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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3 – 돌 삼키는 아이>

     

    조나 와이히엠하이Jonna wiheomhae.

    조나는 자신의 이름을 정해준 보스를 떠올렸다.

    보스에게는 많은 은혜를 입었지.

    하지만 무상의 은혜는 아니다.

    이름만 해도 그렇다.

    오래된 과거를 옛 이름과 함께 버렸지만, 대신 별난 새 이름이 생기지 않았나.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을 떠올리니 무심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득

     

    불필요한 쓰레기가 생겼군.

    손아귀 모양으로 구겨진 칼손잡이를 악력으로 뽑아서 버리고 새로운 손잡이에 칼날을 꽂았다.

     

    휘리리릭

    슈슉 슉 슈슉

     

    허공으로 칼질을 하고 찌르는 자세를 취했다.

    그립감과 찌르는 감각이 나름 괜찮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고는 칼을 고쳐 쥐었다.

     

    탁탁탁

     

    도마 위를 춤추는 부엌칼!

    그가 이번에 모시게 된 아가씨는 상당히 불우한 아이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요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저 불쌍한 아가씨를 보면 뭐든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무슨 계약을 했는지도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았지.’

     

    처음에 봤을 때는 거리의 흔한 부모 없는 아이들치고는 그럴싸하게 생겼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보스의 안목이 대단하기는 했는지 의외로 체력이나 무기술에서 심상치 않은 재능을 지녔다.

     

    날것 그대로의 천재.

     

    누구에게도 교육받지 않고도 보이는 자세나 솜씨는 천재가 아니면 해명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어쩌면 재능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저런 작고 하찮은 아가씨가 거리생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도.

     

    ‘용케도 창녀가 되지 않았군.’

     

    조금만 반반하게 생겨도 포주들에게 잡혀서 날마다 손님을 열 명 넘게 받으며 앙앙 울어대는 창녀가 되는 세상.

    빠른 발과 보기와 다른 체력, 다양한 무기술을 얻기 위해 그녀가 거쳐 왔을 인생이 어땠을지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신의 결함이 많은 건 불안요소다.’

     

    매일 밤 자신의 몸을 탐하는 거리의 남자들에게 습격당한 경험이라도 있는지, 소녀는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할 줄을 몰랐다.

    조금만 눈을 떼면 텅 빈 술통이나 빈 나무상자, 무기수납함 뒤나 심지어는 천장의 샹들리에에도 숨는 묘기를 발휘하지 않던가.

    날이 갈수록 숨는 장소가 점점 테크니컬해지고 있다. 아가씨를 관리감독 해야 할 집사 입장이 곤란하다.

     

    ‘겁 많고 손 많이 가는 도둑고양이 같은 아가씨라. 절대로 흔한 타입은 아니지.’

     

    매년 이맘때마다 하는 집사 노릇이지만 올해처럼 이색적인 아가씨는 난생 처음이다.

     

    “식사시간입니다, 아가씨.”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찌개와 나물반찬을 내려놓고 식탁의 챠임벨을 딸랑 가볍게 튕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

    지혜를 발휘하면 몸의 고달픔이 줄어드니.

    속으로 셋을 세자마자 우다다다 소리와 함께 오크노디 아가씨가 달려온다.

    직접 숨바꼭질을 하며 찾아나서는 것보다 벨을 울리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결과라지만 소리가 들리는 방향이 이상했다.

     

    “…….”

     

    설마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천장의 판자가 달칵 열리며 앙증맞은 고개가 쏙 튀어나왔다.

    도둑고양이보단 쥐새끼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셨군요.”

    “앗.”

    “식사는 세안을 먼저 마친 뒤에 하겠습니다.”

     

    오크노디 아가씨는 사내아이처럼 씩씩하게도 얼굴을 닦는다.

    자신이 여자아이라는 것을 잊은 것처럼 물칠만 하고 마는 수준이다.

    너무 건성으로 닦아서 그가 직접 얼굴을 1분간 세심하게 닦아주었다.

     

    ‘……보스에게 올릴 보고서에 뭐라 적어야할지 모르겠군.’

     

    하루훈련일과를 마친 뒤, 오크노디를 강제로 침대에 눕혀놓고 이불을 덮어주고 나와 펜을 쥐었다.

     

    <정례보고서>

    *오크노디 현장감독소견

    -오랜 거리생활로 트라우마가 있음.

    -불면증, 회피성 인격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정신병을 지닌 것으로 추정.

    -계약을 잊은 것으로 보이지만 훈련에는 적극적으로 협조 중인 상태.

    -여성으로서의 자각이 희박함. 식사나 세안 등의 일상생활에서 생존을 위해 사내아이처럼 뭐든지 빨리, 뭐든지 눈에 띄지 않게 하는 행동에 익숙함.

    -길거리마법사에게 피를 내어주고 불법개조물약을 복용하며 실험에 협조한 대가로 완드마법을 익힌 정황이 포착됨. 해당 마법사는 고문 후 사살하였음. 오크노디 아가씨에 대한 범행증거는 없음. 대신, 실제로 다수의 고아들을 실험용으로 삼아온 것을 확인.

    -검술과 궁술을 배운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지만 최소 철패급 모험가들의 기술을 배운 것으로 추정. 수상한 거래가 있었는지 추가적인 확인요망.

    -……

    -…

     

    부스럭.

     

    ‘쥐새끼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동물들은 사람과 달리, 본능적으로 천적을 감지한다.

    발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검을 들고 나왔다.

    거실에 내려오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오크노디 아가씨.

    보스에게 거두어진 재능 있는 소녀.

    이런 늦은 시간에 어디를 가려는 걸까?

    말려봤자 자신의 눈을 피해 몰래 도망가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후일 같은 일이 벌어지는 사태를 방지하려면 목적을 알아내는 편이 좋다.

     

    ‘설마 좀도둑처럼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건가?’

     

    그런 어리석은 아가씨들도 없었던 건 아니다.

    손버릇이 나쁜 아가씨들도 더러 있었으니까.

    조나는 생각했다.

    저 불쌍한 아가씨까지 그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예절교육은 받는 이도, 하는 이도 괴롭다.

     

    ‘저건…….’

     

    오크노디 아가씨의 목적지는 암상인의 상점도, 장물을 처리하는 골동품점도 아니었다.

     

    야심한 밤, 사람 없는 공원.

    이런 곳에서 뭘 하려는 걸까.

     

    ‘설마 귀찮은 취미라도 있는 건 아니겠지.’

     

    남 몰래 왜곡된 취미를 즐기는 아가씨라면 보스의 평판에도 해를 끼친다.

    만일 그런 사실이 발각된다면 예절교육이 아니라 본격적인 조교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사이, 마침내 오크노디 아가씨의 발칙한 밤장난이 시작됐다.

     

    공원 분수대 주변의 경계석을 따라 걷기.

    상점 표지판 사이를 점프로 건너기.

    두 팔을 벌리고 담벼락 위를 걷기.

     

    ‘……걱정해서 손해 봤군.’

     

    도대체 뭘 하는 건지.

    거리생활을 하면서 밤거리에서 남몰래 놀던 습관이라도 있는 걸까.

    재주도 참 좋다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균형감각과 날랜 몸놀림에 헛웃음만 새어나온다.

     

    “이 즈음에 있어야 하는데……. 아, 이건가?”

     

    뭘 찾았다는 걸까.

    눈을 가늘게 뜨며 염탐하고 있자니 담벼락 위에서 무언가를 주워들었다.

    아무리 봐도 보이는 거라고는 돌멩이밖에 없다.

    예쁜 모양의 돌을 간직하기라도 하려는 건가?

    귀여운 취미시군.

    그래도 순찰을 도는 경비나 밤거리의 불한당들에게 걸리면 위험하니까 자중시켜야겠지.

    도망치지 못하게 내일 아침식사까지 기다렸다가 식탁에서 주의를 주자.

    그렇게 결심하는 그때, 오크노디 아가씨가 방금 주워든 돌멩이를 입으로 쏙 삼켰다.

    이 아가씨, 기어이 일을 냈군.

     

     

    * *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으읍?!”

    “당장 뱉으십시오.”

     

    어디선가 나타난 집사가 등을 붙잡고 팡팡 쳐보지만 그런다고 뱉을 내가 아니다.

    꿀꺽!

    먹이를 삼킨 뱀처럼 냉큼 삼켜버린 스탯석은 목구멍 너머로 사라졌다.

    그래, 스탯석Stat石.

    먹으면 능력치가 오르는 돌이다.

    머리가 지끈거리더니 익숙한 알림창이 보인다.

     

    [스탯석을 사용했습니다.]

    [랜덤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게임에서라면 사용하기 버튼만 눌러도 알아서 사용되는 스탯석.

    하지만 지금은 게임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사용하기 버튼도, 사용할 방법도 모르는 스탯석.

    이용하려면 삼키는 수밖에 없다.

     

    ‘훈련장 노가다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 밤의 공원 노가다도 포기할 수는 없는걸.’

     

    균형감각도 다양한 상황에서 도움을 주는 기능.

    올릴 수 있을 때 올려두지 않으면 안 된다.

     

    [1분 이상 야간에 공원 경계석을 걸었습니다.]

    [균형감각 경험치+2]

    [야행 경험치+1]

    [1분 이상 야간에 상점 표지판 사이를 뛰어넘었습니다.]

    [균형감각 경험치+6]

    [야행 경험치+2]

    [1분 이상 야간에 두 팔을 벌리고 담벼락 위를 걸었습니다.]

    [균형감각 경험치+4]

    [야행 경험치+1]

     

    기능경험치와 스탯상승을 동시에 누리는 엄청난 효율의 고인물 루트!

    겸사겸사 스탯석도 찾을 수 있을 때 찾아둬야 한다.

     

    ‘출현장소를 전부 아는 스탯석은 흔치 않은걸.’

     

    네 곳에서 다섯 곳.

    스탯석은 정해진 장소 몇 곳에서 확률에 따라 등장위치가 변한다.

    출현장소를 모두 알지 못하면 놓치는 경우도 있고, 너무 늦게 도착하면 누군가 주워가거나 오브젝트가 파괴되어서 사라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집사가 훈련을 봐주는 건 고맙지만 그래도 날로 먹는 스탯석을 포기할 수는 없는걸!’

     

    그걸 정말로 날로 삼켜서 먹게 될 줄은 몰랐지만.

     

    “대체 돌멩이는 왜 삼키신 겁니까?”

    “비, 비밀이에요…….”

    “식사도 제가 매끼 챙겨드리지 않습니까.”

    “미안해요…….”

    “오크노디 아가씨가 이런 행동을 하거든 주인님께서도 슬퍼하실 겁니다.”

     

    플레이어가 아닌 NPC 입장에서는 스탯석 같은 건 모른다. 그저 멀쩡한 애가 갑자기 미쳐서 밤거리에 나와 돌멩이를 삼키는 걸로 보이겠지.

    ……진짜 미친년으로 보이겠네. 뭐라도 변명을 해두지 않으면.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먹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갈 수가 없는걸요.”

     

    스탯부족은 중대사항이다.

    이 게임은 능력치 제한조건이 없다.

    어떤 아이템도 잡으면 일단 들 수 있다.

    부족한 능력치의 대가를 몸으로 치르고 저주로 치르고 실전에서 갈려나갈 뿐.

    능력치는 미리미리 알아서 올려두어야 나중에 발목을 잡히지 않는다.

    그런 간절한 마음이 전해지기라도 한 걸까.

    집사가 엄한 표정 대신 뒤통수라도 맞은 것처럼 입을 뻐끔거리다가 고개를 돌렸다.

     

    “내일부터는 음식을 더 많이 드리겠습니다.”

    “와. 정말요?”

    “대신 두 번 다시 돌멩이로 배를 채우는 일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이거, 취급이 조금 불안하다.

    제 3 세계 진흙쿠키 구워먹는 빈곤 아동취급이잖아.

    오해라고 해도 달리 설득할 수도 없다.

     

    “……노력해볼게요.”

     

    앞으로는 덜 먹겠다고 말하는 수밖에.

    그걸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집사의 시선이 따갑다.

    집사에게는 미안하게 됐다.

    그런 눈으로 봐도 안 먹겠다고는 말 못해.

    세상은 넓고 먹어야 할 스탯석은 많은걸!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제 3 자의 시선이 너무 가혹한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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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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