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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배 아파….
     
   속이… 너무 이상해, 어지러워….
     
   비틀거리던 소녀가 근처의 나무를 붙잡은 채 허리를 숙인다.
     
   “에엑…”
     
   주체할 수 없이 구역질이 쏟아졌다.
     
     
   쨱짹- 짹!
     
   참새 가족이 소녀의 머리 위를 빙빙 돌며 지저귄다.
     
   날 걱정해 주는 거구나.
     
   너무나 감동스러웠지만, 어찌 반응할 여유는 없다.
     
   후끈하니 열이 오르고, 이제는 토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바지에 실례까지 할 것만 같았다.
     
     
   비틀거리던 소녀가 결국 주체 못 하고 제자리에 쓰러져 내렸다.
     
   털썩-
     
   온몸의 근육이 경련하며 힘이 풀린다.
     
   시야조차 가물가물하고, 호흡은 전력 질주를 한 듯 가빠진다.
     
   [도, 도대체 뭘 먹은 거야! 장기가 죄다 괴사하고 있잖아!]
     
     
   아, 미아 목소리다.
     
   [이거 진짜 미친년 아니야?! 내 몸이니까 소중히 대하라고!!]
     
   부글부글부글.
     
   속이 미친 듯이 끓는 와중에도 소녀는 헤헤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버섯을 따 먹으면서 열심히 말 걸 때는 대답 한 번 안 해주더니.
     
   그래도 이렇게 목소리가 들려오니 좋다.
     
   환청이라 해도 상관없다.
     
   언제고, 소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소원을 빌어 미아를 살려낼 수 있다는 거니까.
     
   [야! 정신 차려! 정신 놓으면 안 돼!]
     
   짹-! 짹짹짹짹–!
     
     
   툭.
     
   소녀의 고개가 힘을 잃고 땅 위로 처박혔다.
     
   자그마하게 들려오던 미아의 목소리마저 멎어버리고.
     
   세 마리의 참새가, 다른 참새들을 끌어모아 소녀의 머리 위를 뱅뱅 돌았다.
     
   짹짹짹짹-
     
   이미 해가 다 진 어두운 밤 중에 지치지도 않는지 요란한 지저귐.
     
   그런 소녀를 살리고자 하는 미물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저벅, 저벅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려온다.
     
   풀숲을 헤치고 환한 빛이 주변을 훑어내듯 어둠을 몰아낸다.
     
   그와 함께 지팡이를 쥔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밤중에 웬 아이가….”
     
   노인은 금세 둥글게 모인 참새 아래로 의식을 잃은 소녀를 발견했다.
     
     
   하늘빛을 닮은 듯, 저 강물을 닮은 듯 묘하게도 빛나는 하늘빛 머리카락.
     
   일고여덟 살 정도 되는 체구임에도 미래가 기대되는 오밀조밀한 생김새.
     
   흙투성이의 엉망진창인 차림새가 아니었더라면 어디 높은 신분의 아이가 납치되어 온 건 아닐까, 의심해도 이상하지 않을 아이였다.
     
   “…이건 독인가? 설마, 독버섯을 주워 먹은 게냐?”
     
     
   안 그래도 계곡 주변인지라 이런저런 독버섯이 자라는 지역이다.
     
   소녀의 증세를 보고 상황을 추측해 낸 노인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아이의 이마를 덮는다.
     
   뜨겁다.
     
   너무나도 뜨거워 손바닥이 욱신거릴 정도다.
     
   이 작은 아이가 정말 독버섯을 먹은 거라면 여태 살아 있는 게 기적이었다.
     
   “밤 중에 새들이 어찌 이리도 열심히 지저귀나 했더니, 아마도 너를 구하려 했던 것이로구나. 중생을 돕고자 하는 자비심이 깃든 그 소리에 감사해야겠구나.”
     
     
   그렇게 노인의 주름진 손이 옅게 빛났다.
     
   화악- 하고 일어난 몽글몽글한 빛이 소녀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고.
     
   “켁! 케헥!”
     
   금세, 소녀의 입을 통해 주먹만 한 독성이 빠져나온다.
     
   “허, 허허… 거 몸은 조그마한 녀석이 많이도 주워 먹었구나.”
     
   이만한 독성이면 청산가리를 퍼먹은 꼴인데.
     
   참새들이 지저귀는 것도 그렇고, 그저 평범한 아이는 아닌 모양이다.
     
   문제는.
     
   “이 아이를 이제 어찌해야 할꼬….”
     
   이 주변에 있는 마을만 여러 곳이다.
     
   심지어 서울이 아니던가.
     
   이토록 고운 아이가 혼자 있을 리 없었다.
     
   그가 스님이라 하더라도 말도 없이 소녀를 데려갈 수는 없는 법.
     
   “어쩔 수 없구나. 일단 서까지는 데려다줘야겠지.”
     
   밤중 산책이 길어질 듯하다.
     
   노인이 다시금 지팡이를 짚고, 막 소녀의 팔을 업으려던 때였다.
     
     
   “그 더러운 손으로 감히 누굴 건드려!”
     
   번쩍! 눈을 뜬 소녀가 요사스러운 안광을 뿜었다.
     
   “…각성자였나!”
     
   범상치 않은 힘이다.
     
   사람 하나는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것 같은 살기.
     
   제압해야 하나?
     
   노인이 고민하던 찰나였다.
     
     
   휘익-!
     
   소녀의 신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너무나도 빠른 속도에 어디로 갔는지조차 짐작하기 힘들 정도였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로구나.”
     
   노인은 그저 껄껄 웃고 말았다.
     
   “한 번으로 끝날 연이라면 그것으로 족하고, 인연이 남아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겠지.”
     
   성격이 드세고 능력도 뛰어난 걸 보니 어디 가서 잘못될 일은 없으리라.
     
   “끄응… 그런데 이제 또 언제 돌아가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사찰로 되돌아갈 때.
     
   겨우 정신을 차린 소녀가 헤롱대며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어라?”
     
   뭔가, 기억하던 거랑 주변이 많이 달라져 있다.
     
   납치된 건가?
     
     
   짹짹, 쨱-
     
   어깨에 앉아 지저귀는 참새를 보니 납치된 건 아니다.
     
   그럼, 뭐 문제없겠네.
     
   아프던 것도 싹 나은 걸 보니 미아가 또 힘을 써 준 모양이다.
     
   “역시 나보단 미아가 살았어야 했는데.”
     
   어찌 됐든 슬슬 잘 곳을 살펴봐야 한다.
     
   먹을 건 해결했지만, 언제까지 흙바닥에서 잘 수야 없다.
     
   자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이 몸은 미아의 것.
     
   고운 피부에 벌레가 기어다니게 두는 건 매너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벌떡 몸을 일으킨 소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하루 만에 두 번이나 뒤질 뻔해? 세 번은 없어. 그땐 진짜 너랑 나랑 같이 죽는 거야. 나 죽는 꼴 보기 싫으면 알아서 사려.]
     
   분노가 아주 가득한 편지였다.
     
   “어….”
     
   흙 위로 그려진 글자였는데, 얼마나 힘을 주고 쓴 건지 저 하늘 위에서도 보일 것만 같다.
     
   기분 탓이 아니다.
     
   글자 바로 옆에 뭉툭한 돌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문제는, 그 돌덩이의 한 면이 새 지우개처럼 직각으로 깎여 있다는 점이다.
     
     
   미아가… 능력 있는 각성자라는 건 알고 있는데.
     
   돌을 저렇게 깎아둔 걸 보니 식은땀이 절로 흐른다.
     
   지금은 눈이 없던, 팔과 다리가 없던 전과 다르다.
     
   미아가 정말 죽으려 한다면 그 광경을 지켜봐야만 한다는 뜻이다.
     
   “으우… 내, 내가 뭘 잘못 했다고….”
     
   제가 열심히도 주워 먹은 버섯이 독버섯이란 걸 추호도 알지 못하는 소녀로서는 억울할 따름이다.
     
   눈물이 찔끔 흐른다.
     
   괜히 원망이 치민다.
     
   미아는 꼭 이렇게 밉게 행동해야만 하는 걸까?
     
   소녀는 어쩔 수 없이 슬그머니 다시금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휙, 휙- 주변을 둘러보고는.
     
   “…이러면 나도 방법이 다 있거든!”
     
   곱게 자란 손톱을 대가로 포근한 솜이불을 소환한다.
     
   신의 은총이다.
     
   저 자신을 위해 써 본 건 처음이었고, 그만큼 기적을 낭비하는 듯한 느낌이 괜히 찝찝했다.
     
   하지만, 미아의 몸을 빼앗은 이상 그녀의 안위는 언제나 최우선.
     
   다치지 말라고 했으니, 목만 빼꼼 밖으로 내놓고는 몸을 돌돌 둘러 감싼다.
     
   툭 튀어나온 나무 기둥에 머리를 기대자, 완벽하다.
     
     
   편하다!
     
   따뜻하다!
     
   이러면 오늘 남은 시간 동안 다칠 일은 없겠지…?
     
     
   짹짹-!
     
   이불이 포근하다는 걸 알기라도 하는 듯, 참새 가족이 포르르 날아와 소녀의 가슴 위에 자리 잡는다.
     
   미약하지만 온기를 나누니 기분이 두 배로 좋다.
     
   “헤헤, 잘 자.”
     
   소녀는 금세 잠에 들었다.
     
   노인의 능력으로, 미아의 능력으로 깨끗하게 회복된 몸이지만.
     
   아직 어린 만큼 체력적인 문제는 어쩔 수 없었다.
     
   “흐에에-”
     
   얼마나 피곤했던지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는 연신 가쁜 숨을 내쉰다.
     
   그리고.
     
     
   “…언니. 저 애 뭐야? 미아인가? 저대로 놔둬도 돼?”
     
   멀지 않은 곳.
     
   오랜만의 캠핑에 나선 자매가 멍하니 잠에 든 소녀를 발견했다.
     
   근처 민가에서 총소리가 들려 찾아가 보고.
     
   자리를 비운 스님을 기다리다가 인사드리고.
     
   저녁 9시가 넘어서야 겨우 텐트 칠 자리를 찾아가던 도중이었다.
     
   정령이 나타났다.
     
     
   “어, 어. 환각인가?”
   “언니! 정신 차려!”
     
   뭐지? 대체 이게 무슨 광경이지?
     
   자매는 혼이 빠진 듯, 홀린 듯 소녀의 얼굴이 뚫어져라 바라본다.
     
   저렇게 어린 주제에 속눈썹 길이가 무슨….
     
   나 어릴 때는 찌다 만 호빵 같았는데…?
     
   어디 대단한 연예인의 아이라도 되는 건가?
     
   아니, 그런데 그 대단한 아이가 왜 산 중턱에서 이불을 펴고 자는 거지?
     
   부모는? 보호자는?
     
   자매의 정신은 쉽사리 돌아오지 못했다.
     
   어디 위험하다던 게이트에 갔을 때, 심지어 정신계 공격에 당했을 때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슬그머니 소녀를 향해 손을 뻗는 행동에 가슴이 작은 여인이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언니!”
     
   혹시나 아이가 깰세라 마력 파장을 통해 보낸 전음이었다.
     
   -“미친년이 애 자는데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정작 듣는 이로써는 귀가 째질만한 목소리여서 가슴 큰 여인이 파르르 떨며 버럭 화를 냈다.
     
   둘은 무슨 약속이라도 나눈 듯, 휙- 고개를 돌려 서로의 눈을 마주 봤다.
     
   영역을 두고 싸우는 고양이들처럼 하악질하며 이마를 맞댔다.
     
   “하… 그렇게 언성을 높이지 마, 언니. 약해 보여.”
   “그래! 내가 네 언니거든? 어디서 언니를 이겨 먹으려 들어!”
     
   “꼬우면 언니가 S급 하던가!”
   “…힝. 가슴도 작은 게.”
     
   “…씨발 년이?”
     
   결국 정신 차리지 못한 자매는 서로를 열심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소녀를 끌어안고 꺅꺅 소리를 질러댔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런 싸움도 잠깐이었다.
     
     
   짹짹-!
     
   소녀의 가슴을 베고 자던 참새가 포르르 날아올라 자매의 뺨을 치고 지나갔다.
     
   시끄러우니 입 좀 다물라는 뜻이었다.
     
   “…언니, 이제 진짜 조용히 하자.”
   “…응. 그래야겠다.”
     
   아무리 사이가 나쁜 자매라고 해도 공사는 구분할 줄 안다.
     
   “그래서. 이 애는 어떻게 할 거야?”
     
   아이가 혼자 있는데,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고 자는 아이를 날름 들고 나를 수도 없으니.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
     
   딜레마에 빠진 자매가 시선을 피하며 멀뚱멀뚱 누군가가 정답을 내놓길 기다렸다.
     
   결국.
     
     
   “…그럼, 우리도 그냥 여기에 텐트 펼까?”
   “역시 언니야!”
     
   자매는 미리 가기로 약속했던 계곡 대신, 이 어딘지 모를 산 중턱에 텐트를 펴기로 했다.
     
   직접 손대지 않고 도와줄 수 있는 건 누군가 아이를 건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렇게 노숙하는 아이의 옆으로 삼백만 원을 호가하는 호화스러운 텐트가 차려졌다.
     
   또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아동 학대라고 오해해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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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아파….

속이… 너무 이상해, 어지러워….

비틀거리던 소녀가 근처의 나무를 붙잡은 채 허리를 숙인다.

“에엑…”

주체할 수 없이 구역질이 쏟아졌다.

쨱짹- 짹!

참새 가족이 소녀의 머리 위를 빙빙 돌며 지저귄다.

날 걱정해 주는 거구나.

너무나 감동스러웠지만, 어찌 반응할 여유는 없다.

후끈하니 열이 오르고, 이제는 토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바지에 실례까지 할 것만 같았다.

비틀거리던 소녀가 결국 주체 못 하고 제자리에 쓰러져 내렸다.

털썩-

온몸의 근육이 경련하며 힘이 풀린다.

시야조차 가물가물하고, 호흡은 전력 질주를 한 듯 가빠진다.

[도, 도대체 뭘 먹은 거야! 장기가 죄다 괴사하고 있잖아!]

아, 미아 목소리다.

[이거 진짜 미친년 아니야?! 내 몸이니까 소중히 대하라고!!]

부글부글부글.

속이 미친 듯이 끓는 와중에도 소녀는 헤헤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버섯을 따 먹으면서 열심히 말 걸 때는 대답 한 번 안 해주더니.

그래도 이렇게 목소리가 들려오니 좋다.

환청이라 해도 상관없다.

언제고, 소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소원을 빌어 미아를 살려낼 수 있다는 거니까.

[야! 정신 차려! 정신 놓으면 안 돼!]

짹-! 짹짹짹짹–!

툭.

소녀의 고개가 힘을 잃고 땅 위로 처박혔다.

자그마하게 들려오던 미아의 목소리마저 멎어버리고.

세 마리의 참새가, 다른 참새들을 끌어모아 소녀의 머리 위를 뱅뱅 돌았다.

짹짹짹짹-

이미 해가 다 진 어두운 밤 중에 지치지도 않는지 요란한 지저귐.

그런 소녀를 살리고자 하는 미물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저벅, 저벅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려온다.

풀숲을 헤치고 환한 빛이 주변을 훑어내듯 어둠을 몰아낸다.

그와 함께 지팡이를 쥔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밤중에 웬 아이가….”

노인은 금세 둥글게 모인 참새 아래로 의식을 잃은 소녀를 발견했다.

하늘빛을 닮은 듯, 저 강물을 닮은 듯 묘하게도 빛나는 하늘빛 머리카락.

일고여덟 살 정도 되는 체구임에도 미래가 기대되는 오밀조밀한 생김새.

흙투성이의 엉망진창인 차림새가 아니었더라면 어디 높은 신분의 아이가 납치되어 온 건 아닐까, 의심해도 이상하지 않을 아이였다.

“…이건 독인가? 설마, 독버섯을 주워 먹은 게냐?”

안 그래도 계곡 주변인지라 이런저런 독버섯이 자라는 지역이다.

소녀의 증세를 보고 상황을 추측해 낸 노인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아이의 이마를 덮는다.

뜨겁다.

너무나도 뜨거워 손바닥이 욱신거릴 정도다.

이 작은 아이가 정말 독버섯을 먹은 거라면 여태 살아 있는 게 기적이었다.

“밤 중에 새들이 어찌 이리도 열심히 지저귀나 했더니, 아마도 너를 구하려 했던 것이로구나. 중생을 돕고자 하는 자비심이 깃든 그 소리에 감사해야겠구나.”

그렇게 노인의 주름진 손이 옅게 빛났다.

화악- 하고 일어난 몽글몽글한 빛이 소녀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고.

“켁! 케헥!”

금세, 소녀의 입을 통해 주먹만 한 독성이 빠져나온다.

“허, 허허… 거 몸은 조그마한 녀석이 많이도 주워 먹었구나.”

이만한 독성이면 청산가리를 퍼먹은 꼴인데.

참새들이 지저귀는 것도 그렇고, 그저 평범한 아이는 아닌 모양이다.

문제는.

“이 아이를 이제 어찌해야 할꼬….”

이 주변에 있는 마을만 여러 곳이다.

심지어 서울이 아니던가.

이토록 고운 아이가 혼자 있을 리 없었다.

그가 스님이라 하더라도 말도 없이 소녀를 데려갈 수는 없는 법.

“어쩔 수 없구나. 일단 서까지는 데려다줘야겠지.”

밤중 산책이 길어질 듯하다.

노인이 다시금 지팡이를 짚고, 막 소녀의 팔을 업으려던 때였다.

“그 더러운 손으로 감히 누굴 건드려!”

번쩍! 눈을 뜬 소녀가 요사스러운 안광을 뿜었다.

“…각성자였나!”

범상치 않은 힘이다.

사람 하나는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것 같은 살기.

제압해야 하나?

노인이 고민하던 찰나였다.

휘익-!

소녀의 신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너무나도 빠른 속도에 어디로 갔는지조차 짐작하기 힘들 정도였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로구나.”

노인은 그저 껄껄 웃고 말았다.

“한 번으로 끝날 연이라면 그것으로 족하고, 인연이 남아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겠지.”

성격이 드세고 능력도 뛰어난 걸 보니 어디 가서 잘못될 일은 없으리라.

“끄응… 그런데 이제 또 언제 돌아가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사찰로 되돌아갈 때.

겨우 정신을 차린 소녀가 헤롱대며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어라?”

뭔가, 기억하던 거랑 주변이 많이 달라져 있다.

납치된 건가?

짹짹, 쨱-

어깨에 앉아 지저귀는 참새를 보니 납치된 건 아니다.

그럼, 뭐 문제없겠네.

아프던 것도 싹 나은 걸 보니 미아가 또 힘을 써 준 모양이다.

“역시 나보단 미아가 살았어야 했는데.”

어찌 됐든 슬슬 잘 곳을 살펴봐야 한다.

먹을 건 해결했지만, 언제까지 흙바닥에서 잘 수야 없다.

자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이 몸은 미아의 것.

고운 피부에 벌레가 기어다니게 두는 건 매너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벌떡 몸을 일으킨 소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하루 만에 두 번이나 뒤질 뻔해? 세 번은 없어. 그땐 진짜 너랑 나랑 같이 죽는 거야. 나 죽는 꼴 보기 싫으면 알아서 사려.]

분노가 아주 가득한 편지였다.

“어….”

흙 위로 그려진 글자였는데, 얼마나 힘을 주고 쓴 건지 저 하늘 위에서도 보일 것만 같다.

기분 탓이 아니다.

글자 바로 옆에 뭉툭한 돌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문제는, 그 돌덩이의 한 면이 새 지우개처럼 직각으로 깎여 있다는 점이다.

미아가… 능력 있는 각성자라는 건 알고 있는데.

돌을 저렇게 깎아둔 걸 보니 식은땀이 절로 흐른다.

지금은 눈이 없던, 팔과 다리가 없던 전과 다르다.

미아가 정말 죽으려 한다면 그 광경을 지켜봐야만 한다는 뜻이다.

“으우… 내, 내가 뭘 잘못 했다고….”

제가 열심히도 주워 먹은 버섯이 독버섯이란 걸 추호도 알지 못하는 소녀로서는 억울할 따름이다.

눈물이 찔끔 흐른다.

괜히 원망이 치민다.

미아는 꼭 이렇게 밉게 행동해야만 하는 걸까?

소녀는 어쩔 수 없이 슬그머니 다시금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휙, 휙- 주변을 둘러보고는.

“…이러면 나도 방법이 다 있거든!”

곱게 자란 손톱을 대가로 포근한 솜이불을 소환한다.

신의 은총이다.

저 자신을 위해 써 본 건 처음이었고, 그만큼 기적을 낭비하는 듯한 느낌이 괜히 찝찝했다.

하지만, 미아의 몸을 빼앗은 이상 그녀의 안위는 언제나 최우선.

다치지 말라고 했으니, 목만 빼꼼 밖으로 내놓고는 몸을 돌돌 둘러 감싼다.

툭 튀어나온 나무 기둥에 머리를 기대자, 완벽하다.

편하다!

따뜻하다!

이러면 오늘 남은 시간 동안 다칠 일은 없겠지…?

짹짹-!

이불이 포근하다는 걸 알기라도 하는 듯, 참새 가족이 포르르 날아와 소녀의 가슴 위에 자리 잡는다.

미약하지만 온기를 나누니 기분이 두 배로 좋다.

“헤헤, 잘 자.”

소녀는 금세 잠에 들었다.

노인의 능력으로, 미아의 능력으로 깨끗하게 회복된 몸이지만.

아직 어린 만큼 체력적인 문제는 어쩔 수 없었다.

“흐에에-”

얼마나 피곤했던지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는 연신 가쁜 숨을 내쉰다.

그리고.

“…언니. 저 애 뭐야? 미아인가? 저대로 놔둬도 돼?”

멀지 않은 곳.

오랜만의 캠핑에 나선 자매가 멍하니 잠에 든 소녀를 발견했다.

근처 민가에서 총소리가 들려 찾아가 보고.

자리를 비운 스님을 기다리다가 인사드리고.

저녁 9시가 넘어서야 겨우 텐트 칠 자리를 찾아가던 도중이었다.

정령이 나타났다.

“어, 어. 환각인가?”

“언니! 정신 차려!”

뭐지? 대체 이게 무슨 광경이지?

자매는 혼이 빠진 듯, 홀린 듯 소녀의 얼굴이 뚫어져라 바라본다.

저렇게 어린 주제에 속눈썹 길이가 무슨….

나 어릴 때는 찌다 만 호빵 같았는데…?

어디 대단한 연예인의 아이라도 되는 건가?

아니, 그런데 그 대단한 아이가 왜 산 중턱에서 이불을 펴고 자는 거지?

부모는? 보호자는?

자매의 정신은 쉽사리 돌아오지 못했다.

어디 위험하다던 게이트에 갔을 때, 심지어 정신계 공격에 당했을 때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슬그머니 소녀를 향해 손을 뻗는 행동에 가슴이 작은 여인이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언니!”

혹시나 아이가 깰세라 마력 파장을 통해 보낸 전음이었다.

-“미친년이 애 자는데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정작 듣는 이로써는 귀가 째질만한 목소리여서 가슴 큰 여인이 파르르 떨며 버럭 화를 냈다.

둘은 무슨 약속이라도 나눈 듯, 휙- 고개를 돌려 서로의 눈을 마주 봤다.

영역을 두고 싸우는 고양이들처럼 하악질하며 이마를 맞댔다.

“하… 그렇게 언성을 높이지 마, 언니. 약해 보여.”

“그래! 내가 네 언니거든? 어디서 언니를 이겨 먹으려 들어!”

“꼬우면 언니가 S급 하던가!”

“…힝. 가슴도 작은 게.”

“…씨발 년이?”

결국 정신 차리지 못한 자매는 서로를 열심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소녀를 끌어안고 꺅꺅 소리를 질러댔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런 싸움도 잠깐이었다.

짹짹-!

소녀의 가슴을 베고 자던 참새가 포르르 날아올라 자매의 뺨을 치고 지나갔다.

시끄러우니 입 좀 다물라는 뜻이었다.

“…언니, 이제 진짜 조용히 하자.”

“…응. 그래야겠다.”

아무리 사이가 나쁜 자매라고 해도 공사는 구분할 줄 안다.

“그래서. 이 애는 어떻게 할 거야?”

아이가 혼자 있는데,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고 자는 아이를 날름 들고 나를 수도 없으니.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

딜레마에 빠진 자매가 시선을 피하며 멀뚱멀뚱 누군가가 정답을 내놓길 기다렸다.

결국.

“…그럼, 우리도 그냥 여기에 텐트 펼까?”

“역시 언니야!”

자매는 미리 가기로 약속했던 계곡 대신, 이 어딘지 모를 산 중턱에 텐트를 펴기로 했다.

직접 손대지 않고 도와줄 수 있는 건 누군가 아이를 건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렇게 노숙하는 아이의 옆으로 삼백만 원을 호가하는 호화스러운 텐트가 차려졌다.

또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아동 학대라고 오해해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이었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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