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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

       부스럭.

         

       공기가 유독 서늘한 새벽녘.

       해가 슬금슬금 떠오르며 점차 하늘을 밝히니 어두웠던 산을 밝힌다.

       보노라면 장관이요, 이른 아침 일어나 보는 보물과 같은 풍경이리라.

         

       허나 안타깝게도 멋진 보물과 같은 풍경을 볼 정도로 부지런한 이들은 얼마 없다.

       특히.

         

       [아린아! 좀 일어나, 지금 준비 안 하면 이러다 지각해!]

         

       “5, 5분만….”

         

       [맨날 그렇게 말하면서 50분을 더 자잖아, 그만 좀 깨.]

         

       항상 잠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더더욱 그러했고.

         

       “으음…!”

         

       그녀는 유령 소녀의 잔소리에도 그다지 큰 감흥이 없어 보였다.

       마냥 칭얼거리며 잠에서 깨기 싫은지 투정을 부렸지.

         

       이를 보며 유령 소녀는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비장의 수를 쓰기로 작정했다.

         

       [아린아, 너 이러다 ‘재수’할 것 같던데?]

         

       벌떡!

         

       “재, 재수!!?”

         

       잠기운이 언제 있었냐는 듯 그녀는 벌떡 일어나며 기겁했다.

       아침에는 워낙 저혈압이라 어딘지 좀 창백한 그녀인데, 재수란 단어 한 마디에 낯빛이 붉게 물들었다.

       흥분할 정도로 그녀에겐 재수란 단어가 큰 것이리라.

         

       [후후, 바보 아린이.]

         

       “너, 너어어…!”

         

       그제야 잠기운에서 벗어난 그녀가 현실을 인지하며 유령 소녀에게 삿대질했다.

       할 짓이 있고, 못할 짓이 있지!

         

       수험생에게 재수를 말해!?

         

       ‘저런 악독한 년!’

         

       [다 들려 아린아. 그보다 대체 재수가 뭐라고 그렇게 무서워 해? 난 이해가 안 돼.]

         

       “…네가 뭘 알겠니, 이 재수 없는 계집애야.”

         

       따악.

         

       유령이 수험생의 공포를 어찌 알랴.

       그녀, 아이린 윈들러가 한숨과 함께 손가락을 튕겼다.

         

       우웅, 하며 움직이는 푸른 물결의 기운이 퍼졌고, 순간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햇볕을 막는 커튼이 물러나고, 창문이 열리며 밤 새 쌓인 탁한 공기와 먼지 등이 단번에 밖으로 빠져나갔다.

       어느새 맑은 공기와 더불어 아침햇살이 들어오는 그녀의 방이었고, 그녀는 맑은 산소를 들이마시며 스트레칭 하듯 몸을 쭉 폈다.

         

       “후우, 역시 마법은 편리해.”

         

       [남들이 보면 마법을 쓸데없이 쓴다고 말할 거야.]

         

       “그건 보수적인 꼰대만 그런 거고, 또 생각하니 열 받네!”

         

       [으음, 그건 인정!]

         

       아카데미에서 교류하기 시작한 마법사들과 마법학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듣자면 숨이 탁탁 막히리라.

         

       마력의 재능을 선택받은 무언가로 표현하는 것도 그렇고, 마법이란 건 무지몽매한 인간들은 결코 이해 못할 상위의 지혜라든가 뭐라나.

         

       하여튼 듣고 있자면 속이 그토록 매스꺼울 수가 없다.

         

       ‘괜히 마법사가 이 세상에서 멸시당하는 게 아니야. 하나같이 정신병자들밖에 없는 것 같아.’

         

       나만 빼고.

         

       [아린아.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건 좋은데, 이제 그만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아, 가기 싫다.”

         

       12년이나 학교를 다녔으면 됐지, 또 3년 동안 아침 일찍 일어나 수업 받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우울증이 도진다.

       아이린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때.

         

       [어! 교관님이다!]

         

       “부지런하시네. …스읍!”

         

       […눈이 호강하네.]

         

       뛰고 있는 교관이 보였다.

       그녀가 일어나기 한참 전부터 뛰었는지 교관은 땀이 흥건했다.

       햇볕을 맞으며 이슬처럼 맺힌 땀방울이 반사되는데, 저토록 부지런히 뛰는 것도 대단하다 싶다.

         

       ‘어떻게 사람이 매일 저렇게 뛰지?’

         

       이사한 이후 매일 아침 보는 풍경.

       다른 한편으로 존경스럽다.

         

       허나 존경심을 느끼기도 잠시, 부지런한 교관의 생활패턴보다 더욱 눈이 가는 건, 웃통을 벗은 그의 몸이었다.

         

       어찌나 샅샅이 훑는지 누가 보면 수상하단 시선부터 받으리라.

         

       “…우리가 보고 있는 거 모르겠지?”

         

       [모를 거야. 그보다 아린아, 저거 사진부터 찍어, 빨리!]

         

       “도, 도촬은 범죄야….”

         

       [들키지만 않으면 범죄가 아니야.]

         

       “……그, 그런가?”

         

       납득이 가는 명언이었고, 아이린은 어쩔 수 없는 척을 하며 ‘그걸’ 꺼냈다.

         

       물의 마법사가 만들어낸 희귀한 마법 물품으로, 건물 값에 맞먹는다는 물건이다.

       [형상복사 촬영기]란 거창한 명칭을 가졌으나, 아이린에게 사진기에 불과했고, 느끼한 공작이 선물해준 께름칙한 물건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 찍혔다.”

         

       도촬에 성공한 그녀는 처음으로 공작의 선물이 반가웠다.

         

       그 아저씨,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닐지도?

         

         

         

       

        “-카메라는 언제 생겼지? 저건 처음 알았네.”

         

       저의 행동이나 목소리가 들킬 리 없다고 여긴 그녀였겠으나, 안타깝게도 그의 귀와 청각은 아이러니할 정도로 대단했다.

         

       물론 거리가 좀 있어 그녀의 목소리를 전부 들은 건 아니기에 이한은 마냥 그녀가 사진을 찍는다는 것만 인식했고, 딱히 그녀의 행위에 개의치 않았다.

         

       다만.

         

       “어떻게 찍혔는지 보여 달라고 해봐야겠네.”

         

       자신이 어찌 찍혔을지는 흥미로웠고, 그녀에게 언제 한 번 구경시켜달라 부탁이나 해볼 셈이었다.

         

         

       ……훗날 수치사가 예정된 도촬범이었다.

         

       * * *

         

       이한은 똑같았다.

         

       잭에게 천사이니 망나니 왕자이니 하는 걸 들었으나, 이한이 하는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굳이 나서서 무언가를 찾으려 노력하지도 않았으며, 조언을 구할 마음도 없었다.

         

       이유?

         

       ‘언젠가 출몰하겠지, 뭐.’

         

       굳이 말하자면 이한에게 망나니 왕자의 존재는 희귀 동물과 동일선상에 있었음이다

         

       흔히 알비노라 불리는 희귀 동물.

       흰색 사슴이나 흰색 청설모 등이 그러했고, 막상 보면 신기하지만 보지 않는다고 해도 굳이 문제는 없는?

         

       ‘봐도 좋고, 안 봐도 상관없지, 뭐.’

         

       안 본다고 죽진 않는다.

       분하지도 않고.

       그러니 이한은 그가 자연스럽게 출몰하길 기다릴 뿐이었다.

         

       ‘동료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나타나지 않을까?’

         

       아무렴, 벌써 ‘희귀동물’ 두 마리가 모여 있는데, 동료의 인기척 정도는 느끼겠지.

         

       이한은 개연성을 믿었다.

         

       그러니 지금 그가 할 일은 보이지 않는 마지막 희귀동물을 찾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더블 언더(Double under)를 시작하겠다. 모두 교관이 준비한 줄을 가지고 가도록.”

         

       -…….

         

       교관의 의무를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 또한 투기법을 익힌 녀석들은 붉은 표시가 있는 줄을 가져가야 하며, 투기법을 익히지 않았더라도 어느 정도 검술을 배웠다면 녹색 표시가 된 줄을 가지고 가라. 그리고 투기법이든 검술이든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사람은 노란색 표시를 가져가도록.”

         

       -…….

         

       “실시!”

         

       -시, 실시….

         

       생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렇게 각자에게 맞는 줄을 가지고 갔다.

         

       더블 언더, 말은 거창하지만 단순하게 말하자면.

         

       “자, ‘줄넘기’를 시작하도록 하지. 빨간색은 1만, 초록색은 5천, 노란색은 2천 번만 각자 채울 수 있도록!”

         

       -???

         

       “허허, 거 더럽게 말 안 듣는 것들이네.”

         

       이한이 슬쩍 웃으며 쇠몽둥이를 꺼내들었다.

       훙, 하고 허공에서 살벌한 파공음을 내는 쇠몽둥이를 가볍게 휘두르며 그는.

         

       “지금부터 교관의 명령에 불이행하는 자는 교관과 수업이 끝날 때 동안 ‘면담’이 있을 거다. 아마 영양가 가득한 면담일 테니, 아무쪼록 기대하도록.”

         

       “…몇 개라고 하셨수?”

         

       그들은 저 쇠몽둥이와 ‘면담’하고 싶은 마음이 일말도 없었고, 그의 명령을 이행했다.

         

       연무장에서 줄이 넘어가는 소리가 차례대로 울렸다.

         

       * * *

         

       …놀랍게도 이한의 수업을 포기한 이들은 없었다.

         

       특이한 일이다.

       평민 출신 인원은 그렇다 치고, 귀족 녀석들이 남아 있는 건 뜻밖이니 말이다.

         

       무슨 속셈이 있는 건지, 아니면 얄팍한 계략이라도 있는 건지 모르겠으나 어찌 됐건 수업은 진행됐다.

       뒷사정이 뭐건 그의 관심사가 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결정한 수업의 첫 내용은 다름 아닌.

         

       “재밌어 보이네요, 줄넘기. 저도 어릴 때 많이 했었는데, 헤헤.”

       “아마 보이는 만큼 쉽진 않을 겁니다.”

       “그래요?”

       “…뭐, 시녀님이라면 쉬울지도?”

         

       무려 저 줄넘기 전부를 운반해준 괴력의 도우미다.

       쓸모없는 조교 놈은 저 줄넘기 운반하다가 허리가 다쳐서 회복실로 실려 간 상태인 것에 반해 매우 정정한 것이, 기사 가문 후예라고 나대는 녀석들보다 훌륭하다.

         

       “못난 놈.”

       “네에?”

       “시녀님한테 말하는 거 아닙니다. 그보다 시녀님은 지루하시면 쉬고 계셔도 됩니다.”

       “아니요,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울게요! 전 임시지만 기사님의 시녀니까요, 헤.”

       “…고마운 말씀이군요.”

         

       정말 문득 드는 생각인데, 머리 쓰는 게 부족해서 그렇지 참하고 착한 애다.

         

       항상 야비한 귀족과 왕족만 상대하다가 이토록 순수한 영혼과 마주하고 있자니, 더러워진 마음이 씻겨 지는 기분.

         

       ‘…아니, 잠깐. 씻겨 질 게 있다는 건 나도 그 야비한 것들이랑 같은 놈이란 뜻인가?’

         

       일순 그러한 생각마저 들었으나, 이한은 애써 부정했다.

         

       차마 그런 부류와 같은 꼴로 엮이고 싶진 않았기에.

         

       그렇게 때 아닌 자아성철이 이어지는 그였으나.

         

       털썩….

         

       안타깝게도 슬슬 신호가 오는 것 같다.

         

       “아, 마침 시녀님이 해주셔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네에?”

       “저기 널브러진 것들한테 물만 좀 뿌리고 와주십시오.”

       “오!”

       “…근성 없는 것들.”

         

       겨우 ‘10kg’짜리 줄에 맞아 기절한 생도를 보며 이한은 혀를 찼다.

         

       하여간 요즘 애들은.

         

       ‘맷집이 뭐 저렇게 약하대?’

         

       너무 허약해서 탈이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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