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0

       

         

         

         

        마용사 파티의 환술사, 아도라는 떠났다.

         

        처음부터 거기에 없었던 것처럼 허물어지듯 연기처럼 사라졌지만, 주위에 널브러진 마수와 도시 내 길드원들의 시체는 발터크루아가 이번 일로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 보여주었다.

         

         

        “우리 용병 길드는 발터크루아의 통치자로 래빈 더 시프를 받들겠다.”

         

        “저희 상인 길드는 배신한 두 길드장의 과오를 앞장서서 갚고, 발터크루아 시민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겠습니다.”

         

         

        삼두 중 두놈이 마족과 결탁하고 있었음이 밝혀지고, 당사자들마저 허무하게 마족에게 죽어버리자 용병과 상인 길드의 부길드장들은 바로 래빈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이대로 강제 추방을 피하려면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다.

         

        뒷수습을 진두지휘하는 래빈은 겉으로는 활기차게 사람들을 격려하고 있었지만 그 속은 남못지 않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대체 너희 용사 파티는 이씨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린과 루시를 떠나보내기 전, 래빈은 용사를 따로 끌고 갔다.

         

        망연자실한 루시는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묻잖아!”

         

         

        용사의 모든 것이 싫었다.

         

        혼자서 피해자인 척 굴어왔으면서, 린을 좋아한다고 집착할 때는 언제고 정작 중요할 때는 그를 홀로 내버려두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에 래빈은 당장이라도 루시를 단검으로 찢어발기고 싶었다.

         

         

        “이씨는… 어릴 적부터… 구정물골목에서부터 모두를 보살펴주던 사람이야… 나도, 아르실도, 그 망할 년도 모두 이씨에게 구원 받고 버틸 수 있었어.”

         

         

        심지어 래빈이 아르실과 다른 노선을 타며 적대할 때도 린은 래빈 패거리를 간간이 도와줬다.

         

         

        “아르실 패거리에서도 늘 자기 패거리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던 녀석이었어.”

         

         

        비록 그의 타고난 무력이 숱한 영웅들에 비해 보잘 것 없을 지라도.

         

         

        “이씨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에게 밥을 먹였어.”

         

         

        용사 파티는 자기들끼리 다 처먹고 린에게 빈 솥만 내준 이야기는 입이 아플 지경이었다.

         

         

        “잠자다가 뒤척이기만 해도 다가와서 어디 불편한 지 살펴봐줬어.”

         

         

        용사 파티 중 누군가가 헛기침을 하거나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린은 또 자신이 잘못한 게 있나 노심초사 불안해 했다.

         

         

        “혹시라도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말이 없으면 먼저 다가와서 물어봐줬지.”

         

         

        용사 파티는 그가 다가오면 네 할 일이나 하러 꺼지라고 윽박을 질렀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데려오고 싶었지만 이씨가 선택한 거니까 존중하고 기다렸어. 그가 언젠가는 빛을 볼거라고.”

         

         

        용사 파티가 그를 박대하고 있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뭐?”

         

         

        차마 마왕 토벌까지 사람을 붙이거나 직접 몰래 따라가볼 수 없었기에 잠시 감시가 소홀해졌었다.

         

         

        “마왕의 외뿔을 맨손으로 잡게 만들어?”

         

        “아….”

         

        “네년이 그러라고 시켰지?! 안봐도 뻔해! 이씨를 괴롭히는데 항상 네가 앞장섰으니까! 그것까지는… 씨발! 그것까지는 예상했다고 쳐! 근데 아르실! 그년은 뭔데?”

         

         

        방패기사는 더 다쳤었다며 짐꾼에게 면박을 주었던 성녀.

         

         

        “이씨의 이름을 몰랐더라도! 체격도 목소리도 바뀌어서 몰랐더라도! 가면을 써서 알아볼 수 없었더라도!”

         

         

        누구보다 희생과 헌신을 중요하게 여기던 성녀는 늘 바로 곁에 있던 린을 홀대하고 말았다.

         

         

        “동료잖아-!!!! 아무리 밉고 못 미더워도 오랜시간 함께한 동료잖아!”

         

         

        루시는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래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프게 가슴을 할퀴었다.

         

         

        “네놈들은 정상이 아니야! 이씨는 민간인에다 비전투원이었어! 전장에서 무서워서 떨어도 자기 자리를 지킨 것만 해도 대단한 거라고! 그런데, 너희들은 이씨가 비겁하고 쓸모없다고 어떻게 단칼에 돌아설 수가 있어?”

         

         

        잊을만하면 과거가 머리채를 붙잡는다.

         

         

        “루시에나 에스텔, 이씨는 마기에 침식되어 가는 몸으로 팔다리가 잘린 너를 구했다. 그 마기조차 네년 때문에 침식당했지.”

         

         

        그것도 악의를 가지고 행한 자신의 과거가.

         

         

        “그런 너를 끝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육체까지 회복시켜 준 은인을… 넌 그냥 전투에 미쳐서 혼자 있게 방치를 해?”

         

        “아니야, 난 일부러 그런 게….”

         

        “마수들 많아 찾기 힘들다고? 이씨를 구하러 가는 거에 그딴 핑계를 대?!”

         

        “나는…!”

         

        “너는 자격 없어.”

         

         

        극도로 분노하면 사람은 도리어 차분해진다.

         

        말도 똑바로 못하는 용사에게 래빈은 갈수록 냉정해졌다.

         

        머리가 무섭도록 차가워진 느낌이었다.

         

         

        “압도적인 무력, 명성, 멋진 약혼자.”

         

         

        움찔

         

         

        “뭘하든 환호와 사랑을 받아온 너는 그냥 이기적인 년일 뿐이야. 받는 데만 익숙하지 주는 법을 몰라.”

         

         

        그렇지 않다.

         

        자신도 몰락한 귀족으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 받아 소싯적을 홀로 살아왔다.

         

        검 하나에만 기대어 필사적으로 살아왔다.

         

        평소였다면, 배신 당하기 전이라면 당당하게 반박했을 루시는 변명하는 행위 자체가 위선적이라고 생각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널 사랑했는지 아냐? 아름답고 강한 용사님. 그리고 그런 용사님이 죽고 못사는 멋진 약혼자까지.”

         

        “아니야-!”

         

         

        그러나 라인폴드만큼은 예외였다.

         

        루시가 비명처럼 부정했지만 래빈은 점차 언성을 낮추며 바늘처럼 날카로운 사실을 그녀의 귀에 꽂아넣었다.

         

         

        “아니긴, 친절하고 상냥한 약혼자 마음에 들려고 온갖 아양과 애교, 질투심 작전까지 쓰는 널 사람들이 얼마나 흐뭇하게 바라봤는지 알면서?”

         

        “그건 그놈이 어떤 인간인지 몰랐을 때였어!”

         

        “네가 몰랐던 거지! 기생오라비 같은 얼굴에 반해서 마음 가득히 품었잖아! 그 녀석 손 잡으려고, 안겨볼려고, 뽀뽀 한 번 받아볼려고 갖은 수를 다 썼던 주제에!”

         

        “그런 일 없었어! 어차피 그 자식은 날 인형 취급이나 했어. 나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고!”

         

        “말의 앞뒤가 안맞잖아, 루시에나아!”

         

         

        급기야 래빈은 손으로 루시의 뺨을 움켜쥐었다.

         

        붕어처럼 튀어나온 입에 대고 래빈은 실컷 비수를 내뱉었다.

         

         

        “방패기사놈이 안 건드렸으니까 몸만 처녀지. 마음은 걸레 중에 걸레인 년이…!”

         

        “아니야! 아니라고! 나한테는 린 밖에 없어. 이제 제대로 알았어. 아무것도 모를 멍청한 시절의 나는 팔다리랑 함께 잘려서 사라진 지 오래야!”

         

        “아, 그래? 그럼 왜 이씨는 네 곁에서 이토록 아파하고 있지?”

         

         

        도적은 루시가 숨기고 부정하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을 끄집어 냈다.

         

        뼈에서 살점을 발라내듯 단 한 점도 버림없이 살뜰하게 파헤쳤다.

         

         

        “넌 자격이 없어. 이씨는 내가 맡는다. 내가 그 아픈 몸을 고치고 평생 내 곁에서 쉬게 해줄거야.”

         

        “안 돼!”

         

        “넌 린에게 고통만 주는 존재야!”

         

        “아니야! 아니에요! 제발, 제발! 내가 잘못했어. 내가 너무 미숙해서 그랬어. 네 말이 맞아. 내가 이기적인 년이었어. 정말 미안해. 앞으로 잘할게. 린을 데려가지 마. 린도 내가 필요하다고 했어. 세상을 구하려면 내가 필요하다고 했어. 나도 린이 필요해. 린이 없으면 나 더 이상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모르겠단 말야!”

         

         

        린을 데려가겠다고 하자 루시는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빌었다.

         

        콧대 높던 용사가 한낱 도적 앞에서 질질 짜며 빌고 있었다.

         

        래빈은 허탈했다.

         

        그녀도 안다.

         

        린에게는 루시가 필요했다.

         

        적어도 당분간은.

         

         

        “잘 들어, 이 빌어먹을 것아.”

         

         

        토하고 싶은 걸 참으며 래빈은 단단히 일렀다.

         

         

        “린이 널 살린 이유가 있을 테니까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하는 말 명심해.”

         

        “뭐든 말만 해, 내가 잘할게.”

         

        “씨발 입 놀리지 말고 들으라고!”

         

         

        그제서야 용사는 허둥대던 움직임을 멈추고 경청했다.

         

         

        “이씨가 널 구했으니 넌 무슨 일이 있어도 이씨를 지켜야 해. 알겠어? 앞으로 네 모든 삶의 중심은 이씨인거야. 이씨가 시키는대로 하고, 항상 이씨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

         

        “대답!”

         

        “알았어.”

         

        “만약 이씨가 또 다쳤다거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래빈은 단검을 꺼내 목에 겨눴다.

         

         

        “너희 용사 파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손에 죽는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린을 지킬게.”

         

         

        할 말은 다했다.

         

        전신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루시에게서 물러난 래빈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기분 나쁠 정도로 파란 하늘이었다.

         

         

         

        —

         

         

         

        성녀와 마법사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발터크루아 검문소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해질녘이었다.

         

        마용사 파티의 창잡이, 샐러메이에게 농락당하던 둘은 끝까지 굴욕을 맛본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어? 이쯤이면 됐다고? 하아~ 순 지멋대로네.’

         

         

        갑자기 공격을 멈춘 창잡이는 귀찮아하며 둘에게 손을 내저었다.

         

         

        ‘이제 가. 다 끝났대.’

         

         

        다혈질인 아르실조차 터덜터덜 걸어서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게 고작이었다.

         

        자존심과 자존감 모두 철저하게 박살난 용사 파티는 발터크루아 성벽 위에서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여어.”

         

         

        어딘가 낯익은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자 창백한 안색의 래빈이 성벽에 걸터앉아 있었다.

         

         

        “래빈…?”

         

        “행색을 보아하니 잘나고 잘나신 용사 파티의 성녀와 마법사렷다?”

         

        “래빈! 너야?”

         

         

        개 같은 년이 쪼개기는.

         

         

        “거기서 멈추시지. 우리가 웃으면서 이야기할 사이는 아니지 않나?”

         

        “얌마! 네가 왜 여기 있어? 설마 골목에서 나와서 발터크루아에 정착한 거냐!”

         

         

        반가워 하는 아르실과 달리 래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저 웃는 면상을 주먹으로 으깨주고 싶었다.

         

         

        “너 혼자냐? 잭은? 라팜은? 니네 패거리 애들 다같이 온 거지?”

         

        “…잘 지내지.”

         

         

        저 하늘 위에서 말이야.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그가 떠난 지 반나절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래빈은 린이 사무치도록 보고 싶었다.

         

        아주 잠시 고민했다.

         

        진상을 알려줄까?

         

        모든 걸 다 알고 난 아르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지만 래빈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건 저주다.

         

        린을 알아보지 못하고 괴롭힌, 그를 사지까지 몰고 간 너에 대한 저주야 아르실.

         

        그리고 이 저주의 이름은 침묵이다.

         

         

        “문 좀 열어주라. 그렇지 않아도 발터크루아에 볼일이 있어. 도시 전체와 연관된 일이라고 봐도 된다고.”

         

        “아니, 발터크루아는 너희들에게 볼일 없어.”

         

        “야! 옛날에 주먹으로 몇 대 쥐어박았다고 이러는 거야? 그건 내가 사과할 테니까…! 지금 엄청 큰 일이….”

         

        “나는 래빈 더 시프. 이 발터크루아의 길드 연합에게서 정당하게 지지받아 선출된 통치자다.”

         

         

        차가운 태도에 아르실도 얼굴을 굳혔다.

         

        래빈만이 아니라 발터크루아 성벽과 검문소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녀들을 무표정하게 보고 있었다.

         

         

        “오늘 낮, 발터크루아는 마족에게 침공 당했다.”

         

        “마족이라고!”

         

        “마용사 파티의 일원이라더군. 녀석은 자기 마음대로 여기를 유린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떠났다.”

         

        “래빈! 그 녀석 혹시 창잡이냐? 아니면 환술사?”

         

         

        용케도 샐러메이가 지나가듯 언급한 다른 직업군을 떠올린 아르실.

         

        그러나 래빈은 무시했다.

         

         

        “따라서, 발터크루아는 한창 복구 작업 중이며 때문에 모든 출입을 금하는 바이다.”

         

        “야 임마 래빈! 우리가 도와줄게! 진상조사를 하게 해줘. 그러면 제국이랑 교국에 정식으로 지원을 요청해서….”

         

        “아르실.”

         

         

        무시하려고 했다.

         

         

        “하! 제국과 교국?”

         

        “래빈?”

         

         

        하지만 저 개소리까지 무시하기란 힘들었다.

         

        도적은 팔을 들었다.

         

        그러자 발터크루아의 봉화대에 불길이 치솟았다.

         

         

        “성녀여. 우리는 너희가 용사에게, 짐꾼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알고 있다.”

         

        “뭐…?”

         

        “그 행실로 보아서는 제국과 교국이 우릴 순순히 도와줄 것 같진 않은데?”

         

        “누구한테 들은 거냐?”

         

        “몰라, 여길 휩쓸고 간 마족이었는지, 지나가던 나그네였는지 기억 안 나.”

         

         

        화륵, 두번째 봉화가 올라갔다.

         

        첫번째 봉화가 실수가 아니라는 뜻의 봉화가.

         

         

        “꺼져라. 발터크루아는 배신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티그리아가 아르실의 어깨를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성녀는 쉬이 물러날 수 없었다.

         

         

        “알았어, 안 들어갈 테니까 하나만 알려줘.”

         

        “…뭔데.”

         

        “이씨는? 네가 떠나온 지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지만, 이씨는 잘 지내? 아니 잘 지내고 있었어?”

         

        “하하….”

         

         

        촌극이 따로 없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속이 상한 육체로 웃자 전체가 덜컥거린다.

         

        고통에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래빈은 간신히 억누르며 린이 부탁한 말을 전했다.

         

         

        “용사는 즈라문 군도로 갔다.”

         

        “루시가? 야 갑자기 용사가 왜 나와!”

         

        “단단히 준비해서 오라는군. 마용사 파티를 상대하기 위해서든,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서든.”

         

         

        쇼는 끝났다.

         

        래빈은 몸을 돌려 성벽에서 내려왔다.

         

        아르실, 나는 용사 파티의 사실을 알고나서 충격에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어.

         

        과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너는 진실이 주는 잔혹함을 온전히 버틸 수 있을까?

         

         

        “야! 야아-!! 래빈!!!”

         

         

        사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소리쳐 부르던 아르실.

         

        보다못한 마법사가 강제로 그녀를 데리고 제도로 순간이동하기까지 외침은 덧없이 이어졌다.

         

         

         

        —

         

         

         

        또다시, 숲속을 걷는다.

         

        또다시, 린과 루시만 남았다.

         

        루시는 말없이 린의 손을 잡고서 걷고 있었다.

         

        어딘가 우울해 보이는 기색에 한참을 망설이던 린은 목을 가다듬었다.

         

         

        “루시, 쉬지도 못하고 출발했는데 이쯤에서 캠핑할까?”

         

        “…….”

         

        “난 괜찮거든. 부끄럽지만 전장에서 환술사한테 당해 자버린 터라. 아, 이건 떳떳하게 말할 게 아니지.”

         

        “…….”

         

        “혹시 그거 때문에 화난 거야?”

         

        “…….”

         

        “미안해 루시. 내가 더 잘했어야 하는데.”

         

         

        우뚝

         

        마왕 토벌하던 시절에 매일 듣던 말.

         

        루시는 숨을 삼켰다.

         

         

        “린….”

         

        “응.”

         

        “팔이 왜 이래…?”

         

         

        이번에는 린이 입을 다물었다.

         

         

        “팔에서… 왜… 마기가… 느껴져…?”

         

        “…….”

         

        “이상하다? 분명히 린은 내가… 성검의 힘으로 살려냈는데 대체 왜…?”

         

        “뭐라고?”

         

        “여신님의 성소에서, 내가 성검으로 린을 되살려 냈는데 왜 마기가 느껴지지…?”

         

        “루시.”

         

        “성검을 썼는데도 왜….”

         

        “루시!”

         

         

        어깨를 잡아 돌리자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 드러났다.

         

         

        “미안해… 미안해 린. 아프게 만들어서 미안해…!”

         

         

        허물어지듯 무릎을 꿇고 그의 손에 이마를 대며 루시는 흐느꼈다.

         

         

        “아픈 줄도 몰랐어. 이렇게 심한 줄도 몰랐어. 성검을 사용했는데도 이 정도라면 대체 그 전에는 어느정도였던거야?”

         

         

        대체 얼만큼의 고통을 참으며 그녀를 보살피며 데리고 다녔던 걸까.

         

        문득 루시는 당시의 린이 루시에게만 먹이고 자신은 거의 먹지도 않았던 걸 떠올렸다.

         

        알고보니 식량을 아낀 게 아니라 너무 심한 통증에 입맛이 없었던 게 아닐까.

         

        이제서야 보인다.

         

        그의 아픔이.

         

        자신의 멍청함이.

         

         

        “쓸모없어 미안해. 성검도 없는 용사라서 미안해. 린이 구해줬는데도 여전히 쓰레기라서 미안해….”

         

        “루시.”

         

         

        린도 무릎을 꿇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럼에도 고개를 들지 못하는 루시에게 린은 큰 마음을 먹고 속삭였다.

         

         

        “성검으로 날 살린 거였구나. 그래서 없던 거였어.”

         

        “미안해… 미안해….”

         

        “나 따위의 목숨을 용사의 자격과 맞바꾸다니.”

         

        “그렇지 않아…! 린 내게 가장 소중한  건 바로….”

         

        “구해줘서 고마워 루시.”

         

         

        비로소 린은 용사의 멍한 눈을 마주했다.

         

         

        “내 최고의 동료, 루시.”

         

        “흐윽…. 흑…!”

         

         

        루시는 목놓아 오열했다.

         

         

        “덕분에 마기에 침식된 거 치고 아프지는 않아. 그랬구나, 성검을 사용했기 때문에 아픔이 없었던 거구나.”

         

        “린…!”

         

        “이구이구, 괜찮다괜찮아.”

         

         

        루시는 자기자신이 싫었다.

         

        이기적이고 나아지지도 않는 자신이 싫었다.

         

        린의 곁에 있고 싶은 자신이 싫었다.

         

        린이 없으면 죽어버린 것과 다름 없어질 자신이 싫었다.

         

        그러면서도, 루시는 린의 손을 잡고, 팔과 품 속을 파고들며 그의 심장소리를 원했다.

         

         

        ‘방패기사놈이 안 건드렸으니까 몸만 처녀지. 마음은 걸레 중에 걸레인 년이…!’

         

         

        걸레가 아니다.

         

        과거의 실수일지언정 걸레가 아니다.

         

        부정하고 부정했지만 떳떳하지 않은 이 마음.

         

        그 마음은 더욱 더 린에 대한 집착과 루시의 심기체 결벽증을 극한으로 부추기고 말았다.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Abandoned Hero's Only Ally, 버림받은 용사의 유일한 아군이 되었다.
Score 6.8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saved the Warrior who used to ignore and bully me and now she is obsessed with m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