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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칠현자. 탑주를 제외하고 마탑에서 가장 위대한 칠좌에 오른 마법사.

        그들의 직계라는 것은 마탑 내에서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실력과 권위를 가졌다는 뜻이다.

        당연히 1층부터 탑을 오를 이유도, 수습생에게만 배부되는 위치 노트를 소지할 이유도 없다.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어. 상대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안 나올 게 뻔하잖아……!”

        “반드시 나올 거에요.”

        “만난다 해도 어떡할려고 그래? 진짜 윤리위원회에 제소할 건 아니지?”

        “깨닫게 해줘야죠.”

        “뭐를?”

       

        세상 물정에 어두워 보이는 언행과 더불어 눈에 띄는 것은 아름다운 외양.

        과연 마법의 요람인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순혈 마법사’ 다웠다.

       

        단순히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을 넘어 압도적인 아우라가 느껴진다.

        파도처럼 나부끼는 머리칼 한 올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마력을 품고 있다.

        들고 있는 책의 한 페이지, 가볍게 걸치고 있는 로브의 장식마저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다.

       

        주위에만 있어도 넋이 나갈 만큼 정순한 마력에 홀려 말을 거는 이들이 나왔다.

       

        “저, 실례가 안 된다면 같이 식사라도…….”

        “당신이었군요.”

        “커헉……!!”

        “꺄아아악! 비나가 사람을 죽였어!!”

       

        ‘오.’

       

        통성명도 피아식별도 없는 깔끔한 스트레이트.

        과거 모험가 생활을 제법 해온 내가 보기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일격이었다.

        균형잡힌 신체나 살기가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 이건 격투가의 길로 갔어도 대성했겠군.

       

        물론 여긴 콜로세움이 아니고, 심판도 없었다.

        나는 쓰러진 상대에게 주저없이 최후의 일격을 꽂아 넣으려는 비나라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갤질에 이렇게까지 진심인 악귀를 발견해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여긴 내가 관리하는 기숙사였다.

        이 이상 소란이 커지는 건 곤란하지.

       

        “잠시만요.”

        “다음은 당신인가요?”

       

        갤러리에 미리 ‘이미지 차단’을 걸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정체가 노출되는 건 피하고 싶었으니까.

       

        곧장 다음 상대를 인식하고 주먹에 마력을 두른 그녀였지만 이쪽이 양손을 올리는 게 그보다 더 빨랐다.

        피부를 찌르는 서릿발같은 냉기를 정면으로 맞으며 나는 정체를 밝혔다.

       

        “아뇨 아뇨! 전 메릴랜드 관의 사감인 클락 데스몬드라고 합니다.”

        “사감……?”

        “진정되셨으면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

       

        ====

        [메릴린 동상 앞에서 현피 뜬다는 거 벌써 끝남?]

       

        순식간에 끝나서 제대로 못봤는데 누가 이김? 진짜로 둘다 나왔냐?

       

        — 한쪽은 쿠플란 남작가 자제였다는데?

        — ㄴㄴ 걔는 상관없는 앤데 뜬금없이 말 걸었다가 얻어터진 거임

        — 기숙사 사감이 나와서 중재하더라 걍 끝난듯?

        — 재미없네

        — 직접 본 입장에선 꿀잼이었다

        ====

        ====

        [어차피 안 나올 줄 알았다에요~]

       

        우리 탑주님은 바빠서 그런데 나갈 시간 없는 거에요~

       

        — 진짜로 나왔으면 순혈이 역으로 좆됐지 ㅋㅋㅋ

        — 그래도 이미지 차단 잽싸게 걸어둔거 보니 마법으로 보고는 있었나봄

         ㄴ 선 시비에 선빵인데 이걸 신상을 지켜주네

         ㄴ ‘그 유동’이 좀 착하긴 해 ㅋㅋ

        ====

       

        서서히 진화되는 현피 떡밥을 확인하고 위치 노트를 닫았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설명한 주인에게 도로 돌려주며 당부했다.

       

        “어떤 경위로 위치노트를 소지하게 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갤러리에서 싸움을 하거나 함부로 신상을 밝히는 건 좋지 않습니다.”

        “여, 역시 그렇죠?”

        “…….”

       

        비나 네타니아 데 니플헤이르.

        얼음 마법으로 명망 높은 글레시아 학파의 막내는 나와 친구의 말을 듣는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바리스타가 정성껏 내린 음료에는 입도 대지 않고 무릎에 올린 양손을 부들부들 떠는 중이다.

       

        “상대방이 나쁜 마음을 먹을수도 있고 오늘처럼 안 나오면 시간만 버리는 거니까요.”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비나. 다음부턴 사감님 말처럼 이런 짓 좀 하지 마.”

        “……으득.”

       

        그녀의 주치의가 들으면 한탄할 소리가 이빨에서 들려왔다.

        어지간히 분해하는 모습에 약간의 측은지심이 생긴 나는 한 가지 조언을 더 해주었다.

       

        “직접 만나지 않고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면 갤러리 관리자에게 문의하세요.”

        “관리자?”

        “네. 다들 주딱으로 부르긴 하는데 ‘신고 게시판’에 가서 말하면 그 싸웠다는 사람을 차단하거나 해줄 거에요.”

        “주딱, 이해했어요.”

       

        그제야 화를 가라앉힌 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외에도 고정 닉네임을 만드는 법이나 게시물에 사진 첨부하는 법, 위치 노트의 타이핑 요령 등을 알려 주었다.

        친구인 크리스티나도 처음 보는 신문물이 신기한지 눈을 빛내며 설명을 들었다.

        내 갤러리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었기에 그녀에게도 노트를 주었다.

       

        “저도 받아도 되는 거에요?”

        “네, 재고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사감의 일 중 하나가 입탑한 수습생들에게 이걸 나눠주는 것이다.

        이번에 들어온 0년차들에게 주고 남은 게 사감실에 쌓여 있었다.

       

        용건을 모두 끝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숙사 내에 있는 카페는 음료 외에도 시간당 이용료가 별도였다.

        주인이 같이 있는 두 사람에게 돈을 받진 않겠지만 나는 오래 머무를수록 지갑이 얇아진다.

        주위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어쨌거나 두 분 모두 만나서 영광이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사감.”

        “네?”

        “사감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분명 내 소개를 했을텐데 이름은 사감이었다. 그보다 뭐를?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내게 비나가 말했다.

       

        “저는 충격받았어요. 세상에 메테오가 얼음 마법이 아니라고 믿는 이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

        “그래서 생각했어요. 이건 직접 글레시아 학파의 가르침을 설파할 수밖에 없겠다고.”

        “아, 그러니까…… 수습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개설하고 싶단 말씀이시죠?”

       

        마탑은 단순히 탑을 오르는 것 뿐 아니라 마법을 배우기 위한 교육기관이다.

        당연히 각 학파에서 개설한 강좌도 많다.

       

        “강좌 개설 기간은 끝났지만 학파의 재량에 따라 허가되는 곳도 있을 겁니다.”

        “조교가 필요해요.”

        “그것도 학파에 신청하면 지원자가 있을 겁니다. 아니면 지하 1층에 대학원생들이 사는 미궁이 있으니 거기서 데려와도 괜찮겠네요.”

        “이미 찾았어요.”

       

        청명한 호수같은 두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 채 빠르게 깜빡인다.

        마법의 극의에 통달한 이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경우가 잦다.

        그런 이들의 개떡같은 소리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게 내 몇 안 되는 장점이었다.

        그러나 전도유망한 마법사인데다 더할 나위 없는 미인의 눈에 띄었다는 사실이 이처럼 탐탁치 않았던 적은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죄송하지만 저의 어떤 면이 조교로서 적합하다고 판단하신 건지…….”

        “이야기를 잘 들어줬잖아요. 아까 갤러리에 올린 제 주장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을 때.”

       

        그거 하나도 안 듣고 있었는데.

        본인은 모르겠지만 당사자인 나로서는 이미 아는 내용이고 한풀이하듯 계속해서 중얼대길래 옆에서 대충 고개만 끄덕이며 갤질 중이었다.

       

        “사감은 저와 뜻이 같은 동지이니 분명 도움을 줄 거라 믿어요.”

        “아니, 저는…….”

        “설마 메테오가 얼음마법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나는 고작 1위계인데다 아직 시작의 층에 머물러 있고, 무엇보다 사감 일 때문에 바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 처음 글레시아 학파 바깥으로 나온 비나에겐 이미 내가 자신의 조력자라는 임프린팅이 끝난 상태였다.

       

        설령 거부하고 싶어도 칠현자의 직계인 그녀의 제안을 뿌리칠 힘이 내겐 없었다.

        아직 정식으로 해주학파의 문하생이 된 것도 아니었으니 아녜스를 방패삼는 것도 불가능했다.

       

        “조만간 시간표가 정해지면 연락 줄게요.”

       

        통보에 가까운 말과 함께 비나는 먼저 짐을 챙겨 일어났다.

        돌아가는 길에 복도에 놓인 얼음 정수기를 날카롭게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귀찮은 일을 떠맡았네.

        두 사람이 마력 승강기에 몸을 싣고 올라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생각했다.

       

        잠시 후, 위치 노트를 통해 메시지가 도착했다.

        신고 게시판에 새로 달린 댓글이었다.

       

        ====

        — 메테오는얼음마법 : 주딱

        — 메테오는얼음마법 : 차단시켜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 메테오는얼음마법 : ㅇㅇ(1.1) <- 이 사람이에요 어제 새벽 갤러리에서 저를 일방적으로 비방하고 이상한 논지를 펼치며 여론을 호도했어요

        — 메테오는얼음마법 : 증거자

        — 메테오는얼음마법 : 증거자료(사진)

        ====

       

        어지간히 급했는지 마력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는 도중 내게 연락한 비나였다.

        그새 위치 노트 사용법을 완벽히 익혀 이젠 깔끔하게 타이핑을 치고 있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앞으로 갤러리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할 게 뻔히 보였다.

        그 정체성이 분탕이라는 점은 안타깝지만 이 정도면 심각하게 악질적인 부류는 아니니 귀엽게 봐줄만 했다.

        적어도 아무나 붙잡고 현피를 신청하는 일은 앞으로 없겠지.

       

        ====

        — 메테오는얼음마법 : 지금 당장 갤러리에서 영구적으로 출입을 금지시켜

        — 메테오는얼음마법 : 주세요

        — 메테오는얼음마법 : 보고 있나요 주딱

        — 메테오는얼음마법 : 주딱. 주따악?

        ====

       

        “음, 어디 보자.”

       

        오래 끌 것도 없지.

        나는 곧장 관리자 권한을 열어 그녀의 소원대로 차단을 시켜주었다.

       

        ====

        [관리자에 의해 차단된 ID입니다 : 메테오는얼음마법]

       

        [기간 : 3일]

       

        [사유 : 닥눈삼]

        ====

       

        칠현자고 나발이고 내 갤러리에선 내가 곧 법이었다.

       

        그 날 오후, 정비팀이 고장난 마력 승강기 한 대를 교체하기 위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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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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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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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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