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

    나는 그 소식을 플린트를 통해 전해 들어야만 했다.

     

    시엔을 만나기 전, 슬럼가에 잡아놓은 위치를 잃지 않기 위해 알력 싸움을 마무리하던 중, 플린트가 내게 헐레벌떡 뛰어와 말했다.

     

    “베르그!”

     

    “플린트, 잠시만. 여기 마무리 좀 하고.”

     

    “그럴 때가 아니야, 베르그!”

     

    그의 목소리에 잡고 있던 각목을 내려놓는다.

     

    “…?”

     

    “네…네 친구한테 돌아가봐…! 걔네 부모님이…!”

     

     

    플린트의 목소리에 담긴 긴박함에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

     

    사소한 일이었다면 플린트도 이럴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모든 걸 놓고 시엔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예상하기 힘든 건 아니었다.

     

    내 예상이 틀렸기를 바랄 뿐이다.

     

     

    달리는 동안 머리가 어지러웠다.

     

    죽음은 나와 먼일이 아니었지만, 시엔이 상처받을 걸 생각하니 심장이 불안히 맥박쳤다.

     

    그녀의 순함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제발 별일 아니길 빌며, 나는 달렸다.

     

     

    시엔의 부모님은 의사셨던만큼,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집을 비우실 때가 많았다.

     

    시엔을 데려 다닐 때도 있었다 했지만, 그건 시엔이 아팠을 때의 이야기인 듯했다.

     

    이번에도 두 분은 의술에 능통한 늑인족의 마을로 가 의술을 배워온다고 시엔에게 전해 들었었다.

     

     

    혹시나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걸까.

     

     

    시엔의 집에 다가서니,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수많은 인파가 그곳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숨죽인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속삭여졌다.

     

    그녀의 부모님이 도시에서 얼마나 선한 영향을 끼쳐왔는지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그 광경에 굳어, 잠시 숨을 몰아쉬는 사이.

     

     

    사람들의 틈으로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시엔이 보였다.

     

    “으극..!흡!”

     

    그 모습에, 내 몸은 멋대로 튕겨 나갔다.

     

     

    슬럼출신이라 쏟아질 손가락질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비밀로 이어져온 우리의 관계 또한 더는 숨길 수 없었다.

     

    인파를 헤치며, 나는 우는 시엔에게 달려갔다.

     

     

    “뭐- 시발, 뭐야? 슬럼가 새끼잖아?”

     

    “지갑 잘 챙겨! 저 새끼가 훔친다!”

     

    피어나는 소란이 들리지도 않는다.

     

    그들의 모욕이 불쾌하지도 않았다.

     

    내 눈에는 시엔의 우는 모습만 가득했다.

     

     

    인파를 다 뚫고, 병사들이 경비하는 곳에 다다른다.

     

    값비싸보이는 옷을 입은 한 드워프 어른이 시엔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녀를 위로하고 있었다.

     

    아무런 반응 없이 굳어있는 시엔.

     

     

    그런 그녀를 내가 불렀다.

     

    “…시엔…!”

     

    굳어있던 그녀가 나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반응한다.

     

    어찌나 많이 울었는지 붉어진 그녀의 눈꼬리와 코.

     

    시엔은 나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다, 이내 일그러진다. 표정이 비통함에 물든다.

     

    “흐윽…베르그…”

     

    비틀대며 일어나는 시엔.

     

    “베르그…! 흐으으앙…!”

     

    그리고 양팔을 벌리며 힘겹게 달려와 내게 안겼다.

     

    그녀는 내 품에서 통곡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가…..! 흐극…!”

     

    나를 부여잡던 사람들도 더는 나를 말리지 않고 의문을 표한다.

     

     

    나는 그들에게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시엔을 꽉 껴안고, 아무 말 없이 그녀와 함께할 뿐이었다.

     

     

    .

    .

    .

     

    시엔의 부모님은 마물의 습격을 받았다고 한다.

     

    호위하던 병사들도 많았지만, 다들 한 번에 죽고 말았다고.

     

    흔적으로 보아, 특수한 마물이 공격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운 없는 사고였다.

     

     

    시엔은 한참을 돈 많은 어른들에게 붙잡혀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시엔은 내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기에, 나까지도 그들과 함께해야 했다.

     

     

    이웃들과는 다르게, 시엔의 부모님에 대한 애도는 짧게 끊고 넘어가는 돈많은 어른들.

     

    애도 대신 그들은 시엔에게 남겨진 복잡한 문제들을 나열했다.

     

     

    재산을 보관하고 있어주겠다느니, 앞으로 양녀로 들어오라느니…

     

     

    한귀로 들으면 괜찮아 보이는 이야기가, 어떻게 들으면 또 불안하기만 하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시엔을 대신하여 내가 함정을 골라내야만 했다.

     

    나설 자격은 전혀 없는 나였지만, 자격을 생각하려 하지는 않았다.

     

     

    정신을 차려야 하는 순간이었다.

     

    많은 재산 앞에서 도덕성 따위는 내다버리는 사람이 많다.

     

    밑바닥 인생을 보아온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긴 시간이 지나간다.

     

    시엔은 대답없이 내 품에서 눈물을 흘리고만 있었다.

     

    그녀가 어떠한 답변도 주지 않자, 어른들은 애도의 시간을 주겠다는 변명을 뱉어내며 떠나갔다.

     

    나와 시엔은 넓은 집에 덩그러니 앉아있어야 했다.

     

     

    우리 둘만이 남으니 시엔의 울음소리와 떨림은 심해졌다.

     

    그럴수록 나는 그녀를 더 강하게 껴안고 지탱했다.

     

    내 진심이 조금이나마 전해지길 바랬다.

     

     

    나는 그녀의 울음이 그칠때까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지켰다.

     

    그녀도 점차 내 위로에 마음이 가라앉는지 어렵게 눈물을 그쳤다.

     

     

    그렇게 밤을 새워 그녀와 함께하니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연다.

     

     

    “베르그…”

     

    “…말해, 시엔.”

     

    “…나 슬럼가에서 너랑 살래.”

     

    “뭐?”

     

    시엔이 오랜 생각 끝에 내뱉은 제안은 나를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는 너만 있으면 돼. 응?”

     

    간절한 그녀의 목소리,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생각한다면…거부하기란 참 힘든 그녀의 부탁이었다.

     

    “…안돼.”

     

    하지만 나는 단호해야 했다.

     

    “뭐?”

     

    배신감에 울음기가 다시 차오르기 시작하는 시엔.

     

    그럼에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돼. 슬럼가는 너무 위험해. 네가 올 만한 곳이 아니야.”

     

    특히나 슬럼가가 인족으로서 생활하기에 얼마나 각박한 곳인지 피부로 체감한 나는 그녀를 데려올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었다.

     

    더러운 것들을 그녀가 보지 않았으면 했다.

     

    “…베르그…제발…난 네 옆에 있는게-”

     

    “-난 항상 네 곁에 있을거야, 시엔.”

     

    “…….”

     

    “그러니까 고아원으로 가. 양녀니 뭐니…그런 위험해 보이는건 다 무시하고…고아원으로 가. 도시 북쪽에 좋은 고아원이 있다고 들었어.”

     

    떨어지지 않을거라는 말에 안심했는지, 차오르던 눈물을 훔치고 시엔은 다시 나를 안았다.

     

    “…우리 계속 단짝친구지?”

     

    그녀의 뜬금없는 질문에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맹세해.”

     

     

    시엔은 잠시 멍하니 내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짐한 얼굴로 말했다.

     

    “…알았어, 그럼. 네 말대로 할게.”

     

    그녀는 그 누구보다 나를 믿어주고 있었다.

     

    .

    .

    .

     

     

    그렇게 시엔은 고아원 생활을 시작했다.

     

    모든 재산을 포기하게 되었지만, 이 편이 그녀를 위한 길이었다.

     

    돈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재산을 위해 그녀를 위험에 빠트릴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었다.

     

     

    과거의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시엔의 목숨이 걸리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녀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까지 바꾼것일까?

     

    모든걸 잃어버린 시엔이었지만,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은 깊어지기만 했다.

     

     

    나는 슬럼에서 생활하는 시간을 점차 줄여갔다.

     

    시엔이 기댈 수 있는 기둥이 되어주기 위해, 언제나 고아원 근처에서 맴돌았다.

     

    인족이라 약한 그녀를 괴롭히는 놈이 있으면 가서 싸워주고, 그녀가 울면 눈물을 닦아주었다.

     

     

    시엔도 그렇게 내게 기대며 고아원에 익숙해지다, 점차 특유의 사교성으로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며 씩씩하게 생활을 이어나갔다.

     

     

    “…네가 없었으면 너무 힘들었을거야.”

     

    고아원 생활에 들어선지 4개월이 되었을 때 시엔이 말해왔다.

     

    “고마워, 베르그.”

     

    나는 그녀가 이러한 말을 해줄때마다, 삶의 보람을 느꼈다.

     

    “언제든지.”

     

     

     

     

    그렇게 또 3년이 흐른다.

     

    나는 16살, 시엔은 14살이 되었다.

     

     

    우리의 몸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젖살이 빠지고, 키는 큰다. 남녀의 차이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와 시엔의 관계에는 변한 게 없었다.

     

    부모님의 죽음을 극복한 시엔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이야기꾼이라, 대화가 끊기는 일은 없다고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통해 세상의 많은 것들을 배워나갔다.

     

    시시콜콜한 대화가 언제나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굳이 따져 변한게 있다고 한다면…그건 신체적 거리감이 가까워졌다는 점이었다.

     

    손을 잡던 것도 이제는 깍지를 끼어 잡았고, 휴식을 취할때면 그녀는 언제나 내 다리 사이에 앉아, 등을 기대왔다.

     

    너무도 자연스러워 언제부터 이렇게 된건지 떠올릴 순 없었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가 가장 소중했다.

     

    하지만 그렇다보니, 질투의 감정도 점차 생겨났다.

     

    “…짜증나.”

     

    시엔이 말했다.

     

    “뭐가?”

     

    “너 왜 자꾸 잘생겨지는거야?”

     

    “뭐?”

     

    나는 피식 웃었지만, 시엔은 진지한 고민이라는 듯 표정을 풀지 않았다.

     

    “…자꾸 네 얼굴만 보고 꼬이는 애들이 생기잖아. 짜증나 죽겠어. 차라리 못생겼으면 좋았을텐데.”

     

    “너만 내가 잘생겼다 생각하는 거야.”

     

    “아니거든? 아, 그냥 머리카락을 다 잘라버리는건 어때?”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리고, 어차피 난 너랑만 있잖아.”

     

    “…거짓말.”

     

    시엔의 표정이 차갑게 식는다.

     

    “…뭐?”

     

    “-벨, 아까 헤일리랑도 이야기 나눴잖아. 그때 무슨 말 했어?”

     

    그녀는 어느새부턴가 나를 ‘벨’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헤일리랑? 별 얘기 안했는데.”

     

    헤일리는 시엔과 같은 고아원에 있는 여자아이였다.

     

    “아무 얘기도 안했는데 그렇게 웃어줘?”

     

    “무슨 말을 하는거야, 대체.”

     

    “…자꾸 발뺌할거야?”

     

    “진짜 몰라서 그래.”

     

    “너 헤일리한테 웃어줬어. 그리고 앞으로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걔가 고아원에서 너 잘생겼다고 얼마나 많이 말하고 다니는줄 알아?”

     

    “겨우 웃은거 가지고-”

     

    “-그럼 나도 다른 남자애들이랑 웃으면서 놀까?”

     

    “…”

     

    그녀의 지적에 다시금 웃음이 튀어나왔다. 확실히 예시를 드니 싫은 감정이 든다.

     

    “…그렇네. 주의할게.”

     

    시엔은 내가 수긍하고 나서야, 표정을 풀고 미소를 보여주었다.

     

     

    나도 그녀처럼 질투하는게 생겨났다.

     

    시엔은 고아원에 들어가면서, 신을 믿기 시작했다.

     

    순결의 신, ‘헤아’가 그녀의 신이었다.

     

    신실하다 말할 수준은 아니었지만…그녀가 기도를 빼먹는 날은 없었다.

     

    “기도 좀 그만하면 안 돼?”

     

    내가 어느날 물었다. 항상 그녀와 함께하지만, 빼앗기는 시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시엔은 이 부분에 있어서는 단호했다.

     

    “안돼. 꼭 기도는 해야만 해.”

     

    “맨날 뭐라 기도하길래?”

     

    “네가 행복하라고.”

     

    “….그런 말은 치사한거 아니냐.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

     

    “하지만 정말인걸?”

     

    나는 시엔을 말싸움에서 이길수가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와 말, 그리고 아름다운 미소만 보면, 나는 언제나 할말을 잃었다.

     

    화가 났어도 바보처럼 풀려버렸다.

     

     

    ****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기 시작했다.

     

    “꿈이 있어 벨?”

     

    “꿈?”

     

    나는 시엔을 통해 꿈에 대한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언제나 현재만 살던 내게는 어색한 일이었다.

     

    “응, 꿈. 먼 미래에 어떻게 살고 싶어?”

     

    잠시 고민을 하던 난, 생각해낼 수 있는 긍정적인 것들을 나열했다.

     

    “그냥…살았으면 좋겠는데. 딱히 부자로 살고 싶은것도 아니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적당히 돈을 모아서 적당히 밥먹고 살고 싶어. 좀 평온하게 말이야. 매일같이 슬럼에 있듯 긴장하며 살기도 싫고. 도시를 떠나서 살아야 하려나?”

     

    “혼자 살게?”

     

    “아. 친구들이 곁에 있으면 좋긴 하겠다.”

     

    “…친구 누구?”

     

    나는 점점 튀어나오기 시작한 시엔의 볼을 누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장난은 여기까지였다.

     

    나는 중반부터 그녀가 무슨 답을 원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네가 있어야지.”

     

    그 대답에, 시엔은 아닌척 헤실헤실 웃었다.

     

    “넌?”

     

    나도 곧장 시엔의 꿈이 궁금해진다.

     

    시엔은 내게 고개를 기대오며 말했다.

     

    “…난 세상을 여행하고 싶어.”

     

    그 말을 내뱉는 시엔의 목소리에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담겨있었다.

     

    “부모님을 따라 여행할 때 재밌었거든. 너한테…”

     

    시엔은 나를 흘깃 올려다보곤, 속삭이듯 말했다.

     

    “…너한테 내가 본 것들을 보여주고 싶어.”

     

    부끄러워하는 시엔의 모습에, 나는 또 한참을 웃었다.

     

    시엔은 내가 웃자 변명하듯 덧붙였다.

     

    “…네, 네가 가끔 내 말을 안믿잖아…! 그래서 그런거거든…”

     

    시엔이 세상의 놀랄만한 이야기들을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면, 나는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며 놀릴때가 많았다.

     

    그녀는 내심 그게 걸렸었나보다.

     

    하지만 사실, 내 두눈으로 보지 않았어도 시엔이 말해주었던 모든 것들이 존재하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시엔의 거짓말을 참 못하니 말이다.

     

    거짓말을 했다면 티가 났을 것이다.

     

    그리고 시엔의 꿈처럼, 그녀가 말해왔던 모든 것들을 그녀와 함께 두 눈으로 보는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꿈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는 나를 일깨워주었다.

     

    슬럼가도 벗어나야 하는 순간이 온다.

     

    어린아이였을때처럼 도둑질이나 하며 살아가기에는 힘겨워진다.

     

    지금 내 나이서부터 슬럼가 출신들은 새로운 활로를 찾게 된다.

     

    나도 그래야 할 것이었고.

     

    시엔과 함께하는 미래를 도둑질로 얻어낼 수 있을리 없었다. 그녀와 세상을 여행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수입이 너무 적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내린 답변을 나는 시엔에게 알려주었다.

     

    “시엔, 나 조직에 들어갈까봐. 안그래도 최근에 제안이 들어오고 있기는 해.”

     

    시엔은 표정을 무섭게 찌푸렸다. 나에게는 귀여웠지만.

     

    “…더는 범죄와 연관되지 않기로 했잖아.”

     

    “선택지가 이런 것 뿐인데 어쩌겠어. 불법적인게 싫으면 용병을 해도 되고. 최근 모집하더라고.”

     

    슬럼 출신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해봐야 많지가 않다.

     

    어찌되었건 힘을 쓰는 길로 빠지는게 자연스러웠다.

     

     

    “용병은 더 안돼…!”

     

    시엔이 빽 소리쳤다.

     

    불안히 떨리는 그녀의 표정.

     

    “용병일이 얼마나 위험한데…! 마물이랑 싸워야하는 거잖아, 그거!”

     

    마물과 연관이 된다면 언제나 격해지는 그녀였다.

     

    부모님을 앗아간 것들을 그녀는 당연하게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내 마음을 숨기지는 않았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는거지.”

     

    시엔은 내 다리에 걸터앉아 나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는다.

     

    다리에 실리는 그녀의 체중이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지, 시엔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설명했다.

     

    “벨…위험한 일은 하지 말자… 나랑 오래 살아야할 거 아니야…”

     

    부모님을 떠나보낸 그녀는 나를 잃는 것을 언제나 두려워했다.

     

    “내가 세상을 여행하고 싶다고 해서 그래…? 무엇보다 네가 우선이라는건 눈치채지 못하는거야…?”

     

    “…”

     

    “나는 네 꿈도 좋단 말이야…”

     

     

    어느새 시엔만 내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의 간절한 목소리를 들으면, 굳게 결심했던 다짐들도 하나같이 흔들린다.

     

    한 고집하는 성격이지만, 시엔 앞에서는 너무도 유하다.

     

    어쩌면 그녀의 말들이 내 심금을 울리는 걸지도 모르는 거다.

     

    그러니 나도 시엔을 품에 안아주며 말했다.

     

    “…알았어. 그런 건 안 할게.”

     

     

    .

    .

    .

     

    그 대화로부터 며칠 후, 나는 슬럼을 벗어났다.

     

    오랜 쉼터였던 그곳에 더는 있을 필요가 없었다.

     

    플린트, 맥스도 이미 뜨거운 인사를 나누고 갈 길을 찾아 떠나간 후였으니 말이다.

     

     

    나는 슬럼에서 벗어나 도시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일자리를 구하는 내게 몇몇 사람들은 슬럼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폭언하며 나를 쫓아냈지만, 다 괜찮았다.

     

    화도 나지 않았다.

     

    시엔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니 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을을 돌아다니다보면, 용병 모집 전단지가 보이기도 했다.

     

    ‘술과 고기, 돈과 명예, 그리고 여자를 원하는 남성들 모집. 인족 제외.’

     

    인족을 받는 용병단도, 받지 않는 용병단도 있다.

     

    그만큼 인족은 무시당하는게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내게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용병단은 깊은 고민을 했던 선택지였지만, 이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렇게 도시를 이틀째 돌고 있자니,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 찾은 곳은 주점이었다.

     

    “너 슬럼출신 아니냐?”

     

    내 흉터들과 손을 본 드워프 주점장이 물었다.

     

    “맞습니다.”

     

    “-꺼져. 슬럼 출신을 어떻게 믿으라고.”

     

    “….”

     

    나는 언제와 같이 그 모욕을 삼키며 몸을 돌렸다.

     

    하지만 가게를 나서기 전, 주점장이 입을 다시 열었다.

     

    “잠깐. 너…”

     

    “?”

     

    술배가 불룩 튀어나온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아스거와 힐다의 딸을 돌보는 그놈 아니냐?”

     

    나는 의문을 표했다.

     

    “아스거는 누구고, 힐다는 누구죠?”

     

    “몇 년 전에 마물에 습격당해 돌아가신 두 인족 의사분 말이다. 네가 그…뭐야…시엔…? 하여튼, 그 아이를 돌보는 놈 아니냔 말이다.”

     

    시엔의 부모님 성함이 아스거, 그리고 힐다였던 모양이다.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

     

    “시엔이면 제 친구죠.”

     

    “하, 이거 참…”

     

    그는 머리를 긁다 묻는다.

     

    “뭐, 그 시엔을 챙겨주고자 이러고 있는 거냐? 슬럼 출신이 왜 양지로 기어나온거지?”

     

    “…생각하신대로네요. 시엔을 챙겨주려고 이럽니다.”

     

    “나 원.”

     

    “일 주실 겁니까, 아님 말껍니까.”

     

    “…”

     

    남성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한다.

     

    “너를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두 분께서 과거 내 아들을 치료해준 적 있어서 빚을 갚는 거야. 내일부터 나와. 일을 가르쳐줄 테니.”

     

    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일 뵐게요.”

     

     

     

    이 소식에 가장 기뻐한 건 시엔이었다.

     

    그녀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위험한 슬럼에서 벗어난 나를 축복해주었다.

     

    “진짜야? 진짜야, 벨?”

     

    “내가 너한테 왜 거짓말을 해. 앞으로 주점에서 일하고 있을거야.”

     

    나는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그녀의 다리를 잡고 안아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다운 미소가 피었다.

     

    이걸 보기 위해 나는 굴욕을 감수하며 고개를 숙여왔던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었다.

     

    내가 말했다.

     

    “다 네 덕분이야, 시엔.”

     

    “네가 잘한거-”

     

    “-아니야, 시엔. 나에게 일을 주신 분…네 부모님의 지인이었어. 그래서 일을 받을 수가 있었어.”

     

    “……..”

     

    “고마워.”

     

    밝게 미소를 짓던 시엔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도 고마워, 벨. 우리를 위해 노력해줘서.”

     

    그녀는 상체를 숙여, 다시 내게 안겼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니, 나는 주점장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시엔을 생각하며 꾸준히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에 따라 작은 방도 빌릴 수 있었다.

     

    나중에 시엔과 함께하기에 적당한 크기의 방이었다.

     

     

    그녀가 고아원을 떠날 나이가 된다면,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었다.

     

    이렇게 점차 나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그날의 소식은, 나와 관련이 없을거라 믿었다.

     

     

    “그 소식 들었나?”

     

    주점에서 일하던 중, 한 테이블에서 울려온 소리였다.

     

    듣지 않으려 해도 들리는 그 소리는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무슨 소식?”

     

    “마족이 왕을 선출했다던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믐므므를그르므글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메시지가 없군요…! 화이팅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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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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