라면 깨어난 후 자신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지금 자신을 방어할 수단이라고는 아무리 봐도 방금 뽑은 발광석밖에 없었다. 

       

       ‘아무리 마물이라고 해도 태어나자마자 날 죽일 정도로 강하진 않지 않을까?’

       

       그래도 혹시 몰라 마음을 단단히 먹은 나는 뾰족한 발광석을 꺼내 언제든 유사시에 대처할 수 있도록 손에 꼬옥 쥐었다.

       

       그리고 잠시 후.

       

       쩌저저저저적!

       파스슷.

       

       알 껍데기가 무너지며, 안에 있는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리고, 정체를 확인한 나는 발광석을 손에 쥔 채 입을 떡 벌렸다. 

       

       “쀼웃…?”

       

       작고 오동통한 몸통.

       그리고 몸통의 절반 정도는 되어 보이는 크기의 동글동글한 머리.

       짧고 말랑해 보이는 손과 발.

       

       도저히 ‘위협적인 마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비주얼의 무언가가, 무너진 알 껍데기 몇 조각을 머리에 얹은 채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이건….’

       

       하지만 그런 무해해 보이는 부분 이외의 것들, 그러니까 조그만 날개라든지, 꼬리라든지, 특히 아직 덜 여물어 부드럽게 빛나는 은빛 비늘이라든지.

       

       그 모든 것들은 이 존재가 어떤 종에 속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주고도 남는 것들이었다.

       

       ‘설마…. 이거 드래곤이야?’

       

       「레키온 사가」에서 주인공이 성장할 대로 성장한 이후 마왕을 잡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위한 진정한 태평성대를 만들기 위해 토벌하게 되는 존재. 

       

       본디 대륙의 최강자라고 불리는, 입에서는 무엇이든 녹이는 브레스를 뿜고 10서클의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무시무시한 존재.

       

       색깔이나 개체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흉포하고 탐욕적이어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자신의 물건, 재물에 손을 대는 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게임을 했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유일하게 인간에게 다행인 건, 게임 스토리 진행 중에는 많은 용들이 동면에 빠져 있었다는 거였지.’

       

       뭐, 한창 게임을 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안 하면 스토리 진행이 안 될 테니까 제작자들이 그렇게 만들어 뒀나 보다 생각하고 가볍게 넘어갔었다.

       

       ‘실제로 랜덤 캐릭터로 플레이하다가 깨어 있는 레드 드래곤의 심기를 잘못 건드려서 어이없게 죽은 경우도 있었고.’

       

       그런데 그런 무시무시한 존재의 알이, 지금 내 눈앞에서 깨어났다고?

       

       ‘잠깐만. 그럼 내가 들고 있는 이 발광석도 드래곤 거라는 소린데.’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손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꽤 큼지막하고 지금 보니 상태도 최상인 발광석을 나는 드래곤의 레어에서 맘대로 뽑은 것이었다.

       

       이거 큰일 난 거 아닌가 생각할 무렵.

       

       “쀼, 쀼웃…!”

       “응?”

       

       조그만 소리가 다시 알 쪽에서 들려왔다. 

       

       녀석은 조금 불안해진 눈빛으로 나와 내 손에 들린, 당장이라도 내려칠 것 같은 날카롭고 뾰족한 발광석을 번갈아서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의 작은 손은 움츠러든 채 미세하게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아…!”

       

       그제서야 나는 그 애처로운 소리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는 당황해서 황급히 손을 내리며 변명했다. 

       

       “아, 아니. 그러니까 이건 널 공격하려고 그런 게 아니고…. 혹시 몰라서 그냥 들고 있던….”

       

       하지만 때는 늦었다. 

       

       나를 올려다 보던 커다란 눈망울에 물기가 방울방울 맺혔고.

       곧이어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방울져 떨어졌다. 

       

       그리고.

       

       [Lv.1 「해츨링」이 포효합니다.]

       

       “뿌에에에에에엥!”

       

       녀석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

       

       맹세컨대 악의는 없었다. 

       

       안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 가녀린 한 몸 지키겠다고 유사시를 대비한 게 악의는 아니잖은가?

       

       나는 녀석에게 그 사실을 전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니까, 응? 들어 봐. 얘야. 이걸로 널 공격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니까? 유노? 디스 이즈 낫 포 어택.”

       

       나는 말 한마디 한마디 사이에 바디 랭귀지를 섞어 가며 열심히 녀석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설명했다. 

       

       “뿌, 뿌에엥…. 히꾹!”

       

       울며 딸꾹질까지 들렸는지 녀석의 손바닥만 한 가슴이 일정 간격으로 팔딱거렸다.

       

       “이거는 그냥 반짝반짝! 빛나는 돌일 뿐이고. 가져가서 나중에 팔려고 했던 건 맞는데 그건 드래곤 건지 모르고 그랬던 거란다. 응? 우르르, 까꿍!”

       

       이쯤 되면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녀석의 울음을 그치게 해야겠다는 일념 하에, 나는 돌을 얼른 감추고 아이에게 하듯 활짝 웃으며 손을 휘릭휘릭 흔들어 보였다. 

       

       “쀼…. 히꾹?”

       

       오, 효과가 있어?

       

       나는 다시 한번 있는 힘껏 활짝 웃어 보이면서 양손을 얼굴 가까이에서 펼쳐 흔들었다. 

       

       까꿍!

       

       “쀼우…!”

       

       그러자 놀랍게도 해츨링은 그 작은 손으로 내 손짓을 어설프게 따라하며 작게 쀼우 소리를 냈다. 

       

       ‘오오!’

       

       드디어 울음을 그쳤다!

       

       조카 돌볼 때 썼던 까꿍 스킬이 여기서 이렇게 빛을 보는구나. 

       

       나는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좋아. 일단 지금까지 상황은 나쁘지 않다.’

       

       알에서 무지막지한 괴물이 깨어나 나를 덮치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인가. 

       

       ‘안에서 설마 해츨링이 깨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야.’

       

       처음에는 혹시나 드래곤이 아니라 드레이크라든지 와이번이라든지 하는 소형종 비슷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녀석이 울어젖힘과 동시에 뜬 상태창은 분명 녀석을 ‘해츨링’이라고 정의했다.

       

       ‘대체 어째서 이 작은 변두리 마을의 뒷산에 드래곤의 레어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애초에 말이 되나? 

       

       멜른 산에 이렇게 떡하니 드래곤의 레어가 있었다면 내가 게임을 하면서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게다가 비늘의 색깔…. 은빛 비늘을 가진 드래곤은 생전 처음 보는데.’

       

       레드 드래곤부터 시작해 각종 드래곤을 토벌해 봤지만, 그중에 은빛 비늘을 가진 드래곤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자라면서 비늘 색이 바뀌기라도 하나? 게임에선 성체 드래곤만 봤지, 해츨링은 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없네.’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쨌든 얘가 드래곤이라면, 나로선 최대한 관여하지 않는 게 좋아.’

       

       십 년 동안 「레키온 사가」를 해 온 내가 은빛 드래곤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건, 적어도 게임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은빛 드래곤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괜히 내가 여기서 더 깊게 관여했다가 만약 스토리가 꼬여 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만약 원래 은빛 드래곤이 이 레어에서 아주 조용히 평화롭게 살고 있었고, 그걸 가만히 놔두기만 하면 어미 드래곤과 해츨링은 여기서 함께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되어 있었다고 하자. 

       

       그런데 내가 여기서 해츨링을 잘못 건드렸다가 어미 드래곤이 오해해서 인간을 적으로 인식해버리게 된다면…?

       

       ‘주인공이 성장하기도 전에 분노한 용이 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지도 몰라.’

       

       최악의 경우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이 객기를 부리다가 사망해 버릴 가능성도 있다.

       

       그럼 건실한 청년 레온의 가늘고 긴 인생 계획도 물거품이 될 확률이 높겠지. 

       

       ‘그것만은 안 된다.’

       

       어쨌든, 울음을 그치게 하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 나는 어미 드래곤이 오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대충 여기로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고 시간이 꽤 지났다고 가정하면, 아마 지금쯤 하무트교도 포기하고 철수하지 않았을까.

       

       슬슬 출구를 찾아 기어 올라가기 시작하면 나갈 때쯤 딱 맞춰 날이 밝을지도 몰랐다.

       

       “쀼우우.”

       

       다행히 녀석의 기분도 꽤 나아진 것 같고.

       

       그럼 이제 작별 인사를 해 보실까. 

       

       “이제 내가 널 공격하려고 한 게 아니라는 건 알았지? 그럼 난 가 볼게. 잘 있으렴. 앞으로 엄마 말 잘 듣고 착하게 자라야 한다.”

       

       나는 출구 찾기용으로 쓸 발광석을 주머니에서 꺼내려다가 녀석이 또 울음을 터뜨릴까 봐 그만두었다. 그리고 맨손을 흔들어 보였다.

       

       “내가 나가려면 빛이 좀 필요해서, 발광석 하나만 좀 챙겨 갈게. 너희 부모님이 혹시 가져갔다고 화내시면 잘 좀 말해 주라.”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드래곤의 물건을 훔쳐 간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나는 녀석에게 간단히 부탁하고, 돌아섰다. 

       

       “쀼, 쀼우…? 쀼우우….”

       

       그리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나는 상태창의 메시지를 한 번 더 봐야만 했다.

       

       [Lv.1 「해츨링」이 포효합니다.]

       

       “뿌에에에에엥!!”

       “아니, 또 왜?”

       

       나는 어쩔 수 없이 해츨링에게 다시 다가갔다.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그러는 거야? 미쳐버리겠네. 얘야, 좀 그쳐 봐. 응? 너한테 손끝 하나 안 대고 이대로 사라져 준다니까?”

       “뿌에에에에에에엥!!!”

       

       해츨링은 내가 한 발짝 물러날 때마다 더 크게, 동굴이 떠나가라 울어댔다. 

       

       ‘와, 이거 어떡하지?’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러다가 얘 부모가 와서 이 모습을 보기라도 하면….”

       

       은빛 드래곤이 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제일 먼저 이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죽게 생겼다. 

       

       “뿌엥?”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말에 녀석은 울음을 뚝 그쳤다. 

       

       그리고 동글동글한 눈망울로 날 빤히 바라보았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것 같은 눈인데, 갑자기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뭐, 인마.”

       

       반쯤 자포자기한 내 물음에 대답한 건 해츨링이 아니라 상태창이었다. 

       

       [Lv.1 「해츨링」이 고유 특성 ‘이해’, ‘습득’, ‘응용’을 힘껏 발휘합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도 전에, 눈앞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엄마 아빠 업써!”

       

       그 천진난만한 목소리는 나에게 말했다. 

       

       “나 데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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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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