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

        실은 굉장히 고민하고 있었다.

        아내들과 만난 후, 과연 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나와의 기억을 전부 잊었을 그녀들에게 일방적인 감정을 밀어붙여도 될지 등등을.

        

        하지만, 막상 앨리스를 마주하고 나니…

        

       

        “당, 신은…?”

        “…….”

        ‘옷차림이 그게 뭐니…?’

        

        

        그런 고민 따위, 압도적인 패션 테러 앞에 싹 날아갔다.

        

        푸르다 못해 세탁기에 넣고 빨면 색 다 나갈 게 분명한 멜빵 치마.

        그와 대조되는 붉디 붉은 베레모.

        금방이라도 점프하며 블럭을 깨부수고 다닐 것 같은 옷차림.

        

        …아니, 어디서 저렇게 빨갛고 파란 옷을 찾았대.

        동묘 가도 저런 건 못 구하겠다.

        

        

        ‘1회차 때 왜 지각했나 했는데, 쟤네한테 욕 먹고 삐져서 옷 갈아입고 오느라 늦었나 보네.’

        

        

        동시에 깨달은 진상.

        

        그녀는 게임에서도, 1회차에서도 입학 시험 중간에 난입하는 인물이었다.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탈락시키지 말아주세요 이런 말을 하며.

        

        지금까진 뻔한 고정 이벤트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뒷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몰랐던 아내의 옷 취향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니, 취향은 존중해 줘야지. 앨리스도 날 존중해 줬으니 말야.’

        

        

        물론, 아무리 마X오 같은 차림이어도 앨리스는 앨리스.

        최면이 풀리고도 날 용서해 주고, 인생을 함께해 준 아내.

        

        정신을 다잡고선 얼른 입을 열었다.

        2회차에서의 첫 만남. 멋진 모습 보여줘야지.

        

        

        “거기 둘. 너희도 신입생이지?”

        “응? 아, 으, 응.”

        “겁먹은 사람을 둘이서 둘러싸고 뭐 하는 짓이야. 그것도 이렇게 한적한 곳에서.”

        

        

        우선 타일렀다.

        힘을 쓰면 앨리스가 날 폭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심약한 그녀에게 그런 첫인상을 남기는 건 악수였다.

        

        물론, 말로만 하면 그저 35살 아저씨의 잔소리.

        게다가 앨리스 겁먹을까 부드러운 말투.

        효과는 전무했다.

        

        

        -중얼중얼.

        

        “사귀는 애 있냐 물어볼까?”

        “미친, 넌 남친 있잖아!! 할 거면 내가….”

        ‘역시 들은 척도 안 하네.’

        

        

        척 봐도 일진처럼 생긴 애들이라 그럴까.

        말 씹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네.

        1회차, 빙의 초반의 나라면 어버버거리며 당황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저기.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듣지?”

        

        -확.

        

        

        난 오히려 그녀들에게 다가가 따졌다.

        코가 스칠 정도로 가까이, 바싹.

        

        

        “너희들….”

        “……!!!? 자, 잠깐….”

        “———무고한 사람 괴롭히고 그러는 거 아니다.”

        

        [스킬 ‘완전 최면’을 발동합니다.]

        

        

        그와 동시에 최면.

        

        저항하지 못할 걸 확신하고 한 행동이었다.

        정신 방벽을 두르는 법 따위, 갓 각성한 풋내기들이 알 리가 없을 테니까.

        

        

        ‘뭐, 내 최면은 알아도 못 막는 타입이지만.’

        

        [판정 성공. 대상이 ‘완전한’ 최면에 걸립니다.]

        

        “와, 와아….”

        “이게 나라다 진짜….”

        

        

        그녀들의 동공이 급속도로 풀어졌다.

        볼은 붉게 물들고, 입가엔 황홀한 미소가 헤죽.

        

        즉시 함락이라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몰골이었다.

        

        왜 건전한 최면에도 매번 저런 반응이, 특히 여자들한테만 나오는 건진 모르겠지만.

        야겜 특화 능력이라 그런가.

        

        

        ‘아무튼. 이 정도면 앨리스도 안 무서워하겠지.’

        “알았지?”

        “네헷…♡”

        “그, 그런데 저희. 괴롭히는 게 아니라 진짜 옷 가게 소개해 주려 한 건데….”

        “됐으니까, 이만 가봐.”

        

        

        손을 휘휘 내저어 그녀들을 쫓아냈다.

        지금 당장이라도 겁먹었을 앨리스를 달래주고 싶었으니까.

        

        

        “저, 저기. 그럼 번호라도 좀….”

        “너희, 표정을 보니 볼일이 ‘많이’ 급한 것 같거든. 꼭 지금 당장이라도 샐 것처럼.”

        

        -띠링!

        [판정 성공. 대상이 ‘완전한’ 최면에 걸립니다.]

        

        “그, 그러고 보니…!!”

        “다음에 봐요 그럼!! 꼭이요!!”

        

        

        좀 질척대긴 했지만, 최면 한 방에 가볍게 정리.

        잠재적 레모네이드 디스펜서들은 허겁지겁 도망쳤다.

        

        소란이 지난 후 남은 건…

        아까 전부터 이 쪽을 유심히 보고 있던 앨리스.

        1회차 때의 내 아내.

        

        

        -중얼중얼.

        

        “저렇게 얼굴을 가까이….”

        ‘뭐야, 조금 윽박지르는 걸로 보였나?’

        

        

        앨리스는 눈을 찌푸리며 날 째려보고 있었다.

        

        그녀가 싫은 말 하나 못 하는 심약한 성격인 걸 감안하면…

        저건 굉장히 기분 나쁠 때나 하는 표정.

        

        회귀 전, 그녀가 나보다 먼저 30살이 되었던 해.

        장난 삼아 ‘아줌마’라고 불러봤을 때나 나오던 표정이었다.

        

        …첫인상 제대로 망했네, 이거.

        

        

        ‘최면 안 쓰고 반하게 할 수 있으려나, 진짜….’

        “크흠. 미안. 멋대로 끼어들어서. 네가 곤란해하는 것 같아서 그만.”

        

        

        뒤늦게 수습을 시도했다.

        

        전 위험한 사람 아니에요.

        당신을 사모하는, 지극히 선량한 최면 교배 아저씨일 뿐이랍니다.

        대충 이런 표정으로.

        

        효과는 별로 없었다.

        

        

        “예.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호색한 님.”

        “…….”

        ‘단어 선택 참.’

        

        

        매도당했다.

        토종 한국인인 나도 실제론 들어본 적 없는 단어로.

        

        …하긴. 회귀 전이랑 달리 지금 앨리스는 막 한국에 도착한 참이었지.

        웹툰이나 드라마로 한글을 배웠으니 어휘력이 이상한 것도 당연한가.

        

        저 호색한 운운하는 것도 아마 불량배와 뜻을 헷갈린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호색한이 맞긴 한데, 방금 전엔 아무 짓도 안 했잖아. 분명 잘못 말한 거겠지.’

        “하하… 아무튼. 너도 신입생이야?”

        “예. 앨리스 리튼우드. 영국에서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꾸벅.

        

        

        보라. 실제로는 무척 예의 바르지 않은가.

        이런 앨리스가 날 호색한이라 할 리가 없지. 암.

        

        뒤늦은 통성명이 이어졌다.

        

        

        “응. 난 서유진. 너랑 똑같은 신입생이야.”

        “서, 유진….”

        

        

        내 이름을 곱씹는 앨리스.

        

        저 행위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앞으로 얘랑은 친하게 지내지 말아야지. 폭력적인 애니까.

        이런 다짐일 게 분명했다.

        

        입 안이 조금 씁쓸해졌다.

        

        

        ‘이제야 실감이 나네. 나만 회귀했다는 게. 우리의 추억이 전부 사라졌다는 게.’

        

        

        사랑하는 사람이 날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회귀라는 것도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네.

        

        씁쓸한 입을 달래기 위해, 슬쩍 자판기로 향했다.

        

        

        ‘콜라랑… 앨리스는 이거지. 역시.’

        

        -철컹, 철컹.

        

        

        음료수 떨어지는 소리가 두 번.

        계속 내 이름을 되뇌던 앨리스가 그제야 이쪽을 향했다.

        

        

        “…유진?”

        “받아. 이것도 인연이니까, 하나 사줄게.”

        

        -휙.

        

        

        음료수 하나를 휙 건넸다.

        회귀 전, 그녀가 정말 좋아하던 음료수였다.

        

        

        “이건….”

        ‘더 많은 걸 해주고 싶지만. 2회차에서 우린 아직 초면이니까. 이 이상은 부담스럽겠지.’

        “앞으로 잘 부탁해, 앨리스.”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첫 만남이니까. 이 정도가 최선이겠거니 싶어.

        

        어째서일까. 콜라조차 오늘따라 조금 씁쓸하게 느껴졌다.

        

        

        * * *

        

        

        유진이 건네주고 간 음료수 캔.

        

        앨리스 리튼우드는 그걸 빤히 바라봤다.

        서유진, 이라는 남성에 대해 떠올리며.

        

        

        ‘꼭 어디서 본 것 같은 분이었어요.’

        

        

        처음 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어쩐지 그립게 느껴져서. 몇십 년은 함께 했던 것만 같아서.

        

        그래서일까,

        

        

        ‘그런 분께 저는 호색한이라는 말까지… 왜 그랬을까요? 저.’

        

        

        그가 자신의 옷차림을 지적하던 여성들에게 다가갔을 때.

        그녀는 영문 모를 불쾌함을 느꼈다.

        뭐지, 왜 저렇게 다른 여자랑 얼굴을 딱 붙이고 있는 거지.

        마음에 안 들어- 하고.

        

        어째선지 잔뜩 심통이 나, 여자나 밝히는 호색한이라 욕까지 해버렸을 정도.

        

        

        ‘처음 만난 분인데. 게다가 절 도와주시고, 이렇게 음료수까지 주신 분인데.’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생각해도 소심한 타입.

        결코 초대면에, 그것도 좋은 사람에게 그런 말을 내뱉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녀가 유진을 향해 품은 감정은 그만큼이나 이상했다.

        

        

        ‘그래도… 멋있었죠.’

        

        

        스스로도 이해 못 할 감정.

        그녀는 그걸 ‘호의’라고 정의 내렸다.

        

        당황스러울 때 와서 자길 도와준 남자를 향한 호의.

        실컷 욕먹은 자신의 옷차림 따위 전혀 지적하지 않은 유진을 향한 호의.

        

        

        ‘마침 음료수 취향도 저랑 겹치고요. 솔잎의 눈.’

        

        

        …호불호가 갈리지만, 자신은 너무 좋아하는 음료. 솔잎의 눈.

        그걸 선뜻 건넬 정도로 취향이 겹치는 그를 향한 호의.

        

        

        -치익. 꿀꺽.

        

        ‘좋은 분을 만나서일까요? 오늘따라 더 달게 느껴져요.’

        

        

        그에게 받은 음료수가 벌꿀처럼 달콤하게 혀를 휘감았다.

        살면서 입에 댄 어떤 것보다 감미로웠다.

        

        

        ‘유진… 친하게 지내야겠네요. 그가 말한 대로, 이것도 인연이니까.’

        

        -꿀꺽, 꿀꺽.

        

        

        한 모금. 두 모금.

        달콤한 기억이, 감정이.

        목을 타고 흘러내린다.

        

        가슴 역시 경쾌하게 콩콩 뛴다.

        마실 때마다 조금씩, 하지만 확실히 빨라져서.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실 땐 쿵쿵 하는 소리가 관자놀이에 울릴 정도로.

        

        

        -꿀꺽.

        

        “…하아♡”

        

        

        결국, 음료수 캔을 전부 비웠을 때.

        그녀의 표정은 아까 전 여성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눈이 살짝 풀리고, 볼에 분홍빛이 물든.

        그런 표정이었다.

        

        

        ‘목도 축였으니, 이만 시험장으로….’

        

        -멈칫.

        

        ‘…이 옷, 그렇게 별로일까요? 나름 한국을 상징해서 입은 건데.’

        

        

        아까 전까진 마음에 들던 옷이 어쩐지 영 마땅찮아졌다.

        

        제가 볼 땐 예쁘지만…

        글쎄요. 유진, 옷에선 시선을 돌리려고 하던데.

        예쁘다 생각하면 그런 반응 안 했을 것 같아요.

        

        

        ‘얼른 갈아입고 와야겠네요. 딱히 유진을 위한 건 아니지만.’

        

        -타다닷!

        

        

        옷을 갈아입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절대 유진을 위한 건 아니다. 이건 동급생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주기 위해서다- 라고 스스로 되뇌며.

        

        

        ‘어디, 분명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옷이….’

        

        -꼬옥.

        

        

        다 마신 음료수 캔을, 버리기는커녕 손에 꼭 쥐고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김이파리 님 총 340 코인, HINEZE 님 20코인, Jisss 님 10코인 선물 감사합니다!
    감사의 더블피스를 웨이~ 웨이~

    + 솔잎 좋아하시나용
    전 꽤 좋아함니다
    봄베이 사파이어 진토닉 덕분에…

    다음화 보기


           


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2회차 최면교배 아저씨가 능력을 안숨김
Score 5.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Since I regressed, I decided not to hide my abilities.

“Hypnosis, huh? That’s amazing! Hypnotize me too!”

“How about me, instead of that sly fox? If you join our clan… you, you can hypnotize me!”

…Maybe I exposed it too much.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