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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이걸 살려 말아?”

       

       “취이이익!!!”

       

       뜻밖에 오크가 매달린 나뭇가지와 절벽의 높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팔을 뻗는 다면 손끝이 닿을 정도의 거리.

       

       힘이 세기로 유명한 오크라면 이정도쯤이야 쉽게 올라올 수 있을 텐데?

       

       

       내 궁금증을 풀어 주듯 오크귀신이 달라붙어 한쪽 팔을 가리키고 있었다.

       

       무언가에 물어뜯긴듯한 상처는 듬성듬성 살점이 파여 움직일 수 없는 듯 보였다.

       

       “이거 놔뒀으면 개죽음 당할 뻔했네.”

       

       한쪽 팔은 쓸 수 없고, 나머지 하나는 나뭇가지를 잡고 있느라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

       

       간신히 발이 절벽에 붙어 있지만 손을 놓는순간 저 밑으로 추락 할 것이다.

       

       “살려야 하나?”

       

       사정이야 딱하지만 오크는 어쨌든 몬스터였다.

       

       막말로 살려놨더니 잡아먹겠다며 달려들 수도 있지 않은가?

       

       – ……

       

       옆에 있는 오크 귀신의 얼굴에 애처로운 표정이 피어났다.

       

       몬스터라도 감정은 있다는 건가?

       

       “쯧…..”

       

       고민하고 있던 찰나, 절벽 밑에서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취익!! 인간!! 오크는 은혜 갚는다! 취익!!!”

       

       “은혜를 갚는다고?”

       

       “그렇다! 취익!!”

       

       은혜를 갚는 오크라?

       

       판타지 전래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어떻게 갚을 건데?”

       

       “……”

       

       

       내가 생각해도 오크가 인간에게 해 줄수 있는 게 없었다.

       

       “취익!! 어떻게든 갚는다! 은혜는 잊지 않는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위험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원래 사냥꾼이었던 크리스의 기억은 온전했지만 나는 아직 이렇다 할 전투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사냥꾼이 오크랑 싸운다는 것 자체도 말이 안되는 일이었고.

       

       저 어린 오크새끼가 뒤통수를 치고 달려들면 내 몸이 위험하다는 이야기였다.

       

       “지랄. 몬스터 새끼가 무슨 은혜를 갚냐?”

       

       “취이익! 오크는 명예를 안다!”

       

       “그래. 많이 알아라.”

       

       이세계에 빙의하자마자 오크 밥이 되는 건 사양이었다.

       

       귀신이야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다지만 살아있는 괴물은 이야기가 달랐다.

       

       몸을 일으키자 마자 오크귀신이 내 앞으로 스으윽 다가왔다.

       

       – %&*@#

       

       “쯧….”

       

       무속인이 되고 제일 힘든 점이 뭔지 아는가?

       

       바로 귀신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내 감정인지 남의 감정인지 모를 정도로 깊게.

       

       “하….다 내 팔자지 내 팔자야…”

       

       무당 팔자가 어디 쉬운 팔자겠는가?

       

       항상 고생길이 내 인생 그 자체였다.

       

       절벽의 끝에 가슴을 걸치고 양손을 뻗었다.

       

       “취이익?!”

       

       그것도 모자라 명치까지 기어가니 겨우 오크의 손목이 양손에 잡혔다.

       

       이제 힘껏 끌어올리기만 하면 되었다.

       

       문제는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오크가 쥐고 있던 나무를 놔야 한다는 것.

       

       온전히 나에게 목숨을 맡기는 일 앞에 오크가 주저 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이 새끼 설마?

       

       “야 나 못믿냐?”

       

       “취익! 오크가 인간을 어떻게 믿나?취이익!!”

       

       확 놔버릴까?

       

       겨우 구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말하는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그냥 가?”

       

       “취익….믿는다!”

       

       “못 믿는다며?”

       

       “…취익! 무조건 믿는다!”

       

       천천히 나무에서 손을 떼는 오크를 있는 힘껏 잡아 올렸다.

       

       더럽게 무겁기는 했지만, 이 정도의 근력은 있는 몸뚱이었나보다.

       

       생각보다 오크는 쉽게 당겨졌다.

       

       “후우….”

       

       죽을 위기에서 살아난 오크가 거칠게 숨을 내뿜으며 나를 쳐다 봤다.

       

       “취익!! 고맙다! 취이익!”

       

        호흡을 고르며 그렇게 서 있던 어린오크가 갑자기 코를 킁킁 거리기 시작했다.

       

       “음?”

       

       저건 또 뭐 하는 짓일까?

       

       죽은뻔해서 돌아 버렸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어린오크가 냄새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전사의 영혼! 취익!!”

       

       “으음?”

       

       놀랍게도 어린오크가 멈춰 선 것은 오크귀신의 바로 앞이었다.

       

       “너 저거 보이냐?”

       

       “취익? 인간, 영혼을 볼 수 있는가?”

       

       “허?”

       

       아무리 오크를 살펴봐도 영안이 트인 느낌은 없었다.

       

       아마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영감이 조금 예민한 축이겠지.

       

       “취익! 전사의 영혼은 냄새가 난다!”

       

       정정하겠다.

       

       후각이 예민한 축인 것 같다.

       

       원래 오크는 귀신을 냄새로 보나?

       

       “흐음.”

       

       죽은 오크와 살아 있는 오크가 하는 짓이 범상치가 않았다.

       

       오크귀신의 눈빛이 저렇게 따듯할 줄이야.

       

       “취익!”

       

       킁킁.

       

       다시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냄새를 맡던 오크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형제의 냄새다! 거기 있는 영혼은 나의 형제인가?”

       

       어린오크가 나를 쳐다 봤다.

       

       아마 맞는지 확인해 달라는 거겠지.

       

       “맞다는데? 니 형이냐?”

       

       “취익! 죽은 형제만 열이 넘는다!”

       

       “대가족이네.”

       

       “취익! 오크는 약하면 죽는다! 난 강하다!”

       

       “너도 죽을 뻔했는데?”

       

       “약해질 뻔했다! 취익! 하지만 살았으니 강하다!”

       

       

       나를 보며 말을 마친 어린 오크가 허공을 향해 작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죽은 형제, 약하다!”

       

       

       – ……

       

       

       “약한 형제! 이제 가도 좋다! 취익!”

       

       

       – $#%@#$

       

       

       오크의 욕을 들어 본 적은 없지만, 지금 오크의 영혼이 하는 말은 욕이 확실했다.

       

       

       “참나….”

       

       

       한바탕 쇼를 했더니 몸이 더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벼락을 맞았던 몸뚱이가 아닌가?

       

       

       병원에 누워 있어야 정상인 몸이라는 것이다.

       

       

       나는 실랑이를 벌이는 둘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나 이제 간다.”

       

       

       어린 오크가 나를 마주 보며 가슴을 두 번 두드렸다.

       

       

       “취익! 내 이름은 굴락. 위대한 샤먼의 후예다.”

       

       

       “샤먼?”

       

       

       “오크 샤먼은 전사의 영혼과 대화를 나눈다.”

       

       

       이세계에도 무당은 있는 모양이다.

       

       

       그 형태는 조금 다르겠지만.

       

       

       “취익! 언젠가 은혜를 갚는다! 인간, 이름이 무엇인가?”

       

       

       “…..”

       

       

       무심결에 이름을 말하려던 나는 입을 멈춰 세웠다.

       

       

       이제 말해야 할 이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크리스.”

       

       

       “크리스! 인간 샤먼의 앞날에 명예를! 취익!”

       

       

       생각 보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몬스터라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종족에 가깝지 않은가?

       

       

       적어도 도움에 대한 복채는 확실하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만….복채?”

       

       

       점사를 봐주고 난 후에 받는 대가.

       

       

       신점을 보며 길흉화복을 점친다.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일들.

       

       

       그것을 알려주는 것은 명백히 천기를 누설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었다.

       

       

       복채라는 것은 그 천기누설에 대한 대가로 받는 것.

       

       

       그래도 명색이 무당이 된 후에 처음으로 한 일인데 점도 봐주지 않고 끝내기는 허전했다.

       

       

       “야! 잠깐 기다려 봐.”

       

       

       “취익?”

       

       

       내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방울이 오른손에 쥐어졌다.

       

       

       “흐음…”

       

       

       딸랑 –

       

       

       딸랑 –

       

       

       여러 가지 방울이 겹쳐지며 나는 요사스런 소리가 아니었다.

       

       

       맑게 울리는 단 하나의 방울 소리.

       

       

       방울이 울릴 수록 정신이 깊은 곳을 향해 빠져들었다.

       

       

       지금의 내가 나인지 다른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딸랑 –

       

       

       모든 감각이 차분해져갔다.

       

       

       피부를 스치는 바람도, 눈에 보이는 형상들도.

       

       

       인간의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들이 선명해지고, 그것을 뛰어넘어 다른 감각을 느끼는 순간.

       

       

       굴락의 주위에 얽힌 업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았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선명함이었다.

       

       

       딸랑 –

       

       

       방울이 울리고 저절로 입이 열렸다.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가 내 몸을 빌어 대신 말하는 느낌이었다.

       

       

       딸랑 –

       

       

       “어린놈이 짊어져야 할 업이 많구나.”

       

       

       딸랑 –

       

       

       “가야 할 길도 멀구나.”

       

       

       딸랑 –

       

       

       “길 잃은 무주구혼의 혼들을 짊어져야 하니, 천명을 따라 가거라.”

       

       

       방울 소리가 깊은 울림을 가지고 사위를 맴돌았다.

       

       

       “가야 할 곳을 잃은 자들이 모여 들고, 길을 잃은 자들이 길을 찾을 것이다.” 

       

       

       눈앞으로 선명한 방향이 보였다.

       

       

       아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방향을 본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방울이 한쪽 방향을 가르키며 뻗어졌다.

       

       

       딸랑 –

       

       

       “가거라. 화를 피하며 길을 찾을 것이다.”

       

       

       짧은 말을 끝으로 정신이 깨어났다.

       

       “아…..”

       

       

       “…..”

       

       

       – ….

       

       

       나와 굴락의 얼굴이 멍해졌다.

       

       

       이름을 모르는 오크의 영혼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몸을 떨고 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존재의 앞에 그저 몸을 낮춘 것이겠지.

       

       

       “취..취익! 위대한 샤먼!”

       

       

       깊은 여운을 느끼던 나는 굴락

       의 목소리에 완전히 깨어났다.

       

       

       “하아….존나 힘드네….”

       

       

       처음 치고는 힘든 일이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눈앞에 있는 이 굴락이라는 오크의 운명이 컸기 때문이리라.

       

       

       이제 점도 봐줬으니 정말로 집에 갈 차례였다.

       

       

       

       

       ***

       

       

       높은 절벽 위에 작은 오크가 하나 서 있었다.

       

       

       오크 샤먼의 후예인 굴락.

       

       

       아직 성인이 되지도 못한 이 어린 오크의 얼굴은 넋이 나간 듯 허공을 향해 있었다.

       

       

       오늘 본 것이 부족에 전해지는 샤먼의 모습인 것일까?

       

       

       위대한 영혼을 목도한 굴락의 눈이 방울이 가리켰던 곳으로 향했다.

       

       

       – 가거라.

       

       

       마치 각인이라도 된 듯 그 음성이 자꾸만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전설로 전해지는 위대한 영혼의 인도가 틀림없었다.

       

       

       “취익! 인도를 따라가겠다.”

       

       

       홀린 듯이 발걸음을 옮기려던 굴락은 문득 깨달았다.

       

       

       자신의 앞에 절벽이 있다는 것을. 

       

       

       “취…취익!!!”

       

       

       또 떨어질 뻔한 굴락의 옆에서 보이지 않는 영혼이 욕을 내뱉고 있었다.

       

       

       – &$#@$!!!

       

       

       

       

       ***

       

       

       가장 최근에 읽었던 게 아마 그것이었을 것이다.

       

       

       어느 귀족 가문에 망나니로 빙의 하는 소설.

       

       

       그 주인공은 자기방 침대에서 눈을 떳었지.

       

       

       그곳에는 분명히 그렇게 써져 있었다.

       

       

       푹신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고.

       

       

       “하아…근데 왜 나는!!”

       

       

       침대가 너무 딱딱했다.

       

       

       아니 이걸 침대라고 할 수나 있을까?

       

       

       나무 토막위에 모포를 깔아 놓은 이것을?

       

       

       내 집은 상상 이상으로 단출했다.

       

       

       단출하다못해 가난했다.

       

       

       나무로 지은 오두막.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허술한 구조.

       

       

       가구라고 부르기도 뭐한 목공품들.

       

       

       심지어 집안에는 먹을 것도 없었다.

       

       

       오늘 사냥에서 빈손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왜 나는 밥 걱정부터 해야 하는데?”

       

       

       산속에서부터 걸어왔더니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기 직전이었다.

       

       

       설상가상 밤늦게 도착하는바람에 먹을 것을 구하기도 마땅치가 않았다.

       

       

       무엇보다 돈도 없었다.

       

       

       이세계에 빙의 한 첫째 날 밤은 그렇게 굶으면서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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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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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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