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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간혹 있다고 한다.

       배우가 되기 위해 태어난 인간들이.

       

       김형석은 꽤 오랫동안 캐스팅 디렉터일을 했지만, 여태까지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놀라운 연기력을 볼 때는 몇 번이나 있었지만, ‘배우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라는 말은 그저 과장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있네.’

       

       하지만, 과장이라 생각했던 그 말이, 이토록 현실성있게 다가올 줄이야.

       

       ‘배우가 되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

       

       웃는 것만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감정이라는 게 없어 보이던 아이가, 명랑하고 쾌활한 아이처럼 단숨에 발랄해졌다.

       

       손에 쥐고 있는 건, 컵인가?

       아니, 손 모양을 보면 우유팩. 혹은 보다 길쭉한 것을 쥔 것 같다.

       예를 들면 마치 두유팩과 같이.

       

       “와, 언니! 이게 뭐야?”

       

       해맑게 웃으며 떠드는 모습에 조민태와 김형석은 눈을 떼지 못했다.

       

       ‘시선이 위로 올라가 있어.’

       

       누군가 함께 찍는다는 걸 상정한 연기다.

       

       ‘어떻게?’

       

       지금 그들이 주문한 건 어디까지나 ‘시원한 우유를 맛있게 마시는’ 연기였다.

       이번 광고가 2인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소녀는 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쥔다.

       빨대다.

       

       그것을 오른손에 쥔 두유팩에 꽂고, 쪽 빨아서 마셨다.

       별 것 아닌 행동.

       

       꿀꺽.

       

       하지만 보는 것 만으로 무심코 목젖이 움직였다.

       무심코 마실 걸 찾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어색하지 않아.’

       

       초짜 연기를 볼 때 가장 괴로운 건, 본인이 그 연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경우다.

       연기를 어색해하거나 부끄러워하면 지켜보는 이들도 함께 어색해지고 부끄러워진다.

       

       이것은 사람에게 있는 공감 능력 때문.

       즉, 연기는 그 공감 능력을 극도로 끌어낼 수 있어야 ‘좋은 연기’가 된다.

       

       그것을 아직 다섯 살 언저리의 아이가 할 수 있는 건가?

       할 수 있는 거였나?

       

       “……끝났어요.”

       

       그렇게 멍하니 연기를 보고 있자, 어느새 소녀가 그리 말했다.

       방금 발랄했던 모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로.

       

       “어, 음.”

       

       조민태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찾지 못했다.

       대단하다고, 잘했다고 칭찬해주면 그만이었지만 그건 이전에 연기를 했던 13번에게도 해주었던 말이다.

       

       같은 말을 해주기엔, 너무 수준 차이가 심했다.

       

       ‘이게 아역?’

       

       적어도 조민태가 본 아역 중에서, 이 정도로 할 줄 아는 아이는 손에 꼽았다.

       심지어 그 아이들은 대부분 이 소녀, 주서연보다 나이도 한두 살 많았다.

       

       ‘오디션 경력이, 처음 아니었나?’

       

       이 정도 연기력을 가진 아이가 여태 오디션을 한 번도 붙지 못했을 리가 없다.

       제대로 연기할 줄 아는 아역은 귀했으니까.

       첫 오디션에 이 정도 실력.

       

       이게 배우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누가 그 말을 쓸 수 있을까.

       

       ‘아무래도…….’

       ‘결정된 것 같죠?’

       

       조민태와 김형석은 서로 의견을 교환한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제가 본 아역 중에 최고였습니다.”

       “오늘 연기 너무 좋았고요. 우선 결과에 대해선 후에 메일이나 전화로 통보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은 거기까지 말한 뒤에 계속해서 서연에 대한 칭찬을 했다.

       연기에 감정을 몰입하는 게 정말 좋았다거나.

       표현이 굉장히 섬세했다거나.

       

       ‘흠.’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서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정돈가?’

       

       오버가 심하네.

       그런 느낌이다.

       

       사실, 스스로의 연기가 어떤지는 잘 모른다.

       거울을 보고 연습한 적은 있었지만, 자신의 연기가 얼마나 뛰어난지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법이다.

       

       ‘망상 같은 게 도움이 됐을지도.’

       

       전생부터 망상하는 건 특기였다.

       블랙기업에서 일할 때도 이런저런 망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취미였고.

       

       그 망상을 눈으로 보여준 게 버튜버였다.

       현실에 나타난 2D.

       

       그걸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충격은 무척이나 컸다.

       마치 환상 속에 사는 사람 같아서.

       

       자신도 저런 환상 속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아무튼.’

       

       서연은 밝은 얼굴로 계속 떠드는 남자를 보았다.

       

       ‘조민태, 맞지?’

       

       두유 광고가 맞았다.

       오디션장에 들어온 순간, 바로 눈치챘다.

       

       역시 이 오디션은 가람드림에서 나온 ‘맑은콩 순수두유’의 CF였다.

       

       ‘조민태가 CF 감독이었다는 건 진짜구나.’

       

       이 ‘맑은콩 순수두유’는 앞으로 대략 10년 후에, 방송에서 언급된다.

       그 무렵 천만영화의 주연으로 두 번이나 출연한 김정하와, 그녀의 두 번째 천만 영화의 감독이 조민태였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CF 감독의 일을 했었다’라고 하며 언급된 CF가 이 맑은콩 순수두유였다.

       눈을 감으면 그때의 인터뷰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제가 정하 씨와 처음 찍은 건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두유 CF였죠. 기억하세요?”

       “물론이죠. 설마 그때의 인연이 이렇게 닿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밝은 얼굴로 그리 이야기하던 둘의 모습.

       하지만 조민태의 밝은 얼굴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고작 3년 후, 그의 우상이었던 아버지가 자살을 하게 되니까.

       

       “그래서 저는 이번 서연 양의 연기가 좋았던 건데…… 서연 양?”

       “아, 네.”

       “아이고, 저희가 너무 붙잡고 있었나 보네요.”

       

       조민태는 미안하다는 듯 서연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슬쩍 시계를 보면 거의 10분 가까이 지나 있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결과는 대략 일주일 후에 전달드리겠습니다.”

       “두 분 다 고생하셨습니다.”

       

       조민태와 김형석은 서연과 뒤에서 지켜보던 수아에게 인사했다.

       이 CF를 살려줘서 정말 감사하다는 듯, 진심이 듬뿍 담긴 인사였다.

       

       “서, 서연아.”

       “네?”

       

       오디션장에서 나오자 수아는 그런 딸을 꽉 안았다.

       

       “우리 딸, 연기 너무 잘한다. 진짜 천재니?”

       “모, 모르겠는데요…….”

       

       너무 꽉 끌어안아서 숨이 막혔다.

       뭣보다 어머니인 수아는 가슴이 좀…… 부담스러울 정도로 컸다.

       

       그 탓에 서연은 뭐라 형용하기 힘든 기분이 들었다.

       어찌됐든 전생에 남자였던 기억이 있었으니까.

       

       “흥, 오버하긴.”

       

       그런 수아의 반응에 몇몇 어머니들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이런 수아의 반응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원래 자기 아이 연기가 제일 좋아보이는 법이니.’

       

       그래도 얼굴이 워낙 예쁜 아이라 신경쓰이긴 했다.

       특히 오늘 좋은 평가를 들었던 이지연의 어머니, 홍진희는 더더욱 그랬다.

       

       ‘설마, 아니지?’

       

       으레 어머니들이 떠는 호들갑이라기엔, 서연의 오디션 시간은 너무 길었다.

       짧으면 5분 내에도 나왔던 오디션장을, 서연은 거의 20분이나 지나서야 나온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홍진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래도, 이번 오디션은 그른 것 같았으니까. 

       

       ***

       

       오디션 합격 통보가 온 건, 그로부터 일주일이 흐른 후였다.

       합격 전화를 받은 수아는 방방 뛰며 남편에게 그 말을 전했고, 아버지인 주영빈은 할말을 잃었다.

       

       ‘진짜?’

       

       아내가 장난치는 게 아닐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의 아내는 그런 거짓말을 할 성격이 아니었다.

       

       “서연이는 정말 천재 맞는 것 같아요. 어쩌지? 우리 딸, 내가 너무 예쁘게 낳았나?”

       “지, 진정해. 좀 진정하라고.”

       “하지만요!”

       

       젊은 아내는 이십 대에서 달라진 게 없었다.

       딸은 이런 소녀 같은 아내의 감성을 물려받은 건지도 몰랐다.

       

       “서연이는 어때? 계속 해볼래?”

       

       오히려 딸 쪽이 의젓하게 소파에 앉아있었다.

       오디션 합격은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 삐니핑을 근엄한 얼굴로 시청하고 있었다.

       

       ‘으음.’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서연은 고개를 삐뚜름하게 기울였다.

       주영빈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TV에 고정된 눈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 어려진 탓에 정신도 영향을 받는지, 삐니핑이 생각보다 재밌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이게 붙네.’

       

       전생에는 한 번에 합격하는 꼬라지가 없었는데, 설마 이렇게 될 줄이야.

       잠시 고민하던 서연은 입을 열었다.

       

       붙는다고 해서 문제 되는 게 있냐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까.

       

       “전 해보고 싶어요.”

       “그러니?”

       “네.”

       

       어쨌든 CF 광고에 출연하면 수입이 생긴다.

       그것을 아는 주영빈은 딸에게 그 수입에 대해서도 어떻게 할지 확실히 정했다.

       

       “이 돈은 전부 우리 서연이 통장에 저금할 거야. 나중에 나이 먹어서 쓰도록 하렴.”

       

       대학에 갈 때 쓰거나, 혹은 다른 돈이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이것을 확실히 지켜주는 것을 보면 영빈과 수아는 정말 좋은 부모님이었다.

       전생의 부모님과는 달리, 말이다.

       

       ‘돈이라. 확실히 필요해.’

       

       버튜버에 데뷔할 때를 생각하면 여러모로 돈이 들어갈 구석이 많다.

       어찌보면 일반 스트리머보다 많을지 모른다.

       

       평범한 스트리머들에게 필요한 장비에.

       3D 모델.

       풀트래킹 장비.

       

       어쩌면 방을 하나 따로 구해야 할지도 모르고.

       방음벽 설치…… 생각하면 돈 들어갈 게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열심히 모아야 해.’

       

       서연은 부모에게 손을 벌려 고생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지금은 소중한 부모님이니 되도록 스스로의 힘으로 하고 싶었다.

       

       뭣보다, 서연은 자신이 정신만큼은 어른이라는 자각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은 스스로 하자, 그것이 서연의 모토였다.

       

       “그럼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이번에는 아빠도 함께 가자.”

       “네.”

       “좋아, 그리고 이번 오디션 합격한 것도 장하다. 역시 우리 딸이야!”

       

       힘차게 머리를 쓰다듬은 주영빈의 행동에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자신이 오디션에 합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다면, 제대로 할 생각이었다.

       

       ***

       

       서울 서초구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

       이번 오디션 촬영을 위해, 미리 와서 대기 중이던 김정하는 긴장된 한숨을 토했다.

       

       ‘잘하자, 잘하자.’

       

       사실상 그녀의 첫 일이다.

       여태까지 여러 번 오디션에 도전했지만, 제대로 붙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속사도 없는 그녀는, 현재 프리랜서.

       

       이번 CF로 눈에 좀 띈다면 제대로 된 소속사를 구할 수있을지도 모른다.

       

       ‘감정을 너무 과하게 넣으면 안 돼.’

       

       오디션에서 매번 떨어진 것도, 김정하의 텐션이 광고와 맞지 않은 탓이다.

       일반적인 드라마 엑스트라도 마찬가지.

       

       대사 몇 줄 없는 엑스트라도 그녀는 색깔이 확 튀었다.

       그러니 해봐야 수많은 인파에 섞여 대사 한 줄 없는 역할이나 맡았다.

       

       “정하 씨,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요. 프로는 뭐다? 페이대로만 하면 된다.”

       “하, 하하.”

       

       긴장을 풀어주러온 스태프의 말에 김정하는 어설프게 웃었다.

       확실히 이번 광고에 주어진 계약금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니 이렇다할 배우가 없어서, 자신 같은 사람이 된 거겠지.

       

       “그러고 보니 이번에 조 감독님에게 들었는데, 오늘 올 아역이 그렇게 대박이라대요?”

       “대…박이요?”

       “예예. 캐디님도 그렇고 아주 그냥 예뻐 죽으려 하드만. 오디션에서 함께 본 스태프들도 하도 떠들어서. 이게 진짜인지 거짓인지 구별도 안 된다니까요?”

       

       오디션에서 좋은 평가를 딱 한 번만 받아본 정하로선 참 부러운 평가였다.

       심지어 그 좋은 평가도, 이번 오디션에서 처음 받은 거였다.

       

       ‘어떤 아이일까.’

       

       그래도 김정하는 내심 ‘그래봐야, 아역’이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이런 작은 광고에 올 아역이라면 대부분 평범하거나, 그보다 못한 레벨인 법이다.

       

       하지만.

       

       “안녕하세요, 김정하 배우님.”

       

       다소곳하게 인사하는 아이를 보며, 김정하는 그 생각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천재라는 족속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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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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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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