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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와… 시발….’

       

        나는 완전히 벙찐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살다 살다 이런 일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무슨 보이스피싱이나 전세 사기를 당한 것 마냥.

        그저 영혼이 나가버리는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채수현 이 년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를 한 거야?’

       

        보통 B급만 되어도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길드에서 스카웃 제의가 오곤 한다.

        그만큼 인재 쟁탈에는 혈안이 되어있으니까.

       

        채수현은 성장속도도 높은데다가 나이도 어린 편이었기때문에 헌터 업계에서 매우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게다가 여자이기도 하고.

       

        상품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더할나위 없이 완벽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텼다.

       

        ‘아 오빠. 그냥 길드는 하지 말자고… 일단 우리 레벨업에만 신경쓰자. 왜 자꾸 다른 거에 신경을 쓰는 거야?’

        ‘길드 지원을 받으면 좀 더 편하게 성장할 수도 있잖아?’

        ‘아 나는 싫어.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거 싫어. 그리고 걔네랑 뭔가 나누는 것도 싫단 말야. 뭐하러 굳이 길드에 가입을 하냐고~우리가 나중에 갑의 위치가 되면, 그때하자. 그때 해도 늦지 않아. 지금은 너무 성급한 것 같아.’

       

        완강히 고집을 피우는 것이었다.

       

        ‘아니 그러고 보니…’

       

        문득 내 머리 속을 스치는 또 한가지 생각이 있었다.

       

        ‘오빠. 나는 일단 대외적으로 우리가 잘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거든. 내 맘 알지? 괜히 막 남자친구 사귀는 헤픈 여자 이미지를 쌓고 싶지는 않거든. 우리가 사귀는 거로 알려지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굳이 기자들에게 알려져봤자 우리만 피곤해질거니까.’

       

        분명 그랬다.

        아주 신신당부를 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깨끗하게 하는 데에 집중을 했으니까.

        친한 친구들을 제외하면 절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이었다.

       

        ‘와. 아주 단단히 준비도 했네’

       

        나는 이를 악 물 수 밖에 없었다.

        분명 내 입장에선 거의 작업을 당했다라고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도대체가… 시발…’

       

        참 웃기게도 자기가 그 속에 있을 때는 전혀 알아채기 힘들다.

        다들 사기에 당하는 사람들을 멍청하다고 하지만 정작 사기를 당해보면 왜 당할 수 밖에 없는지 알게된다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와서 보면 과거의 내 행동이 아주 멍청한 병신이었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지만 그땐 전혀 몰랐다.

        당연히 우리의 미래를 위해 참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향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으니까.

       

        ‘아주 내 마음을 박살내는 구만.’

       

        오히려 감사하다고 해야하나.

        완전히 깔끔하게 마음을 접게 되었으니까.

        단 하나의 감정도 남지 않게 되었으니까.

       

        ‘너 내가 완전 조져준다.’

        ‘멍청한 거 아냐? 이제 잃을 것도 많을텐데 그 지랄을 했다고?’

        ‘설마 포인트를 회수할 수 없다는 걸 굳게 믿고 도박한 거야?’

       

        헛웃음이 나왔다.

       

        ‘나한테 포인트를 받아먹을 때마다 얼마나 싱글벙글이었을까. 내 뒤통수를 칠 생각에.’

        ‘아니. 나를 신경 쓰기는 했나? 그냥 자기의 미래만 바라본 거 아닌가?’

       

        뭐 상관은 없다.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가면 되니까.

       

        ”형? 형?”

       

        전화기 건너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너무 혼자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나보다.

       

        “형석아. 미안. 내가 좀 생각할 것이 있어서. 어쨋든 혹시 자리는 있어?”

        “자리는 뭐 어케든 만들어드릴 수는 있죠. 형이잖아요. 저 그래도 이제 좀 끗발 되거든요.”

       

        다행히도 좋은 대답이 돌아왔다.

        살짝은 지금 상황이 의아하다는 목소리 톤과 함께.

       

        “아 그럼. 나 자리 하나만 좀 만들어줄 수 있니?”

       

        머리 속은 상당히 복잡했지만 한 걸음씩 차곡차곡 나아가보기로 했다.

       

        “네 형. 어. 일단 저희 길드 사무실 쪽에 와보시겠어요? 시간 되실 때요.”

        “나 이제 시간 많아. 지금도 괜찮아.”

       

        그 뒤로는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는 듯한 반응이 돌아왔다.

       

        ***

       

        “오랜만이네.”

        “캬… 형 그대로시네요.”

       

        오랜만에 후배를 보면서 꽤 싱숭생숭한 느낌이었다.

        살짝 굴욕적인 부탁을 해야하는 상황이라 민망하고, 비참하면서도 동시에 지금 이 상황이 기대되고 신나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마 내가 전세계 헌터 중에서 가장 누적 포인트가 많은 사람일 것 같은데말이야..’

        ‘그것도 완전 압도적으로…’

       

        채수현에게 차였다는 것을 친구들과 선후배들에게 말할 것을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했지만, 동시에 기분은 좋았다.

        앞으로의 미래는 창창했으니까.

        분명하다.

       

        “형. 근데 어떤 자리를 원하시는 거예요?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죠?”

       

        이 녀석, 길드에서 꽤나 중요한 일들을 도맡다보니 눈치 하나는 빠르다.

        이미 내게 있었던 일을 눈치 챈 것 같은 표정이었다.

       

        ‘뭐 어차피 숨길 것도 없지. 이제 동네방네 알려질 텐데.’

       

        나는 살짝 몸을 풀었다.

       

        “수현이한테 차였다.”

        “허억…”

       

        뭐 당연하지만 별 다른 리액션은 보이지 못했다.

        아무래도 뭐라 왈가왈부하기 힘든 주제이긴 하니까.

       

        “오늘 S급 1위 달성하는 날 아니에요…?”

       

        상당히 조심스러운 분위기로 슬쩍 물어보는 것이었다.

       

        “응. 그래서 그거 축하해주려고 모였는데 차였지 뭐야.”

       

        내가 말하면서도 상당히 어이가 없었다.

        마치 2년간 군대 뒷바라지를 했더니 전역날 찾아온 여자친구를 차버린 사람과 같지 않은가.

       

        “와… 어떻게…”

        “야. 맘껏 욕해도 돼. 내 눈치 신경쓰지 말고. 그 시발년은 이제 나도 좆같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맘대로 얘기 해도 돼.”

        “와… 할말이 없네요. 와… 어떻게 사람이…”

        “일단 이건 나중에 술자리에서 말하고. 그래서 길드 자리는?”

        “앗. 넵. 자리가 좀 이것저것 있는데요.”

       

        자신이 준비해온 자료 몇가지를 꺼내는 것이었다.

       

        “아마 지금 있는 자리 중에서 이것들은 좀 다 별로이실 것 같고요. 음…형은 이 쪽으로 가시는 게 어떨까요…?”

       

        한 곳을 콕 찝어서 제시를 하는 것이었다.

       

        S급 헌터 이수아 팀의 말단 자리였다.

       

        “응? 이수아?”

        “네. 뭐. 나이도 비슷하고, 아무래도… 수현이를 고려하면…”

       

        대충 내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형석이가 왜 그러한 태도를 보였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채수현과 비슷한 나이대의 S급 헌터가 여럿이 있다.

        당연히 채수현과는 관계가 좋지않은 건 뻔한 내용이고.

        그 중 한명이 이수아였다.

       

        “어떠… 세요…? 저는 여기가 제일 좋지 않나 해서요.”

       

        그의 말에는 꽤 많은 의미가 함축이 되어있었다.

       

        ‘짜식. 내가 전화할 때 이미 다 알아차렸구만. 이 자료를 준비해온 거 보면.’

       

        분명 순발력으로 대처할만한 내용이라고 볼 순 없었으니까.

       

        ‘헤어질 것처럼 보였었나…?’

        ‘뭐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다른 자리보다도 여기가 제일 낫다는 거지?”

        “조금 빡세긴 할텐데 다른 곳 보다는 아마 여기가 제일 나으실 거에요. 다른 자리는 워낙 쓰레기라서요.. 하하… 아무래도…형이 아직 E급이시라…”

       

        또 다시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에이. 나도 알아. 이 나이에 E급이면 처음부터 좋은 자리에 갈 순 없지.”

       

        살짝 씁쓸하기는 했지만, 상관은 없었다.

        사실 지금 등급은 아무 쓸모 없으니까.

        등급 따위는 그냥 포인트를 우다다 쏟아부어서 정부 인증만 받으면 끝이었으니까.

       

        내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채수현.

        어떻게 해야 채수현을 열받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맛있게 요리를 해먹으려면…’

       

        뭐 혹자는 지금의 내 행동을 보고 무슨 남자가 쪼잔하게 헤어진 여자에게 신경을 쓰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하마터면 내 인생을 거의 절반 날려버릴 수도 있던 일이니까.

        채수현을 위해 거의 모든 것을 바쳤는데 다 잃어버릴 뻔 했으니까.

       

        단순한 헤어짐이나 기분나쁨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조져질 뻔 했다.

       

        띠리링.

       

        잠시 혼자 생각을 하던 와중에 알람이 울렸다.

       

        “앗. 잠시만요.”

       

        형석이는 주머니에서 업무용 폰으로 보이는 것을 꺼냈다.

       

        “아. 형… 지금…”

       

        상당히 난처한 표정으로 뭔가를 말하기를 주저하는 것이었다.

       

        “뭔 데? 무슨 일이야?”

       

        혹시나 길드에 가입하는 것이 거절되는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른 길드에 가면 되긴 하지만, 형석이네 길드는 우리나라에서 5등안에 드는 길드였으니까.

        아무래도 좋은 기회를 잡는 것이 좋다.

       

        “그… 채수현 헌터… 기자회견한다는 데요…”

        “뭐? 기자회견?”

       

        나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도대체 어디까지 준비를 한 거야? 나 몰래?’

       

        나는 전혀 들은바가 없었다.

        헤어지자는 말도, 백호길드에 들어가겠다는 말도,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말도.

       

        분명 나와 사귈 때는 기자회견이든, 기자 인터뷰든 다 싫다고 했었다.

        최대한 노출을 줄이고 나쁜 소문이 퍼지는 것이 싫다고 했으니까.

       

        ‘아 오빠. 기자회견 같은 거 해서 뭐해… 그냥 기자들이 나 뜯어먹으려고만 할 거 아냐. 아. 오빠는 E급이니까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상관이 없지. 나는 이제 S급이라서 다들 난리칠거란 말야. 싫어 싫어.’

       

        아주 조용히 호랑이 발톱을 숨기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쩜 이렇게 용의주도하게 행동했는지 모르겠다.

       

        “저 죄송한데 이거만 보고 대화를 이어나가도 될까요? 제가 업무를 좀 해야해서.”

       

        형석이는 양해를 구하는 것이었다.

       

        “아. 당연히 상관없지. 애초에 중간에 불려나온게 넌데. 게다가 나도 이 기자회견 아주 궁금한 걸? 같이 보자.”

       

        영상 속 채수현은 아주 밝게 웃는 중이었다.

        S급 헌터 1위를 달성한 것을 발표하겠다는 현수막과 함께 백호 길드에 가입하겠다는 안내가 적혀있었다.

       

        ‘하. 시발… 진짜로 백호 길드에 가입하겠다고?’

        ‘나한테는 한마디 언질도 없었잖아?’

       

        나는 상당히 깊이 빡치기 시작했다.

       

        ‘오냐. 시발. 뭐라고 지껄이나 한번 들어보자.’

        ‘그래야 내가 어떻게 움직일 지 결정하지.’

       

        나와 형석이는 화면에 집중하며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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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Betrayed But It’s Okay haha

I Was Betrayed But It’s Okay haha

배신당했지만 괜찮습니다ㅎㅎ
Status: Ongoing Author:
"I was the one who boosted your rank. Yet you stabbed me in the back? Fine. Goodbye. I'm taking it back. You're finished now. Thanks to you, I now have an abundance of skill points for a prosperous hunter life. But... after spending some of those points, the S-Ranks are starting to get obsesse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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