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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끼이이익….

       

       쇠경첩이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감옥문이 열렸다.

       

       사냥꾼이 앞장 서고, 아가르타와 함께 문턱을 넘어서자 철창들이 줄지어져 있었다.

       

       

       역시 여긴 프롤로그에 나오는 지하감옥이 맞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앞이 잘 보이지?

       

       눈을 꿈뻑 감았다 떠 봐도 기억과는 반대로 감옥 내부는 굉장히 밝았다.

       

       

       원래 지하감옥은 어둡고 침침해서 공포게임에서 나올 것 같은 곳이였기에 잘못 조종하면 벽에 부딪히거나 방향을 잘못 잡아서 앞이 아닌 뒤로 가거나 했었지.

       

       밝기 설정을 최대로 올려도 앞이 안보여서 해골이나 귀신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조마조마 했었는데.

       

       

       그래, 게임이 이렇게 밝아야지.

       

       얼마나 좋아.

       

       

       “생각보다 밝아서 갈만하네요. 보통 지하감옥들은 암흑 속에 있다고들 하던데.”

       

       “네?”

       

       

       아가르타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왜 저렇게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거야?

       

       

       “왜요? 이 정도면 밝은 거 아니에요?”

       

       “아니, 이게 밝다고요?”

       

       

       영문을 알 수 없다며 눈을 꿈뻑 거린다.

       

       아니, 이 사람들은 평소에 어디서 살았길래 이게 어둡다고 하는 거야.

       

       도적이라면서 일반인인 나 보다는 밤눈이 밝아야 하는 거 아냐?

       

       우리가 떠드는 소리에 신경이 거슬렸는지, 사냥꾼이 고개를 뒤쪽으로 돌렸다.

       

       

       “…시끄럽다.”

       

       “아니, 탄튼 씨가 여기가 밝다고 하잖아요.”

       

       “동태 눈깔이라 어두운 곳은 잘 보나 보지. 그만 떠들고 앞이나 봐라.”

       

       

       딴에는 장난치는 말이었는지 조금은 덜 투박한 톤으로 사냥꾼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 외모로 장난치는 건 에바지.

       

       20대에는 지나가던 애기들이 잘생긴 오빠라고 졸졸 따라다니는 외모였는데.

       

       

       …라고 속으로만 생각하며 길을 걷고 있을 때, 사냥꾼이 말했다.

       

       

       “확실히 아무도 없군.”

       

       “제가 뭐랬어요?”

       

       

       아가르타는 히죽 입고리를 올리며 말하자 사냥꾼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길을 걷던 것도 잠시, 복도 끝에 다다르자 막다른 길목과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막다른 벽면에는 어떤 글씨가 써져있었는데 날카로운 손톱 같은 것으로 새겨진 자국처럼 보였다.

       

       

       눈에 들어온 활자들은 의무교육을 받은 현대인으로서 본능적으로 내용이 읽혀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외신 쓰러뜨리기’ 방법에 대해서 알아볼 거예요!

       

       맞아요… ‘외신 쓰러뜨리기’ 방법은 참 어려워요.

       

       수많은 기사들이 이를 위해서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참 안타까운 일이죠… ㅠㅠ

       

       최근에 알려진 방법 중에서는 외신의 살점을 이용한 무기를 사용하면 ‘외신 쓰러뜨리기’를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여기부터는 저도 잘은 모르겠네요;;

       

       그래서 현재까지도 여러 기사들이 이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다고 하는데요, 빨리 답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이상 ‘외신 쓰러뜨리기’ 방법에 대한 이야기 끝내겠습니다!

       

       

       

       …

       

       뭐지, 이 초록창 블로그에서나 나올 거 같은 내용은?

       

       당황스러운 내용에 다시 한번 읽을려고 하니 목 덜미를 붙잡혀 강제로 글에서 멀어졌다.

       

       누군가 해서 봤더니, 분명 앞서 가고 있던 사냥꾼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고 있었다.

       

       

       “론단의 철칙 첫 번째, 책이나 벽면에 써진 인간이 새기지 않은 글을 읽지마라. 아무리 정신병자라도 이 것도 모르는 거냐?”

       

       

       그대로 사냥꾼은 글자가 적힌 벽면의 반대쪽으로 나를 던지다시피 내팽개쳤고, 그 탓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괜찮아요? 정신이 오염되거나 그런 느낌없죠?”

       

       

       아가르타가 다가와서 놀란 표정으로 내 상태를 살피며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니.

       

       스노우 캐슬 내에서 금기시 되는 것 중 하나, 글을 읽지 말라.

       

       

       게임에서는 충격적인 글을 보고 정신력이 떨어진다고 묘사되었는데.

       

       그런 것 치고는 아무런 느낌도 안 들었다.

       

       글도 충격적이라기 보다는 어린애가 벽면에 낙서한 것 같은 내용이랄까 역으로 충격적이였다.

       

       그건 그렇고.

       

       

       “제 목소리가 들리세요? 정신차려요! 지면 안 돼요! 탄튼 씨!”

       

       

       눈을 감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사람을 억지로 깨우듯 날 흔들어 재끼는 아가르타.

       

       토할 것 같아….

       

       아가르타를 밀어내기 위해 팔을 뻗었다.

       

       

       “흐앗?”

       

       

       그러나 날 잡고 있던 손을 끝까지 놓지 않은 아가르타.

       

       운동방향은 체중이 가벼운 아가르타 쪽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넘어지지 않기위해 팔을 뻗어 바닥을 지탱했고 

       덮치는 듯한 자세로 넘어지고야 만 것이다!

       

       코 끝이 닿을 거리에 닿자 아가르타는 볼을 붉혔다.

       

       

       “정신이 나갔다고 해도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데….”

       

       

       갑작스러운 헛소리에 도리어 당황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가르타와 나의 꽁트에도 아랑곳 않고 사냥꾼이 툭 하고 한마디를 던졌다.

       

       

       “설마하니 저 글을 읽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

       

       “그… 러게요? 왜 읽히지?”

       

       “글이 읽힌다고….”

       

       

       사냥꾼이 방금보다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나도 왜 읽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저기에 적힌 글이 저딴 식으로 적혀 있었던가?

       

       

       애초에 저거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스토리를 진행해보지도 않았으니까.

       

       나 같은 청정수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지금 시국에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인간은 적다. 되려 마법으로 글자에 관한 기억들을 없애는 노릇이지. 외신이 새긴 문자는 이해한다면 미쳐버릴 테니까.

       

       그런데, 너는 멀쩡하군.”

       

       

       사냥꾼이 내게 거친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와서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무언가를 알아내고자 하는 것 같은 눈빛이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넌, 뭐냐?”

       

       

       아니 그렇게 말씀하셔도 왜 읽히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니까요?

       

       차라리 이미 게임 스토리를 전부 알고 있어서 그것대로 하고 있었다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이제는 아가르타까지 눈을 반짝이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혹시 신비학자세요? 혹은 종이에 적혀있던 말대로 글을 읽을 수 있는 정신병자던가.

       

       그러면 글자를 읽고 미치지 않을 수도 있죠.

       

       이미 미쳐 있는 상대를 미치게 만들 수는 없을 테니까요.”

       

       

       차라리 신비학자라고 해버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이 게임에서 신비학자는 사냥꾼이 갈 수 있는 빌드 중 하나였으니까.

       

       

       …라고 하기에는 그쪽 루트를 타본 적이 없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모르는 걸로 밀고 갔다가는 언젠가 들켜서 꼽이란 꼽은 다 먹고, 여러가지로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둘 다 내 대답을 기다리듯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면 안 되냐고, 진짜.

       

       

       피눈물이 흐를 것 같은 심정을 속으로 삼키며 종이에 적혀 있던 말을 내뱉었다.

       

       

       “저는 정신병자니까요… 그래서 멀쩡한 거 아닐까요?”

       

       

       아아, 씨발.

       

       온세상이 그냥 날 정신병자가 아니면 살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내 말에 감동받았는지 아가르타는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친다.

       

       

       “역시! 정신병 탓에 알몸으로 길거리를 활보하다가 잡혀왔군요?!”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닌…”

       

       

       아가르타가 내 어깨를 더욱 꽉 붙잡는다.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했던가.

       

       내 변명을 단숨에 갈! 하고 묵살시켜버리는 아가르타의 목소리는 기차화통을 삶아먹었는지 우렁찼다.

       

       

       심지어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는 모습은 심히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입가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걸 감출려는 건지 고개를 숙이고 사냥꾼에게 질책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겁을 주다니요! 함부로 읽을 수도 있죠!”

       

       

       그녀의 능청스러움에 사냥꾼도 당황했는지 눈이 잠깐 커졌다가 인상을 쓰며 손으로 이마를 붙잡았다.

       

       

       “아주 환상의 콤비가 따로 없군.”

       

       

       사냥꾼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다시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아.

       

       인생, 씨발.

       

       

       아니, 근데 왜 글을 읽고 정신이 멀쩡한 거지?

       

       진짜 나한테 정신병이 있는 건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게임하고 조금 달라진 것 뿐이겠지.

       

       

       …속으로 이 악물고 합리화하며 사냥꾼을 따라 걸어갔다.

       

       

       계단을 다 오르고 바로 보인 것은 지하 감옥의 거대한 홀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거대한 ‘그것’ 이 있을 거다.

       

       작중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외신.

       

       일명, 지하감옥의 감시자.

       

       

       사람을 가두는 지하감옥에 외신이 왜 있는지는 끝까지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뉴비 절단기’라 불리는 녀석 때문에 한참을 고통 받아야 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괜히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때쯤, 슬슬 그 외신이 있는 곳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것을 보고는 당황하고 말았다.

       

       

       “뭐야, 이게.”

       

       

       분명 그 외신이 있어야 하는 장소에 그것은 없었다.

       

       대신 늑대 귀를 달고 있는 귀여운 소녀가 그 안에서 쿨쿨, 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꼭 어디선가 본듯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상상도 못한 전개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사냥꾼과 아가르타를 쳐다보았으나, 그들의 표정에 더 당황하고 말았다.

       

       

       아가르타는 두려운 듯 몸을 떨고, 동공이 축소된 채, 사냥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살의가 짙은 눈빛으로 감옥 안의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냥꾼의 저 표정은 꼭 외신과 마주쳤을 때 짓고 있던 표정이었다.

       

       

       그렇다는 건 저게 외신이 맞다는 뜻인데.

       

       

       사냥꾼에게는 외신으로 보이지만, 나한테는 그렇게 안 보이고 있다.

       

       이상하게 환한 지하감옥.

       

       투박하게 적혀 있어야 했을 텐데 꼭 블로거가 적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벽의 글자.

       

       소녀의 모습을 한 외신.

       

       

       그날 있었던 일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슈퍼 겁쟁이 클럽에 합류하십쇼, 이 똘마니. 

       

       마음에 드시면 닥치고 추천이나 누르십쇼!’

       

       

       마침내 지금까지 겪은 일들의 개연성이 들어맞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그냥 스노우 캐슬 속에 빙의 된 것이 아니었다.

       

       

       ‘슈퍼 겁쟁이 모드’가 설치되어 있던 스노우 캐슬에 빙의 된 것이었다.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슈퍼 겁쟁이 모드 다크 판타지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The super cowardly me installed Super Coward Mode, and the terrifying extraterrestrials started to look cute. “Eating the flesh of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re not human! Ew!” “Even withstanding mental manipulation? What kind of monster are you!” “Enslaving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 must be out of your mind.” …And then, the reactions around me becam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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