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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맛있어!

         

       맛있어!

         

       파스텔은 고기 푸딩을 정신없이 입에 넣었다. 늑대 형상이었지만 손으로 뜯으면 젤리처럼 분리됐다.

         

       입안에서 검은 푸딩이 뭉개졌다. 달콤함이 터졌다. 미각 신경이 찌릿했다.

         

       세상이 반짝반짝.

         

       전례 없는 압도감이 찾아왔다.

         

       정신이 밀려나고 영혼이 깨어났다.

         

       검은빛 몽상.

         

       분홍빛 환상.

         

       정상급 셰프의 요리가 이럴까? 그조차 영혼을 달래주진 못할 거다.

         

       파스텔은 사체 두 채를 위장 속에 집어넣고 벌러덩 누웠다. 입꼬리가 헤실헤실 풀렸다.

         

       이게 이세계 음식?

         

       여태 먹어보지 못한 게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동안 무슨 낙으로 산 거지?

         

       입맛을 다셨다.

         

       더 없나.

         

       복도의 차가움이 등을 간지럽혔다. 살짝 정신이 깼다. 몸을 떨며 서둘러 일어났다.

         

       “으으.”

         

       겨울 원피스의 먼지를 털었다. 양팔을 문지르다가 복도를 둘러봤다.

         

       막힌 벽에 내려가는 계단만 있었다.

         

       여기 다락방 창고 같은 곳이었나? 대저택이니 다락방이 방 하나가 아니라 구역 수준인 거고.

         

       왜 다락방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 가주를 이렇게 차가운 다락방에 방치해도 되는 거야?

         

       내려가기 전에 새로운 방 두 곳을 뒤적였다. 뒤질 것도 없었다. 텅텅 비었다.

         

       톱밥 한 톨도 없네?

         

       처참한 가산 상황에 치가 떨린다.

         

       “아버지……!”

         

       탈탈 털어 드셨군요!

         

       허공에 탁자 다리를 푹푹 찔렀다.

         

       어디 두고 보자고. 재산을 토해내게 만들 테니까.

         

       오늘부로 내 인생 목표는 패륜이다. 아무도 못 말려.

         

       그전에 가주를 다락방에 방치하는 사용인들부터 어떻게 해놔야지. 가주를 뭐로 알길래 위계질서가 이 모양이야.

         

       설마 전부 관둔 건가? 가주는 백치에 데릴사위는 결혼 사기꾼으로 돌변해서 돈도 못 주게 됐으니까?

         

       너무 그럴싸한 추측이야. 생계도 못 챙겨주는 가문이 무슨 충성의 대상이겠는가. 가슴이 찌릿하다.

         

       “신의 없는 자들……!”

         

       탁자 다리가 허공을 푹푹 찔렀다. 이해는 되지만 당사자로서 이해하기 싫다.

         

       든든한 원형 상판과 탁자 다리를 애틋하게 바라봤다. 믿을 건 너네밖에 없구나. 처음 봤을 때 쓰레기라 생각해서 미안해.

         

       유일한 식솔을 꼭 끌어안았다가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 아래를 흘긋 살펴봤다. 코앞에 뭐 있는 거 아니야? 잘 모르겠다.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왔다.

         

       몸을 돌리자 긴 복도가 펼쳐졌다.

         

       문득 짙은 피 냄새가 풍겼다.

         

       파스텔은 멍하게 광경을 바라봤다.

         

       폭발로 부서진 벽면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거대한 짐승의 할큄 자국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자국은 살점 찌꺼기와 섞여 붉었다.

         

       떨리는 손이 바닥의 마른 핏자국을 짚었다.

         

       붉은 발자국, 붉은 손자국.

         

       계단을 막아서듯이 움직인 여러 명의 사람들.

         

       미처 무장하지 못한 저항이 붉은 자국을 만들었다. 시체는 남지 않았다. 발버둥은 한 점 없이 먹히고 씹혔다.

         

       마지막 붉은 발자국이 짐승을 지나쳐 부서진 벽면으로 달렸다. 그리고 주춤하며 발자국을 남기더니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짐승이 뒤따라 쫓듯이 추락했다.

         

       부서진 벽면에 뜯긴 천 조각이 나부꼈다. 하녀장 복장에 쓰이는 고급 천이었다.

         

       엠마 하녀장?

         

       당신이 내게 글을 가르쳐주지 않았어? 모두가 포기할 때도 끝까지.

         

       덕분에 나는 지금 글을 읽을 수 있어. 얼마나 안도했는지 당신은 모를 거야.

         

       떨리는 손이 천 조각을 쥐었다.

         

       나는 방치된 게 아니었구나.

         

       목이 메었다.

         

       지켜진 거야.

         

       신의 있는 자들은 죽었다. 홀로 살아남은 가주만이 여기 있었다. 눈물 흘리며.

         

       눈물이 바람을 타고 떨어졌다.

         

       고층을 지나 지상으로, 정원으로.

         

       검은 형체의 괴물들이 울부짖었다.

         

       정원 한복판의 대형 마법진이 검은 기운을 흘렸다.

         

       물기 진 시선이 정원을 노려봤다.

         

       누가.

         

       내 저택에 저딴 걸 만들어 놓은 거지?

         

       누가 내 충실한 가신들을 멋대로 죽인 거야.

         

       얼굴이 굳었다.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피 묻은 천을 주머니에 넣었다.

         

       부실한 창과 방패를 손에 쥐었다.

         

       신의는 가슴속에, 비수는 마음속에.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위엄 있는 가주로서.

         

       지켜질 가치가 있는 존재로서.

         

       소녀는 평소처럼 걸음을 돌렸다.

         

       문을 열고 새 방을 살폈다.

         

       하나씩 차근차근.

         

         

         

       #

         

         

         

       파스텔은 뚱한 표정으로 벽면 거울을 바라봤다.

         

       네 곳이나 뒤적였는데 있는 게 이거야?

         

       가구도 아니고 그냥 벽과 일치된 거울이었다. 분홍분홍한 겨울 원피스 소녀가 비췄다. 꾀죄죄했다.

         

       거울 속 소녀가 생각하다가 탁자 다리를 들어 올렸다. 탁자 다리가 휘둘러져 거울을 때렸다. 날카로운 소음이 울렸다.

         

       분홍 형상이 조각나고 파편이 흘렀다.

         

       적당한 삼각 조각을 주웠다.

         

       오예, 거울 조각 획득.

         

       파스텔은 룰루랄라 문가로 걸어가 삼각 거울을 밖으로 내밀었다. 각도를 조절하며 들여다보니 거울에 복도가 비쳤다.

         

       “오, 훨씬 안전해.”

         

       머리 내밀어 살피는 것보단 백만 배 낫다.

         

       파스텔은 몇 번 연습하다가 거울을 챙겨 복도로 나왔다. 계단과 붉은 광경을 돌아보곤 조용히 고개를 돌려 새 길을 봤다.

         

       길 끝엔 막힌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시야각 때문에 좌우가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복도가 있을 거 같다.

         

       딱히 위험이 있진 않았다.

         

       하지만 사각지대가 꺼림칙하네.

         

       늑대가 숨어 있으면 으아앗, 친구야! 거리다가 물릴 자신이 있다.

         

       “후후.”

         

       파스텔은 뿌듯하게 삼각 거울을 들어 올렸다. 거울이 반짝였다.

         

       새로운 식솔!

         

       정찰은 네게 맡길게!

         

       거울을 믿고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넓은 공간에 가까워지자 거울을 내밀어 공간 좌우를 힐끔힐끔 살폈다.

         

       가구도 없는 사각형 공간.

         

       없네.

         

       걸은 다음 다시 힐끔힐끔.

         

       없네?

         

       하기야 뭔 던전 함정도 아니고.

         

       걷고 다시 한쪽 편을 살펴봤다.

         

       음, 역시 없어.

         

       그리고 반대편을 살폈다.

         

       삼각 거울에 검은 형상이 비쳤다.

         

       파스텔의 키만 한 황소였다.

         

       황소가 거울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거울이 움츠러들었다.

         

       파스텔은 척척척 뒷걸음질쳤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공간에서 멀어졌다.

         

       조용히 거울을 품에 넣었다.

         

       그리고 뒤늦게 입을 벌려 경악했다.

         

       사각지대에 황소는 뭐야?

         

       본 순간 치일 상황이잖아.

         

       오, 친구, 억! 꽥!

         

       손에 든 부실한 원형 상판과 탁자 다리를 내려봤다. 키만 한 덩치의 황소가 떠올랐다.

         

       아, 맞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아사할 수도 없고.

         

       파스텔은 정신을 집중하고 뇌에 용기를 불어넣었다. 뇌세포야 어서 맛이 가봐.

         

       저건 황소만 한 고기 푸딩이다, 고기 푸딩이다.

         

       신선해서 아주 달콤해.

         

       침샘이 찌릿했다.

         

       눈이 핑 돌았다.

         

       오오.

         

       흐르는 침을 소매로 닦았다.

         

       도박중독자 같은 용기가 샘솟았다.

         

       뭐든 해낼 수 있을 거 같아!

         

       까짓거 황소쯤 탁자 다리로 푹푹 찔러주면 음매~! 하며 쓰러지는 거 아니겠어.

         

       탁자 다리가 허공을 푹푹 찔렀다.

         

       좋았어, 시뮬레이션 완료.

         

       작전에 돌입한다.

         

       파스텔은 부실한 원형 상판과 탁자 다리를 강하게 쥐었다.

         

       “돌격……!”

         

       술 마신 병사처럼 달렸다.

         

       탁 트인 공간이 펼쳐졌다.

         

       검은 황소가 보고 콧김을 뿜었다. 앞발이 바닥을 긁었다. 황소 머리가 숙여지고 달려들었다. 무게가 바닥을 진동시켰다.

         

       파스텔은 옆으로 뛰었다. 검은 형체가 대기를 흔들며 지나쳐 갔다. 피부가 찌릿찌릿했다.

         

       나무창을 강하게 쥐었다. 지나치는 황소를 향해 찔렀다. 창이 검은 가죽을 뭉툭하게 쑤셨다.

         

       질긴 가죽과 꽉 찬 근육이 느껴졌다. 창이 튕겨 나갔다. 파스텔은 반작용에 휘청였다.

         

       아, 망할.

         

       중심을 잡으며 황소를 돌아봤다. 검은 황소가 몸을 돌리고 앞발로 바닥을 긁었다. 황소 머리가 숙여졌다.

         

       파스텔은 힘껏 벽으로 달렸다. 벽에 당도한 순간 몸을 돌렸다. 황소가 지척에 가까워졌다.

         

       나무창을 벽에 대고 수평으로 견고히 세웠다. 창 끝이 황소 머리를 노렸다.

         

       와라……!

         

       황소 머리가 창 끝에 당도했다. 창이 황소의 눈을 노렸다. 황소가 머리를 비틀고 창과 부딪혔다.

         

       느린 시간 속에서 창을 잡은 손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나무창이 황소 머리에 짓눌리다 터져나갔다. 나무 파편이 휘날렸다.

         

       파스텔은 황급히 창을 놓았다. 땅으로 몸을 날렸다. 직후 황소 머리가 벽에 부딪혔다. 굉음이 났다.

         

       일어나려 바닥을 짚었다. 황소가 울부짖었다. 검은 형체가 앞발을 들었다. 그림자가 졌다.

         

       몸을 굴렸다. 앞발이 옆에 내리꽂혔다. 충격이 석재 바닥을 박살 냈다. 굉음이 일고 돌 파편이 비산했다.

         

       아직 안 끝났어……!

         

       파스텔은 방패를 놓았다. 날아가는 돌 파편을 손으로 잡아챘다. 날카로운 감촉이 손바닥을 따갑게 했다.

         

       빠르게 지면을 짚고 힘껏 박찼다. 일어나며 도약하자 몸이 붕 떠올랐다.

         

       앞발을 들려는 황소에게 역으로 달려들었다. 매달려 가볍게 올라타자 황소가 놀라며 멈칫했다.

         

       파스텔은 당황한 황소를 내려봤다.

         

       거친 숨이 나왔다.

         

       “투우 좋아해?”

         

       난 안 좋아해.

         

       황소 목덜미에 돌 파편을 매섭게 꽂았다. 가죽이 긁히고 황소가 울부짖었다. 검은 형체가 거칠게 몸을 흔들었다.

         

       돌멩이 완전 구리네……!

         

       파스텔은 온 힘을 다해 매달렸다. 한 손으론 돌을 버리고 주머니를 뒤적였다.

         

       삼각 거울이 꺼내졌다.

         

       거울 조각이 날카롭게 빛났다.

         

       호흡을 들이켰다. 황소의 목덜미에 힘껏 내리꽂았다. 가죽이 찢겨나갔다. 검은 기운이 피처럼 분출됐다.

         

       황소가 괴성을 냈다. 검은 육체가 앞뒤로 들썩였다. 앞발과 뒷발이 지면을 연달아 부쉈다. 굉음이 울렸다.

         

       파스텔은 꽂힌 거울 조각을 강하게 잡았다. 숨을 들이쉬고 온 힘을 다해 밀었다. 흐야아! 가죽이 찢기고 살이 갈라졌다. 검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졌다.

         

       황소가 울부짖었다. 크게 들썩이자 힘이 빠진 파스텔은 그대로 튕겨 나갔다. 거친 지면에 부딪혔다. 아윽!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황소가 휘청였다. 비틀거리더니 거체가 쓰러졌다. 둔중한 소음이 일었다.

         

       파스텔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몸이 욱신거렸다.

         

       “후우, 후우.”

         

       잡았나?

         

       잡았네?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갔다.

         

       조금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난잡한 분홍 머리를 쓸어올려 정리했다.

         

       황소 사체를 흘겨봤다.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푹푹 찌르니 음매~! 하고 죽어버렸네.

         

       “음매~!”

         

       아하하!

         

       혼자 웃던 파스텔은 달콤한 향기에 멈칫했다.

         

       아! 고기 푸딩!

         

       달려가 사체에 얼굴을 파묻었다.

         

       거대한 사체가 영혼 속으로 돌아갔다.

         

       얼마 뒤 파스텔은 풀린 입꼬리로 벌렁 누웠다.

         

       으와.

         

       고기 푸딩을 계속 먹을 수 있다면 이런 인생도 좋을 거 같아. 사실 나는 행복한 게 아닐까?

         

       꼬르륵.

         

       아, 그건 아니구나.

         

       주방을 탈탈 털든 어찌해야겠다. 빈속에 포션 붓기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이래.

         

       삼각 거울과 방패를 챙겼다.

         

       부서진 나무창엔 명복을 빌어줬다.

         

       “네 덕분에 늑대를 잡을 수 있었어, 고마워.”

         

       그러다 혼자 웃고 말았다.

         

       사람도 아닌 상대에게 말 걸고 뭐 하는 걸까.

         

       어휴, 디저트라도 없었으면 어찌 됐을지. 고기 푸딩 덕분에 스트레스 해소가 됐다. 더 많이 먹어야지.

         

       고개를 끄덕이고 스트레칭했다.

         

       몸에 힘이 넘쳤다.

         

       새 복도로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긴 복도가 펼쳐졌다. 중간에 계단이 있었다. 현관홀로 내려가는 듯한 넓은 공간이 멀리 보였다. 현관홀 너머는 새 복도가 이어졌다.

         

       살펴보던 파스텔은 복도 바닥의 반짝이는 은색을 발견했다. 눈이 동그랗게 됐다.

         

       어? 어?

         

       저건?!

         

       길쭉하고 날카로운 철제.

         

       “로, 로, 로, 로!”

         

       롱소드……!

         

       파스텔은 달려가 롱소드를 주웠다.

         

       묵직한 철제 무게.

         

       이가 나가긴 했지만 정말 롱소드였다.

         

       우와앗.

         

       드디어 제대로 된 무기다!

         

       용사처럼 검을 들어 올렸다.

         

       창문 햇살에 검날이 반짝였다.

         

       “롱소드!”

         

       나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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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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