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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회귀.

       

       한 바퀴를 돌아서 본래의 자리나 상태에 돌아오는 것.

       

       하지만 이는 통계학적 자료에서나 쓰이는 단어이지, 시간의 역행을 다룰 때 쓸만한 단어가 아니다.

       

       적어도 황녀 아리아가 알기로는 그러했다.

       

       “그래서, 지금이 언제라고?”

       “987년이옵니다. 황녀님.”

       “…….”

       

       하지만 그보다 지금 상황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고마워, 소르윈. 내가 꿈결에 헷갈렸나 봐. 이만 가봐도 돼.”

       

       소르윈이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사라진다. 문이 닫히기 무섭게 아리아의 얼굴이 무표정으로 변한다.

       

       ‘아름다우며’, ‘자애롭고’, ‘온후한’ 황녀에게서 나왔다고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정말 신이라는 것이 존재했나.’

       

       아리아는 손으로 침대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부드럽다. 거친 풀밭에서 선잠을 잤던 시절에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촉감은 기억과 일치했다.

       

       아리아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늦은 오후 시간,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바삐 돌아다니는 사용인들이 보였다.

       

       아리아는 그들의 면면을 차례대로 확인했다. 빅토르, 데니스, 위고, 크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이들은 없었다.

       

       기억력도 괜찮고.

       

       마지막으로 확인할 것이 있다.

       

       통각.

       

       아리아는 필통에서 만년필을 꺼내 손바닥에 대고 힘을 주었다. 잉크와 피가 뒤섞이며 바닥을 검붉게 물들였다.

       

       아프다. 하지만 소리를 지를 정도도 아니다.

       

       “하……. 하하하하…….”

       

       휘청.

       

       아리아가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침대 위에 엎어졌다. 

       

       이건 환상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대마법사라도, 설령 ‘그 년’이라고 해도, 이렇게 정교한 환상을 만들수는 없다.

       

       아리아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목을 쥐어짜듯이 온 힘을 다해 짓눌렀다.

       

       마치 그 앞에 누가 있는 것처럼.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얼마나 증오했는지.

       얼마나 죽여버리고 싶었는지.

       너는 알까?

       

       지금도 눈만 감으면 그날의 풍경이 떠오른다.

       

       [네, 네놈이 감히……!]

       [꺄아아악!]

       

       아버지가, 어머니가.

       

       [황녀, 오래는 못 버틴다.]

       

       키엘이, 멜리나가.

       

       [황녀님을 지켜라!]

       [황녀님을 위하여! 끝까지 맞서 싸워라!]

       

       기사들이.

       나를 믿고 피난길에 올랐던 백성들이.

       

       모두, 한 명도 빠짐 없이, 싸그리.

       

       올리비아의 손에 스러졌다. 

       

       까드드드득!

       

       손톱이 살을 파고든다. 떠올리지 않고 싶지만 저주받은 기억력이 그를 허락하지 않는다.

       

       죽었다. 목이 잘렸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됐다. 

       농부 세드릭은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얼어 죽었다. 

       종자 에드윈은 제 부모와 함께 얼어붙었다. 

       

       불과 하루만에 수십만 명이 제국 수도에서 얼어죽었다.

       

       죽을 수 없었다. 절대로 죽을 수 없었다.

       

       하잘것 없는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몸을 불사른 이들의 소망을 저버릴 수 없었다.

       

       최후를 직감한 이들이 뒤돌아 볼 때, 눈빛으로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살라고. 살아 남으라고.

       

       살아 남아서, 저 괴물을 물리쳐달라고.

       

       그래서 악착같이 버텼다.

       

       버티고 버텨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올리비아를 죽이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하지만…….

       

       막을 수 없었다.

       

       창공을 지배하는 드래곤들도, 대수림의 엘프들도, 대양의 어인들도.

       

       결국 같은 최후를 맞이했다.

       

       처음부터 그 여자의 본성을 알아챘다면 달라졌을까?

       

       아리아는 감았던 눈을 떴다. 오른손에서 맺힌 피가 하얀 시트를 붉게 물들였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수건으로 핏물을 닦아냈다.

       

       아리아가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칼리오페 경, 세트 경. 할 말이 있으니 나오도록 하세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폐하께서 밤까마귀 둘을 제게 붙이셨다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당장 나오세요.”

       

       역시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과는 조금 달랐다. 잠시였지만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리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책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촛대에 불을 붙인 다음, 그대로 제 손바닥에 가져다 댔다.

       

       살갗이 타오르며 아릿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단백질 타는 냄새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마침내 까맣게 타들어간 살갗에 불이 옮겨붙으려는 그순간.

       

       “그만 하십시오.”

       

       허공에서 나타난 복면인이 아리아의 손을 잡아챘다.

       

       복면인, 칼리오페는 당황감을 감출 수 없었다. 여태껏 조용했던 황녀가, 하루아침에 독기로 가득 찬 악귀로 변해 있었다.

       

       “이제야 나오시는군요.”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러지 않았으면 나오지 않았겠죠.”

       

       정론이었다.

       칼리오페가 입술을 악물었다.

       

       그림자 기사단, 통칭 밤까마귀.

       황제의 직속 부대인 그들은 황제의 가장 날카로운 비수이자, 황제의 명만 따르는 충직한 심복이었다.

       

       황제는 그들에게 황녀를 보호하라고 명령했다.

       

       아리아가 제 손을 불태운 순간, 명령과 규칙이 서로 충돌했다.

       

       칼리오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고 황녀를 보호하기를 택했다.

       

       “부탁 하나만 하죠. 사람 한 명만 찾아주세요.”

       “저흰 황녀님의 부탁을 들어드릴 이유가 없습니다.”

       

       아리아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들었다.

       

       “이걸로 목을 찌르면 죽을까요?”

       “…….”

       

       펜촉 끝은 정확히 경동맥을 향해 있었다.

       

       “말을 바꾸죠. 이건 부탁이 아니에요. 협박이지.”

       

       칼리오페가 손사래를 쳤다.

       

       “알겠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그러니까 그 망할 흉기 좀 치워주십시오.”

       “이제야 말이 통하네요.”

       

       칼리오페가 졌다는 듯이 얼굴을 감쌌다. 칼리오페가 천장 구석을 향해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잠시 후, 그림자가 꿀렁거리더니 건장한 복면인이 튀어나왔다.

       

       “……대장. 우리 이래도 되는 거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면 편하게 죽어야지. 황녀님 돌아가시면 너나 나나 거열이야.”

       “절 도와주시면 제가 변론 해드리죠.”

       

       아리아의 말에 칼리오페가 헛웃음을 지었다. 

       외통수였다.

       

       “그래요, 황녀님. 누구를 찾아드릴까?”

       

       

       *****

       

       

       아리아는 칼리오페와 세트가 사라진 창밖을 응시했다.

       

       정보 탐색에 능한 그들이라면 제국 전체를 뒤지는 데 며칠 걸리지 않을 것이다.

       

       마법사 하나의 위치쯤이야, 금방 알아낼 수 있겠지.

       

       최후의 순간까지 증오해 마지않던 신은 결국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다.

       

       마침내 복수의 시간이 찾아왔다.

       

       

       ****

       

       

       올리비아는 귀를 긁으며 물었다.

       

       “그래서 저길 뭐라고 부른다고?”

       “르나스라고 부릅니다.”

       “들어본 적 없는데. 너 마지막으로 유희 나간 게 언젠데?”

       “그…….”

       

       글레이시아가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15년 전입니다. 제가 레어 밖으로 나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

       

       생각보다 더 심각하네.

       

       “그럼 제국력으로 몇 년인지는 알아?”

       “아, 네. 지금이 아마……987년입니다.”

       

       올리비아가 볼을 긁적이며 생각했다.

       

       ‘987년이라.’

       

       튜토리얼의 시작 날짜와 같았다. 엔딩을 봤을 때가 제국력으로 딱 천 년이었으니, 가장 마지막에 죽었던 아리아 황녀는 총 13년 치 기억을 가지고 회귀한 셈이다.

       

       ‘그나마 다행이네. 아예 어린 시절로 회귀했으면 어쩔 뻔했어.’

       

       중년의 연륜을 갖춘 아리아를 상대하라고?

       

       ‘그건 좀.’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해지는 건 올리비아 자신이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조건이 ‘새로운 엔딩을 보는 것’으로 거의 확정 된 만큼, 갈수록 강해지는 놈들을 상대로 도망치는 건 한계가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만약 행동에 제약이 있다는 사실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결국 조력자의 존재는 필수불가결이다.

       

       “네가 아는 사람 중에 강하다 싶은 놈들 있으면 이름 좀 불러봐.”

       “이름 말입니까?”

       “그래, 이름.”

       “아, 그……제가 친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는 사람 중에서. 임마.”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머니랑 아버지밖에…….”

       “소문이든 뭐든 다 괜찮으니까 말해보라고.”

       “…….”

       “없어?”

       

       글레이시아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치겠네.”

       

       한 번 참고라도 해볼 겸 물어봤건만. 

       

       역시 화이트들은 사람 속 뒤집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매를 버는 재능이라고 해야 하나.

       

       “근데 강한 사람은 왜 찾으시는 겁니까?”

       “알아서 뭐하게.”

       “시, 시비를 걸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주인님 정도면 재능 있는 놈 아무나 잡아다 키워도 강하게 만드실 수 있잖아요!”

       “그게 말이 되는…….”

       

       

       올리비아가 말하다 멈추고 턱을 쓰다듬었다.

       

       ‘잠깐만.’

       

       적당히 재능 있는 놈들, 그러니까 80레벨 수준의 ‘잠재력’이 있는 사람은 약간 과장해서 대륙에 천지 삐까리만큼 있다.

       

       다만, 걔들을 키우는 것보다 주요 NPC들 붙잡고 있는게 몇 배는 효율이 좋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 뿐이지.

       

       “말 한 번 잘했다.”

       “헤헤. 그렇습니까?”

       “근데 누구 마음대로 주인님이라고 부르냐?”

       “어, 그러니까, 이름을 안 알려주시길래…….”

       “그래서 내 잘못이다?”

       “아, 아닙니다! 멍청한 제 잘못입니다!”

       

       글레이시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 이놈은 진짜 미친놈이야.’

       

       눈만 감으면 방금 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엉덩이만 살짝 든 채 헐떡이는 모습은 고고한 드래곤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솔직히 눈 앞에 있는 게 인간이라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인간이 로드인 제 어미보다 짙은 냉기를 품고 있단 말인가.

       

       “너 나랑 일 하나만 하자.”

       “예?”

       

       글레이시아가 당황스런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올리비아가 몸을 빙글 돌려 산맥 너머를 가리켰다.

       

       정확히는 그 꼭대기에 세워진 백색 마탑을.

       

       “일이라면 정확히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건지…….”

       “납치.”

       “…….”

       

       글레이시아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8.10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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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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