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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왜 모르는 척이야. 우리 사이에?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키워 준 거야 잘 알고 있긴 하지만. 어떤 의미론 그래서 묶여버린 거잖냐.”

     

   크라슈에게 알리오드는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이자 소중한 이였다.

   하지만 발하임의 집사에게는 한가지 최악의 룰이 적용되어 있다.

     

   그 룰은 바로 자신이 섬기기로 한 직계가 가문 내에서 어디까지 입지를 굳히느냐에 따라 그들의 출세도 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섬기는 직계를 평생토록 따라가야 한다.

     

   설령 그 직계가 청송관에 보내질 정도라도 말이다.

     

   그들이 이 저주 같은 구조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단 하나.

   섬기던 직계가 죽었을 때다.

     

   물론 섬기던 직계가 죽을 시 그들 또한 은퇴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알리오드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왜냐하면 크라슈의 셋째 형이 그에게 한 가지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 한 가지 조건은 다름 아닌 크라슈의 독살이었다.

   그는 크라슈를 독살하면 그에게 앞으로 살아갈 새로운 자리는 물론 거금도 마련해 주겠다고 하였다.

     

   ‘우리 셋째 형님은 나를 지독하게도 싫어했지.’

     

   셋째 형님이 자신을 싫어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넷째 누나에게 있었다.

     

   총 다섯 명으로 이루어져 있는 발하임 가의 직계.

   그중 둘은 사실 나머지 형제와 핏줄의 절반이 달랐다.

     

   첫째부터 시작해 셋째까지는 전 부인이 낳은 자식들이고.

   그 뒤에 넷째와 막내인 크라슈는 발하임 가주가 들인 현부인의 자식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중 넷째인 크라슈의 누나 샬롯 발하임이 가장 큰 문제였다.

     

   ‘발하임이 낳은 최고의 천재.’

     

   발하임에서조차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말도 안 되는 재능을 타고난 샬롯.

   그 재능을 바탕으로 샬롯 발하임은 한순간에 발하임 내의 직계 위치를 뒤집어 놓았다.

     

   그 결과 셋째 형은 물론이고, 둘째 누나마저 샬롯에게 직계 순위를 강탈당했고.

   그 결과 셋째 형은 갈 곳 잃은 분노를 마음속에 담았다.

     

   가문에서도 노골적으로 샬롯을 밀어주니 셋째 형은 그야말로 찬밥 신세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셋째 형의 분노의 눈길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나였고.’

     

   샬롯과 같은 핏줄이나 형편없는 실력을 지닌 막내.

     

   본래도 새롭게 시집온 크라슈의 어머니조차 미워하던 셋째다.

   그는 샬롯의 성장과 함께 직계 순위까지 밀린 순간 그 분노를 애꿎은 크라슈에게 전부 쏟아 부었던 것이다.

     

   크라슈를 정말로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샬롯에게는 아무런 대적도 못 하니까. 그나마 얼굴이 좀 닮은 나에게라도 쏟아낸 거겠지.’

     

   크라슈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일이었지만 자신은 거기에 대항할 힘조차 지니지 못했었다.

   자신을 섬겨야 할 집사조차 그의 거래에 결국 응하게 될 정도로 말이다.

     

   “뭐, 됐다. 네가 모른 척할 거라면 신경 쓰지 않아.”

     

   크라슈는 딱히 알리오드를 더 나무라지 않았다.

   결국 집사가 셋째 형에게 넘어 간 것도 자신이 반푼이라서 그랬다.

     

   애초에 크라슈가 살아 있는 건 그의 독살이 실패해서였다.

     

   그야 당연했다.

   알리오드가 암살을 실행하기로 한 그날.

     

   ‘저 녀석은 내 눈앞에서 자살했으니까.’

     

   스튜에 태웠던 독을 알리오드는 크라슈가 먹기 직전 빼앗아 스스로 마셨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제가 감히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도련님도 제 자식만큼이나 소중한데 어찌 감히…….」

     

   그날 독으로 죽어가던 알리오드가 사죄하던 그 모습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 대신 너 나 좀 따라와라.”

     

   하지만 그건 그거고, 그에게는 따로 부탁할 일은 있었다.

     

   “……예.”

     

   무언가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알리오드는 꽤나 순순히 대답하였다.

     

   크라슈는 그런 알리오드를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이 시기라면 분명히 있겠지.’

     

   자신의 기억이 맞기를 바라며 크라슈의 걸음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청송관의 서재였다.

   수많은 책이 놓여 있는 서재지만 사실 이 서재는 그저 구색일 뿐이었다.

     

   실제로 이곳에서 책을 읽어본 크라슈는 그다지 쓸만한 책들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청송관이 괜히 발하임에서 버려진 이들이 오는 곳이 아니다.

     

   청송관에 쓸만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딱 하나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크라슈 도련님, 찾으시는 책이라도 있으십니까?”

     

   뜬금없이 서재에 들린 크라슈.

   그를 보고, 알리오드가 의문을 품자 크라슈는 대답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대뜸 책장 앞에 섰다.

     

   “알리오드.”

   “예.”

   “이거 좀 치워라.”

     

   알리오드가 의문을 보였다.

   그러나 크라슈의 명령은 어딘가 거절하기 힘든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을 어디서 받았었지.’

     

   가주.

   발하임의 가주였다.

     

   하지만 그는 금세 생각을 털어냈다.

   그분과 크라슈를 비교하는 것은 아직 너무 시기상조였기 때문이었다.

     

   알리오드는 책장의 모든 책을 빼내고 이내 책장까지 치웠다.

   그렇게 나타난 것은 평범한 서재의 벽이었다.

     

   “이 벽, 베라.”

   “예?”

     

   책장을 치우라더니 이제는 벽까지 베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알리오드는 크라슈의 집사였다.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만큼 알리오드는 이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그의 검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발하임의 집사라 하면 무릇 상급 기사 실력을 갖춰야만 한다.

   그래야 최소한 발하임의 직계를 보좌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겠습니다.”

     

   피어오른 검기와 함께 알리오드가 벽을 베어 갈랐다.

   크라슈의 명령을 충실히 따른 그가 깔끔한 베기를 마친 순간 쿠구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잠시 후 벽의 외벽이 네모의 형태로 잘려져 뒤로 넘어갔다.

   그 순간 알리오드는 깨달았다.

     

   서재의 외벽 너머 무언가 공간이 있음을 말이다.

   이곳을 미리 알고 있었던 건가?

     

   청송관에 배정받은 알리오드조차 알지 못했던 장소다.

   알리오드가 그곳을 멍하니 보던 순간 크라슈가 잘린 외벽을 넘었다.

     

   “잘했다.”

     

   크라슈는 알리오드를 짧게 칭찬하고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 크라슈를 알리오드가 홀린 듯이 따라 들어갔다.

     

   잠시 후 그들은 거대한 자물쇠와 마주했다.

   사람 손 보다도 더 커다란 자물쇠는 문 앞에 굳건하게 채워져 있었다.

     

   크라슈는 먼지가 자욱한 그 문 앞에 채워진 자물쇠 앞에 섰다.

     

   “자물쇠도 베어야 합니까?”

   “아니, 그것까진 됐어.”

     

   청송관의 서재 너머 벽.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이미 죄다 불타버려 의미 없어진 장소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건 상당히 먼 미래의 일이니까.

     

   ‘청송관은 분명 발하임에서 버려진 자들이 보내지는 장소야.’

     

   그렇기에 반푼이인 크라슈도 보내졌다.

   크라슈는 이곳에서 허송세월하였다.

     

   하지만 원래 청송관이 지어진 목적은 그런 악의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지금은 발하임이 생긴 지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청송관의 본래 의미는 발하임에서 능력 없는 이가 태어났을 때, 그자가 발하임에서 다시금 빛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청송관은 한 가지 사건으로 인해 본래 의미가 바뀌고 말았다.

     

   청송관에서 자란 발하임 가의 최악의 수치이자 악마.

   발하임을 멸문시키려 했던 자.

     

   데마리스 발하임에 의해 말이다.

     

   ‘그 덕분에 이곳도 숨겨지고 말았지.’

     

   데마리스와 같은 이가 또다시 태어나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감춰진 이곳.

   청송관의 비밀 서고.

   발하임의 반푼이를 위한 장소였다.

   

   발하임의 가주 정도는 되지 않는 이상, 발하임 직계들 조차 모르는 장소.

     

   그곳에 도착한 크라슈는 거대한 자물쇠 위에 손을 올렸다.

     

   본래라면 상급 기사인 알리오드마저 벨 수 없는 성질로 만들어진 자물쇠다.

     

   그러나 자신은 다르다.

     

   훔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게 뭐던가.

   그건 바로 자물쇠 따기다.

     

   지금까지 수많은 자물쇠를 따본 크라슈에게 있어 청송관의 비밀 서고 자물쇠는 손쉬운 일이었다.

     

   ‘현역 실력 좀 보여주실까.’

     

   크라슈는 바로 블랙 후드를 발동시켰다.

     

   대상이 가진 것을 훔치는 블랙 후드.

   그 대상은 당연히 물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대신 생물과 다른 것은 가치 판단이 물건에는 필요 없다는 점이다.

   특히, 오래도록 주인이 없는 물건이라면 말이다.

     

   철컹!

     

   그 순간 크라슈의 손아귀에 자물쇠의 고리가 쥐어졌다.

     

   쿵!

     

   고리를 잃은 커다란 자물쇠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을 보고 알리오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사이 크라슈는 고리를 대충 바닥에 던졌다.

     

   “……크라슈 도련님, 혹시 신과 계약을 하신 겁니까?”

     

   그러자 알리오드가 놀란 눈으로 신과의 계약 여부를 물어왔다.

   크라슈의 방금 보인 능력은 명백히 스킬이었다.

     

   스킬은 기상천외하고 억지력을 작용시킨다.

   그렇기에 알리오드가 묻자 크라슈는 그를 힐끗 보았다.

     

   아무래도 이 시점에 자신은 아직 신과 계약하기 전이었던 모양이다.

     

   “뭐, 그냥 변변찮은 신이야. 아버지한테 보고하려면 해도 돼. 서고 일도 상관없다.”

     

   집사의 일은 전부 가주인 아버지에게 보고가 올라간다.

   그 사실을 알기에 크라슈가 그리 말하자 알리오드는 침묵하다 이내 고개 숙여 말했다.

     

   “최소한 크라슈 도련님이 하시려는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함구하고 있겠습니다.”

     

   돌아온 말은 꽤 의외의 말이었다.

     

   크라슈의 기억 속 알리오드는 출세 욕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출세 욕심이 생긴 이유는 다름 아닌 불치병에 걸린 딸 때문이었다.

     

   그가 발하임에서 받는 급여는 전부 딸아이의 불치병 치료제에 쓰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돈은 모자랐다.

     

   그렇다 보니 그는 더더욱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그는 크라슈의 셋째 형에게 암살 제안을 받았고.

   결국에는 스튜에 독약을 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스튜를 자신이 먹었던 것도 결국 그 딸 때문이었다.

     

   그날 알리오드는 딸이 위급한 것을 보고, 눈이 돌아갔다.

   결국 셋째 형에게 더 좋은 치료제를 받는 대가로 암살을 시행하려던 날.

     

   그의 딸 아이가 결국 불치병으로 죽었다.

     

   알리오드는 딸이 죽자 겨우 정신을 차리고, 크라슈 대신 스튜를 먹고 죽었다.

     

   마지막으로 사죄하던 그의 모습은 담당 집사로서 크라슈를 성장시켜주지 못한 것에 죄책감도 있었다.

   그저 타고 나기를 반푼이로 태어난 자신에게 말이다.

     

   그런 그가 지금 저런 태도로 나오고 있다.

     

   ‘그사이에 내게 뭔가 비전이라도 본 건가.’

     

   하루아침에 바뀐 크라슈.

   본래라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것이 신과 계약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반푼이라 할지라도 어떤 신과 계약했는가에 따라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도 있는 법이니까.

   신과의 계약으로 주어지는 스킬은 그만큼 값어치 있는 법이었다.

     

   그러니 알리오드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금 보이는 크라슈라면 어쩌면 다시 빛을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 시점에서 아직 알리오드는 셋째 형에게 제안받았을 뿐 실행에 옮기지는 않은 상태이니.’

     

   따지고 보면 아직 크라슈를 배신한 것도 아니긴 했다.

   크라슈가 잘잘못만 따지지 않는다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군. 이게 회귀의 단점인가.’

     

   크라슈는 어렴풋이 아서 녀석이 회귀를 미워하게 된 이유를 깨달았다.

   지금 알리오드와 독약 스튜를 마신 알리오드는 다른 인물이었다.

     

   그리고 둘은 분명 다른 선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크라슈라는 인물이 바뀌었으니까 말이다.

     

   아서는 이 괴리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신에게 회귀를 강탈당한 거겠지.

     

   ‘문제는 알리오드의 딸인가.’

     

   알리오드는 유용하다.

   발하임 직계 담당 집사로 일할 만큼 보좌 능력 또한 뛰어나다.

     

   최소한 청송관에 있을 때까지는 알리오드는 옆에 두는 게 좋았다.

     

   게다가 크라슈는 알리오드 딸의 불치병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해결 방법까지도 말이다.

     

   ‘이건 차차 해결하고.’

     

   지금은 비밀 서고가 먼저였다.

   크라슈는 오랜만에 조금 들뜨는 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담아 비밀 서고의 문을 열었다.

     

   후욱-

     

   안쪽에서 먼지 낀 바람이 한차례 불어왔다.

   세계 침식 속을 워낙 굴러다닌 덕인지 이 정도 먼지는 별로 개의치 않다.

     

   그러니 크라슈는 성큼성큼 안으로 발을 옮겼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그제야 내부가 확실히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된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있는 책들은 선조들의 지식이 담긴 비술서였다.

   타고난 천재인 발하임에게 있어서 비술서란 사실 무의미하다.

     

   그들은 태어난 시점에서 이미 발하임의 모든 축복을 몸에 농축시키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런 발하임의 서고에 이런 비술서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답은 간단하다.

     

   ‘이곳은 오직 반푼이를 위한 장소니까.’

     

   발하임의 비술서를 제작한 이들은 발하임의 반푼이들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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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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