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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큰일 날 뻔했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심호흡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셀라와 인사만 하고 왔는데도 수명이 10년은 줄어든 기분이다.

     

    이러다가 멸망을 잘 피해놓고 홧병으로 금방 객사하게 생겼다.

     

    “배드엔딩을 빨리 삭제해야지 심장이 못 버티겠어.”

     

    어릴 때도 방심할 수 없는 여자였다.

    그 눈빛을 봤을 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아셀라가 유발하는 배드엔딩이 꽤 많단 말이지.”

     

    리스트를 쭉 훑어보니 대충 오십 개는 되어 보인다.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셀라가 얌전히 죽어주는 거겠다만.”

     

    문제는 아셀라의 마법이다.

    이건 꽤 다루기 까다롭다.

     

    “아셀라는 지금도 자기가 다루지 못할 정도의 마력을 몸에 품고 있어.”

     

    죽을 위기가 되면 그녀의 마법이 폭주해 세상이 멸망한다. 그게 [마력폭주] 엔딩.

     

    마법은 내 전문분야도 아닐뿐더러 설령 어떤 전문가가 와도 아셀라의 경지는 이해할 수 없다.

     

    지금은 아직 경지에 도달하지 않았겠지만.

     

    “암살도 암살 나름이고.”

     

    아셀라를 암살한다면 좀 더 계획을 철저히 세운 후다.

     

    방금도 잘 넘어가서 다행이지 아셀라가 호위기사라도 불렀으면 반역죄로 잡혀갔다.

     

    가문 멸문의 역사가 어떤 망나니 자식놈 덕에 한결 빨라질 뻔했답니다. 자랑스럽죠? 아버님.

     

    “방으로는 왜 불러 부르기는.”

     

    애초에 지 방도 아니면서. 우리 가문에서 내준 객실 아니야?

     

    “오?”

     

    불평하며 엔딩리스트를 체크하니 몇 가지 초록색으로 빛나며 변동한 항목이 보였다.

     

     

    [No. 056 : 악녀의 증오 99% → 21%]

    [변동됨]

     

     

    “처음 수치로는 안 돌아갔어. 아직 의심이 완전히는 안 풀렸단 소리네.”

     

    아셀라를 무시할 수는 없겠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그녀를 찾아가서 최대한 신뢰를 얻어 봐야지.

     

    “이건 왜 확률이 떨어졌지?”

     

     

    [No. 003 : 백인의 효수 87% → 64%]

    [변동됨]

     

     

    백인의 효수.

    사천왕 토벌 중에 성적이 안 좋으면 발생하는 엔딩이다.

     

    불안한 시민들은 용사파티를 믿지 못해 봉기를 일으킨다.

    스트레스로 정신이 나간 아셀라는 용사파티 전원과 시민을 포함, 총 백 명을 참수형에 처하고 목만 성문에 매달아 장식한다.

     

    아주 그로테스크한 그림이지.

     

    다행인 건 내 목도 장식되기에 그 꼬라지를 3인칭으로 안 봐도 됐다는 점이다.

     

    엔딩리스트를 살펴보니 다른 엔딩은 확률이 변하지 않았는데.

     

    “내가 이 배드엔딩을 지울 기회를 맞닥뜨렸단 뜻이겠어.”

     

    아셀라가 백 명을 참수형한다는 발상을 백지에서 떠올리는 게 아니라, 어떤 사건에서 영감을 얻는 거라면.

     

    그리고 그 사건이 방금, 나와 아셀라의 만남부터 시작한다면.

     

    아셀라의 경험을 바꿔서 [백인의 효수]를 삭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근데 나랑 참수형이 무슨 상관이야.”

     

    머릿속이 꽃밭이 아니라 가시밭인 악녀의 발상은 도무지 상상이 안 간다.

     

    뭐, 내 죽음을 막게 해준다는데 거절할 필요도 없지.

     

    당분간 생길 사건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싶었다.

     

    “변동된 게 하나 더 있었지.”

     

    ―――――――――――

     

    · 굿엔딩

    · ■■■ ■, ■■ ■■■■ 0% → 0.04%

     

    ―――――――――――

     

     

    0퍼센트였던 굿엔딩의 발생 확률이 생겨났다. 수치를 보면 복권 당첨 수준이니 아직 기대할 수준은 아니다.

     

    “애초에 굿엔딩이 뭐가 좋은 거지.”

     

    상태창의 설명을 확인해본다.

     

     

    ―――――――――――

     

    · 굿엔딩 : 클리어 시점에서 라스 고트베르크에게 발생할 수 있는 최선의 상황입니다.

     

    · 발생 조건 : 모든 배드엔딩이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 확률적으로 발생합니다. 굿엔딩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노멀 엔딩이 발생합니다.

     

    · 발생 확률 : 배드엔딩 삭제 및 라스 고트베르크의 업적 수치를 통해 상승합니다.

     

    ―――――――――――

     

     

    “당연히 노멀보다는 굿엔딩이 낫지.”

     

    원작의 엔딩과는 다른 것이라 생각된다.

     

    굳이 내 이름을 지정한 걸 보면 이것들은 나를 위해 준비된 엔딩이다.

     

    10년 후의 내가 처할 상황을 직접적으로 결정할지도 모른다.

     

    “업적을 쌓으려면 위대한 인물이 되어야 해. 그러면 굿엔딩 확률이 높아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

     

    사회에서 점점 높은 지위를 손에 넣고, 명성을 퍼트리며, 다방면으로 활약한다.

     

    업적 수치는 그런 비범한 활동에 의해 쌓이게 된다.

     

    “성공한다면 당연히 의사야.”

     

    꿈이었으니까.

     

    이 세상에는 아직 없는 직업이지만 10년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앞으로는 배드엔딩을 삭제하며 굿엔딩을 목표로 한다. 방향성이 잡혔다.

     

    “그럼 슬슬 움직여볼까.”

     

     

     

    방을 나가 별관 로비로 향하니 멀끔한 정장을 입은 중년 남성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시종들의 분위기를 보아 그가 누구인지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내 아버지인 가주, 발두어 고트베르크였다.

     

    아버지가 나를 보고는 조금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들아, 잠시 이야기 좀 하자꾸나.”

     

    그가 차분하고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작가의 가주로서 위엄있는 모습이지만 미세한 불안함을 숨기고 있다.

     

    언제라도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인 아들을 대하기가 참 어려운 것이리라.

     

    “태양이 꼭대기에 도달하니 은인을 뵙는군요. 강녕하셨습니까, 아버님.”

     

    예를 갖춘 귀족식 인사를 건네었다.

    귀신이라도 본 듯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라스, 어디 다치기라도 한 게냐? 술을 너무 많이 먹은 나머지 드디어 머리가 이상해졌다던가?”

     

    아버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걱정스럽게 살폈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도 산뜻합니다.”

     

    “정말이냐? 그럼 다행이다만… 시버스가 갑자기 칭찬을 그렇게 해서 무슨 말인가 했는데, 확실히 눈빛이 다르긴 하군….”

     

    아버지가 조심스레 내 눈치를 보았다.

     

    후작령은 소도시 규모의 국가나 다름없다.

    그 막대한 규모의 사회를 운영하는 책임감과 압박은 평범하지 않을 터.

     

    그걸 버텨내는 남자도 망나니 아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건 평민과 마찬가지다.

     

    꽤 인간미가 느껴진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황녀님을 만나고 왔다 들었다.”

     

    내가 혼약자와 중요한 첫 대면을 망쳤을까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예. 기품이 넘치는 분이었습니다.”

     

    “그… 괜찮았느냐? 황녀님이 혹시 불쾌해하시거나 하진 않았고?”

     

    아버지는 말실수한 걸 깨닫고는 황급히 헛기침을 했다.

     

    “오해하지는 말거라. 혹시나 황녀님이 우리 저택을 맘에 안 들어하실 수도 있어서 물어본 것이니.”

     

    “나쁜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황녀님께서 단둘이 일면하실 것을 제안하셨지요. 안 그래도 황녀님께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단둘이? 벌써 말이냐? 호오.”

     

    아버지가 턱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내게서 무언가 변화를 느낀 듯, 얼굴에 신기함이 가득하다.

     

    “내 그간 업무가 바빠 너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만. 지금 차림도 말끔하고 문장에서 기품이 흐르는 걸 보니 오늘을 위해 많이 준비한 모양이구나.”

     

    “다른 이도 아닌 황실의 혼약자와 처음 만나는 날인데 방심하고 있을 순 없지요.”

     

    아버지는 내 말을 들을수록 의외라는 표정이다.

     

    갑자기 정신을 차린 것처럼 보이는 아들놈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17년간 봐온 게 있는데, 하루아침에 멀쩡한 소릴 해대면 이놈이 술보다 위험한 흑마술에 손을 댔나 의심부터 들지 않을까.

     

    여기서는 좀 더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귀빈께서 와 계신 시기니, 고트베르크의 이름에 해가 가는 일이 없도록 할 테니까요.”

     

    “…잠깐 안 본 사이에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이만큼 준비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고마울 따름이구나. 기대하마.”

     

    “예. 기대해 주십시오.”

     

    아버지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고트베르크 가는 현재 시점에서는 꽤 힘 있는 후작가다.

     

    나중에야 어떤 사건에 휘말려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멸문하지만, 내 뒷배가 되어준다면 그만큼 든든할 수가 없다.

     

    가문이 멸문하는 이유야 잘 알고 있으니, 나중에 지켜내면 분명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들을 보며 안심하는 아버지를 보니 나도 꽤 기분이 좋고.

     

    “황녀님과 공식적인 자리는 저녁 만찬 자리에서 가질 예정이었다만, 미리 안면을 터놨다니 잘 됐구나.”

     

    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데, 황비 전하와 황녀 전하께서는 저희 가문을 어쩐 일로 찾으셨는지요?”

     

    “아, 그건 전달하지 않았던 모양이구나.”

     

    아버지가 홍차로 입을 적시고는 본론을 전했다.

     

    “황실에서 황녀님의 주치의를 뽑고 있다. 마침 우리 가문 치유사 육성소에서 경쟁시험이 진행되던 참이지. 그 결과로 한 명이 선택될 예정이다.”

     

    주치의라.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왔다.

     

    ‘고트베르크 가는 유명한 치유사 명가였지.’

     

    십 년 후 나는 나름 유능한 상급치유사였다. 이게 그 이유였다.

     

    설렁설렁 공부하긴 했어도 최고의 혈통을 지니고 최고의 교육시설을 졸업했으니.

     

    ‘가능하면 치유술은 안 쓰면 좋겠는데.’

     

    치유사로 활동하다가 눈에 띄어 멍청한 용사파티에서 구르게 될 수도 있으니까.

     

    효율적인 공략법을 쓰고 싶어도 치유주문을 끊임없이 써야 하는 입장 때문에 발목을 잡힌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솔직히, 치유술은 질렸다.

     

    하나같이 안 좋은 기억뿐이고.

     

    용사파티원 같은 극한직업은 천금을 줘도 두 번 다시 안 한다.

     

    “황가 분들에게는 모두 주치의가 있지요.”

     

    “그래. 너도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황녀님이 최근 잔병치레가 잦다고 한다. 허나 그간 살펴본 치유사들이 차도를 개선하지 못했다 하는구나.”

     

    잘 안다.

    아셀라의 마력이 점점 성장하는 데에 따른 부작용이다.

     

    “지금 유력한 후보가 있습니까?”

     

    “기스가 뽑히지 않을까 싶구나. 우리 육성소에서 가장 우수한 치유사니까.”

     

    육성소는 일종의 치유사 아카데미다.

     

    고트베르크 후작령의 육성소는 제국에서도 일류로 평가가 나있어 졸업생이 황가에 불려가는 일도 많다.

     

    기스가 육성소 에이스라면 나름 실력은 좋을 게 분명했다.

     

    ‘근데 아셀라는 치유술이 안 받을 텐데?’

     

    마법과 치유술은 둘 다 주문이지만 아예 계통이 다르다.

     

    아셀라의 강한 마력은 치유주문을 거부한다고 그녀에게 직접 들었다.

     

    그녀가 미친 악녀가 되는 건 강력한 마법 때문이기도 하다.

     

    아니, 악녀인 건 원래 타고났지.

    미치는 건 적어도 마법 때문이다.

     

    마법은 으레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봐온 마법사와 마녀들은 죄다 나사가 두 개쯤은 풀린 듯 맛탱이가 가 있었다.

     

     

    아셀라에겐 특히나 계기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육체가 견딜 수 없는 마법의 경지에 도달한 나머지, 상당한 고통을 떠안으며 살고 있었다고 한다.

     

    통증을 참다 못해 마법이 폭주했고, 어떤 참극이 발생했다.

    아셀라는 그 사건 이후로 폭군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 치유술은 아무 짝에 쓸모가 없었다.

     

    본인에게 들은 이야기니 정확하다.

     

    ‘재능을 가진 데에 대한 디버프겠지.’

     

    이 세상의 법칙 중 하나다.

     

    어느 한 분야에 특출난 [재능]을 가지면 그만큼 마이너스가 되는 [디버프]도 함께 가지게 된다.

     

    일종의 카르마다.

     

    가령 근력이 강한 자는 마력도 강할 순 없는 법이다.

    누구나 모든 걸 가질 순 없다.

     

    지금의 나는 재능이 잠겨있으니 디버프도 없는 상태지만 아셀라는 어떤 종류의 마이너스 특성을 가지고 있을 터다.

     

    ‘혹시.’

     

    치유가 아니라 치료라면.

     

    내가 알고 있는 현대의학의 지식으로 아셀라의 디버프를 삭제하는 건 가능할까?

     

    혹시 그 결과로 아셀라의 마법을 망가뜨릴 수 있을지도.

     

    ‘에이, 그렇게 잘 풀릴 리가.’

     

    전문 약품이나 기초적인 수술 장비는커녕, 소독약도 없는 이 세상에서 될 리가 없지.

     

    무엇보다 아셀라의 주치의가 되면 나중에 황실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엔딩은 엔딩대로 지우더라도 아셀라와 너무 깊게 연관되는 건 피해야 한다.

     

     

    생각을 정리하니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내가 시간을 너무 뺏었구나. 황녀님께 가는 길이었지. 일어서자꾸나. 나는 이어서 황비 전하를 접대하러 가야 한다.”

     

    “알겠습니다. 함께 가시죠.”

     

    아버지와 함께 별관을 나선다.

    기사와 시종들이 우리를 따랐다.

     

    중앙 정원을 빙 두른 길을 따라 걷는다.

     

    양측에 호수나 축사도 보인다. 참으로 거대한 저택 부지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담장 하나 넘어 있는 교회 같은 시설들.

     

    ‘저게 치유사 육성소로군.’

     

    빙의된 몸에 남아있던 옛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본관은 세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동관, 서관, 중앙관이다.

     

    황비는 중앙관에, 아셀라는 동관에 머무는 모양이었다.

     

    동관 앞에서 아버지가 걸음을 멈추고 내게 권유했다.

     

    “그럼 황녀 전하께 가 보거라. 직접 호명하셨다고 하니 걱정하진 않으마.”

     

    “맡겨주시죠. 저녁 만찬 때 뵙겠습니다.”

     

    인사 후 걸음을 옮기려는데 울타리 너머가 부산스러웠다.

     

    “무슨 일인가?”

     

    아버지의 물음에 시종 한 명이 헐레벌떡 상황을 파악하고는 조심히 전달했다.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버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황녀님의 애완견이?”

     

    아버지가 현장으로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나도 즉시 울타리 너머로 향했다.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잔디밭. 바닥에는 커다란 강아지 한 마리가 쓰러져서 괴로운 듯 숨을 컥컥대고 있다.

     

    아셀라의 애완견이라고 했나.

     

    강아지에 붙은 치유사가 네 명.

    전부 하얀 로브를 써서 누가 누군지 분간도 안 간다.

     

    강아지는 크기가 정말 컸는데, 그레이트 피레니즈 종이 아닐까 싶었다.

     

    키가 나보다 크다. 거의 2미터는 되는 것 같은데. 흰 털이 복슬복슬해서 덩치가 더 있어 보이고.

     

    문제는 죽어가고 있었다는 거지.

     

    “무슨 일이냐!”

     

    아버지의 불호령에 치유사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했다.

     

    “갑자기 이 녀석이 쓰러져서…!”

    “지금 치유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급히 외투를 벗어 던지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황실 귀빈의 애완견이다. 행여나 잘못되면 얼마나 큰 결례인지 알고 있나, 기스!”

     

    저놈이 기스구나?

     

    거 띨빵하게 생겼네. 저런 걸 가문 대표로 주치의로 보내니까 멸문하지 원.

     

    “거, 거의 다 치유했습….”

     

    아버지가 기스를 밀치고 품에서 로자리오와 성서를 꺼내 치유술 발동에 들어간다.

     

    그의 신성력이 신앙심을 매개로 주문진의 형태를 이루어간다.

     

    참 지겹게도 본 장면이다.

    나도 맨날 쓰던 스킬이니까.

     

    아버지는 고트베르크 가의 가주인 만큼 나름 치유술에 있어서는 대가다.

     

    하지만 치유가 들어가고 있음에도 강아지는 계속 컥컥대며 괴로워한다.

     

    그때였다.

     

    “막스!”

     

    멀리서 아셀라가 뛰어온다. 자기 애완견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커다랗게 뜬 눈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다.

     

    “막스, 막스!”

    “황녀님, 치유사분들이 치유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강아지에게 무작정 뛰어들려는 그녀를 시녀장이 저지했다.

     

    “막스라고 하는구나.”

     

    치유사들을 돌아본다.

     

    육성소 에이스라는 놈들이 환자의 상태는 안 살피고 안절부절못하며 기도나 하고 앉아있다.

     

    슬쩍 아셀라를 쳐다본다.

     

    “…….”

     

    아, 살짝 눈이 맞아버렸다.

     

    그때 숫자가 변동했다.

     

     

    [No. 004 : 달콤한 독 56% → 71%]

    [변동됨]

     

     

    아 내가 뭘 어쨌다고.

     

    지금 내가 달콤한 독 배드엔딩 조건에 관계됐단 소리지.

     

    그게 이 사건이고.

     

    ‘그래. 위기는 기회다.’

     

    반대로 말하면 배드엔딩을 삭제할 찬스다.

     

    당연하지만 상태창이 아니었어도 죽어가는 강아지를 지나칠 생각은 없었다.

     

    강아지는 귀여우니까.

     

    “쯧, 어디 보자.”

     

    막스에게 다가가 차근히 살펴본다.

     

    “눈에 띄는 외상은 안 보이고.”

     

    그럼 내상인가. 숨을 못 쉬는 걸 보면 호흡기 쪽.

     

    털이 많아서 육안으로는 눈에 잘 안 띈다. 막스의 몸을 눌러보며 확인한다.

     

    “도련님, 무슨 짓입니까!”

     

    치유사 한 놈이 내 어깨를 잡고 나를 끌어내려 했다.

     

    “원인 파악하잖아. 방해하지 마.”

     

    치유사를 밀치고 막스의 목을 확인한다.

     

    “도련님이 개의 목을 조른다!”

    “저 망나니가…!”

     

    뭐라고 하든 신경 쓸 틈이 없다. 한시가 급하다.

     

    손끝에 뭉툭한 감촉이 느껴진다.

     

    “뭐야?”

     

    원인은 간단했다.

     

    “기도폐쇄네.”

     

    목에 무언가가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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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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