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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그런 일이 있었다니까요! 진짜 너무하지 않나요?! 일단 도와준 건데 위험한 사람 취급이라니!”

       

       “아니,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지렸을걸? 요나 너 사실 위험한 아이였구나?”

       

       “너무해요 엘리! 덕분에 살았고, 다친 손을 치료해 준 건 고맙지만…그런 반응을 보이면 울고 싶어진단 말이에요!”

       

       잉잉 우는 시늉을 하자 한숨을 내쉬며 큼직한 우유 잔 하나를 건네는 엘리.

       

       “남의 가게에서 울지 말고 이거나 마셔.”

       

       “…서비스죠?”

       

       “뭐, 오늘은 손님으로 온 거니까 이 정도는 줄 수 있지.”

       

       “야호!”

       

       공짜는 언제나 환영이지. 싱글벙글 웃으며 우유를 들이켰다. 진한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채우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감각.

       

       내 몸이 다시 성장기로 돌아가서일까, 아니면 이 세계의 소는 지구와 품종이 달라서일까. 다른 건 몰라도 유제품 하나는 정말 만족스럽단 말이지.

       

       코밑에 묻은 하얀 수염을 지우지도 않은 채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왁자지껄 떠들며 술잔을 부딪치고, 음식을 게걸스레 삼키는 모험가들. 이 정도는 미궁도시의 주점에서는 별로 이상할 것 없는 풍경이다.

       

       하지만 한 가지 특이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서빙하는 웨이터가 하나같이 바니걸 복장을 입고있다는 점이다.

       

       웨이트리스가 아니다. 웨이터다. 남자가 몸에 딱 달라붙는 바니걸 복장으로 서빙하고 있는 중이다…!

       

       덩치 큰 근육 떡대, 작고 여리여리한 소년, 뭔가 똑똑해 보이는 안경잽이 등등.

       

       노린 것 같은 타입의 바니걸(걸 아님)들이 은근슬쩍 마음에 드는 손님에게 스킨십을 하거나 눈웃음을 치며 유혹한다.

       

       그래서일까. 본래 모험가라는 직종이 여자가 훨씬 많다고는 하나, 이곳에 모인 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여자다.

       

       이곳 ‘요정과 은화’는 주점인 동시에 조금 야한 일도 병행하는 그런 가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아마 저들에겐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는 낙원 같은 곳이리라. …내겐 인세에 강림한 지옥 같은 풍경이지만 말이다.

       

       하여 눈의 정화를 위해 이곳의 주인이자, 조금 전에는 우유를 서비스로 주기도 한 엘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편하게 묶은 잿빛 머리카락. 거친 인상의 늑대 귀와 꼬리. 노란색 눈동자는 멍하니 자기 직원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입에는 마력초로 만든 연초를 물고 있다.

       

       바텐더를 연상시키는 단정한 복장을 입고있었으나, 정작 본인의 몸매가 단정치 못해 더욱 파렴치해 보인다.

       

       …아쉽게도 이에 온전히 집중할 수는 없었지만.

       

       텅 빈 오른팔. 어깻죽지에서부터 펄럭이는 옷소매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나 사연 있는 여자요 하는 느낌을 풀풀 풍긴단 말이지.

       

       한때 잘나가는 모험가였으나, 몬스터에게 한쪽 팔을 잃고 은퇴했다는 과거사를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뭐…나는 저 아련해보이는 엘리의 본성을 잘 알고 있지만.

       

       흔들리는 빈 소매를 꾹꾹 잡아당기며 입을 열었다.

       

       “엘리. 엘리.”

       

       “응?”

       

       “지금 무슨 생각 해요?”

       

       “아, 우리 애들 존나 따먹고 싶다. 대체 저 복장은 어떻게 생각한 거냐? 혹시 요나 넌 천재야? 라는 생각 중이었지.”

       

       “우와. 오늘도 노골적이네요! 그 정도면 눈 딱 감고 부탁해 보라니까요? 형님들도 거절하진 않을 텐데.”

       

       “그렇겠지. …그래서 문제야.”

       

       한숨을 푸욱 내쉰 엘리가 짧아진 마력초를 비벼끄며 말을 잇는다.

       

       “쟤들은 날 무슨 은인처럼 여기잖아…! 그거 알아? 제이슨이 이번에 자기 과거를 신경 쓰지 않는 좋은 사람 만나서 곧 결혼한다더라. 전부 내 덕분이라고 울면서 보고하더라고. 그런 제이슨한테 ‘크큭, 고마우면 말이 아닌 몸으로 갚아라!’ 같은 요구를 할 수 있어?! 난 못해!”

       

       “엘리는 여전히 착한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단 말이죠.”

       

       그렇다. 사실 엘리는 조금 야한 가게를 차려, 내킬 때마다 자기 직원들이랑 자는 역하렘 사업체를 차리고 싶어 했다.

       

       모험가로 일할 때는 실력을 키우고, 돈 버는데 바빠 남자 손 한번 못 잡아본 반동이라나?

       

       다만 진지한 관계라기 보다는 본능이 강한 수인답게 그때그때 욕구를 풀 수 있는 관계를 원했다.

       

       그런 이유로 미궁도시에 넘쳐나는 남창들 중, 자기 취향의 남자를 데려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엘리가 이쪽 업계의 사정을 잘 모른다는 점이었다.

       

       엘리는 저들에게 억지로 빚을 씌우지도 않았고, 미묘하게 착한 성격 때문인지 욕하거나 때리며 폭력으로 지배하지도 않았거든.

       

       거기에 순수 창관이 아니고 주점이 메인이라 매춘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만약 저들이 몸을 팔더라도 수수료는 3할 정도만 가져간다고 했던가.

       

       전부 엘리가 모험가 생활로 쌓아둔 돈이 많아서 가능한 일이네.

       

       참고로 이쪽 업계는 최소 5할부터 시작한다. 진짜 악독한 곳은 8할 넘게 뜯어가기도 하고.

       

       나도 한때 진지하게 남창이 되는 걸 고민했기에 잘 안다.

       

       그때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나는 야한 일 좋아하니까 개꿀 아냐? 싶었지만…생각보다 무서운 업계더라고.

       

       한번 잘못하면 평생 남창으로 살아야 하는 데다가, 어찌어찌 과거를 청산해도 무일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내가 아닌 포주한테 돈이 흘러가는 구조라는 걸 깨달은 뒤로 사창가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아무튼 여기까지라면 엘리는 평범한 호구 사장이었겠지. 여기서 끝이 아니니까 지금같은 꼴이 난 거지만.

       

       몸을 팔아야만 하는 상황까지 굴러떨어진 이들이다. 다들 하나쯤은 기구한 사연을 품고 있기 마련.

       

       타고난 천성 때문일까, 아니면 모솔 아다답게 처음은 사랑이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 걸까.

       

       부모의 학대, 악질 고리대금업자, 재능있는 남동생의 학비 등등.

       

       놀랍게도 엘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각자의 사정을 해결해주었다.

       

       …그리고 이쯤 되면 더는 엘리를 호구라고 부를 수 없었다.

       

       요정과 은화의 직원들에게 엘리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미래를 열어주고, 돈까지 낭낭하게 챙겨주는 여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까!

       

       진심으로 감사해하고, 존경을 표하며, 충성하는 모습을 본 엘리는 차마 됐으니까 침대로 따라오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고…그렇게 지금에 다다른다.

       

       남자는 밝히는데 정작 중요할 때 아무것도 못하고, 아직까지 처녀로 남은 사람 좋은 쫄보.

       

       엘리라는 인물을 간단히 요약하면 그런 느낌이겠지.

       

       참고로 내가 이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엘리는 내가 만든 캐릭터였거든.

       

       이렇다 할 서사를 덧붙이진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너무 많은 것이 뒤바뀌어 버린 이 세계에서 몇 없는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렇기에 친해지기로 했다. 다 안다는 식으로 접근하니 어렵지도 않았고.

       

       우울한 표정으로 이번에 결혼한다는 근육질의 거한…제이슨 형을 바라보는 엘리.

       

       그녀의 빈 소매를 다시금 잡아당기며 히죽였다.

       

       “엘리. 역시 나랑 결혼할래요?”

       

       “…우유 수염 묻히고 다니는 꼬맹이는 좀.”

       

       “카일 형 같은 미소년 타입은 취향이면서요?”

       

       “카일은 하프엘프잖아. 저런 외모지만 나보다 나이 많아.”

       

       입가에 묻은 우유를 슥슥 닦고 재차 청혼했다.

       

       “그럼 제가 어른이 되면 결혼할래요?”

       

       “언제 웃으며 내 목에 칼 꽂을지 모르는 남자는 좀….”

       

       “그거 오해라니까요?! 저 그렇게 미친놈 아니에요! 엘리가 저를 노예로 팔아버리려고 하지 않는 이상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마세요!”

       

       “보통 애는 스스로 손목을 뽑지도 못하고, 빈틈이 드러났다고 해서 범죄 클랜의 두목을 죽이지도 못해. 설령 성공한다 해도 다음날에 헤실헤실 웃으면서 밥 먹으러 오지도 않고.”

       

       그리 말하고는 은근슬쩍 자신의 소매를 빼내는 엘리.

       

       “너, 너무해…난 이렇게나 엘리를 좋아하는데!”

       

       “그래그래. 말 나온 김에 물어보자. 거의 만날 때마다 결혼하자고 하는데 대체 나랑 결혼하려는 목적이 뭐야?”

       

       “그야 당연히 엘리의 몸과 재산이 목적이죠!”

       

       “…내가 말하긴 뭐하지만 진짜 쓰레기 같은 목적이잖아!”

       

       엘리가 진심으로 식겁한 표정을 지으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어제의 리디아와 같은 반응. 하지만 오늘은 쉽게 물러나지 않으리라. 두 걸음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것보세요 엘리. 분홍 머리에요? 미소년이에요? 지금 놓치면 분명 후회한다니까요? 5년 정도 장기 투자한다고 생각하세요!”

       

       “네 다음 핑챙.”

       

       “갸아아악! 저는 동정이거든요?! 분홍머리라고 야할 거라는 편견을 버리세요! 그리고 경험이 없는 건 엘리도 마찬가지잖아요!”

       

       “읏!”

       

       “저야 어리니까 경험이 없는 게 당연하지만…엘리는 지금 몇 살이었죠? 이제 30아닌가요?”

       

       “아직 아니거든! 2년 더 남았거든?!”

       

       “2년은 순식간이에요! 더 늙기 전에 참하고 어린 남자 하나 낚아채는 게 어떤가요? 구체적으로는 저라던가!”

       

       “누가 너 같은 망할 꼬맹이랑…!”

       

       사실 전생의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는 만큼 30살이 늙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세계의 결혼 적령기는 24살. 30살이면 이미 혼기를 놓쳤는데, 심지어 그 나이까지 처녀다?

       

       이쪽 여자 기준으로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일 수밖에.

       

       지구에서의 나도 아다였던 터라 그 심리는 잘 알고있다. 덕분에 어디가 아픈지 훤히 꿰고 있고.

       

       나 김요나. 누군가 놀리기 위해서라면 얼마든 자신의 상처를 후벼파 그대로 돌려줄 수 있는 남자.

       

       물론 나는 여자를 못 만난 게 아니라 안 만난 거지만 말이다.

       

       일 하느라 바빴거든. 진짜다. 다른 이유는 없다. ……없어야 한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엘리와 투닥거리며 식사를 이어가던 도중.

       

       쾅!

       

       돌연 가게 문이 거칠게 열리며 강렬한 기세가 요정과 은화 내부를 가득 채웠다.

       

       그 소란스럽던 술집에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적당한 가격대로 어중간한 모험가를 주 타겟 삼은 가게인 만큼, 이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 한 명. 한때 잘나가는 모험가였다는 엘리를 제외하면.

       

       “어떤 년이 남의 가게에서….”

       

       으르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선 엘리. 귀는 앞쪽으로 쫑긋 섰고, 꼬리는 빳빳하게 부풀어 올랐다.

       

       귀와 꼬리의 움직임은 귀엽지만 날카롭게 뜬 눈동자와, 그 위에서 번들거리는 투기鬪氣는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나와 장난치던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위협적인 모습.

       

       한쪽 팔을 잃었음에도 어색하기는커녕 어지간한 이들보다 완벽한 몸놀림으로 카운터를 뛰어넘은 엘리. 그녀가 나를 보호하듯 앞을 가리고 선다.

       

       지금껏 그래왔듯, 어떤 진상이건 힘으로 제압하겠다는 의지가 절절히 느껴지는 든든한 모습.

       

       나를 포함한 이 자리의 모두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감하고 침을 꿀꺽 삼킨 순간이었다.

       

       “엘리 선배. 오랜만.”

       

       “…너는?”

       

       익숙한 얼굴의 여인이 엘리를 향해 작게 꾸벅였다.

       

       타오르는 불처럼 강렬한 적발과 적안. 체구는 다소 작지만 전신에 걸친 중갑 덕에 왜소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무표정한 얼굴과, 행동 하나하나에 스며든 절도 있는 움직임이 기사를 연상시키는 여인. 나는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다.

       

       “리디아? 여긴 어쩐 일이지? 아무리 너라도 내 가게에서 횡포를 부리면 봐주지 않겠다만.”

       

       “미안. 실수야.”

       

       그리 말하고는 순순히 기세를 거둬들이는 리디아. 엘리 또한 싸울 생각은 없다는 듯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걸로 다시 점내에 평화가 찾아오리라.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리디아가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마디 덧붙이기 전까지는.

       

       “내 지갑 훔쳐간 도둑놈 찾아서 흥분해버렸어.”

       

       “아.”

       

       들켰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전편 리디아의 대사가 약간 수정됐습니다.

    제가 실수로 예전 버전을 올렸네요. 말투가 수정됐을 뿐, 내용은 그대로니 굳이 다시 읽으실 필요는 없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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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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