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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달칵!

        

        찰나의 순간 뻗어진 손이 침대 옆에 놓인 묵빛의 권총 한 자루 – 어제 넣어놓지 않았던 – 를, 길다란 뱀의 꼬리가 컴뱃 나이프를 낚아챈다.

        

        용수철마냥 튕겨져 오른 몸이 전투 태세를 갖추기까지는 찰나의 시간조차 걸리지 않았다.

        

        부릅뜬 눈이 직시하는 방향과 정확히 일치하는 총구 궤적이 방을 한 바퀴 휘돌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찌푸려진 인상을 풀고는 총구를 아래로 내렸다.

        

        

        

       “하아….”

        

        

        

        뒤늦게 약간의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아무래도 예전처럼 다시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깥의 풍경. 이미 해가 뜬지는 한참 된 듯했다. 시간은 이미 정오에 가깝게 수렴하고 있었고.

        

        

        

       “….”

        

        

        

        달각.

        

        권총 프레임과 택티컬 나이프는 원래 놓여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근데 생각해보니 권총이랑 택티컬 나이프가 왜 있더라. 이것까진 안 넣어놓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괜히 어제를 탓하는 것보단,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게 더 올바른 행동이었다. 탄창을 빼고 약실에서 마지막 탄환까지 제거한 후, 캐리어의 지퍼를 조금 열어 그것을 낑겨넣었다.

        

        확실히 소화기라 그런지, 기관총과 지정사수소총을 캐리어에 집어넣을 때보다는 조금 더 공허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홀스터를 안 차고 마지막으로 잤던 게 언제더라. 흐릿한 기억을 되새기면서 방에서 빠져나왔다.

        

        

        거실 한복판에 가득히 들어찬 후덥지근한 공기를 만끽하며 냉장고 보조 도어를 지그시 눌렀다.

        

        스며나오는 냉기.

        

        물이 담긴 보틀을 꺼내어 유리컵에 차가운 물을 따르고 목구멍으로 넘겼다.

        

        꼬리로 보틀을 휘감은 후 냉장고 홈바 안에 집어넣고 닫으며 자연스레 욕실로 향했다.

        

        거울 너머로 한 명의 여성이 비쳤다.

        

        

        

       “…엉망이네.”

        

        

        

        따로 신경써서 정리하지는 않은 탓에 검은 머리카락은 적당히 자라있었다. 최소한의 관리만 받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앞머리는 눈을 찌르지 않을 정도의 길이였고, 옆머리 부분은 그냥 좌우 균형 정도만 맞춰놓았다.

        

        뒷머리는 허리까지 치렁치렁 내려온 상태.

        

        그 사이를 비집고 삐죽 튀어나온 뾰족한 귀. 얇은 입술선 너머로 보이는 날카로운 송곳니.

        

        백색의 피부는 여름이란 점 때문인지 꽤나 발개져있는 와중이었다.

        

        한 마리의 뱀을 연상하게 만드는 여성이 거울 너머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이게 나라는 사실에 놀라야만 할까, 아니면 이런 신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무리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나 스스로에게 놀라야만 하는 걸까.

        

        그 무엇도, 그다지 실감이 나지가 않았다.

        

        한 인간의 삶을 뒤흔들 정도로 거대한 충격 없이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정도의 충격은 사람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단 거겠지.

        

        …나는 그 4년 동안, 무엇이 되어버린 걸까.

        

        

        옷을 벗고, 뜨거운 물을 맞으며 수많은 생각들을 곱씹었다.

        

        해야할 일 몇 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 가지고 온 총을 숨기는 일이 제일 급했다. 장소는 이미 알아놓았으니 오늘 안으로 처리해야만 했다.

        

        그 외에도 다른 일들이 좀 있긴 했지만, 그건 차근히 생각해보도록 하자.

        

        

        

       ───스윽스윽.

        

        

        

        수건으로 몸과 머리카락에 묻은 물을 닦아내고, 헤어드라이어로 머리카락을 말리고 나니 이제는 뭘 입어야만 할지가 상당히 걱정이었다.

        

        오늘은 밖을 나가야만 하는데, 그렇다고 군복을 입고 돌아다닐 수도 없고. 집 안에 있는 옷들은 몇 개를 빼고는 하늘하늘한 원피스나 그런 것들이었다.

        

        미치겠네.

        

        

        결국 온 집안을 다 뒤지는 사투 끝에 평범한 청바지와 적당히 두꺼운 티셔츠 하나를 발견했다. 바지는 어째서인지 꼬리 부분이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리폼이 되있었고.

        

        …그렇다면 이 옷은 분명히 나를 위해 만들어진 옷이란 건데.

        

        또다시 궁금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도대체 누가, 왜, 언제 이런 옷을 가져왔는지.

        

        리폼까지 되어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것을 입고 외부 활동을 하라는 의도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 터. 이 세상에 뱀의 꼬리가 달린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이 밖을 나다닐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물건일 확률이 높단 소리였다.

        

        대충 무슨 느낌인지는 알 것 같았다. 돌아온 후, 사흘 간 집에 처박혀 데이터 수집을 명목으로 한 인터넷 탐방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는 듯했으니.

        

        

        

       “…어쩜 이렇게 몸에 딱 맞는 사이즈일까.”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입는 게 맞는 건가? 대략 그런 느낌으로, 거울 속 어딘가 뱀을 닮은 여성 한 명이 의아한 눈길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사이즈도 내가 입는 것과 동일했다. 그렇게 보면 여긴 내 집이 확실했다.

        

        방문을 열자, 미리 싸놓은 여행용 캐리어 두 개가 위풍당당한 기세로 날 반긴다.

        

        차라리 이렇게 된 김에 여행이라도 가면 좋지 않을까 하는 도피성 생각이 거품처럼 뭉게뭉게 떠오르지만, 안타깝게도 저 안에 들어있는 것들은…총과 탄약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어제 싸놓은 짐들이었고, 오늘을 기점으로 더 이상은 볼 이유가 없게 될 과거의 물품들이기도 했다.

        

        

        무슨 암거래상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긴 하지만, 이런 걸 갖고 나가는 나나 암거래상이나 둘 다 공권력에 들켜버린다면 대참사가 난다는 공통점이 있긴 했다.

        

        이런 공통점따위 전혀 원하지 않았건만…어쨌거나 그리 된다면, 내 현실 적응기는 1화 완결이라는 처참한 결말과 함께 종언을 맞이할 것이었다.

        

        그건 안 될 말이다.

        

        

        

       “어쩌자고 이런 큰 총을 가져와서는.”

        

        

        

        현관이 비좁은 건 아니었으나, 캐리어가 원체 큰 탓에 두 개를 한꺼번에 가지고 나오기는 좀 어려웠다. 게다가 MG338은 워낙 길고 무거운 총이라 캐리어에 구겨넣는 것도 일이었고.

        

        양쪽 손에 하나씩 들고, 꼬리로 문 손잡이를 여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을 보았다.

        

        

        

       ───철컥!

        

        

        

       “…날씨는 더럽게 좋네.”

        

        

        

        두 개의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말 그대로 창공을 관통하듯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눈이 아플 정도의 광량이다.

        

        시선을 조금만 아래로 내려다보면 길가가 보였다. 물론 날씨가 날씨라 그런지 바깥을 걸어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길 건너편의 상가에는 그나마 좀 있었고. 게다가 지금은 평일 점심이었고, 거기에 더불어 여름의 한복판이었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지금이 바로 남들 눈을 피해다니기에 좋은 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아….”

        

        

        

        숨을 들이마시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폐 속으로 밀려들었다.

        

        오늘의 습도는 90%, 바깥의 온도는 35도. 폭염이었다. 모두가 진절머리를 내며 집 안에 틀어박혀 에어컨을 가동하고 늘어져있을 날씨지만, 나는 오히려 정말 좋았다.

        

        습도 높은 여름을 만끽할 수 있는 건 어쩌면 파충류들의 특권이 아닐까.

        

        그리 생각하면서 캐리어를 드르르 끌고 복도를 나선다.

        

        

        

       -[목적지까지의 거리 : 5.75km]

        

       -[도착까지의 예정 시간 : 42분 23초]

        

        

        

        대략적으로 6km.

        

        일직선상으로만 표기하면 그 정도였고, 복잡하기로 유명한 서울 도심을 관통해서 이동해야만 하는 터라 저 이동 시간을 믿을 수는 없다.

        

        차라리 걸어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짐을 등에 짊어지고 이동하는 게 아니라 캐리어를 들고 이동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안 하는 게 나을 듯했다.

        

        게다가 그 사이에 끼어있을 수많은 횡단보도들과 시끄러운 차 소음, 그리고 매캐한 공기까지 전부 합산하면…글쎄다. 이걸 어쩌나. 택시라도 타고 가는 게 좋을까.

        

        그러기엔 돈이 없다.

        

        

        

       “…망했네.”

        

        

        

        어쩔 수 없이, 결국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옛날에는 우스갯소리로 BMW를 버스, 메트로, 워킹이라고 했는데, 사실 자가용을 끌고다니지 않는 이들에게는…좋은 걸 넘어 그 외의 방법이 없지.

        

        지하철은 조금만 걸으니 금방 나왔다. 내가 가야만 하는 지점은 그 근처 역과는 좀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원래 지하철이라는 게 주요 허브만 왔다갔다하는 것을.

        

        캐리어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내부로 들어서자 상당히 시원했다.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만, 지상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밀폐된 공간이라 한 번 에어컨을 틀어놓으면 냉기가 밖으로 잘 빠져나가지 않는다.

        

        따뜻한 밖과는 다른 상쾌함을 느끼면서, 카드를 게이트에 찍고는 내가 가야하는 방향이 어디인지 살펴보았으나, 안타깝게도 다음 열차는 조금 늦게 올 듯했다.

        

        대략 7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그렇게 근처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자니, 맛있는 냄새가 났다.

        

        

        

       -[Subway Toast]

        

        

        

       “…오.”

        

        

        

        그 두 개의 단어 조합과, 간판 아래에서부터 풍겨져나오는 짙은 버터 향기.

        

        그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에, 나는 홀린 듯 그곳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어이구. 독특한 손님 한 분이 오셨네. 뭐 드릴까?”

        

       “음….”

        

        

        

        위에 써있는 수많은 종류의 토스트들.

        

        나는 그다지 망설이지 않은 채, 음식을 만들고 계신 인상 푸근한 아주머니 분에게 말씀드렸다.

        

        

        

       “햄 토스트를….”

        

       “햄 토스트? 이거 맛있어요, 학생. 하나면 될까?”

        

       “다섯 개만 주세요.”

        

       “…어우, 내 정신 좀 봐. 알겠어요, 학생. 금방 만들어줄게.”

        

        

        

        뭐.

        

        왜.

        

        이 몸은 연비가 안 좋단 말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02/27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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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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