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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모든 장르에는 공식이 있다. 클리셰라고 불리는 그것 말이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다. 특정 장르라는 형태의 집합이 성립하기 위해선 공통 사항이 있어야 할 테니까.

         

         예를 들어 왕도 용사물을 보자. 이반이 생각하기에 이 고리타분한 장르의 포멧은 다음과 같다.

         

         마왕, 또는 대적자가 나타난다.

         용사는 파티를 이룬다.

         용사는 마왕을 타도하기 위한 여정에 오른다.

         마왕의 간부들을 차례로 쓰러트리는 과정이 나타난다.

         간부 중 하나는 용사에게 매료된다.

         여정 끝에 마왕은 죽고 세계는 평화를 되찾는다.

         

         이반은 이 포멧에 근거하여 이 세계가 왕도 용사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이반은 30년 전 김선우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끄집어내어 목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아카데미물의 공식은 무엇일까.

         

       

       

         

         

        ep3. 아카데미 입학열차에선 반드시 테러가 일어난다.

       

       

         

         

         왕녀는 무슨 스타크 가문 출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겨울이 오고 있다’를 운운했지만, 그것은 틀렸다.

         

         지금은 1월이다. 당연히 한겨울이고, 얼마 전에 고아원 새해 기념 파티까지 거하게 해놓은 참이다.

         

         즉, 대학이 학기를 시작하기까지 아직 여유 시간이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아카데미라….”

         

         

         이반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충동적으로 불태워버린 자료집을 그리워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 중엔 분명 아카데미물도 몇 개 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젠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카데미에 천마가 가거나 발도를 하거나 무당이 가거나 주술사가 가거나 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급한대로 생각나는 것들을 메모해 보자면 이랬다.

         일종의 아카데미 공식 같은 것들이다.

         

         

         ‘아카데미엔 무엇이든 올 수 있다.’

         

         

         말 그대로, 카우보이에서부터 천마까지, 무엇이든 올 수 있다.

         그렇다면 일단 용사 파티의 소중한 아들딸들을 등 뒤에서 푹 찌를 암살자들도 포함된다는 뜻이다.

         

         

         ‘아카데미는 반드시 침공 받는다.’

         

         

         슬프게도 아카데미는 최전방 전략 요새보다 잦은 침략을 당한다.

         통계상 주인공이 자퇴하지 않을 경우 아카데미가 침략 당할 가능성은 98%에 수렴한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아카데미엔 마족이 숨어 든다.’

         

         

         마왕도 죽고, 칠용장 모두가 죽거나 실종되고, 마족들이 노예가 되거나 세상 끝까지 떠밀려나간 이 시점에서.

         

         뜬금없이 연합왕국 한복판에, 하필이면 그냥 교육기관에 숨어 들 수 있는 방법은 차치하고서라도.

         

         아카데미엔 마족 지지자나 마족 본인이 반드시 숨어든다는 뜻이다.

         

         일단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아인종들은 제외해도 된다. 이 녀석들은 숨는다고 숨을 수 있는 외모가 아니니까.

         

         서큐버스나 데몬처럼 의태가 가능한 녀석들이 숨었다고 가정하는 편이 낫다.

         

         

         ‘학부생과 교직원 중엔 배신자가 있다.’

         

         

         이상할 정도로 주인공을 적대하는 교직원을 찾아야 한다.

         그 녀석은 마족 쁘락치일 가능성이 높다.

         

         

         ‘아카데미 내부엔 비밀 유적지나 숨겨진 유물이 있다.’

         

         

         얀스크 대학은 설립 연혁이 10년도 되지 않은 신설 대학이며, 수도 한복판에 선왕께서 직접 건설을 명하신 명백한 국립 대학이지만 어쩐 일인지 내부엔 ‘비밀의 방’이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아카데미의 학부생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학생, 마족 관련 악역, 정부 요원.’

         

         

         여기서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녀석들도 시한폭탄이나 다름 없다.

         

         툭 하면 사고에 휘말려서 구하러 가야 하고, 하필이면 주인공이 구할 수 밖에 없으니.

         

         그 외의 학생들, 즉 사고에 휘말리지 않는 학생들은 다시 둘 중 하나로 나뉜다. 이름만 언급되는 조용한 학생과 주인공을 질투하는 학생.

         

         물론 여기까진 귀여운 학창생활의 일부로 취급할 수 있다. 문제는 다음이다.

         

         

         마족과 관련된 학생들. 사실상 마족 쁘락치, 마족 스파이, 마족 빨치산으로 분류해야 할 녀석들.

         

         

         ‘눈에 띄면 미리미리 죽여두고.’

         

         

         절멸부대 장교 출신 고아원장은 눈을 가늘게 뜨며 밑줄을 그었다.

         

         아군을 보호할 최선의 방법은 적군의 절멸이었으니까.

         

         여기까진 평범한 취미활동이나 다름 없다.

         

         

         ‘다음은 정부 요원.’

         

         

         국제적 명사들의 자녀가 대거 입학했다면, 당연하게도 그 자녀들을 지키기 위한 요원들을 파견하기 마련이다.

         

         문제가 있다면, 대개의 경우 요원은 하나의 임무만을 수행하기 위해 원정을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자녀들의 보디가드는 여가 시간에 훌륭한 우방국 스파이로 활동하게 된다는 뜻.

         

         이런 녀석들은 죽일 수도 없다. 적성국가가 아니었으므로 손 델 경우 바로 외교 문제 발생이다. 표면상 직위는 학생일 테니까.

         

         

         ‘연령 제한이 없으니 전쟁 당시 현역 요원들이 입학해도 이상할 건 없는데.’

         

         

         절멸부대 장교 출신 고아원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시름에 잠겼다.

         

         아는 놈들이 오면 차라리 낫겠군. 적어도 말은 통할 테니까.

         

         이반은 원장실 입구 벽에 장식해둔 손도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카데미의 시험, 훈련, 기타 상황에서 교관이 [안전하다]라고 말한다면, 반드시 위기가 찾아온다.’

         

         

         이것은 기업체가 자체 안전검사 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안전검사를 외주로 맡겨야 하는 이유다.

         

         스파이와 암살자, 마족과 배신자가 학생보다 많은 아카데미의 특성상, 안전한 곳은 교장실 정도 밖에 없다.

         

         덤블도어도 교장실에서 죽진 않았으니까.

         

         일반적으로 교장, 또는 총장은 행정관료가 맡아야 할 요직이지만, 이상하게도 아카데미에서 교장은 세계관 최강자가 맡는 것이 ‘상식’이었다….

         

         

         다음. 가장 중요한 것.

         

         아카데미물의 ‘엔딩 조건’을 떠올려보자….

         

         

         ‘아카데미의 엔딩 조건은 [생존]과 [세계평화]다… 잠깐. 잠깐만.’

         

         

         지금 이 세상이 아카데미물이고,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배경 사건’에 불과하다면.

         

         정리해보자.

         

         마왕이 나타났고, 용사가 마왕을 죽였으며, 세상이 평화를 되찾았다.

         

         전쟁이 끝난 지 고작 4년이 된 이 시점에서 연합왕국은 산산조각 나기 직전, 지금이야 각자 국가 재건에 열을 올리고 있다지만 자원 경쟁과 식민지 경쟁은 점점 더 열기를 띄고 있고.

         

         마족들의 터전이던 수많은 점령지에선 여전히 각국의 군정이 마족 노예를 착취하고 있는 이 시점에.

         

         메인 스토리라고 할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세계대전? 아니, 이건 아니야.’

         

         

         아카데미물이라면 고등학생에서 대학생 안팎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단순한 국지전이 아니라, 세계대전이란 거창한 이름이 붙은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런 학생들이 활약할 수 있는 한계가 너무나 뚜렷했다.

         

         그렇다면….

         

         

         ‘마왕 부활…?’

         

         

         이반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가라앉은 눈으로 메모장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게 가장 합리적이다. 용사 파티의 후예들이 부활한 마왕에 맞서 세계의 평화를 되찾는다는 이야기가.

         

         마왕 부활이 상수라고 치고, 학생들이 2학년 즈음에 중퇴한다고 가정하고…. 아카데미 침공이 적어도 1년 이후 일어난다고 예상하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그는 메모지에 한 문장을 더 적어 넣고는 코트를 챙겨 들며 일어났다.

         

         

         ‘아카데미 입학 열차(또는 교통수단)에선 반드시 테러가 일어난다.’

         

         

         해리포터 이래로, 열차가 있는 세계관에선 아카데미 입학은 반드시 열차를 이용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마차를 이용하기도 한다. 공통점이 있다면 열차와 마차는 모두 테러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사실 모든 이동수단은 테러에 취약하다. 도보 이동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이 연합 왕국은 전쟁 시절 치열하게 깔아둔 군수 열차를 그대로 민간 수송용 열차로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군수 열차라 하더라도 테러에 취약하다. 이는 이반의 18년 군복무 기간이 증명할 수 있다.

         

         마족들 또한 내륙 군수물자 수송에 열차를 즐겨 이용했으므로, 이반은 열차 테러를 막아낸 적도, 열차 테러를 자행한 적도 지겨울 정도로 많다.

         

         절멸 부대의 업무가 늘상 그런 식이었으니까.

         

         

         이반은 오늘도 대한민국이 그립다. 열차를 타면 테러나 마적이 아닌, 맥반석 계란이나 참치김밥과 사투를 벌여야 했던 그 평화로운 세상이.

         

         이반의 ‘지구로 돌아가면 먹을 것들 목록’엔 맥반석과 참치김밥이 추가되었다.

         

         

        *

         

         

         “두고봐요!! 진짜 두고봐! 다들 똑똑히 봐요!! 내가, 내가 얼마나 성공하는지!!”

         

         

         악기 가방과 캐리어를 끌고 열차 플랫폼에 선 에시디스는 훌쩍거리며 군중을 노려보았다.

         

         군중은 커다란 플레 카드를 들고 그녀를 환송하고 있었다.

         

         

        -에이나르 대왕의 장녀! 성 얀스크 대학 수석 입학!!

         

         

         수석은커녕 차석조차 아니었지만 에시디스는 반박하지 않았다. 저 자들은 그녀의 그런 반응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저런 문구를 써 넣었기 때문이다.

         

         

        -자랑스럽다! 드로안 왕국 최고! 미녀!

        -위대한 정복자 에이나르 대왕의 피를 이어받아, 관현악 정복에 도전!!

         

         

         “관현악이!! 뭐 어때서어!!”

         

         

         에시디스는 빼액 소리지르고 뒤를 돌아 열차에 올라탔다.

         

         그녀의 등 뒤로 와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쁜, 나쁜 사람들. 응원해 주진 못할 망정…!

         

         열차가 출발하고, 그녀는 소매 사이에 얼굴을 묻고는 흐느끼며 멀어졌다.

         

         차창 너머로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군중이 웅성거리며 흩어졌다.

         

         

         “아가씨께서 그래도 마음 굳게 먹으실 수 있겠지요?”

         “아무렴, 어느 분 따님이신데!”

         “크라실로프 왕국 녀석들은 희멀건해서 영 믿음이 가질 않는뎁쇼….”

         “그래도 어르신께서 혼자 보내진 않으셨으니 걱정 말어. 어련히 잘 하시겠지.”

         

         

         에시디스를 놀리던 군중, 에이나르 대왕의 가신단은 저마다 걱정을 담아 수군거리며 떠났다.

         

         용사파티의 광전사, ‘살육자’ 에이나르 울릭손의 장녀. 에시디스 에이날스도티르.

         성 얀스크 대학 음대 관현악부 입학!

         

         

        *

         

         

         드로안의 하이킹 에이나르의 가신단이 성대한 배웅을 했던 바로 그 열차는 이틀 후, 크라실로프 왕국의 국경 근처에서 전복되고 만다.

         

         당연하게도 아카데미로 떠나는 입학 열차가 테러에 휘말리는 것은 ‘상식’이었으므로, 이반은 이에 놀라지 않았다.

         

         대신 그는 권총과 도끼를 들었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호그와트 급행열차에 테러가 일어나는건 ‘상식’ 이잖아…?

    AbyssalKraken 님!! 100코인 후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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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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