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

       복도를 걷는 내내 세 사람의 그림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오일 램프는 현대에 사용되는 형광등이나 LED와는 다르게 정말로 심지에 불이 붙은 램프다. 불 자체가 언제나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때문에 그림자가 조금 흔들리는 것 정도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까 내가 걸었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하게 흔들렸다.

        

       램프를 들고 있는 나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응? 뭐냐, 너 뭐 잘못 먹었냐?”

        

       노파가 물었다. 딱히 걱정하는 것 같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그동안 나는 노파 앞에서는 무표정으로 일관해왔으니까. 보통 애들은 노파를 무서워했지만, 적어도 나는 노파 앞에서 표정을 숨길 수 있었다.

        

       내가 뭐 대단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랬던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내가 이렇게 떨고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

        

       어린 시절, 성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던 적이 있다. 나는 나름대로—

        

       ……아니, 아니지.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내 몸에는 상처가 없었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그 사내에게 맞았다는 증거도 없다.

        

       하지만, 그때 그 고통은 너무 생생해서 그저 꿈이라거나 내 상상이었을 뿐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마차 바닥에 얼굴부터 넘어지던 감각. 입 안에서 뭔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들리던 감각. 딱딱하고 작은 무언가가 입 안을 돌아다니고, 어디가 터졌는지 쇠 맛이 나고, 눈앞이 잘 안 보여서 어른거리고—

        

       툭.

        

       노파가 내 다리를 지팡이로 쳐서 순간 조금 휘청거렸다.

        

       “이 쓸모없는 것아. 그깟 램프 하나 똑바로 못 드냐? 조명이 흔들리면 눈이 아프단 말이다. 이 할미 시력이 여기서 더 떨어지면 니가 책임이라도 져줄 생각이냐?”

        

       노파의 시력은 절대로 좋지 않다고 할 수 없는 시력이었다. 방 끝에서 끝에 있는 아이가 허튼짓을 하는 것도 보고 곧장 달려가 지팡이로 후려칠 수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서 똑바로 서려고 노력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더 맞고 싶지 않았다.

        

       내가 무언가에 맞아봤던 마지막 기억이 언제였을까. 햇수로만 따져도 10년은 넘었을 거다. 특히 어른이 되고 나서는 누군가와 싸움이라도 붙지 않는 이상 맞을 일이 없고, 애초에 주먹이 먼저 나가는 사람은 사회생활 자체를 제대로 할 수 없는 법이니까.

        

       지금 당장은 그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대로 간다면.

        

       “언니?”

        

       클레어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시선을 돌리니 클레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 나는 클레어 대신 팔려 갔다. 그리고 얻어맞았다.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아마 나를 그렇게 만들며 취향이 어쩌니 하는 소리를 했던 걸 생각해보면 나를 사 가려는 사람의 취향이 그랬던 것이리라.

        

       아까 같은 상황이 반복될 때는 그냥 나서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만약 문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면, 또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 테니까.

        

       ……그리고.

        

       그리고, 만약 내가 그 일을 대신 겪지 않는다면…… 그때는 그 일을 당하는 애가 클레어가 될 것이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만 하지? 어떻게 해야 우리 둘 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지?

        

       맹렬하게 머리가 돌아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섯 살 꼬맹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떠오르지 않았다.

        

       “뭘 떠들고 있냐. 앞만 똑바로 보고 걸어. 그 분께서 기다리신다.”

        

       고작 한마디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다. 정확히는 말을 섞은 것도 아니고 그저 클레어가 나를 불렀을 뿐이다. 하지만 노파는 그 정도의 행동만으로도 짜증을 내며 지팡이로 내 다리를 툭툭 쳤다.

        

       “…….”

        

       그 지팡이로 한 아이가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 우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나는 이미 이전에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어봤기 때문에 더 무서웠다.

        

       그저 저 앞에서 기다리는 인간이 내가 봤던 그 인간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자, 인사드려라.”

        

       노파가 그렇게 말했다.

        

       시선을 들어서 본 남자는 질 좋아 보이는 코트를 입고 실크햇을 쓰고 있었다. 눈에는 단안경을 끼고 있었고, 코에는 콧수염이 덥수룩하게 나 있었다.

        

       “아…….”

        

       절망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고,

        

       “호오.”

        

       남자가 흥미롭다는 듯 반응했다.

        

       그리고 그 뒤는 내 기억과 똑같이 흘러갔다.

        

       *

        

       “…….”

        

       몸을 웅크린 채 다시 깨어난다.

        

       나는 다시 몇 분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언니?”

        

       클레어가 나를 부른다.

        

       그 말에 눈을 떴다. 양팔을 봐도 여전히 상처는 없고, 입 안을 굴러다니는 무언가도 없다. 쇳물 같은 비릿함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시야는 또렷했다.

        

       나는 다시 우리가 그 남자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황급히 내 몸의 상태를 다시 확인하는 나를, 클레어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주변을 둘러본다.

        

       아이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러니까, 내가 시간을 돌린 걸까?

        

       아니면 저 위에 있는, 어쩌면 나를 이쪽 세상으로 보냈을지 모르는 존재가 시간을 돌려준 것일까?

        

       공포로 마비되었던 머리를 굴려서 내가 했던 게임 속의 세계관 설정을 간신히 떠올려 보았다.

        

       이쪽 세계에 신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신이 인격신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시리즈가 쭉 이어져 내려오며 세계관이 몇 번 바뀌었지만 등장하는 신의 설정은 모두 같았다. 플레이어들은 그래서 그 신이 모두 동일 인물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곤 했다. 마치 세계의 의지 그 자체인 것처럼 일종의 억지력을 만들어낸다는 그 설정은 사실 일부 플레이어들에게 ‘이야기를 편하게 전개하려고 만든 편의주의적 설정’이라고 욕먹는다.

        

       이것도 그런 편의주의적 설정 중 하나일까?

        

       신이 시간도 되돌릴 수 있나? 되돌릴 수 있다면 대체 무슨 기준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있는 걸까?

        

       내가 얻어맞기 전에 시간을 돌릴 수도 있지 않았나? 혹시 내가 죽을 위험에 휩싸여야 시간을 돌리나? 아니, 죽을 위험은 아니었다. 몹시 아프고 죽을 것 같기는 했지만 남자는 나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상품으로 쓰기 위해 샀는데 가공 중에 완전히 망가져 버리면 안되니까.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건, 내 능력일까?

        

       “클레어!”

        

       그리고, 이제는 슬슬 익숙해질 것 같은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렸다.

        

       “널 데려가 주시겠다는 분이 오셨다! 기쁘게 나와라!”

        

       다시 한번,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

        

       내 능력에 대해서 아직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자유자재로 쓰지도 못한다. 횟수에 제한이 있는지, 아니면 한 번에 쓸 수 있는 최대치가 있는 건지.

        

       대체 어쩌다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능력을 갖추게 된 건지, 나에게 이런 능력을 준 자가 있다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에게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얻어맞는 것은 무섭다. 나는 고통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다. 책을 읽다가 종이에 베이면 온종일 베인 곳에 신경 쓰면서 울상을 짓고, 담이라도 걸리면 온갖 엄살을 피우며 드러누워 버리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나는 시간을 돌릴 수 있었다.

        

       이번에는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되돌릴 수 있었으니까.

        

       “언니……?

        

       벌써 몇 번째 듣고 있는 그 목소리에 눈을 뜬다. 나의 몸에는 상처가 남아있지 않다. 나는 여전히 건강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쯤 되어서야 나는 내가 시간을 되돌리는 기준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격한 감정. 혹은 절실함.

        

       내가 나의 선택을 후회하면서 감정이 무너지게 되면 나는 어김없이 이 지점으로 돌아왔다.

        

       어째서 이 시점인지, 시점을 바꿀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으니까.

        

       “클레어!”

        

       그리고, 다시 한번.

        

       “널 데려가 주시겠다는 분이 오셨다! 기쁘게 나와라!”

        

       시간은 반복되었다.

        

       *

        

       같은 일을 세 번 겪어도 적응하기 어려운 건 적응하기 어려운 거다. 하긴, 그냥 일반 사무직을 맡아도 첫 한 달 정도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업무 중 실수를 저지르게 되겠지. 그런데 나는 지금 몇 번이나 생사의 고비…… 정확히 말하자면 인생이 망가지느냐 아니냐의 고비를 넘나들고 있었다.

        

       그 정도 맞은 걸로 고통에 면역이 되지는 않는다. 아니지, 애초에 고통에 면역이 될 수 있을 리가 없다. 성인 남성의 주먹에 맞고 버틸 정도로 다섯 살 어린아이의 몸은 그렇게 단단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우리 둘 다 그런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남자한테 우리가 쓸모없다는 소리를 한다고 소용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남자의 기준에 성격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남자 나름의 방식으로 ‘가공’할 생각이었으니까.

        

       클레어가 귀족을 찔러 죽이고 창관에 불을 지르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훨씬 나중의 일이다. 만약 클레어가 이 자리에서 나 대신 가게 되면 나는 멀쩡할지 몰라도 클레어는 몇 년이나 고통받게 된다.

        

       그럴 바에는 어떻게든 기회가 있는 내가 막아내는 쪽이 낫겠지.

        

       횟수 제한……같은 건 일단 떠올리지 말도록 하자. 그냥 없는 셈 치자고. 어차피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모르니까 의미도 없고.

        

       뭘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내 손에 오일 램프가 들려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당장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무언가.

        

       “이 아이인가?”

        

       남자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대로 들고 있던 램프를 있는 힘껏 남자를 향해 던졌다.

        

       “아니……!?”

        

       노파가 옆에서 큰 소리를 내고, 남자 뒤쪽에 있던 여자가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클레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5살짜리 꼬맹이가 있는 힘껏 던진 램프는—

        

       —남자의 몸에 불을 붙이는 일은 없었다.

        

       콱!

        

       램프가 남자의 몸에 닿기 전에, 남자가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로 램프를 쳐버렸다.

        

       램프가 공중에서 그대로 깨지며 기름이 새고 불이 붙기는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

        

       남자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나를 보았다.

        

       “아.”

        

       좆됐네.

        

       *

        

       “언니……?”

        

       다시 돌아왔다.

        

       다행히 남자가 뭘 하기도 전에 나는 시간을 돌릴 수 있었다. 횟수가 늘어날수록 요령이 늘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간을 되돌리는데 특별한 조건은 없다. 내가 강렬하게 바라면 뒤로 돌아갈 뿐.

        

       시점을 지금보다 더 돌리는 법은 아직 모르겠다. 있더라도 당장은 쓸모가 없겠지만.

        

       “괜찮아.”

        

       클레어에게 그렇게 말하며 안심시켰다.

        

       아직 나에게는 기회가 남아있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유리해지는 쪽은 나였다.

        

       *

        

       이번에도 램프를 던졌다.

        

       다만, 남자를 향해 던지지는 않았다.

        

       나는 내 옆에 있는 노파를 향해 던졌다.

        

       다행히 클레어는 노파보다는 내 옆에 서 있었기에 불붙은 기름을 뒤집어쓰는 일은 없었다.

        

       “끄아아아아!”

        

       몸에 불이 붙은 노파가 괴성을 지르며 미친 듯이 날뛴다. 처음에는 다리 쪽에만 붙었던 불이 시간이 지날수록 위로 올라가서 상반신까지 집어삼켜 버렸다.

        

       노파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불은 치솟았다.

        

       문제는, 나는 사람한테 그런 짓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어린애들을 창관에 팔아먹는 쓰레기라고 하더라도, 겉으로 보기에 사람은 사람이다.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때리겠다고 생각하면 손이 덜덜 떨리는데, 이건 아예 분살이었다.

        

       내 옆에 있는 클레어도 나와 똑같이 굳어서 그 모습을 보다가—

        

       누가 내 어깨에 손을 턱 올려놓는 것이 느껴졌다.

        

       “아…….”

        

       거칠게 잡아당겨진 손에 의해 뒤로 넘어지고—

        

       *

        

       —다시.

        

       이번에는 남자가 이 안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자.

        

       남자한테 불을 붙일 수는 없다. 노파를 남자 앞에서 불태운다고 해서 남자가 겁을 먹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클레어—”

        

       노파가 오기를 기다렸다.

        

       “널 데려가 주시겠다는 분이—”

        

       그리고, 따라가겠다고 나선다. 노파는 툴툴거리고, 클레어는 나를 보고 방긋 웃는다.

        

       “뭐, 나온 김에 잘 됐다. 여기 램프라도 들어라.”

        

       그리고 램프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받자마자,

        

       나는 그대로 램프를, 입구로 나가는 복도 쪽 바닥에 내리쳐서 산산조각냈다.

        

       “너……!”

        

       입구 쪽을 향해서 내리쳤기에 내 쪽으로 기름이 몇 방울 튀었지만, 다행히 불이 붙지는 않았다.

        

       “지금 무슨 짓—”

        

       하지만 노파의 말은 제대로 끝맺어지지 못했다.

        

       앞으로 구부정하게 서서 지팡이를 들어 올리는 노파의 옷깃을 잡고,

        

       있는 힘껏 몸을 돌렸다.

        

       아무리 나이에 비해 힘이 좋은 노파였다고 하더라도 상체가 앞으로 구부정한 상태에선 조금만 힘이 들어가도 중심이 무너진다.

        

       “이 미친년……!”

        

       노파는 눈을 부릅뜨고 양손으로 지팡이를 들어 올린 채 그대로 몸이 돌아가 바닥에서 타오르는 불구덩이로 넘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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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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