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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3화. 최대한 빠르게.
     
     
     
     
     
     
     
   [이름]: 한강호
   […]: ……
   [종]: 인간 / 2차 변이체.
   [특성]: 우레폭풍.
   [등급]: LV. 2
   [속성]: 플라즈마. (신규)전자기장.
   [전문 기술]: 기체방전. 제어 열 핵융합.
   [보조 기술]: 매뉴얼 – 전용 서고(자체 진화)
   
   상태를 확인한 강호는 잠시 멍하니 있어야 했다.
   그리고 곧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사토시와 다르게, 자신은 처음부터 1차 변이체였다.
   이유는 아마도 혈청 때문인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 폭발의 여파로 2차 변이체가 됐다.
   그게 무슨 차이고, 어떤 의미인지는 모른다.
   다만, 없던 특성과 속성이 생기고 기술이라는 것들이 정의됐다.
     
   ‘피폭 됐구나.’
     
   폭발을 일으킨 쉘터는 비상 전력 공급 발전 시설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핵융합 시설은 아니었다.
     
   ‘방사능이 아닌 건 다행이지만, 전자기장 피폭도 심각한데.’
     
   아랫입술을 잘근 깨문 강호의 눈에 뒤늦게 울프가 들어왔다.
   역시나, 달라진 게 보였다.
     
   [이름]: 울프
   […]: ……
   [종]: 늑대개 / 2차 변이체.
   [특성]: 비스트.
   [등급]: LV.2.
   [속성]: 물리.
   [전문 기술]: 돌격. 분쇄.
   [보조 기술]: 경계. 경비. 탐색. 수색.
     
   이번에도 강호는 헛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하!
     
   정말 생각할수록 기가 찼다.
   항목도 항목이지만, 그 내용까지 쉬이 믿기지 않았다.
     
   ‘이게 정말 현실적으로 다 가능한 얘기야?’
     
   절로 드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장 자신이 그런 능력을 쓰고 있으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아아.
     
   강호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직 혼절해 있는 사토시를 깨웠다.
     
   “이봐. 정신 차려.”
     
   몇 번 흔들었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으음.”
   “정신 들어? 몸은 괜찮나?”
     
   눈을 끔뻑거리던 사토시가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아, 무슨 일입니까?!”
   “기억 안 나?”
   “… 폭발, 그렇군요.”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때, 기계음 같은 잡음 뒤로 경보 방송이 울렸다.
     
   「종 보관소 지하 10층, 발전소 파괴로 24시간 후 폐쇄됩니다. 모든 인원은 서둘러 대피하십시오!」
     
   같은 내용이 두 번 더 반복됐다.
   그걸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게 있었다.
     
   ‘재난 매뉴얼 제9장. 폐쇄.’
     
   해당 내용이 빠르게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강호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젠장.”
     
   그런 강호를 가만 보고 있던 사토시가 따라 일어서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시간 내에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다 죽는다.”
   “네? 복구하는 게 아니고요? 무슨 그런…”
     
   강호는 사토시의 의문 가득한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한가하게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일단 움직여야 해.”
     
   더 이상의 설명 없이, 그는 다짜고짜 뛰기 시작했다.
     
   타다다.
     
   그러자 울프가 먼저 강호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컹.
     
   그걸 보고 있던 사토시가 뒤늦게 발을 뗐다.
     
   “아, 같이 가요!”
     
   전력 질주까지는 아니지만, 꽤 빠른 속도로 달렸다.
   사토시는 의아함이 일었다.
     
   ‘내가, 이렇게 잘 달렸던가?’
     
   민첩성이나 유연성은 자신 있는 편이었지만, 지구력은 상당히 약했다.
   그런데, 어쩐지 몸에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고개를 갸웃하다 보니, 뛰는 방향이 승강장 쪽이 아닌 걸 뒤늦게 인지했다.
     
   “어? 우리, 어디로 가는 겁니까?”
   “병원.”
     
   강호의 대답이 짧게 들려왔다.
   사토시는 의아한 마음에 다시 물었다.
   
   “거긴 왜…?”
     
   강호에게는 그 질문이 시간도 촉박하다면서 거긴 뭐 하러 가느냐는 항의로 들렸다.
     
   “…….”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강호의 머릿속에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리사, 리사 아즈벨.’
   
   스물두 살에 의학 박사, 스물넷에 생명공학 박사, 스물여섯 살에 화학공학 박사를 딴 천재 의사.
     
   그는 이미 그녀의 정보를 알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재난 비상 상황에서 그런 천재 의사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제발 무사하기나 해라.’
     
   강호는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마음이 급한 중에도 여러 가지가 자꾸 머리를 어지럽혔다.
     
   사토시와 울프, 그리고 자신의 달라진 능력의 원인을 다시 상기했다.
     
   ‘전자기장 피폭이라.’
     
   다시 생각해도 죽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런데 문득, 뇌 정지라도 온 것처럼 갑자기 생각이 멈췄다.
   그리고 괜한 웃음이 났다.
     
   피식.
     
   불과 조금 전까지 병원 앞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허무에 빠져있던 자신이 떠오른 것이다.
     
   삶의 목적이 없다느니, 왜 사는 건지 모르겠다느니, 그런 생각을 하던 자신 아니었던가.
   그런데 막상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자 본능처럼 살겠다는 의지와 목적의식이 확 잡혀버렸다.
     
   ‘그래. 뭘 하며 살든, 일단 살자. 살아서 여길 나가자.’
     
   생각이 그렇게 정리되자, 그제야 여러 의문이 순차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폭발 사고에 관한 것이었다.
     
   이유가 뭘까?
   왜 갑자기 비상 전원 공급장치가 있는 발전소 쉘터가 폭발했을까?
   그토록 절대 안전을 자부하던 시설 아니었던가.
     
   의문이 점차 깊어지기 시작했을 때, 뒤따라 달리던 사토시가 물었다.
     
   “어째서 이렇게 빨리 폐쇄 결정을 내린 걸까요?”
     
   그 역시 강호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별생각 없는 줄 알았더니.’
     
   강호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잠깐 생각을 정리한 후 설명을 시작했다.
     
   “세계 종 보관소의 기본 구조는 쉘터다. 특정 기능을 가진 쉘터의 유기적 집합체지.”
     
   그런 모듈형 구조물의 장점 중 하나가 간편한 연결과 분리다.
   즉, 발전 시설 하나가 파괴됐으면 해당 쉘터만 차단하고 격리하면 된다.
     
   “그런데, 층 전체를 폐쇄했다.”
     
   강호의 설명을 들은 사토시의 목소리가 커졌다.
     
   “폭발한 발전소 쉘터만 차단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까?”
     
   강호는 짧게 답했다.
     
   “아마도.”
     
   각층 마다 발전 시설은 있으니 당장 대책을 마련하는 데는 문제 없을 것이다.
   그러니, 10층 폐쇄 결정은 적절했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각층별로 철저하게 독립된 구조니까.’
     
   어느새 병원 앞에 도착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일단 건물이나 시설에는 변화가 없었다.
     
   문제는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더 이상 사람은 아닌 존재들.
     
   “저, 저게 대체 뭡니까?”
     
   사토시의 놀란 목소리와 동시에 울프의 경계가 시작됐다.
     
   크르르르르.
     
   강호는 빠르고 자세하게 주변을 살폈다.
     
   ‘자기장에 피폭됐는데 왜 사람들이 좀비가 된 거야?’
     
   생화학 물질이라던가, 의학 폐기 오염물 같으면 또 모를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사토시나 울프, 그리고 나는 좀비가 되는 대신 뭔가 이상한 능력이 생겼는데.’
     
   하지만 깊이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비교적 근접해 있던 좀비가 한강호 일행을 인식하고 덤벼들었다.
     
   “크르르르.”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울프였다.
     
   크항!
     
   쏜살같이 달려 나가더니 두어 번의 도약 만에 좀비를 덮쳤다.
     
   콰직.
     
   목을 물어뜯어 머리를 분리해 버렸다.
   그러고는 자세를 낮춰 다른 좀비를 경계했다.
     
   크르르르.
     
   ‘와, 멋있다.’
     
   지금 상황에 맞는 감정은 아니었지만, 야수의 압도적인 위압감과 힘에 절로 감탄한 것이다.
     
   하지만 금방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가 이 지경이면 병원 안쪽은?’
     
   강호는 사토시를 돌아보며 말했다.
     
   “엄호하면서 따라와!”
   “네? 어, 어디 가시게요?”
     
   이번에도 강호는 대답 없이 곧장 앞으로 내달렸다.
     
   타탓.
     
   ‘방어막.’
     
   한 번 사용해 본 건 쉽게 재현이 됐다.
   범위를 좁혀서인지 투명막이 몸 전체를 둘렀다.
     
   파직.
   프스스.
     
   좀비는 강호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그저 가까이 지나치는 그를 할퀴는 정도가 전부였지만, 그마저도 방어막에 막혔다.
   덕분에 지체 없이 병원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내부 상황은 예상대로였다.
   확실히 외부보다 더 삐그덕거리며 복도를 돌아다니는 좀비 수가 많았다.
     
   ‘대부분 환자복을 입고 있어.’
     
   아무래도 병동에 있던 환자들이 그대로 좀비가 된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강호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러자 팔뚝과 주먹 어림으로 푸른 막이 둘렸고, 작은 번개가 강렬하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우우웅.
   파츠츠츠츠.
     
   주먹에서부터 어깨까지를 중심 삼아 지글거리는 번개가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다.
     
   파츳!
   파츠츠츳!
     
   그 화려한 위용이 꽤 강렬했다.
     
   ‘이거, 힘 조절이 필요할 것 같은데.’
     
   강호는 좀비가 자신을 인식하고 달려들기 전에 먼저 복도를 가로질러 달렸다.
     
   팟!
     
   길을 뚫겠다는 목적으로 사정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후웅.
   퍽.
     
   파츳!
   퍼퍼퍽.
     
   “끄아아!”
   “쿠학!”
     
   쿵.
   철퍼덕.
     
   주먹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강호는 탄성을 삼켜야 했다.
     
   ‘무슨 이런 위력이?!’
     
   주먹에 닿는 족족 좀비들의 몸통이 퍽 퍽 터져나갔다.
   물리적 타격감이 아닌, 공기가 압축되고 폭발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플라즈마 외에 전자기력 특성이 생기더니, 이런 공격 옵션이 가능하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특수 혈청 주입 후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육체 능력까지 더 강화됐다.
     
   좀비를 어깨로 들이받으면 마치 덤프트럭에 치인 것처럼 이미 작살나 붕 날아가서 벽에 처박혔다.
   이 또한 단순한 물리력 강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파직.
   파지직.
     
   어깨 주위로도 번개가 번쩍거리고 푸른 막이 지글지글 끓었다.
     
   강호는 혹시나 해서 상태를 확인했다.
     
   [공격 스킬]: (신규)전격 차징.
     
   그걸 보는 순간, 복도를 가득 메운 좀비들이 더는 부담스럽지 않았다.
     
   “좋아. 최대한 빠르게.”
     
   여세를 몰아 파괴력을 높였다.
     
   부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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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최대한 빠르게.

[이름]: 한강호

[…]: ……

[종]: 인간 / 2차 변이체.

[특성]: 우레폭풍.

[등급]: LV. 2

[속성]: 플라즈마. (신규)전자기장.

[전문 기술]: 기체방전. 제어 열 핵융합.

[보조 기술]: 매뉴얼 – 전용 서고(자체 진화)

상태를 확인한 강호는 잠시 멍하니 있어야 했다.

그리고 곧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사토시와 다르게, 자신은 처음부터 1차 변이체였다.

이유는 아마도 혈청 때문인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 폭발의 여파로 2차 변이체가 됐다.

그게 무슨 차이고, 어떤 의미인지는 모른다.

다만, 없던 특성과 속성이 생기고 기술이라는 것들이 정의됐다.

‘피폭 됐구나.’

폭발을 일으킨 쉘터는 비상 전력 공급 발전 시설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핵융합 시설은 아니었다.

‘방사능이 아닌 건 다행이지만, 전자기장 피폭도 심각한데.’

아랫입술을 잘근 깨문 강호의 눈에 뒤늦게 울프가 들어왔다.

역시나, 달라진 게 보였다.

[이름]: 울프

[…]: ……

[종]: 늑대개 / 2차 변이체.

[특성]: 비스트.

[등급]: LV.2.

[속성]: 물리.

[전문 기술]: 돌격. 분쇄.

[보조 기술]: 경계. 경비. 탐색. 수색.

이번에도 강호는 헛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하!

정말 생각할수록 기가 찼다.

항목도 항목이지만, 그 내용까지 쉬이 믿기지 않았다.

‘이게 정말 현실적으로 다 가능한 얘기야?’

절로 드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장 자신이 그런 능력을 쓰고 있으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아아.

강호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직 혼절해 있는 사토시를 깨웠다.

“이봐. 정신 차려.”

몇 번 흔들었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으음.”

“정신 들어? 몸은 괜찮나?”

눈을 끔뻑거리던 사토시가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아, 무슨 일입니까?!”

“기억 안 나?”

“… 폭발, 그렇군요.”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때, 기계음 같은 잡음 뒤로 경보 방송이 울렸다.

「종 보관소 지하 10층, 발전소 파괴로 24시간 후 폐쇄됩니다. 모든 인원은 서둘러 대피하십시오!」

같은 내용이 두 번 더 반복됐다.

그걸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게 있었다.

‘재난 매뉴얼 제9장. 폐쇄.’

해당 내용이 빠르게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강호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젠장.”

그런 강호를 가만 보고 있던 사토시가 따라 일어서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시간 내에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다 죽는다.”

“네? 복구하는 게 아니고요? 무슨 그런…”

강호는 사토시의 의문 가득한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한가하게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일단 움직여야 해.”

더 이상의 설명 없이, 그는 다짜고짜 뛰기 시작했다.

타다다.

그러자 울프가 먼저 강호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컹.

그걸 보고 있던 사토시가 뒤늦게 발을 뗐다.

“아, 같이 가요!”

전력 질주까지는 아니지만, 꽤 빠른 속도로 달렸다.

사토시는 의아함이 일었다.

‘내가, 이렇게 잘 달렸던가?’

민첩성이나 유연성은 자신 있는 편이었지만, 지구력은 상당히 약했다.

그런데, 어쩐지 몸에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고개를 갸웃하다 보니, 뛰는 방향이 승강장 쪽이 아닌 걸 뒤늦게 인지했다.

“어? 우리, 어디로 가는 겁니까?”

“병원.”

강호의 대답이 짧게 들려왔다.

사토시는 의아한 마음에 다시 물었다.

“거긴 왜…?”

강호에게는 그 질문이 시간도 촉박하다면서 거긴 뭐 하러 가느냐는 항의로 들렸다.

“…….”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강호의 머릿속에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리사, 리사 아즈벨.’

스물두 살에 의학 박사, 스물넷에 생명공학 박사, 스물여섯 살에 화학공학 박사를 딴 천재 의사.

그는 이미 그녀의 정보를 알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재난 비상 상황에서 그런 천재 의사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제발 무사하기나 해라.’

강호는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마음이 급한 중에도 여러 가지가 자꾸 머리를 어지럽혔다.

사토시와 울프, 그리고 자신의 달라진 능력의 원인을 다시 상기했다.

‘전자기장 피폭이라.’

다시 생각해도 죽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런데 문득, 뇌 정지라도 온 것처럼 갑자기 생각이 멈췄다.

그리고 괜한 웃음이 났다.

피식.

불과 조금 전까지 병원 앞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허무에 빠져있던 자신이 떠오른 것이다.

삶의 목적이 없다느니, 왜 사는 건지 모르겠다느니, 그런 생각을 하던 자신 아니었던가.

그런데 막상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자 본능처럼 살겠다는 의지와 목적의식이 확 잡혀버렸다.

‘그래. 뭘 하며 살든, 일단 살자. 살아서 여길 나가자.’

생각이 그렇게 정리되자, 그제야 여러 의문이 순차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폭발 사고에 관한 것이었다.

이유가 뭘까?

왜 갑자기 비상 전원 공급장치가 있는 발전소 쉘터가 폭발했을까?

그토록 절대 안전을 자부하던 시설 아니었던가.

의문이 점차 깊어지기 시작했을 때, 뒤따라 달리던 사토시가 물었다.

“어째서 이렇게 빨리 폐쇄 결정을 내린 걸까요?”

그 역시 강호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별생각 없는 줄 알았더니.’

강호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잠깐 생각을 정리한 후 설명을 시작했다.

“세계 종 보관소의 기본 구조는 쉘터다. 특정 기능을 가진 쉘터의 유기적 집합체지.”

그런 모듈형 구조물의 장점 중 하나가 간편한 연결과 분리다.

즉, 발전 시설 하나가 파괴됐으면 해당 쉘터만 차단하고 격리하면 된다.

“그런데, 층 전체를 폐쇄했다.”

강호의 설명을 들은 사토시의 목소리가 커졌다.

“폭발한 발전소 쉘터만 차단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까?”

강호는 짧게 답했다.

“아마도.”

각층 마다 발전 시설은 있으니 당장 대책을 마련하는 데는 문제 없을 것이다.

그러니, 10층 폐쇄 결정은 적절했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각층별로 철저하게 독립된 구조니까.’

어느새 병원 앞에 도착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일단 건물이나 시설에는 변화가 없었다.

문제는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더 이상 사람은 아닌 존재들.

“저, 저게 대체 뭡니까?”

사토시의 놀란 목소리와 동시에 울프의 경계가 시작됐다.

크르르르르.

강호는 빠르고 자세하게 주변을 살폈다.

‘자기장에 피폭됐는데 왜 사람들이 좀비가 된 거야?’

생화학 물질이라던가, 의학 폐기 오염물 같으면 또 모를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사토시나 울프, 그리고 나는 좀비가 되는 대신 뭔가 이상한 능력이 생겼는데.’

하지만 깊이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비교적 근접해 있던 좀비가 한강호 일행을 인식하고 덤벼들었다.

“크르르르.”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울프였다.

크항!

쏜살같이 달려 나가더니 두어 번의 도약 만에 좀비를 덮쳤다.

콰직.

목을 물어뜯어 머리를 분리해 버렸다.

그러고는 자세를 낮춰 다른 좀비를 경계했다.

크르르르.

‘와, 멋있다.’

지금 상황에 맞는 감정은 아니었지만, 야수의 압도적인 위압감과 힘에 절로 감탄한 것이다.

하지만 금방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가 이 지경이면 병원 안쪽은?’

강호는 사토시를 돌아보며 말했다.

“엄호하면서 따라와!”

“네? 어, 어디 가시게요?”

이번에도 강호는 대답 없이 곧장 앞으로 내달렸다.

타탓.

‘방어막.’

한 번 사용해 본 건 쉽게 재현이 됐다.

범위를 좁혀서인지 투명막이 몸 전체를 둘렀다.

파직.

프스스.

좀비는 강호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그저 가까이 지나치는 그를 할퀴는 정도가 전부였지만, 그마저도 방어막에 막혔다.

덕분에 지체 없이 병원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내부 상황은 예상대로였다.

확실히 외부보다 더 삐그덕거리며 복도를 돌아다니는 좀비 수가 많았다.

‘대부분 환자복을 입고 있어.’

아무래도 병동에 있던 환자들이 그대로 좀비가 된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강호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러자 팔뚝과 주먹 어림으로 푸른 막이 둘렸고, 작은 번개가 강렬하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우우웅.

파츠츠츠츠.

주먹에서부터 어깨까지를 중심 삼아 지글거리는 번개가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다.

파츳!

파츠츠츳!

그 화려한 위용이 꽤 강렬했다.

‘이거, 힘 조절이 필요할 것 같은데.’

강호는 좀비가 자신을 인식하고 달려들기 전에 먼저 복도를 가로질러 달렸다.

팟!

길을 뚫겠다는 목적으로 사정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후웅.

퍽.

파츳!

퍼퍼퍽.

“끄아아!”

“쿠학!”

쿵.

철퍼덕.

주먹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강호는 탄성을 삼켜야 했다.

‘무슨 이런 위력이?!’

주먹에 닿는 족족 좀비들의 몸통이 퍽 퍽 터져나갔다.

물리적 타격감이 아닌, 공기가 압축되고 폭발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플라즈마 외에 전자기력 특성이 생기더니, 이런 공격 옵션이 가능하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특수 혈청 주입 후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육체 능력까지 더 강화됐다.

좀비를 어깨로 들이받으면 마치 덤프트럭에 치인 것처럼 이미 작살나 붕 날아가서 벽에 처박혔다.

이 또한 단순한 물리력 강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파직.

파지직.

어깨 주위로도 번개가 번쩍거리고 푸른 막이 지글지글 끓었다.

강호는 혹시나 해서 상태를 확인했다.

[공격 스킬]: (신규)전격 차징.

그걸 보는 순간, 복도를 가득 메운 좀비들이 더는 부담스럽지 않았다.

“좋아. 최대한 빠르게.”

여세를 몰아 파괴력을 높였다.

부아아아앙!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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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When a disaster strikes, I know what to do. Only I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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