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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재액-!!

참새 마수의 육중한 몸이 덮쳐왔다.

“이런 씹···!”

콰아아-!!

선딜레이가 상당히 길었음에도, 거의 빙의 직후 수준으로 내려간 스탯으로는 굴러서 가까스로 피해내는 게 고작.

덩치가 크니 둔할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이 세상에서 역량을 판가름하는 척도는 어디까지나 스탯.

저 거대한 몸뚱이는 무게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파괴력이라는 이점만을 누릴 거란 뜻이었다.

“큭···”

공격 자체는 스치지도 않았건만.

땅의 울림에 더해, 날아온 파편에 의한 데미지가 무시할 게 못 됐다.

‘저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난사할 거라 이 말이지···?’

원래 같았으면 엎드려 감사를 표했을 만한 꿀 패턴. 딜각 천지라고 아주 신났었을 거다.

처참한 스탯으로 직접 구르려니 퍽 죽을 맛이다. 당연하게도 구르는 도중 무적 판정 같은 편의 기능 따윈 없다.

“방랑사신님-!!”

걱정스레 외쳐오는 이장의 목소리를, 손을 뻗어 저지했다. 어그로가 저 양반한테 끌리기라도 하는 순간, 생 일반인인 그는 무조건 끔살이다.

안 그래도 나 때문에 벌어진 일. 그런데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걸 넘어, 내가 있는 자리에서 희생자까지 생겨버린다면.

게이머로서의 자존심을 따지고 말 문제가 아니다. 이제 이건 단순 게임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었다.

“여긴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너는 빨리 마을로 가!” 

“그, 그치만···”

“참새가 널 노리기 전에 잔말 말고!”

“죄, 죄송합니다···!”

이장은 몇 번이고 발길을 붙잡혀. 미련스레 뒤를 돌아보며 천천히 멀어져갔다.

자식, 저렇게까지 미안해할 건 또 뭐라고. 어차피 나도 여기서 멀쩡히 레벨업하려면 저놈을 해치워야 한다.

게임처럼 왔다 갔다 한다고 적대적으로 변한 판정이 되돌아오지는 않으니까.

재액-!

재정비를 마친 참새의 2차 다이브가 이어졌다.

방금은 여러 악재가 겹쳐서 당황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번 보인 패턴도 못 읽으면 서버 랭킹 1위란 칭호가 운다.

‘뒤쪽이 약간이지만 여파가 덜했어···!’

이전보다는 비교적 여유를 가진 채 공격을 피하고. 먼지와 잔해를 비집고서 참새의 등짝 위에 올라탔다.

재액-?!

공을 연상케 하는 동그란 몸의 정중앙.

마법이라곤 일절 다룰 줄 모르는 정직함에, 대체 어떻게 나는 건가 싶은 짧은 날개론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이른바 절대 영역.

재액- 잭-!!

그걸로라도 어떻게 해보겠다고 연신 퍼덕거리던 녀석은. 이내 약이 오른 것인지 명백히 독기가 오른 울음과 함께 부웅- 떠올라, 비행경로를 이리저리 뒤틀어댔다.

이에 낫을 잠시 머리에 꽂아두고서. 두툼한 살결을 꼬집어다가 물고 늘어졌다.

냅다 드러눕는다는 발상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얌전히, 있어!”

[허수아비류 – 모내기]

파앙-!

무방비한 등짝에 우선 한 방. 그러나 속도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화만 돋워서 더 빨라진 것 같았다.

낫은 아예 튕겨 나오는 걸 봤으니 해봤자일 거고.

‘눈까지 튼튼하지는 않겠지.’

텁- 텁-

작전을 바꿔 등반에 나선다.

깃털이 쉽게 뽑히지 않는다는 점이 득으로 작용하여, 뭐가 잡히든 간에 거리낄 것 없이 성큼성큼 올라갔다.

손을 대신하여 달랑 있는 장갑으로도 이런 악력이 나오는 걸 보면. 참새의 날개도 실은 마냥 평범하지 싶다.

“거의 다 왔···?”

그렇게 고지의 코앞까지 다다랐을 즈음. 참새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재액-

“뭐야 이 녀석. 왜 갑자기 멀쩡히 날아?”

난폭운전을 그만두고 직진 급가속을 밟는다 싶더니.

“이런 미친!”

그대로 암반을 향해 곧장 돌진하는 게 아닌가.

콰앙-!

부딪치기 직전에 무작정 뛰어내렸다. 추락의 충격으로 나무작대기들이 지이잉 울린다.

그에 반해 아무렇지도 않게 두리번거리는 모습에선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동물적인 본능으로 위험하다는 걸 눈치챈 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계획에 차질을 빚긴 했지만, 공략법은 얼추 감을 잡았다.

상호 간에 원거리 공격 수단은 마땅찮다. 도망칠 게 아니라면 결국에는 접촉할 수밖에.

“자, 와라!”

그러니 내려오기를 기다렸다가. 아까처럼 올라타서 재차 기회를 노린다.

아무리 괴물이라도 눈을 찔리거나 머리를 자꾸 찧거나 하면 타격 정돈 입겠지. 체력전이라면 지치지 않는 내 쪽이 유리하다.

쇄애액-

‘아니?’

그런데 돌연. 참새의 패턴이 바뀌었다.

땅바닥에 자신을 내리꽂지 않고, 방향을 틀어 다시 활공. 그러곤 후딜레이도 없이 바로 이어서 맹공을 퍼부었다.

중간에 잡는 건, 꿈도 못 꾼다. 어찌저찌 잡는다 쳐도 팔이 안 부러지면 다행이다.

‘젠장, 이래서야···’

일방적으로 사냥당하는 구조.

피한다고, 기다린다고 해서 내 차례는 오지 않는다. 확정적으로 딜 불가 패턴만이 계속된다.

한낱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 감각이었다. 여태까지는 전부 말로나 안다고 지껄인 것에 불과했다고.

‘이러다간 지치는 걸 기다리기 전에 먼저 당하고 말아···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탁-

“으응?”

속수무책으로 회피만을 이어가던 중, 발치에 웬 물체 하나가 걸렸다.

한 바퀴 굴러. 자세히 확인하고 보니 망치.

“이장이 떨어뜨리고 간 건가···? 그래, 이거라면 혹시!”

동아줄을 부여잡는 심정으로 망치를 주워들었다.

현재 주어진 것들만으로는 돌파구가 보이지를 않으니. 미지의 가능성, 거기에 걸기로 했다.

[‘쇠망치’를 습득하였습니다.]

[‘낫’과 ‘망치’의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슈퍼에고 온라인에서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무기만 장착 가능하다.

보조무기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사실상 쓸 일 없는 스탯용 심볼이나 마찬가지.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무기를 더 장착하면. 일시적으로 그 조합에 따른 시너지가 발생한다.

검과 검은 이도류, 공속 증가. 창과 방패는 스파르타, 이동속도 상승. 이런 식으로.

그리고 나는 현재. 공식적으로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조합에 도전한다.

[버프:‘공산주의’가 발동되었습니다.]

[주변 모든 존재의 스탯이 동일해집니다.]

시야가 확 트였다. 아무리 익숙해져도 속도만은 버겁던 참새의 움직임이 평범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참새의 느릿느릿한 자유 낙하. 이거라면, 된다.

적절한 높이에 이르렀을 때. 원래는 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위로 장갑을 찔러넣어, 지면에 거꾸로 내동댕이쳤다.

[허수아비류 – 물레방아]

콰앙-!

여전히 미미한 몸의 떨림이 잔존해 데미지가 다소 아쉽다.

그래도 이제껏 만난 몬스터들과는 급이 다른 덩치에 기술이 제대로 들어간 손맛은 썩 괜찮았다.

잭-! 재잭-!!

[허수아비류 – 모내기]

쾅- 콰광-

기세를 몰아 굳히기에 들어간다.

참새가 그랬고, 또 내가 그랬듯. 기회가 주어지면 어디서 돌파구를 찾을지 모른다.

잭-!!

“어딜.”

[허수아비류 – 잡초 뽑기]

달아나려는 녀석의 꽁무니를 잡아채 드러눕히고. 다시 마운트 자세.

절대로 쉽게는 안 놔줄 거다. 내가 도망치느라 얼마나 진땀을 뺐는데. 땀샘은 없지만.

‘슬슬 마무리를.’

뭐, 말은 그렇게 했어도 MP는 슬슬 바닥이었다.

스킬 하나 간신히 쓸 정도의 양. 실수라도 했다간 기껏 잘 와 놓고 허탕을 치고야 말 것이렷다.

재, 재액-?

부리 안으로 깊숙이 팔을 찔러넣었다.

스탯도 동등하고, 참새도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터라. 뒤늦게 문다고 해서 팔이 뜯겨나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허수아비류 – 씨뿌리기]

마나로 만든 씨앗들을 목구멍 너머로 흘려보낸다.

팡! 파방! 파바바방!

씨앗들이 터지며 겉과 달리 연약한 참새의 속살을 파괴해 나갔다.

잔인하기도 잔인하고, 과정도 고통스러울 거라 나도 가급적 이런 방식은 피하고는 싶은데. 내가 어디 그런 거 따져줄 사정인가.

[레벨이 ‘23’이 되었습니다.]

“후우···어떻게 잡긴 잡았네.”

레벨업 알림이 신호탄이 되어. 안도감에 스르르 자리에 주저앉았다.

몸은 안 지쳐도, 심적 피로나 HP 상실로 인한 부담은 따른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아슬아슬하게 수없이 딸피를 오갔을 내 과거 캐릭터에게 사죄의 말을 건넸다.

“파밍이나 해볼까.”

낫을 치켜들고. 지정석이던 정수리에는 망치를 대신 모셔뒀다.

현실은 게임처럼 템이 알아서 떨어져 주지도, 시체가 저절로 사라져 주지도 않는다.

사냥도 사냥이지만. 어느 멍청한 허수아비의 고농도 마나 함유 밀 대량 살포 분탕 덕에 여실히 깨달은 점이다.

“날개는 두고, 깃털이랑···부리. 마석은 여깄네.”

챙기는 기준은 마석, 그리고 게임상에서 재료로 쓰였는가. 아니면 적어도 팔아넘길 때 값이 되겠는 것들이었다.

숙련도 만렙의 낫 솜씨는 중간에 막히는 부분 없이 척척 해체를 끝마쳤다.

“휴우. 보통은 사냥 시간보다 해체 시간이 더 걸려서 안 하는데, 이건 노력한 보람은 있겠지.”

마석 크기 좀 보게. 색깔은 퍼렇고 내 머리보다 커다란 것이, 누가 보면 오크 마석인 줄 알겠다.

그 쬐깐한 녀석이 밀 좀 줏어 먹었다고 이렇게 됐다니, 원. 억울해서라도 요긴하게 써먹을 테다.

“그래서···이건 어쩌지.”

대부분이 그대로 남은 참새의 사체를 흘겼다. 

이미 죽은 거니까, 이번만큼은 아닐지언정. 그대로 뒀다간 지나가던 몬스터들이 먹고 비슷한 일이 반복되겠지.

“아무래도 안 되겠다. 뒤탈 없으려면 사람 부르는 게 확실하지.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일단 마을에 합류해서···응?”

돌아가려는 길. 여러 그림자가 모여 한 점에 드리웠다.

짹-

재잭-

잭-

재액-

째액-

“어.”

순식간에 주변을 포위한 참새들. 다섯 마리.

“밀 먹은 거, 한 마리가 아니었구나···.”

가공할 양의 살기가 사방, 아니 오방에서 육체를 좀먹는 듯했다.

다급하게 마석부터 인벤토리로 숨겨봤으나. 그딴 눈 가리고 아웅으로 적대적 관계 판정이 물러질 리가.

조용히 넘어가기엔 단단히 그른 것으로 보였다.

짹-!!

재잭-!!

잭-!!

재액-!!

째액-!!

“에라잇!”

일제히 달려드는 참새 무리를 향해 인벤토리에 소량 보관해 뒀던 밀을 넓게, 넓게 흩뿌렸다.

산개하는 참새들 사이로 열린 틈. 맞는 길인지 확인도 않고 일단 무작정 달렸다.

진짜 딱 1마리만 왔으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저건 절대로 못 이긴다. 갖고 놀아지다가 둥지 보수 작업에 이용될 뿐이다.

‘이미 마수화가 진행된 상태니까, 여기서 저만치 먹인다고 해도 효과는 미약할 거야.’

서로 먹겠다고 싸우는지, 투닥거리는 소리가 점차 멀어져갔다.

충분히 거리를 벌려 쫓아오지 않는 걸 확신한 후에 마을로 방향을 꺾었다.

* * *

방랑사신의 판단을 전해 들은 시자쿠마우르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자신들을 지켜줬던 수호신이, 현재로선 무리라고 단정 지었다는 사실에.

그것보다도, 지금 중요한 건 참새 토벌. 나아가 사체 처리다.

동족을 잃고서 학습했는지 단체 행동을 시작한지라 각개격파도 무리. 이러한 사태에 내 입김이 더해져, 흐름은 자연스럽게 외부 모험가를 들이는 것으로 결정 났다.

“의뢰받고 왔어.”

“잘 오셨습니다, 모험가님. 저는 이 마을의 이장, 헤네시스라고 합니다!”

‘그런 이름이었구나.’

“참새는 어딨어?”

그렇게 초빙된 보라 머리 소녀. 마리아 가르마토아.

나이는 8세, A급 모험가. 직업은 인형술사.

‘뭐 저리 비싼 애를 다 불러왔냐.’

내가 모험가를 부르자고 하긴 했지만, 그 참새들 정도면 B급 내지 C급 파티로도 충분하다.

마을 재정상 버거웠을 텐데. 남은 인력이 하필이면 쟤밖에 없었나?

“아무쪼록 조심하십시오. 모험가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악독한 참새들은 저희들의 수호신인 방랑사신님도 유린한 녀석들입니다.”

“방랑사신? 혹시 저 사람?”

설마 또 나 때문이냐.

불현듯 모여드는 시선에 자세를 휙 돌렸다.

근데 뭐야. 쟤 왜 일로 와.

“여기 수호신이야?”

“아니, 난···”

부정하기도 전에 말을 가로챈 이장이 나서서 찬양 연설을 늘어놓았다. 이걸 구해줬다고 봐야 할지.

자신들을 지켜줬다느니, 쉬지도 않는다느니. 외부인에게도 전도할 기회가 생겨 텐션이 오른 게 분명했다.

“쉬지 않고, 매일매일?”

“그렇습니다! 어느 시간대에 뒷산에 올라도, 항상 몬스터를 잡고 계시는 방랑사신님을 볼 수 있었습죠.”

“흐응.”

반쯤 감은 눈 그대로, 마리아의 입꼬리가 작은 호선을 그렸다.

개구리를 죽이는, 순수한 호기심이 깃든 아이 특유의 표정.

“마치···’인형’ 같네.”

“···!”

귀여운 걸 떠나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보통 누가 참새 잡아준다 하면 아저씨가 올 텐데, 여긴 짱 귀여운 미소녀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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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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