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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

       

       “…….”

       

       약혼자와의 만남은 최악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약혼자의 나이는 예사라와 같았다. 난 또 웬 미친 페도 새끼가 중학생과 약혼했나 했는데, 차에서 들어보니 예사라의 계모가 예사라의 의견과는 상관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이야기라는 모양이었다.

       

       상대는 호명 그룹의 삼대독자. 이름은 윤다호.

       

       참 다행스럽게도, 나는 저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바로 스트리머가 플레이하던 ‘if you wish’의 남주인공 중 하나였으니까. 게다가 스트리머가 공략한 두 루트 중 하나였다. 남주인공 루트.

       

       원래 스트리머는 딱히 남주인공을 공략할 생각이 없었지만, 선택지를 잘못 고르고, 스탯 분배를 제대로 하지 못한 끝에 결국 이리저리 휘말리다가 이 캐릭터의 루트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래, 왠지 게임에서 예사라의 발악이 심상치가 않더라. 자기 약혼자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서, 계모의 인형 놀이에서 쓸모없다고 여겨지면 바로 헌신짝처럼 버려질 테니까. 물론 결혼한다고 딱히 잘 살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그러면 다른 남주인공 루트에서는 왜 예사라가 악역으로 등장하는가— 라는 건 나도 잘 모르겠다. 애초에 끼어들 틈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스트리머는 남자 루트 하나, 여자 루트 하나씩만 깨고 치워버렸기 때문에 결국 나는 세세한 설정까지는 알지 못했다.

       

       말끔하게 정리된 머리카락. 깔끔하고 세련된 복장. 하지만 오만불손한 태도. 윤다호는 게임 속에서 묘사한 거의 그대로였다.

       

       그래도 나름 약혼녀 앞인데도, 다리를 꼬고 앉은 채 그저 스마트폰만 보며 앉아있다. 자기 약혼녀에게 굉장히 불만이 많은 모양이었다. 하긴, 저쪽도 딱히 의사를 물어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어른들의 계산에 휘말렸을 뿐이겠지.

       

       그런데, 본인이야 자신이 나름대로 쿨하게 약혼녀를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름 군대도 다녀오고 사회생활도 하다 온 나로선 그냥 토라진 애새끼 보는 기분이었다. 사춘기의 극한에 다다른, 사실 그 경지를 넘어 쿨찐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그 예의 없는 모습은, 사실 나로서는 아주 편했다.

       

       그야 굳이 대화를 이어 나갈 필요가 없었으니까.

       

       애초에 나한테도 저놈과 잘 될 생각 따위 없었고, 당연히 대화를 이어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내 뒤에 서 있는 양혜인과 저놈의 뒤에 서 있는…… 집사? 비서? 아무튼 나이 든 중년 남성만 진땀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나는 스마트폰을 하지는 않았다. 식사 시간에 핸드폰을 만지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으니까.

       

       그래, 예의가 아니었다.

       

       특히 눈앞에 1++ 한우 등심 스테이크가 있다면 더더욱 예의가 아니었다. 인간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도살당한 한우의 생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나는 상대방에게 쪽팔리지 않을 정도로만, 하지만 부지런하게 손을 움직여 스테이크를 썰어 입으로 가져갔다.

       

       입 안에 스테이크 한 조각을 넣고 그 부드러운 고기 한 점을 한 번 씹을 때마다 육즙이 마구 흘러나왔다. 미디엄 레어로 살짝 굽힌 스테이크는 그 안의 육즙을 전혀 잃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런 음식을 눈앞에 두고 즐기지 못한다면, 살아있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내가 이 몸에 들어오고 나서 딱 하나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뭘 먹겠다고 해도 맛있는 것을 대령한다는 것이었다.

       

       돈이 많다는 것은 먹는데 아끼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슨 음식을 만들어도 최상의 재료로, 최상의 실력을 갖춘 요리사가 만들어주는데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다만 먹는 것 관련해서 아쉬운 점은, 예사라의 위장이 생각보다 너무 작다는 것이었다. 비쩍 마른 몸을 보고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입이 짧아도 너무 짧았다. 내가 예사라의 몸에 들어온 이후로 제대로 완식한 것은 첫날에 양혜인이 먹여준 죽뿐이었다. 나머지 음식은 아무리 열심히 먹어도 죄다 조금씩 남길 수밖에 없었다. 사실, ‘조금’남긴다는 기준은 내가 먹는 양에 맞춰서 요리해주는 요리사가 있기에 가능했던 거고, 이렇게 식당 같은 곳에 오면 그보다 훨씬 많이 남겼다.

       

       그러니 안타깝게도, 내 앞에 놓인 이 1++등급 한우 등심 스테이크도 끝까지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부지런히 움직이던 나의 턱이 조금씩 느려지고, 목 너머로 꿀꺽꿀꺽 잘 삼켜지던 부드러운 스테이크 조각도 조금씩 삼키기 힘들어졌다.

       

       안타깝게도 오늘의 식사는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본인은 앉아서 한마디도 안 하고 스마트폰만 보고 있던 윤다호는, 정작 내가 자신은 신경도 쓰지 않고 스테이크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은 또 불만인 모양이었다.

       

       “그거 참 돼지처럼……”

       

       아마도, ‘처먹는군’이라는 말로 끝내려고 했던 것 같다만, 내 접시를 보고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 스테이크 1인분을 3분의 1도 다 먹지 못하는 걸 보면 아무리 상대를 비하하고 싶어도 돼지라고는 비하 못하겠지. 사실 나는 지금 옷을 두껍게 입고 있어서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일 뿐, 안의 몸은 ‘비쩍 말랐다’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병원에서 경찰과 의사가 가정폭력을 의심했던 것이 완전히 이해가 갈 정도로.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던 걸까? 거식증이라든지…… 너무 안 먹다 보면 위장이 쪼그라든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예사라의 몸이 정상체중을 찾기 위해서는 정말 열심히 먹어야 할 것 같다.

       

       식사를 마친 나는 조용히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았다.

       

       “어…….”

       

       나는 진짜로 다 먹어서 내려놓은 거였지만, 윤다호는 내가 자기 말 때문에 먹던 것을 멈추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윤다호.

       

       그의 가문이 소유한 호명 그룹은 대한민국 재계 서열 2위의 그룹이다. 물론 내가 살던 세상에선 이런 회사는 없었다. 있었다고 하더라도 ‘같은 이름이 있다면 모두 우연의 일치’라는 제작자의 경고가 올바를 것이다. 적어도 같은 기업이 있더라도 재계 서열 2위는 아니었으니까.

       

       예사라의 계모가 회장으로 있는 유진 그룹과는 활동 영역이 매우 겹치는, 완전한 경쟁상대였다. 반도체부터 시작해서 철도, 전동차, 배터리, 스마트폰이나 가전제품까지, 두 회사의 관계는 수십 년 전부터 앙숙이었다.

       

       그런 두 회사의, 단 하나뿐인 자식들이 약혼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스트리머의 영상에서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었지만, 그래도 스트리머가 탔던 루트 중의 하나였으니 대략적인 스토리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 중간에 유진 그룹이 호명 그룹을 통째로 삼키려고 계획을 짜고 있다는 말이 나왔던 것 같은데.

       

       그렇다는 건 서로 재산을 노리고 약혼을 했다는 소리가 아닌가.

       

       시장의 독과점을 막기 위해서, 원래 경쟁상대를 인수하려고 하면 일단 국가에서 막는 경우가 많다. 한쪽이 다른 한 쪽을 먹어버리면 경쟁상대가 완전히 없어져 버리는 거고, 그렇게 되면 그 시작의 독재자가 되어버린 기업이 정하는 대로 국가의 시장 전체가 좌지우지되어버릴 테니까.

       

       그렇다면, 상대의 재산을 노리기 위해서 약간의 편법을 생각해낼 수 있겠다.

       

       결혼을 통해 재산을 상속받는다거나, 아니면 그 아래 자식이 양측의 재산을 모두 물려받아 통합해버린다거나……

       

       물론 두 기업의 회장들도 바보는 아닐 것이다. 내 쪽에서는 내가 ‘여자’라는 것이 걸릴 테지. 일반적으로 자식은 아버지의 성을 따르고, 예사라와 윤다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윤 씨라는 성을 물려받아 버리면 마치 유진 그룹이 호명 그룹에 흡수된 것으로 보일 테니까.

       

       반대로, 유진 그룹은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라는 점에서 호명 그룹 쪽에서는 위기를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사라와 윤다호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에 빠르게 상대방의 재산을 정리해간다거나, 상대의 태도를 바탕으로 이혼소송을 벌여 여론전을 유리하게 이끌어간다거나…… 뭐, 확실히 그런 의미에서 저 윤다호의 싸가지 없는 말투는 자신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예사라의 성격도 거의 파탄 난 것에 가까웠으니 말투가 거친 것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식사 끝났나?”

       

       원작에서도 대놓고 욕에 가까운 말을 꺼내놓고 나중에 이불킥을 하며 미안해하는, 돈이 많은 것 치고는 불우한 과거를 보낸 윤다호였다. 저 성격의 대부분은 인성 파탄인 아버지에게 그대로 물려받았고, 정작 본인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착한 면도 있다…… 라는 게 게임상에서의 설정이었다.

       

       하지만 윤다호는 게임에서도 여주인공에게 ‘서민이 길을 막고 있네’같은 소리로 인연을 시작하는 캐릭터였다. 그래도 나름대로 호의를 가질만한 구석이 있었던 다른 두 남주인공과는 다르게 이쪽은 선택지 잘못 고르면 들어가는 꽝 취급이었다.

       

       ‘서민이…… 말대꾸?’라는 논리로 여주인공과 엮이다가, ‘나에게 이렇게 대한 건 네가 처음이야’라는 클리셰로 여주인공과 엮이기 때문에, 이 윤다호의 선택지를 위한 최소 스탯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스토리의 7할 정도는 시종일관 싸가지없는 캐릭터로 나오기 때문에, 여성 플레이어 입장에선 어떨지 몰라도 남자 플레이어 입장에선 정말 죽여버리고 싶은 꽝 캐릭터였다.

       

       “여기서 더 먹으려고 해도 안 들어가니까.”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어차피 잘 보일 생각도 없었고, 사실 남자랑 결혼 예정이라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싫었다.

       

       회사가 합쳐지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다.

       

       굳이 재계 1위를 유지하지 않아도 어차피 부자로 살 수 있는데, 싫어하는 인간과 결혼까지 하면서— 심지어 나 같은 경우에는 성적인 지향까지 씹고 결혼하면서 불행하게 살 생각은 없었다.

       

       ……하다못해 돌아갈 방법이 있었다면 현상 유지라도 했겠지만, 벌써 한 달째 이 몸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정말로 이 세계에서 어떻게든 이야기의 결말을 볼 때까지는 살아야 할 모양이었으니까.

       

       대체 내가 왜 이 세계에 떨어졌는지 모르겠네.

       

       게임을 욕한 것도 아니고, 제작자에게 악플을 단 것도 아니었는데.

       

       ……설마, 게임 직접 플레이하기 귀찮다고 그냥 스트리머 영상과 너무 위키로 때우려고 했던 것 때문인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고뇌에 잠겨있는데, 윤다호는 마치 그제야 나를 제대로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훑어보고 있었다.

       

       고작 10대 중반에 든 인물이었지만, 원래 이런 이야기의 캐릭터가 다 그렇듯, 윤다호도 나이에 비해서 키가 커 보였다. 얼굴은 어려서 조금 징그럽긴 했지만.

       

       “…….”

       

       “…….”

       

       양혜인은 내 뒤에 서 있어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윤다호 뒤쪽에 서 있는 비서의 표정은 잘 보였다.

       

       비서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아마 윤다호가 다짜고짜 나를 욕한 것과 내가 그 욕을 듣고 보인 반응이 결코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나는 진짜로 배가 불러서 식사를 멈췄을 뿐이기는 하다만.

       

       “……기왕 식사하러 나왔으니 더 들지.”

       

       “본인 앞에 있는 접시를 좀 보고 말하지?”

       

       내 대답에, 윤다호는 다시 말이 궁해진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식사하는 내내 본인은 스마트폰이나 쳐 보고 있었으니까.

       

       식사 예절을 먼저 어긴 것은 윤다호 쪽이었다.

       

       대체 예사라가 이전에 어떤 반응을 보였기에 윤다호가 저렇게 극한의 싸가지를 보여주는 건지 잘 모르겠다만, 어차피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1월 1일 이전의 일은 전부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니까. 아니, 느껴지는 게 아니라 실제로 내 일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예사라였다.

       

       대답할만한 말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그를 두고,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 끝났는데, 돌아가도 되겠죠?”

       

       “네, 아가씨.”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양혜인이 즉각 움직였다.

       

       “…….”

       

       윤다호는 그저 나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고 집에 가던가.”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양혜인이 열어주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

       

       “이런 멍청한 놈!”

       

       윤다호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들은 소리는 그것이었다.

       

       이제는 회장직조차도 그만두고 언론에 얼굴을 거의 노출하지 않는 그의 조부는, 윤다호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자신의 서재로 그를 불러내었다.

       

       그리고 방으로 채 다 들어오지도 못한 채 들은 소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꽤 자주 있는 일이었기에, 윤다호는 빠르게 걸어 전 회장의 앞에 섰다.

       

       짝!

       

       자세를 제대로 잡고 서자마자, 그의 오른쪽 볼에서 불이 났다. 노인이라고는 하지만 그 나이를 먹고도 꾸준한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전 회장의 손은 그냥 ‘맵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윤다호의 하얀 뺨이, 조금씩 붉어졌다.

       

       “세상 어느 미친놈이, 자기 약혼녀에게 돼지라는 표현을 쓰느냐!”

       

       윤다호는 시선을 살짝 들어보았다. 전 회장으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오늘 만남을 따라왔던 비서가 서 있었다.

       

       ‘차기 회장’이 될 사람의 눈빛을 느꼈기 때문일까. 비서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어디서 눈을 부라려!”

       

       짝!

       

       반대쪽 뺨에도 불이 났다.

       

       있는 힘껏 자기 손자의 뺨을 때린 전 회장은, 잠깐 숨을 몰아쉬었다.

       

       “……상대의 전략이 바뀐 것 같습니다.”

       

       윤다호는 그런 자기 할아버지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이전에는 분명 유약한 척을 했었는데—”

       

       “다호야.”

       

       자신의 손자가 하는 말을 도중에 끊고, 전 회장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손을 윤다호의 어깨에 올려두고, 허리를 살짝 숙여 그의 눈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다호야, 다호야. 물론 네가 그런 교육을 받은 것은 맞다. 이 바닥에서 순수하고 착한 인물은 없지. 전부 상대의 얼굴을 보고 계산하는 존재들이다. 네가 받은 가르침은 틀리지 않았어.”

       

       하지만 그런 말을 하고서도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상대의 패를 다 보지 못했다면, 상대를 속이는 것도 중요하다. 너는 제왕학을 배웠지만, 상대는 어린 시절부터 계모에게 방치된 어린 소녀일 뿐이야. 그렇다면 상대의 감정을 제어하는 것도 수월하겠지. 그 아이가 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척이라도 해봐라. 원래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것들은 사랑을 갈망하는 법이야. 그 아이가 너를 사랑하게 만들어라. 그렇게 해서 손에 있는 패를 스스로 보이게 만들어. 버리는 것은 그다음에 해도 좋다.”

       

       “…….”

       

       윤다호는 그 말을 곱씹는 듯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했다.

       

       “우선 오늘 있었던 일은 내가 직접 유진 그룹의 회장에게 전화해서 사과하도록 하겠다. 그 여자는 자기 수양딸을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유배시켜 놓을 정도로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다만, 그래도 마음만 먹는다면 ‘자기 딸’을 물 먹였다고 나올 수도 있는 여자니까. 어쨌거나 수양딸이 아니냐.”

       

       물론 저쪽도 호명 그룹의 재산을 탐내고 있는 시점에서 함부로 파혼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쪽이 불리한 것도 사실이었다. 양측 다 포기할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는 숙이고 들어갈 구석이 많은 쪽이 더 불리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전 회장이 직접 사과하고 그 자리에서 딱 끝내버리는 쪽이 훨씬 안전하다.

       

       “……죄송합니다.”

       

       “그래, 사과를 할 줄 아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물론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해선 안 되겠지만. 이제 나가봐라.”

       

       윤다호는 자신의 할아버지의 말대로 했다.

       

       그 서재를 나가면서, 그는 오늘 보았던 예사라의 표정을 떠올렸다.

       

       어떻게든 자신과 친해져 보고자 이런저런 말을 던지던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 그저 무시하면서 안달 나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듯, 당당하게 식사하고 먼저 자리를 떠버리던 모습.

       

       ……정말로 이전에 보이던 유약한 모습이 연기였다는 건가?

       

       윤다호는 그것이 아직도 혼란스러웠다.

       

       *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그대로 뻗어 한동안 늘어져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스륵 열리고, 그곳에는 양손에 공손하게 스마트폰을 받쳐 들고 있는 양혜인이 서 있었다.

       

       “아가씨, 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

       

       회장이라면, 당연히 예사라의 계모를 뜻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쪽으로 오고 나서 한 달이 지났는데도 얼굴을 보기는커녕 전화 한 통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전화한 거라면…… 뭐, 떠오르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오늘 만남에서 개판 친 거 때문이겠지.

       

       나는 말없이 전화를 받아들고, 잠깐 고민했다. 전화를 받을 때는 어떻게 받아야 할까? 어차피 혼나야 하는 상황이라면 최대한 상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좋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상대는 무려 대한민국 재계 1위라는 서열의 그룹을 운영하는 회장이었으니까.

       

       “네, 회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결국 나는 그렇게 말하기로 했다. 왠지 상대가 ‘어머님’이라는 명칭을 싫어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흠.]

       

       나의 대답이 제대로 먹혀들어 간 건지, 회장 측은 잠깐 그런 소리를 냈다. 당혹감……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흡족감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표정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오늘 있었던 만남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다소 낮은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로 들려왔다.

       

       “네.”

       

       [잘했다.]

       

       “네?”

       

       내가 그 이유를 묻기도 전에, 전화는 이미 끊어진 뒤였다.

       

       “……아가씨.”

       

       다소 충격받은 나의 표정을 보고, 양혜인이 나를 작게 불렀지만,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살짝 저어 보였다.

       

       “혼나지 않았어요. 오히려 잘했다고 하시는데요.”

       

       내가 그렇게 대답했지만, 여전히 양혜인은 나를 버려진 강아지 보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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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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