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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음식에도 조화가 있다는 걸 잠시 까먹었었다.

         

       “그웨에에엑…….”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것에는 어울리는 짝이 있는 법. 콜라는 피자나 치킨과 함께 먹어야지, 무슨 국밥처럼 밥에 말아먹는 게 아니니까.

         

       초콜릿과 박하의 조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각자 먹으면 나름대로 즐길 만하지만, 한 번에 입에 넣으면 끔찍한 폭탄으로 변하더라.

         

       어떻게 가공만 한다면 나름 괜찮은 음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날로 먹으면 배탈이 나기 딱 좋았다.

         

       지나치게 이론적인 면만 생각하다 보니 정작 일상적인 부분에서의 상식을 망각해버렸었다. 스스로 피드백을 마친 나는 옷소매로 입가를 문질렀다.

         

       그래도 오늘 첫 식사다. 차마 뱉진 못해서 삼켰다.

         

       “우윽…….”

         

       그 대가로 헛구역질이 자꾸만 올라왔다.

         

       그나마 누구 앞에서 이런 모습을 안 보여준 게 다행이었다.

         

       만일 하스펠트 교수가 이 꼬라지를 봤다면 면박을 줬겠지. 그 사람 설교를 듣다 보면 없던 욕지기도 치솟았으니 상황이 더 심각해졌을 것이다.

         

       일단 근처 개울가로 가 목을 축이기로 했다. 물을 삼켰다 뱉으니 구강이 한결 상큼해졌다.

         

       – 오후 5시까지 돌아오세요.

         

       마석은 다 모았고, 속도 진정시켰겠다. 시간도 맞춰야 하니 이만 하산하기로 했다.

         

       쾅! 쾅! 콰앙!

         

       이건 또 뭔 소리야.

         

       진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어차피 산에서 내려가려면 이쪽으로 가야 한다.

         

       콰아앙!

         

       지축이 흔들린다. 무게중심을 낮춰 흔들리던 상체를 바로잡았다.

         

       직후 정면을 향하도록 고개를 들었다. 땅을 어그러뜨린 장본인이 저 너머에 있었다.

         

       “대체 왜 아이언 드레이크가 이런 곳에 있는 건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이언 드레이크. 단단한 철갑 외피를 두른 공룡형 마수.

         

       백악기 시대에서나 볼 법한 비주얼이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대멸종이 없었는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음, 날도마뱀 새끼. 외형만큼이나 성깔 더러운 게 특징인데.

         

       쟤가 왜 여기서 나오지?

         

       아이언 드레이크는 깊은 숲에 산다. 이런 산턱에선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더 앞을 내다보았다. 강철로 된 파충류 앞에서 덜덜 떨고 있는 여학생이 둘, 그 앞에서 도망칠 준비를 하는 남학생이 하나. 끝으로 최전방에서 마법을 영창하고 있는 붉은 머리칼의 남학생이 또 하나.

         

       아카데미 재학생들이라는 건 안다. 내가 확인하고자 하는 건 로브에 두른 띠의 색깔이었다.

         

       초록색. 아직 파릇파릇한 1학년이다.

         

       “내가 시간을 벌 테니까 교수님을 모시고 와!”

       “로르웰 너 바보냐! 너 혼자서는 시간 끌기도 안 돼!”

         

       중간에 선 학생 말이 맞다. 선행학습이라도 했다면 모를까, 1학년이 배우는 마법만으로는 드레이크 앞에서 뼈도 못 추린다. 철갑탄도 막아낼 두께의 전면장갑에 고작 화염구 몇 발 던져봤자 흠집도 안 나겠지.

         

       저 로르웰이라는 사람, 눈 색깔을 보니 화계마도 사용자였다. 저 마수를 화염 마법으로 잡으려면 못해도 중급 이상의 술식을 사용해야 할 텐데….

         

       어라, 잠깐만. 나 가지고 있지 않나?

         

       힙색을 뒤져 스크롤 두 장을 꺼냈다. 두 개 모두 ‘라이트 애로우’를 즉발시키는 스크롤이다.

         

       라이트 애로우는 중급 화염마도다. 심지어 얘는 관통력 증가를 왕창 먹인 특제품이었고. 외피가 단단한 마수에게는 상급 마도에 비견될 수준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을 터였다.

         

       지금으로선 아이언 드레이크가 왜 기슭까지 내려왔는지 모른다. 알 수 있는 건 하나뿐, 이대로 놔두면 저 학생들은 죽는다는 것이다.

         

       찰나의 시간 동안에 생각을 마쳤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판단을 마치자마자 지축을 박차며 나아갔다.

         

       “불렛!”

         

       슈욱, 하고 날아든 화염탄이 마수의 견갑골에 맞아 튕겼다. 전방에 있던 남학생의 입에서 옅은 쌍소리가 튀어나왔다.

         

       한편 마수에게 맞고 튕긴 불덩이는 나와 가까운 곳에 안착했다. 운이 좋았다. 힙색에서 마력초를 꺼낸 나는 라이터를 켤 필요도 없이 연초의 첨단으로 불씨를 옮겼다.

         

       치익!

         

       쓰읍, 하아.

         

       이 부류연이 보이니? 네 명복을 기리는 향이란다.

         

       마력초의 연기를 깊게 들이쉬자 몸속에서 마력이 순환한다. 정말 귀찮은 작업이었다. 나는 라이트 애로우의 스크롤을 펼쳐 마전지에 마력을 쏟아부었다.

         

       찰나의 시간이었다.

         

       쐐액, 펑!

         

       “크워어어어어억!”

         

       눈으로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빠른 빛살이 아이언 드레이크의 넙다리를 찢고 들어갔다. 관통.

         

       애로우의 출구는 반대쪽 광배근이었다. 기계 주제에 광배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그 언저리를 뚫어버린 것만은 확실하다.

         

       옆구리를 잃어버린 드레이크는 무게중심을 잡지 못했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녀석의 등을 밟으며 올라갔다.

         

       “……!”

         

       전방의 남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통성명은 나중에 해도 되겠지.

         

       그보다 방금 걸로 마력이 다 흩어졌다. 연초를 더 태우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대신 남은 스크롤을 남학생에게 주기로 했다.

         

       “받아요!”

       “이건……?”

         

       남학생과 드레이크의 거리는 대략 1미터. 마전지라도 이런 근거리에선 문제없이 던져줄 수 있다.

         

       훅, 날려주니 알아서 받는 남학생.

         

       “사용할 줄 알죠?”

       “……예!”

         

       그가 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펑!

         

       곧바로 스크롤이 사용됐다. 정면에서 내쏴진 라이트 애로우가 아이언 드레이크의 가슴팍을 뚫었다. 녀석의 저항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기회다.

         

       대부분의 파충류나 양서류형 마수는 후두부에 마석이 있다. 마석을 뜯어버리면 마수는 아무것도 못 한다.

         

       마그넷 터틀을 상대할 때와 마찬가지다. 나는 마수를 잡을 때 스태프를 사용한다. 등에 고정해두었던 강철 스태프를 꺼내서 길게 내뺐다.

         

       빙그르르, 스태프가 여덟 번 공회전하다가 드레이크의 경추에 직격했다. 지레를 두는 지점을 타격점에서 멀리 둘수록 회전 관성이 커지는 법이었으니.

         

       “크…워어…어어억…….”

         

       뒤통수를 깨버리기엔 방금 일격만으로도 충분했으리라.

         

       외피가 벗겨지고 시커먼 내부가 드러났다. 꿀물처럼 진득하게 흐르는 석유, 검게 물든 전선, 납으로 된 뼈마디까지. 어딜 봐도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안에 있던 마석을 꺼냈다. 적철석과 청동석이 딸려 나왔다. 투두둑,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드레이크의 안광에 서려 있던 이채가 사라졌다.

         

       나는 맥없이 쓰러진 드레이크 사체를 밟고 내려왔다.

         

       내려온 순간부터 나와 남학생의 눈이 맞았다. 난 그 뒤의 남학생과, 벌벌 떨고 있던 두 여학생을 차례로 둘러본 뒤 다시 적발의 남학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친 덴 없나요?”

       “네.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나저나 별일이네요. 드레이크가 기슭까지 내려오는 건 좀처럼 없는 일인데. 혹시 아는 거 있으세요?”

         

       내 물음에 네 명의 학생이 모두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방금 막 실습을 나온 참이라서요.”

       “벼, 별거 아니지 않을까요? 먹을 게 부족해졌다든지…….”

       “그보다도 난 당신이 신기하군.”

         

       마지막 반말에 난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큰 체구의 또 다른 남학생이다.

         

       “금색 눈동자…. 당신 금안족이지? 금안족이 어떻게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지?”

       “야, 초면인 사람한테 실례되는 말 하지 마라.”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할 때 이러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이럴 때마다 침묵을 택하곤 했다. 나는 이쪽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에, 지금 내 종족을 다른 이에게 설명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로르웰이 그를 제지하고 내가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자 삭막한 공기가 감돌았다.

         

       문득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해가 조금씩 서쪽으로 이동하는 게 보인다.

         

       해의 위치만으로는 정확한 시각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내가 시계를 들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노예에게 그런 건 사치품이었다.

         

       나는 얼어붙은 분위기를 깰 겸 일행의 선두에 있던 남학생에게 지금이 몇 시냐고 물어보았다.

         

       “지금이요? 음……. 오후 네 시 반이네요.”

       “아.”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죄송합니다. 저 먼저 가 볼게요.”

         

       그 말을 끝으로 비탈길을 향해 내달렸다. 등 뒤로 ‘저기요!’라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에 뒤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당장 안 튀어가면 하스펠트한테 죽는다…….

         

       머릿속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

         

       “저기……. 도와주신 보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언젠간 만나겠지 뭐. 로브를 보니 아카데미 소속인 것 같던데.”

       “근데 저런 로브는 처음 봐. 선배 중에 검은색 끈을 매고 다니는 분이 계셨었나?”

       “있기야 하겠지. 됐으니까 이 녀석이나 가지고 내려가자. 이러다가 날 지겠어.”

         

       **

         

       – 오후 5시까지 돌아오세요.

         

       세상이 나를 억까한다.

         

       왜냐, 돌아올 때 5시 1분이었거든.

         

       “요새 퍼졌죠?”

       “아닙니다.”

       “제가 제 시간에 못 돌아오면 다시 목걸이 채운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했습니다.”

         

       했는데요.

         

       솔직히 이건 억울하다. 식도에서 단맛이 느껴질 정도로 부리나케 뛰어왔는데 간발의 차이로 늦었다니. 그 차이만으로 새벽 업무라는 이름의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이가 갈렸다.

         

       하스펠트 교수는 시간약속을 이토록 철저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얼마냐 융통성이 없으면 딱 1분만 늦어도 화를 낼 정도였다.

         

       “당신을 밖에 내보내도 각인이나 목줄을 채우지 않는 건 제가 당신을 믿기 때문이에요. 스스로도 지난 3년간 잘 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요?”

         

       우와, 나왔다. 하스펠트 특유의 함정 선택지.

         

       여기서 ‘네’라고 대답하면 안 된다. 지난 3년간 머릿속에 쌓인 빅데이터로 알 수 있었다.

         

       “아뇨. 아직 교수님께서 제게 주신 은덕에 비하면 부족합니다.”

       “분수를 아네요. 성과가 미진한 건 여전하죠. 그런 당신에게 만회할 기회를 내드리겠습니다.”

         

       턱, 하고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마전지가 눈앞에 떨어졌다. 맨 윗장에 놓인 마전지의 끝자락에는 ‘체이서 플로우’라는 글자가 짤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처음 보는 마법이다.

         

       분량이 장난 아니다. 떨리는 손으로 마전지를 받아들었다. 첫 장을 제외하고는 스크롤이 새겨져 있지 않은 채였다.

         

       “맨 앞에 건 견본이에요. 그걸 바탕으로 작업하면 될 거예요. 라이트 애로우의 작성은 제가 알아서 마무리할 테니, 당신은 그거나 완성해 오세요.”

         

       보통 마법진이 아니었다. 여태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복잡하다. 위아래로 꿈틀거리는 듯한 이 기하학적인 문양을 응시하고 있으면 내 머리가 위상변화하는 것 같았다.

         

       “기한은요?”

       “몰라서 물어요? 내일 아침까지 해 와요.”

       “저기…. 잠은 어떡하고요?”

       “기숙사에 있는 동안에는 당신 요령껏 쉬고 일하세요. 이것만 해 오면 되니까. 아, 그리고 조금 전 아이언 드레이크를 잡았다고 했죠? 작성할 때 그걸 쓰면 되겠네요.”

       “아, 네….”

       “더 할 말 없으면 오늘은 이만 돌아가세요. 다음부터 나갈 일 생기면 시간 맞춰서 돌아오고.”

         

       하스펠트 교수가 축객령을 내렸다. 식사비라고 준 돈은 동화 두 장이 전부였다.

         

       이야, 일당 더럽게 안 주는 건 여기나 저기나 똑같단 말이야. 이런 것까지 서로 닮을 필요는 없는데.

         

       동화 두 장으로 살 수 있는 거라고는 호밀빵 한 덩이가 전부다. 식당 주인이 인정 많은 사람이면 스프를 서비스로 내려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인심 좋은 곳을 찾을 시간조차도 아까웠다.

         

       결국 퍽퍽한 빵 하나 뜯어먹는 게 오늘 식사의 끝이었다. 아카데미 연구동을 지나 축사로 향했을 즈음에는 배가 꺼진 상태였고.

         

       낡은 문고리를 잡고 돼지우리로 들어갔다. 사람 사는 곳이지만, 사람 사는 곳이 아니다.

         

       가방과 기타 잡것을 내려놓은 나는 폐에 들어찼던 공기를 한껏 토해냈다.

         

       “흐, 흐흐.”

         

       한탄스러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축사가 떠나가랴 쌍욕을 내뱉었겠지.

         

       [최상급 화계마도 – 체이서 플로우(Chaser Flow)]

         

       [거대한 열의 흐름을 만들어내 반경 10km 이내 지정한 대상을 불태운다. 모든 열기의 흐름은 시전자의 사유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 이 마법을 아직 익히지 않았습니다.]

         

       단 14개밖에 없다는 최상급 화염마도 중 하나. 언제 배울 수 있을까 벼르고 있었는데.

         

       아까 그 학생들을 도와준 스노우볼이 이렇게 굴러갈 줄이야.

         

       “오히려 잘 됐어.”

         

       역시 권위자 밑에서 버티고 있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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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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