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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

       뷔르템부르크 후작가는, 황족과 선제후들을 제외하면 제국에서 제일가는 명문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포메른 공작을 제외한 다른 공작위를 전부 선제후들이 겸임하는 상황에, 포메른 공작가도 작위에 비해 가문의 역사와 권위는 조금 부족한 편이었기에 아마 그들도 동의할 것이다.

        ​

        애초에 전통적으로 남부의 명가로 군림해온 그 명성 덕에 그들이 이곳 팔츠에서도 정치적으로 꽤 높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으니 이에 대한 반박은 곧 후작가의 정치적 정통성에 대한 도전이라 봐도 무방했다.

        ​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들이 가문의 뒷배만으로 얻어낼 수 있는 이익은 딱 그 정도까지라고 봐도 무방해요.”

        ​

        “지금 욤이 받는 대접은 지금까지 저들이 이뤄낸 성과의 보답이라는 거지?”

        ​

        “맞아요.”

        ​

        마차 안에서 마리아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

        필기가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편리할 줄이야.

        ​

        “욤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솔직히 잘 몰라요. 매번 절 귀찮게 하던 사람이라는 것 정도일까요. 공적으로도 그가 전면에 나선 건 후작이 영지로 내려간 요 근래의 일이었고요.”

        ​

        “그런데?”

        ​

        “하지만 뷔르템부르크 후작가가 황후파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

        그녀는 공중에 글자를 띄웠다. 그녀의 기억 속에 있던 사건들이 주르륵 나타났다. 그 모든 사건의 공통점은, 황후 파벌과 뷔르템부르크 후작이 갈등을 일으켰다는 점이었다.

        ​

        “…좀 많은데?”

        ​

        “어쩔 수 없죠. 지방 출신들이 합류하긴 했다지만, 근본적으로 황후파는 수도 귀족 세력이에요. 지방 귀족들과는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밖에요.”

        ​

        “과연.”

        ​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종종 말 탄 유목민 한 번 상대해본 적 없는 쫄보들이 동부의 사정을 왈가왈부한다고 욕하던 걸 종종 들어본 적 있었다.

        ​

        모든 이권이 동부에 집중된 우리 가문도 이런 상황인데, 곳곳에 영지와 작위를 가진 뷔르템부르크 후작가는 어떨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

        그리고 여기까지 사고가 다다르니 보이는 것이 있었다.

        ​

        “이러면 영지를 교환하자는 게 합리적 제안처럼 보이는데?”

        ​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

        안 그래도 여기저기 영지가 흩어져 황후파의 정책과 자주 충돌하는 상황이라면, 이참에 영지를 교환해 월경지를 정리하고 깔끔하게 합쳐주자는 말이 나올 법했다.

        ​

        거기에 원래 영지의 몇 배가 되는 영지를 얹어주겠다고 한다면, 그건 배려의 의미로 보일 수도 있었다.

        ​

        법적으로도 문제는 없었다.

        ​

        새로운 작위를 만들고 평민을 귀족으로 만드는 건 황제의 권리일지 몰라도, 자기 영지와 작위를 처분하는 건 귀족들의 자유였으니까.

        ​

        “만약 뷔르템부르크 후작이 단순한 지방 영주로 남을 생각이었다면, 이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을 거예요. 뷔르템부르크 후작의 영지가 워낙 커서 늘어난 땅을 다 합쳐도 원래의 두배는 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작은 땅은 아니니까요.”

        ​

        마리아의 말에서, 나는 어째서 욤이 우리에게 도와달라 했는지, 어째서 사사건건 대립하던 황후파에게 로비를 해가며까지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

        “하지만 후작가는 중앙에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지.”

        ​

        “바로 그거예요.”

        ​

        내 말이 옳다는 듯 공중에 뜬 글자들이 일그러져 원을 그렸다.

        ​

        하지만, 그럼에도 의문은 남아있었다.

        ​

        “그런데, 그건 결국 후작가도 더는 황후파에 손을 벌릴 이유가 없는 이상 그들의 적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라는 뜻 아냐?”

        ​

        “맞아요.”

        ​

        “그럼 대주교 때처럼 은밀히 뒤에서 공작을 펼쳐도 소용없는 거 아냐?”

        ​

        이번만큼은, 마리아도 고개를 저었다.

        ​

        “아뇨. 아주 중요해요.”

        ​

        “???”

        ​

        의아해하는 내게, 마리아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들에게는, 저조차 갖지 못한 게 하나 있거든요.”

        ​

        그녀의 말을 이해하게 된 것은, 다음날이 되어서였다.

        ​

        ――

        ​

        “빌 경! 빌 경!”

        ​

        투다다다!

        ​

        고양이도 아니고, 사람이 우다다 달려와 내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

        “뭐야? 무슨 일인데?”

        ​

        “이것 좀 보세요!”

        ​

        검술은 좀 부족해도 체력은 자신있어하는 기사 요나스가 헉헉거리며 내게 신문을 건넸다.

        ​

        신문?

        ​

        갑자기 신문은 왜.

        ​

        물론 신문이라고 현대의 그것과 비슷한 건 아니고, 종이 몇 장에 굵직한 소식 몇 개 실어둔 것에 가깝긴 했지만, 나름 여기서는 전국의 소식을 받아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귀한 물건이었다.

        ​

        그만큼 비쌌기에 쓸데없는 돈 안 쓰기로 소문난 요나스가 왜 이걸 사 왔는지 알 수 없었다.

        ​

        그 의문은 첫 장을 펼쳐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

        “…뭐?”

        ​

        ‘뷔르템부르크 후작가의 후계자, 어전에서 궁정백을 들이받다!’

        ​

        자세한 내용은 적혀있지 않았다. 다뤄야 할 일은 많고 지면은 부족한 탓에 전후사정이 어떤지는 거의 묘사하지 않고, 현장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만 짤막하게 소개할 뿐이었다.

        ​

        하지만, 이게 첫장 상부에 대놓고 박혀있다는 것부터 편집부가 이걸 얼마나 중요한 이슈로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

        “마리아!”

        ​

        나는 곧장 마리아에게 달려갔다. 사실 달리진 않았다. 어차피 바로 옆방이고, 서로 방음이 개뿔도 안돼서 그냥 방에서 부르면 답이 돌아왔거든.

        ​

        “아, 들으셨어요?”

        ​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방에 들어오며 물었다.

        ​

        “어, 어어? 어어.”

        ​

        아니, 근데 우리 일단 좀 나가서 얘기할까?

        ​

        그런 말을 하려 했지만, 그녀는 자연스럽게 탁자에 자리 잡았다.

        ​

        “말씀드렸죠? 그에겐 저도 없는 게 있다고.”

        ​

        그제야 깨달았다.

        ​

        “조정에 들어가 말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었구나.”

        ​

        그보다 일단은 내 방 말고 나가서 이야기하자고.

        ​

        그렇게 말하고 싶은데, 마리아가 들어오니 마리아를 따라 시녀들이 쭉 밀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다과가 준비되고 검이나 이런저런 개인용품이 널브러져 있던 방이 화사해졌다.

        ​

        마리아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차를 홀짝였다.

        ​

        “이제부터, 욤 공자는 매일같이 황후 파벌이 하려는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 거예요.”

        ​

        “지금껏 계속 그래온 거 아니었어?”

        ​

        “실무단계에서 그러는 것과 아바마마의 앞에서 그러는 건 차이가 크죠.”

        ​

        그녀는 눈빛을 반짝였다.

        ​

        “그건 신호탄이에요.”

        ​

        “신호탄?”

        ​

        “황후파가 이곳 팔츠에서 가장 세력이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조정이 그들 세상인 건 아니에요. 아니, 애초에 아바마마께서 정정하신 이상, 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반수를 넘길 수 없어요.”

        ​

        그건 맞는 말이었다. 하다못해 전제군주국이었다면 모를까, 나름 귀족들의 지지를 모아 선제후 투표를 통해 즉위하는 황제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의 여론을 관리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

        황제가 중립을 지키고 있다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중립을 지킨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을 믿고 이런 후계 싸움에서 숨을 죽이는 이들도 있을 게 분명했다.

        ​

        “제 큰 오라버니가 태자로서 버티고 있고, 황후 파벌의 패악질에 질린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거예요. 뷔르템부르크 후작이 황후를 직접 공격할 순 없겠지만, 그 세력을 상대하기엔 충분해요.”

        ​

        어차피 종국에는 선제후들의 투표를 거쳐야 하기에 태자의 자리가 갖는 권위가 적어도 제국에선 땅에 떨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태자가 갖는 의미 자체는 그대로였다.

        ​

        결국 태자란 황제가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한 사람이었다. 황후가 공격적으로 선제후를 포섭하지 못하는 데는, 이미 황제가 태자를 내세우며 자신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를 드러낸 것도 한몫했다.

        ​

        제아무리 황후라도, 황제에게 직접 거역하는 건 어려웠으니까.

        ​

        “욤을 내세워 조정에서 승부를 보려는 거구나.”

        ​

        하긴, 어차피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황후의 파벌을 캐고 다녀도 결국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들어내는 파급력은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마리아도 울름 남작을 쫓아낼 때 감찰단의 힘을 빌린 거였고.

        ​

        그렇게 생각했지만, 마리아는 내 생각을 부정했다.

        ​

        “아뇨? 그건 아닌데요.”

        ​

        그녀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

        “결국 마무리는 우리 손으로 지어야죠.”

        ​

        “하지만, 그럼 왜 욤을 내세운 거야?”

        ​

        내 질문에, 마리아는 살짝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

        “제가 왜 굳이 다른 평범한 귀족들이 아닌, 뷔르템부르크 후작가의 후계자의 협력을 얻어서야 이렇게 나섰다고 생각하세요?”

        ​

        “그러게…?”

        ​

        생각해보면 조정에 들어갈 수 있는 관료는 많았다. 이곳은 팔츠였고, 팔츠에서 지위가 좀 높은 귀족들은 전부 관료라 해도 상관없었다. 애초에 이 시대에 수도에 거주하는 모든 귀족은 잠재적 관료였다.

        ​

        설령 자신이 생각이 없다 하더라도 갑자기 관료의 숫자가 부족하면 천거를 받든 돈으로 관직을 사든 해서 끌려 올라가는 게 제국의 관료제였다. 이건 지구의 평균이랑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

        돈으로 권력을 만들어내는 연금술 매관MAGIC, 참 익숙한 향취잖아.

        ​

        말이 셌지만, 결국 요지는 마음만 먹으면 이런 작전은 굳이 고위 귀족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는 의미였다.

        ​

        마리아는 끝까지 답을 하지 않고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들이킬 뿐이었다.

        ​

        상황을 파악한 건, 바로 다음 날, 황제가 없이 이뤄진 조정에서 육탄전이 벌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난 이후였다.

        ​

        욤과 황후 파벌의 사람이 감찰단의 구성을 두고 논쟁을 벌이다 몸싸움이 벌어졌다는 소식이었다. 그 뒤로도, 욤은 물론 다른 사람들이 황후 파벌과 이런저런 이유로 싸움을 벌여 조정에서 파행이 벌어진다는 소문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

        그런 와중에도 황제와 그를 따르는 이들은 성실히 움직였기에 행정이 멈추는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이 원만하게 풀릴 수는 없었다.

        ​

        “자, 이제 시간은 충분히 벌었네요.”

        ​

        당연하지만, 감찰 결과가 나오는 건 몇 주가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

        “이제 움직이죠.”

        ​

        마리아는 한참 뒤로 밀린 데드라인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날 바라봤다.

        ​

        “우리가?”

        ​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죠, 박쥐아저씨?

        ​

        정치판은 문외한이라 그저 소식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기에 마리아의 말에 물음표를 띄울 뿐이었다.

        ​

        마리아는 내 표정을 보며 피식 웃고 내 허리춤을 가리켰다.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았지만, 기사의 허리춤을 가리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진 않았다.

        ​

        “파벌 싸움이 한순간에 격화됐어요. 이미 다들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 탄핵하려고 난리를 치겠죠. 증거를 모으기 위해서는 다소 과격한 방법을 쓰는 것도 서슴지 않을 거예요.”

        ​

        “아.”

        ​

        이번에는 나도 웃을 수 있었다.

        ​

        “그건 또, 내가 잘하는 일인데.”

        ​

        탐관오리의 저택을 터는 의적 노릇은, 이미 몇 차례 해본 적 있는 일이었다.

        ​

        한동안 푹 쉰 태도가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켤 때였다.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낭만 판타지를 꿈꿨는데 로맨스 판타지였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dreamed of a life filled with romance¹ and romanticism, but I didn’t dream of a romance fantasy… —- ¹ The “Romance” here means a feeling or atmosphere of something new, special and exciting, e.g., a hero’s adven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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