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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무슨 손님 대접이 이따위야. 나흘 전부터 잡은 약속이잖아.”

         

        엘라가 신경질적으로 꼰 다리를 까딱이며 말했다.

         

        우리가 저택으로 온 지 무려 3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저택의 주인은 아직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상황을 물어봐도 그저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다음 생엔 귀족으로 태어나든가 해야지, 정말.”

         

        저택의 하녀가 옆에서 듣고 있었지만, 엘라는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화났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목적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인상을 찌푸리고 투덜거려봤자,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소녀의 귀여운 투정으로밖에 안 보였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아가씨. 이제 곧 있으면 오실 거예요.”

       

        하녀가 나긋나긋하게 대꾸하자, 엘라도 더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머리를 긁적이며 우물쭈물하는 것밖에는.

         

        저러니 영락없는 어린애 같다.

        하녀도 같은 생각인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풋-

         

        엘라가 눈썹을 치켜떴다.

         

        “우, 웃지 말죠?”

        “아핫, 죄송합니다.”

         

        엘라는 시계를 흘끗 보며 말했다.

         

        “……이러다 점심시간 다 지나겠네.”

        “그러면 요깃거리라도 가져다드릴까요?”

        “됐어요. 그것보다 자작님은……아니, 아니에요…….”

         

        그녀는 더 따지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나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단장인 내가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는데, 부단장인 그녀가 여기서 더 어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도 성격이 좋아서 얌전히 있는 건 아니었다.

        나도 지루하고 짜증이 나긴 마찬가지였다.

        이런 방안에 가만히 갇혀 있는 게 나라고 좋을 리 없었다.

         

        그러나 나는 화를 낼 수 없었다.

        얼굴을 찡그리는 것조차 못했다.

         

        웃는 남자.

        원더스타인의 고유 특성.

         

        언제나 평정심을 가장하고 미소만 짓는다는 이 말도 안 되는 특성 덕분에 여유 있는 척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속셈인지 슬슬 말해주지?”

        “속셈이라뇨?”

         

        그녀는 내 천연덕스러운 대꾸에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여기 오면 돈 나올 구석이 있다고 했잖아.”

        “베르그송 자작은 꽤 부자랍니다.”

         

        앨라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의 검은 단발이 좌우로 찰랑거렸다.

         

        “부자면 뭘 해. 지금 대접하는 꼴로 봐서는 뭔가 받아낼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데?”

        “부탁해봐야죠.”

        “제대로 상식 박힌 귀족이라면, 떠돌이 곡예단의 마술사가 돈 좀 달라고 해서 내주지 않아.”

         

        그때, 끼어드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

         

        “맞아요.”

         

        대답은 응접실의 입구 쪽에서 들렸다.

        녹색 빛이 감도는 긴 머리칼의 여인이 들어왔다.

        가는 팔다리에, 창백해 보일 정도로 새하얀 피부는 한눈에 봐도 병약해 보였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갑자기 중요한 손님이 방문해서 말이죠.”

         

        정말 무의미한 사과다.

        듣는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쳇, 그럼 우린 안 중요한 손님인가?

         

        “제가 바로 아나이스 베르그송 자작입니다. 당신이 제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신 분인가요?”

        “……네. 프랑크 원더스타인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작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권했다.

        그러나 아나이스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홱 무시하고 지나쳐 자리에 앉았다.

         

        “마법은 어떨지 몰라도 예법은 잘 모르시는 분 같군요. 샤를로티아 귀족들은 함부로 신체 접촉을 하지 않아요.”

         

        이럴 때는 정말 ‘웃는 남자’에게 감사했다.

        원래의 나였다면 예상치 못한 공격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인상이 구겨졌겠지.

        상대의 도발에 말려들었다는 생각에 자괴감도 들었을 거고 말이야.

       

        그러나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원더스타인.

        웃는 남자다.

       

        “하하, 제가 잘 몰랐군요. 죄송합니다.”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자작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나를 훑어봤다.

       

        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그녀를 바라봤다.

        게임에서 봤던 그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거대한 개구리 괴수의 머리 위에 더듬이처럼 튀어나와 있는 사람의 상반신.

        괴수와 사람은 피부, 혈관, 근육이 얽혀서 마치 하나의 생물인 것처럼 꿈틀댔다.

         

        괴수 위에 붙어 있는 사람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로운 듯 흐느껴 울었다.

         

        -나는 그저 자유롭게……세상을 돌아다니고 싶었을 뿐인데…….

         

        그녀의 울음에 저택 전체가 공명하듯 떨었다.

        저택 전체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맥동했다.

         

        기사는 검을 뽑고 결의를 다지고, 도적은 활을 들고 전투의 태세로 들어가며, 마법사는 지팡이를 들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전투는 지금까지 거쳐왔던 저택 전체가 무대가 되었다.

         

        기사의 힘으로 석벽을 부수고, 도적의 활로 장식물을 떨어트리고, 마법사의 마법으로 괴수의 진로를 방해했다.

         

        개구리 괴수는 3명을 쫓아 붕괴하는 저택을 헤치며 저택의 현관까지 따라왔다.

         

        여기까지 오면 승리다.

         

        개구리가 다시 숨을 들이켰고, 볼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괴물은 공기의 폭탄으로 저택을 무너뜨려 3명의 용사를 매장하려 했다.

         

        그 순간, 유령 집사가 천장의 샹들리에에 나타났다.

        그는 샹들리에를 지팡이로 내리쳤다.

         

        뾰족뾰족한 금제 장식과 보석들로 치장된 화려한 샹들리에.

        그것이 괴수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휘이잉- 콰지직-

         

        샹들리에의 중심축이 괴수의 머리를 꿰뚫고, 샹들리에의 장식과 보석들이 사람의 몸에 사정없이 박혀 들었다.

         

        -끄아아아!

         

        검은 피가 분수처럼 솟고, 괴수와 한 몸이 되었던 여인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집사 유령이 천장에서 바닥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괴수와 융합되어 있던 자작의 허리 아래 부위가 느슨해졌다.

        집사 유령은 쓰러진 여인의 육체를 안아 들었다.

         

        자작은 자신의 뺨을 쓰다듬는 유령을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붉은빛을 뿌리며 광기에 젖었던 그녀의 눈동자는 어느새 평범한 사람의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미안…… 미안해, 모두. 미안……. 고, 고마워, 집사…….

        -이제 편히 쉬시지요, 자작님.

         

        자작이 눈을 감았다.

         

        유령 집사는 3명의 용사를 향해 허리를 숙여 보였다.

        곧 그의 몸이 희미해지며 사라졌다.

         

        그것으로 TT3의 프롤로그 스테이지인 베르그송 자작의 저택이 클리어되었다.

       

         

         

        내 눈앞에 있는 그녀는 갈비뼈를 가시처럼 내뿜지도, 수 미터나 되는 혀를 휘두르지도, 피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부짖지도 않았다.

         

        이곳에 있는 건 괴물이 아니라, 한 명의 연약하고 가녀린 여인이었다.

         

        “이제 구경은 다 끝나셨나요?”

         

        내 시선을 그녀가 오해했나 보다.

        그녀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옆에서 엘라가 경멸 어린 시선으로 나를 흘겨봤다.

         

        내 딴에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웃는 남자’는 내게 한 가지 표정만 강요했다.

         

        능글맞은 가식적인 미소.

        졸지에 여인의 몸을 훑어보며 히죽대는 변태가 되었다.

         

        나는 뭐라 변명을 하려 했지만, 아나이스는 손을 내저으며 내 의도를 무산시켰다.

         

        “휴, 됐어요, 무례한 마술사님. 그래서 어떤가요? 의료에 대한 지식이 많다고 들었는데, 눈으로 보니까 뭔가 좀 아시겠어요?”

        “음, 호흡기에 문제가 있으신 듯한데요?”

        “와, 제 모습을 보고 호흡에 관한 병이라는 걸 알아채시다니, 정말 대단한 분이시군요.”

         

        쉬익- 쉬익-

         

        펌프가 돌아가는 소리가 조용한 방안을 가득 채웠다.

         

        아나이스의 말에는 비꼬는 기색이 가득했다.

        그녀는 탁 깔아보는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실례지만 어느 대학에서 의술을 공부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따로 대학을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무슨 일을 하시죠?”

         

        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작은 서커스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아.”

         

        많은 것을 함축하는 ‘아’이다. 아나이스의 표정 변화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큰 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시간 낭비했군요.”

        “주, 주인님…….”

         

        집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나이스의 얼굴에 조소가 어렸다.

         

        “지금까지는 집사님의 성의에 맞춰줬지만, 이제 이런 자들을 데려오는 건 그만두세요. 떠돌이 곡예단이라니……. 길바닥에서 벌어먹는 자들이 뭘 알겠어요?”

       

        순간이지만 그녀에게 괴물의 씨앗을 심는 건 어떨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무리 신분의 차이가 있다 해도 그녀의 말은 도가 지나쳤다.

        이 세계의 예법에는 무지한 나지만, 울컥해서 나서는 엘라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뭐예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엘라.

        나는 재빨리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엘라 양, 진정하세요.”

        “……이잇.”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거칠게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나이스 베르그송.

         

        예상했던 대로의 여자였다.

        베르그송 자작의 저택 스테이지를 조사하면서 남겨진 기록을 읽다 보면, 그녀에 대해서도 제법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그녀의 주변에는 다들 그녀를 걱정하는 사람뿐이었고, 삶의 대부분을 이 작은 영지 안에서 보냈다.

         

        뛰어난 머리 덕에 신동,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랐으며, 상회의 일을 처리하면서 자신의 역량에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인간관계 맺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녀에게 친구란 친절하고 헌신적인 사람이었고, 그녀에게 세상이란 종이 위에 쓰인 글자와 숫자였으니까.

         

        그녀의 냉소적인 독설가 기질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나는 여기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보란 듯이 클리어하겠다고 다짐한 게 불과 오늘 아침이다.

        이 정도 퀘스트도 달성 못 하면 앞으로 2년 반을 어떻게 버티겠는가.

       

        “성미가 급하시군요, 후후. 제게는 자작님의 병을 고칠 방법이 있는데요.”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하긴.

        지금까지 그녀가 이렇게 쏘아붙이면 대부분 불쾌해하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뒤에서 난처해하는 집사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고유 특성 ‘웃는 남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게 해줬다.

         

        내 태도에 뭔가 흥미를 느낀 것일까.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자리에 다시 앉았다.

         

        “좋아요. 속아드리죠.”

         

        그녀는 삐딱한 자세로 나를 흘겨봤다.

         

        “그 방법이란 게 뭐죠?”

        “제 마법입니다.”

        “마법?”

         

        아나이스가 코웃음을 쳤다.

         

        “참으로 그럴듯한 방법이군요. 그래서 어떤 마법이죠?”

         

        나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작님의 폐를 교체할 겁니다. 건강한 것으로요.”

         

        나는 자신만만했다.

        내 눈앞에는 상태창이 떠 있었다.

         

        [진화연구소]는 내가 요구한 조건의 견적을 창에 띄어주었다.

         

         

        특성: 건강한 호흡

        적용 부위: 폐

        효과: 정상적인 폐로 교체합니다.

        비용: [데볼루트 8]

         

         

        “폐를…… 교체한다고요? 그런,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어요!”

         

        나를 쳐다보는 시선들에 불신이 가득했다. 사람 장기를 부품 갈아 끼우듯 할 수 있다는 말은 현대의학을 경험한 나도 믿기 힘들었는데 그들은 오죽할까?

         

        엘라만이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녀는 원더스타인의 힘이 어떤 것이지 계속 봐왔을 테니까.

         

        아나이스는 나를 한참을 쏘아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필요한 게 뭐죠? 당장 그 마법을 사용하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합니다.”

         

        아나이스는 벌떡 일어나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내 앞에 섰다.

        그녀는 고고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좋아요. 당장 해 보세요. 당신이 정말 제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집사에게 요구한 조건을 들어드리죠.”

         

        쉽군!

        첫 퀘스트라 그런가. 거저 주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냥 말 몇 마디 나누면 끝날 줄이야.

         

        나는 손을 뻗었다. 바이오맨서의 스킬 발동은 간단했다.

        주문조차 외울 필요가 없었다.

         

        그저……

        그저……

         

        ……음, 젠장.

        나는 동작을 멈췄다.

         

        “뭐죠? 혹시 마력을 충전해야 쓸 수 있다, 뭐 그런 패턴인가요?”

         

        그녀의 빈정거림에도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원더스타인의 능력.

        그걸 쓰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었다.

         

        아주 단순한 조건이지만…….

       

        “자작님, 제 마법은 대상과 접촉해야 합니다. 그……맨살을요…….”

         

        나의 말에 아나이스의 이마가 조금 찌푸려졌다.

       

        ‘샤를로티아의 귀족들은 신체 접촉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였던가?

         

        다행히 그녀는 순순히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고작 그 정도면 내가 당황하지 않았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적용 부위에 가까운 곳을 만져야 합니다.”

        “적용 부위라고요? 어딜 만져야…….”

         

        아나이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방 안의 모두가 표정이 굳어졌다.

         

        진지한 상황이다.

        이건 병을 치료하는 일이다.

        나는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표정 관리를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만져도 되겠습니까?”

         

        웃는 남자는 미소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표지는 서커스단의 부단장인 엘라입니다!

    Wifulab 돌려서 제일 이미지에 가까운 걸로 찾아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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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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